마창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산추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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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추련
[92호]“ 5년 3개월, 1,916일 ”

대림자동차 현장으로 돌아간 노동자들과  만나다.  


작년 말 해고 무효 판결을 받고 5년 3개월 만에 복직한 대림자동차 12인의 근황을 물었다. 응답해 주신 5인의 답변을 편집하여 싣는다.

4월 23일 저녁. 말끔한 연회색 작업복을 입은 그들의 함박웃음이 산추련 사무실을 울리고 있었다. 익숙한 공간에서 오랜 동지들과 함께 하는 식사가 즐겁나 보다. 5년 3개월, 1,916일간의 해고 투쟁을 끝낸 고단함이라곤 찾아보기 힘든 유쾌한 얼굴이었다.  

얼마나 되셨지요? 출근을 시작한 게?

∼ 2월 27일이었으니, 두 달이 조금 안되었네요. 다음 주면 두 달이 되는군요.

복직해서 교육받으신다고 들었는데요.
∼ 복직 후 두 달 정도 교육을 할 거라고 하더니 3주 정도 지나자 회사 측에서 갑작스레 일정을 끝냈습니다. 준비가 잘 안되어 있었던 것 같아요. 3주 교육 후 원직으로 바로 복직했습니다. 원직으로 복직된 사람들은 특별히 달라진 바가 없어서 적응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습니다. 원직 부서가 없어진 한 복직자는 본인이 희망하는 부서로 배치 받았는데, 현재 사륜차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럼, 일한 지는 이제 한 달 정도 되신 거네요. 5년 동안 쉬었던 일을 다시 하는 건데 힘들진 않으세요?

∼ 전혀요. (모두 웃음) 조립 쪽에 있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일이 힘들어서 체력적으로 어려움이 있겠지요. 나이도 더 들었고, 그동안 몸 챙김도 그렇고... 나이 들어 노안이 오는 중인지 침침한 게 잘 안보여요, 일 할 때. (모두 웃음)

다시 만난 조합원들과는 어떠세요?

∼ 나오기 전에 친했던 사람들과는 여전히 잘 지내는 것 같고요. 예전에도 썩 잘 지내지 않았던 사람들, 조합과는 거리가 있었던 사람들에게서는 달갑지 않은 표정을 종종 보게 되죠. 반기지 않는 사람들도 30 퍼센트 정도는 되는 것 같아요.

∼ 일부는 고생 많았다고 인사를 건네고 안부를 묻지만 대부분은 마주치지 않으려 하고 피하는 느낌이 있어서 현장을 돌아다니며 인사하고 있는 중입니다. 무난한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5년 전과 비교할 때 현장의 변화는 어떤가요? 노동 과정에 대한 변화도 생겼겠고, 노동 강도도 훨씬 강해지지 않았나요?

∼ 자동화가 많이 되어서 그런지 노동 강도가 강해졌다고 크게 느끼지는 않습니다. 크게 변한 것이 있다면 사륜차가 65 퍼센트 정도, 이륜차가 35 퍼센트 정도 되는 설비 규모입니다. 예전에는 그 반대였지요. 사륜차 설비가 새롭게 들어와 있어서 공장 자체가 많이 생소합니다.

∼ 예전에는 공장 내에 여유 공간이 더러 있어서 건너편에서 일하는 동료들도 보이곤 했는데, 지금은 설비들로 가득 차서 잘 보이지도 않아요. 사람들 작업복도 가지가지예요. 들어와 있는 업체마다 다 다른 거죠.

∼ 해고 뒤 대부분의 자리를 사내하청, 아웃소싱으로 돌린 거죠. 예전에 희망퇴직자가 200여명이 넘었는데 그 후 300여명을 비정규직으로 채용했다지요. 현재 1,100여명 정도가 일하고 있는데, 사무관리직까지 포함한 정규직 수가 400여명이니까 나머지 700여명이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는 거지요. 이제는 비정규직 수가 정규직보다 훨씬 많아졌습니다. 시간이 나서 공장 안을 잠깐 돌아봤는데 중년 여성노동자들이 참 많았습니다. 대부분 불법파견이지요.  

