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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추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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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호]노동자들은 “ 믿을만 한 구석”을 만들었다 (pns지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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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초입 공단 거리에 부는 바람은 다른 곳에 비해 날이 날카롭다. PNS(구 남성알미늄)지회를 방문하는 날 바람은 올 겨울 시작을 알리는 듯 차고 세었다. 아직 채비도 하지 않은 옷은 단단히 여미어도 한기를 막을 수 없었다.
회사 규모는 생각보다 컸다. 전봇대 길이만큼의 알루미늄 바가 공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고 눈에 익은 알루미늄 샤시 완성품들이 즐비하게 놓여 있었다.
20년 만에 다시 만든 노동조합!!
회사가 사라진 것도 아니고 건재하게 잘 돌아가는데 왜 없어졌는지? 또 다시 노조를 만든 이유는 뭘까? 궁금했다. 성우 목소리처럼 멋지고 무게감 있는 소리를 지녔다고 생각한 홍희균 지회장님은 우리를 지회사무실이 아닌 고객 상담실로 안내했다. 노조 만들고 교섭한 지 2주 밖에 안돼서 사무실은 마련하였으나 각종 사무 집기들은 준비 중이었다.
고객 상담실에는 이재봉 부지회장님이 와 계셨다. 간단하게 인사를 나누고 지회장님이 뽑아다 준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가장 궁금한데요, 20년 만에 다시 노조를 만들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우리 회사는 일 년 내내 신입사원을 모집하고 있다. 하지만 적응을 못하고 나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몇몇 기술직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단순 노동직이라 육체적으로 힘이 든다. 어떻게 하면 오랫동안 같이 일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로 가장 절실하게 느꼈던 문제는 주식회사지만 개인회사나 다름 없이 지분을 모두 사장 식구들이 갖고 있어 하고 싶은 대로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하루 생산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시간에 관계없이 해 놓고 가야한다. 불량이 나올 경우에는 생산자의 임금에서 손실분을 삭감하는데 징계위원회가 열리고 임금의 30%를 뗀다. 그걸 5개월 동안 떼인 사람도 있다. 담당 부서장이나 공장장 등이 나누어서 손실분을 내기도 한다. 사장은 ‘너희가 일해서 불량냈는데 왜 내가 그 손해를 보아야 하느냐’ 고 한다.
평균연령이 45세이고 평균 근속연수가 3년이라고 말문을 여신 지회장의 말에 의아해했었는데 이해가 갔다. 노조 설립 이유를 다 듣기도 전에 사장이 누구인지 궁금했다.
사장은 어떤 사람인가요?
- 경영 2세다. 44세로 미국유학파다. 경영을 이어 받기에는 준비가 미흡한 사람이다. 2013년부터 경영을 했는데 복지는 여전히 열악하다. 올해부터 연봉제를 하는데 말 잘 듣는 사람은 많이 준다. 총 근무자가 150명인데 본사를 서울로 옮길 예정이다.
깜짝 놀랐다. 얘기를 들으면서 노동자를 노예로 생각하고 있는 70이 넘은 KBR(현재 직장폐쇄에 맞서 싸우고 있음)의 악덕 기업주가 ‘여기 또 ’라는 생각이... ‘신세대 유학파’... 신자유주의의 첨단 미국에 유학을 다녀 온 젊은 사장은 신보수주의자답게 칼날을 휘두르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재봉 부지회장님이 노조 설립 배경의 중요한 또 다른 이유를 이어 말씀하셨다.
- 알루미늄을 주조에서부터 압출, 도장까지 완제품을 만들어 내는데 주조의 경우는 라인을 세울 수 없어 2조 2교대로 작업을 했었다. 그런데 사측의 일방적인 지시로 3조 2교대로 바꾸게 되었다. 현장에서는 3조 2교대를 못하겠다는 불만이 나왔다.
이재봉 부지회장의 경우 PNS에 입사하기 전에 세아제강에 8년 정도 다니셨다고 한다. 또 그 이전에는 노동조합 투쟁으로 유명했던 경주 풍산금속 안강공장에서 노조창립 문화차장을 하셨던 이력이 있었다. 그러던 분이 노동조합이 없는 곳에서 우리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그저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게 너무 답답하셨다고 한다.
2조 2교대보다 3조 2교대면 노동조건은 더 좋은데 왜요? 임금이 줄어 들었나요?
