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송전탑반대투쟁을 담은
다큐멘터리 <오래된 희망>리뷰
현아
지난 2월 24일, 영화사 파란만장과 공공미디어 단잠이 공동기획한 다큐멘터리 <오래된 희망>의 첫 상영회가 창원문화원 대강당에서 열렸다. <오래된 희망>은 밀양의 765Kv 송전탑 반대투쟁의 기록을 담은 영화다. 이날 상영회에서는 투쟁을 이끌어 온 밀양의 마을주민들과 경남지역의 다양한 연대자들이 함께 해 자리를 더욱 빛냈다.
마을이야기부터 원전비리까지
10년의 싸움이었다. 오랜 시간이다. 그 만큼 억울했고 저항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오랜 투쟁의 시간들 중 최근 3년간의 이야기가 카메라에 담겼다. 영화는 3년이라는 시간의 끝자락에 있었던 행정대집행 상황에서부터 시작된다. 행정대집행을 앞둔 새벽, 주민들은 농성천막과 자신의 목을 쇠사슬로 엮어 감는다. 목숨을 건다는 의미였다. 삶을 내건 싸움은 처절하고 아프다. 밀양이 그랬고 청도가 그랬다. 국가는 송전탑을 반대하는 주민들에게 다시 일어설 수 없는 상처를 남기기 위해 공권력을 투입한 것이었고, 실제로 밀양의 6·11 행정대집행은 그들에게 큰 흉터로 남았다. 송전탑 건설과정 내내 주민들의 목소리는 철저히 배제되었다. 한국전력공사가 밀양을 송전선로 경유지로 선정한 2001년 이래로, 주민의 이야기에 귀 기울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한전은 오직 한 차례의 ‘주민설명회’ 라는 경로를 통해서 밀양 주민들에게 일방적으로 통보할 뿐이었다.
어떻게 사람을, 사람의 삶을 이토록 가벼이 볼 수 있을까. 또한 송전탑건설을 왜 그렇게까지 감행해야 했던 것일까?
영화의 초점은 이제 마을의 풍경에서 벗어나 국가의 에너지정책으로 옮겨간다. 밀양시 4개면(面)을 지나는 송전선로는 울산 신고리 원전에서 생산한 전력을 창녕군의 북경남변전소로 수송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정부는 이 송전탑건설을 계속되는 전력수요급증에 대비해 영남지역에 원활히 에너지를 공급하기 위한 정책이라 말했다. 그래서 밀양송전탑은 꼭 필요하다고, 시급하다고 했다. 지나치게 낮은 산업용 전기요금 덕에 사실상 전력소비는 공장에서 더 많으며, 그렇다 쳐도 현재로써는 과잉생산이다. 더욱이 전기는 저장할 수 있는 에너지로 적합하지 못하다. 하지만 ‘전력난’ 핑계는 언론을 통해 전달되면서 마치 국민들의 전력소비가 온 나라를 마비시킨 듯 과장되고, 송전탑건설에 반대하는 밀양주민들을 지역이기주의에 갇혀 용이한 전력수급을 막는 사람들처럼 묘사되었다.
가까운 역사 속에 있었던 원전사고들을 뒤로 한 채 위험한 역주행을 하고 있는 정부와 한전이다. 밀양을 지나는 전기를 생산하는 신고리 3호기에는 시험성적서가 위조된 부품이 장착돼있다. 심지어 위조된 문서에서 평가한 부품은 원전의 핵심부품인 ‘제어케이블’이었다. 이렇듯 국민의 안전은 뒷전이다. 원전을 멈추지 않게 하는 권력과 그 권력에 기생하는 돈줄들이 모두, 다름 아닌 ‘원전마피아’다. 체르노빌과 후쿠시마를 목격한 이후, 이제 그들 이외에 원전을 필요로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오래된, 그래서 더 단단한
밀양은 나에게 있어, ‘삶이 걸린 투쟁’이 얼마나 큰 폭으로 확장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평생을 논밭을 일구며 그 땅을 맨발로 딛고 살아왔을 사람들이다. 그런 그들에게 정부와 한전은 어떠한 까다로운 절차도 없이 그 땅을 뺏겠노라했다. 70년, 80년의 고단한 세월이 쌓은 한(恨)이 그 자리에서 터졌다. 삶이 송두리째 부정당해서다. 그래서 시작한 싸움이 10년의 역사가 되었다. 그 시간 동안에 왜 우리가 싸울 수밖에 없는지, 그 이유가 보다 선명하게 더해지고 있다.
권력이 누군가의 삶을 짓밟았을 때 그것은 단지 한 생명, 혹은 한 사람의 고통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희망도 결코 한 사람의 것이 아니다. 밀양할머니들은 ‘우리는 이길 수 있다’는 말씀을 자주 하신다고 한다. 그것도 아주 확신에 찬 목소리로. 밀양의 주민들이 유독 강인해서가 아니다. 송전탑 문제가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것을 인식했기 때문이고, 연대자들과 함께한 투쟁에서 그것을 체감하고 확인했기 때문이다. 오래된 희망이라는 말은, 긴 세월 고통받아왔다는 사실을 비추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만큼 더 단단하고 견고한 희망이다. 오랜 시간 그 자체가 희망에 확신을 불어넣어준다.
지금, 고통의 세월을 지나는 우리에겐 이뤄지길 바라는 ‘희망’들이 너무나도 많다. 오래도록 많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버티며 살아낼 수 있는 것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이 삶에, 이 투쟁에 확신이 서는 까닭에서가 아닐까. 오래된 희망은 흔들리지 않는다. 오늘까지의 ‘버팀’ 시간들이 역사가 되어 또 내일을 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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