∼ 조합원들의 평균나이가 48세 정도입니다. 공장 안 분위기나 조직 활동에 예전처럼의 활기는 없죠. 우리가 해고되고 나서 한 2년 정도는 회사로부터 당근도 받고 해서 분위기가 좀 추슬러지는 것 같았나 보던데, 이제는 다들 별 희망이 없다고 느끼는지 분위기가 죽어 있어요. 이륜차 라인은 점점 줄고 있고, 사륜차의 경우도 현대 한 번 휘청거리면 당장 계약 해지를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니 다들 불안감이 큰 것 같아요. 오히려 복직한 우리가 더 의기양양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 금속노조에서 기업별 노조로 바뀌어서 그 런지 노조에 대한 기대가 없고 자기혼자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것이 당연시 되는 현장이 된 것 같습니다.

지난 해, 승소 판결 받고는 어떠셨어요? 짐작하셨나요?

∼ 확신은 갖고 있었지요. 하지만 이길 거라 쉽게 말을 꺼내지는 못했어요. 판결 전날 잠을 못 잤습니다. 누웠다 일어나기를 거듭하다 새벽 4시에 동지들과 만나 출발해서 도착했는데, 입구에서 민주노총 조끼 착용 문제로 실랑이를 하다가 못 들어갔죠. 경비를 서는 쪽에서는 조끼를 벗으라 하고, 저하고 쌍차 동지 한 분은 못 벗는다 왜 벗느냐 하다가 결국엔 못 들어가고 판결 듣고 나오는 동지들한테 승소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참 기뻤는데, 쌍차 동지들 상황도 있고 해서... 이겨서 좋았지만 한편 참 씁쓸한 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 가족 생각에 눈물이 났지요.

그랬을 것이다. 쌍차의 패소 소식과 겹쳐 속 시원히 환호성 한 번 제대로 지르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흐르는 눈물, 먹먹해지는 가슴을 어찌 누를 수 있었을까. 일자리 잃은 가장으로 가족들 볼 면목 없어 집에 들어가지도 못한 채 퉁명스런 전화만 걸어대던 날들, 그런 날이면 공장 앞 컨테이너 안에서 모로 누워 밤새 줄담배를 피워댔을 것이다. 허튼 짓으로 허송세월 하는 것이라는 눈초리를 견뎌야 했던 출근 길 선전전도 이제는 끝이다, 대문짝만 하게 쓴 승소 판결문을 들고 보란 듯이 공장 문을 들어서겠다 상상했을 것이다. 지난 5년 동안의 몸 고생, 마음 고생이 주마등처럼 떠오르고 또 떠올랐을 것이다.


지난 5년 동안을 돌이켜 볼 때 가장 힘들었던 것, 가장 기억에 남는 것들은 뭐였을까요?

∼ 해고되고 나서 조합원들이 우리를 피한다는 느낌을 받았을 때 참 힘들었어요. 아마도 미안한 마음에 피한 것이겠지요. 서로가 복잡한 심정이었던 거죠. 술집에서 우연히 만나더라도 우리가 있으면 자리를 피해 나가 버렸죠. 스윽 둘러보고는 마치 찾는 사람이 없기라도 한 듯 나가 버리는 거죠.
멀리서 마주 오다가도 전화를 받는 것처럼 해서는 돌아서거나 다른 길로 가 버리고. 나름대로 다 힘들었던 것 같아요.
∼ 마지막 판결을 남겨두고 회사 측에서 접촉도 해오고 상경투쟁도 하던 와중에 함께 투쟁해 오던 우리들 사이에서 의견과 입장이 분분해졌던 상황이 참 힘들었습니다. 어떻게든 결정을 내려야 했는데, 몇몇 사람은 협상을 얘기하기도 했고 반대로 끝까지 투쟁해야 한다는 주장이 맞서면서... 당장의 생계문제도 걸려 있고 해서 서로의 입장이 똑같을 수만은 없었지요.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겠지만, 그때의 상처는 아직까지도 많이 남아있습니다. 결과가 좋지 않았다면 아무 것도 남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어요. 사람도, 그 무엇도.