- 임금저하는 별로 없었다. 근무형태가 바뀌니 적응이 안 되었다. 처음 들어오는 사람들은 3조2교대를 계약하고 들어오기 때문에 오히려 좋아하지만 그동안 해왔던 분들은 적응이 힘들다. 토,일요일이 42일 만에 돌아오는 경우도 있다. 동료의식이나 사회적 관계가 전반적으로 힘들어졌다. 조합원 중 1명은 변화된 교대근무형태에 적응이 안 되어 몸에 이상이 와서 현재 휴직상태다.
일방적인 지시가 갖고 오는 폐단이 얼마나 큰가? 2조2교대보다 3조2교대의 근무형태가 건강상에는 좋은 조건임에도 불구하고 그걸 거부하고 다시 2조 2교대를 요구하는 걸 보면 아무리 좋은 것도 일방적인 것보다 의견수렴을 거쳐서 시행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되었다. 사장의 일방적인 행위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고 한다.
- 현장에 비치하도록 되어 있는 취업규칙을 비치도 안한 상태에서 취업규칙을 변경하게 되었다. 취업규칙의 내용도 모른 채 변경내용만 보여주면서 서명하게 했는데 서명을 거부하고 안한 사람은 집에 가라고 해서 강제로 모두 서명했다. 취업규칙을 들여다보면 너무 황당한 일이 많다. 여름휴가를 4월로 변경했는데 6월에 변경 갱신을 하고 8월부터 시행한다고 되어 있다. 그러니 사측에서는 여름휴가가 없어졌으니 연차를 쓰라고 지시했다. 현장의 불만이 높아졌다. 경조사나 휴가의 내용도 사라졌다. 더 우스운 것은 2011년에 정년이 58세에서 55세로 변경되었는데 그 사실을 올 해 알게 되었다. 정년 당사자도 모르고 계속 다니게 되었는데 사측은 이를 이용하여 ‘당신 정년이 지났을 텐데..’하면서 압박용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지회장이 이러한 사실들을 사람들에게 얘기했는데 사장이 지회장과 의견이 불일치한다고 지회장한테 ‘회사 그만두라’고 했다. 지회장이 ‘3년치 임금을 주든지, 해고 사유서를 줘라’라고 했더니 회사 측에서 이를 거부하고 사무기술직(환경, 소방, 안전,에너지관리)인 지회장을 2013년에 생산부서인 출고로 발령을 냈다.
홍희균 지회장의 왼쪽 가슴에 달려 있는 이름표를 보니 생산과장이라는 직책이 눈에 보였다. 갑자기 조합원 대상 범위가 궁금해졌다. 현재 창원공단 내 조합원 대상 범위는 아주 엄한 곳은 반장도 제외시키는 곳이 있기 때문이었다.
PNS지회 조합 가입 대상은 어디까지인가요?
- 지회 규칙에 인사·노무·재무경제 부서를 제외한 부장까지도 가입 가능하도록 되어 있다. 사무직과 생산직을 구분하지 않고 모두 총괄해서 조합원을 받고 있다. 과장, 부장급의 직책을 가진 사람이 많은데 현장직은 과장급 1명 빼고 모두 가입한 상태이다. 노조 설립 당일 98%가 가입했다. 현장에는 이주노동자 22명과 내국인 95명이 있는데 이주노동자의 경우는 현재 비조합원이다. 앞으로 조합 가입을 받을 생각이다. 내국인 95명 중 5명 정도가 정년이 지난 분을 재고용(촉탁)해서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다. 이 중 2명이 20년 넘게 일해오신 분이다.
1년에 이직자가 200여명이라고 하셨는데 혹시 저임금이 원인인가요?
- 생산직 초임이 2800만원 정도이니 낮은 편은 아니다. 내국인의 경우 최하 3000만원 정도이다. 60%인 60명 정도가 맞교대를 하는데 주간이 2800이고 야간이 3100~3200정도를 초봉으로 받는다. 초봉만 높을 뿐이다.
노동조합을 만들기 전과 후가 어떻게 달라졌나요? 노동조합의 성과와 함께 말씀해 주세요.