∼ 복직에 대한 희망이 무너졌던 1심 판결을 전후해서 생활고와 생계에 대한 것이 가장 힘들었지요. 이런 상황에 있는 나 자신이 참 비참하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들기도 했습니다. 그나마 함께 하는 주위의 동지들이 없었다면 5년의 투쟁을 계속하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좋은 기억은 없었나요? 5년 동안?

∼ (모두 웃음) 순간순간 즐겁기도 했지요. 지역에서 연대하고 있는 동지들과 밥 한 끼, 술 한 잔 하면서 얘기 나누던 그런 즐거움들이 있었지요.

∼ 회사 앞에서 투쟁하고 있을 때 조합원들이 잘 찾아오는 것도 아니고, 잠깐 틈이 나서 나와 보면 어디 갈 데가 없더라고요. 그나마 연대하고 있는 동지들이 있는 단체에 가 보거나 하는 거지요. 그렇게 찾아갈 곳이나마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고 고맙던지.

복수노조와 사무직노조까지 있는 상황인데 이후 지회활동은 어떻게 해 나갈 계획인가요?

∼ 현재 복직자 12명은 금속노조로 되어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 4월 말 쯤 모여서 다시 협의해 볼 예정인데, 고민이 되는 부분입니다.

∼ 회사 내 사람들을 좀 더 조직해서 금속노조로 가자는 의견도 있고, 금속노조를 일단 탈퇴하고 조직을 새롭게 해서 전체가 다시 금속노조로 들어가야 하는 것 아니겠느냐는 의견도 있습니다. 이중가입을 해도 되긴 한데... 어느 쪽이 더 나을지는 생각을 해 봐야겠죠.

∼ 처음 기대와 달리 현장 조직이 쉽지 않습니다. 차후 뜻을 같이 하는 조합원 동지들과 함께 조직을 재정비하고 하나의 노조가 될 수 있도록 밑거름이 되고 싶습니다.

장기 투쟁하고 있는 동지들이나 지역 동지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 참 어렵습니다. 상투적으로 끝까지 싸우라고 말하기도 쉽지 않아요. 생계도 해결되지 않는 상태인데 계속 싸우라는 말만 하는 것도 그렇고,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책임을 져 줄 수 있는 상황도 안 되고... 그런 부분을 생각할 때, 마냥 투쟁해라 어떻게 해라 하고 말하는 것이 쉽지 않네요.

∼ 현재의 어려움을 혼자 극복하려 하지 말고 지역의 선배노동자와 많은 대화를 나누며 순리적으로 헤쳐나가시라 당부 드리고 싶습니다.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승리할 수 있다는 끈기와 집념으로 현재의 아픔을 뛰어넘고서 승리의 그 날을 위해 전력투구하시길 바랍니다. 싸울 상대가 있을 때 그 때가 행복한 날입니다.


자리를 옮겨 시원히 맥주 한 잔씩 나누었다. 다하지 못했던 속 깊은 심정들이 밤이 늦도록 오갔다.
어렵고 힘들었던 투쟁, 그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그래도 그들의 가슴에 오롯이 남아 있는 한 가지가 있었다. 동지애. 나서게 된다면 다시는 공장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될 것을 알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념을 접을 수 없게 했고 끝까지 함께 할 것을 다짐하게 만들었던 힘.  그들의 동지애.  지난 투쟁에 대한 아쉬움을 되새기며, 또 다시 겪게 될지도 모를 큰일에 대비하자 그들이  다시 머리를 맞대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우리들의 동지애가 더 필요한 때 아닐까. 서로의 안부를 챙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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