- 일단 가장 중요한 건 현장이 밝아졌다. 일방적인 지시로 이루어졌던 게 없어지고 모든 걸 노조와 의논해야 하니 조합원들에게는 ‘믿을 수 있는 구석’이 생긴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직률이 낮아졌다. 또 달라진 것은 올해 처음으로 겨울동복바지가 지급되었다. 그 전에는 상의만 지급되었었다. 또 회사는 현장에 감시 카메라 36대를 설치할 계획이었으나 노동조합이 이를 차단하였다. 적응이 안 되었던 3조2교대를 사측은 10월부터 전 부서에 확대하려고 했으나 11월까지만 하고 12월 1일부터 조합원들의 요구대로 2조2교대로 바꾸기로 했다.
이야기를 나눈 지 얼마지나지 않아 총무팀의 이름표를 단 사람이 고객 상담실 문을 열고 무슨 얘기를 하냐고 물었다. 부지회장님은 우리가 준비해 간 ‘산재없는 그날까지’를 건네주며 잘 읽어보라고 했고 지회장님은 시리즈물이라 갖고 가면 안 된다고 한마디 내던졌다.
- 노동조합 설립 후 성과로 굳이 한 가지 덧 붙이자면 고용창출 효과를 갖고 왔다. 총무팀에 노조담당 관리 2명이 새로 왔다.
웃지 않을 수 없었다.
해야 할 일이 산더미지만 현재 지회에서 그 중 중점에 두고 있는 사업은 무엇인가요?
-과거청산이다. 잘못된 것들을 되돌리는 일이다. 교섭한 지 2주되었다. 대의원이 5명인데 현장의 의견을 수렴해서 노사협의회를 진행할 것이다. 산재치료 받고 복귀한 조합원이 2명인데 잔업을 시키지 않는다. 이 분들을 산재받기 이전으로 원상 복귀시키는 일도 중요하다. 지회장 전임문제도 중요하다. 취업규칙 상 55세의 정년을 만 60세로 바꿔야 한다. 또 현재 포괄적인 연봉제를 월급제로 바꾸는 일도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지역의 많은 사람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 한마디씩 해주십시오.
- 노조는 회사서 인정받는 사람들이 만들어야 제대로 인정받고 만들 수 있다. 현장서도 빈둥거리는 사람은 아니다. ‘형님이 하면 콜~~~!!!’ 인간적으로 갖추어야 할 것이 있다. 노조 설립 보고대회 때 정년을 1년 앞둔 부장님이 맨 앞에서 팔뚝질 하니, 나머지 조합원들이 따라서 더 힘차게 팔뚝질 하는 것을 보고 감동했다. 오랫동안 같이 일한 동료들은 서로 보호해주고 싶다. 지금 활발히 움직이고 있는 노동조합을 보면 공생하기보다는 자기 밥그릇 찾기만 하고 있다고 보여질 때도 있다. 노조에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문제라고 생각한다. 노조가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면서 갔으면 좋겠다.
- ‘취업하고 싶으면 노조가 있는 곳에 들어가라’ ‘노조가 없는 회사에 들어가게 되면 금속이나 민주노총의 지원을 받아라’라고 말하고 싶다. 손을 내밀 때 잡아줄 수 있는 곳이 금속이나 민주노총이다. 지금까지는 나 개인의 삶이 우선인 삶을 살아왔는데 남을 위해, 우리를 위해 살아간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은 것 같다. 노동조합을 만들었으니 제대로 된 결과물이 잘 나와야 한다는 부담도 있지만, 같이 하면 현장도 바꾸고 삶도 바꾸어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다.
어디 KBR이나 PNS와 같은 경영구조를 갖고 있는 곳이 여기뿐이겠는가?
PNS지회의 경우는 20여 년 전에는 노동조합이 있었다. 당시 남성알미늄 이름의 1세대 경영주는 노조 때문에 자기 맘대로 되지 않는다고 하여 노조를 없애기 위해 7개월 동안 공장폐쇄를 하였다. 이후 공장을 재가동하면서 남성알미늄의 금형업무만을 떼어 한 공장안에 남성산업을 만들면서 없어지게 되었다. 당시 노동조합에서 활동했던 분 5명만이 현재 PNS에 남아 있다.
근속연수 20년이 5%이고 3년 미만이 50%인 이 회사는 연간 이직 인구가 200여명이어도 끄떡없이 잘 돌아갔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며 노동조합이 다시 만들어졌다.
창원공단 내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가진 자들의 횡포를 묵묵히 받아들이고 있을까? 하지만 오래가지 않을 것임을 확신한다.
이야기 마치고 나오는데 회사 정문으로 치고 들어오는 바람이 더욱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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