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창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산추련)


		오병창

		[55호] 우리는 이제 같은 꿈을 꾸고 같이 시작한다!

우리는 이제 같은 꿈을 꾸고 같이 시작한다!

교육편집팀

퇴근하기 위해 막 씻고 돌아오는 길에 만난 야간조원의 이야기였다.
“뭔 일인데요?”
“지들이 야간 들어가면 편한 일만 골라 하면서 우리는 주간에 지들이 하기 싫은 일만 시키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아예 일을 트집 잡고 잔업시간을 까고 있잖아”
이런 황당한 일들이 우리 회사에서는 자주 일어난다.

우리 회사는 3개의 야간조가 일이 바쁠 때 번갈아가면서 야간을 들어간다.
그 중 한조는 소장과 팀장의 후광을 듬뿍 받고, 다음 우리 조는 소장이나 팀장이 껄끄러워하고, 나머지 한조는 일명 왕따 조다.
그래서 새로운 사람이 입사하면 하는 것 봐가면서 소장조원들이 데리고 가는냐 왕따조로 가느냐가 결정된다.
소장 조는 어떤 일을 해도 편한 일만 골라서 하고, 야간 잔업은 달 수 있는 만큼 달아먹는다.
반면 왕따 조는 무슨 일을 해도 남들 하기 싫은 일만하고, 욕 얻어먹기 일수다.
우리 조는 물론 소장 조와 비슷한 일을 하고 잔업도 달 만큼 달아먹는데도 사람들이 그리 선호하지 않는 이유는 우리조로 가면 일단은 소장이나 팀장한테 찍혔다는 인상을 받기 때문이다.
온갖 달콤한 사탕을 던지는 통에 많은 사람들이 소장 조로 들어가기 위해 안달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소장이나 팀장과 친해지려고 무단히도 노력한다. 평소에는 우리와 모여서 회사도 욕하고 소장, 팀장을 욕하던 사람들이 기회만 되면 그 쪽으로 발을 담그려고 하는 모습을 자주 목격했다.
우리 같은 불만세력들이 힘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살기 위해 그러는 건지, 원래 사람의 습성이 그런지, 우리 조에서는 참 논란이 많지만 그래도 그 사람들을 많이 이해하려고 한다.

이번 주는 왕따 조가 야간을 들어갔기 때문에 참 말도 많은 한 주였다.
대부분 사람들은 이렇게 열 받아 하면서도 금세 누그러진다. 그래서 사람들을 더더욱 우습게 보고 지들 마음대로 하는지도 모른다.
다음 주는 우리 조가 야간 들어갈 차례다.
그런데 퇴근하는 길에 소장 조의 동생들이 와서는
“형님 다음 주부터 조가 바뀐다는 소문이 있던데요”
“왜? 조 단합대회 다녀온지 며칠이 지났다고.....니가 잘못 알았겠지”
“팀장이랑 우리 조장이랑 하는 이야기 들어보니 형님조가 제일 많이 갈라진다던데요”
“뭐? 이런 개새끼들 해보자는 기가........, 알았다 이거 틀림없는 사실이제?”
“예 제가 조금 전에 들은건데예”
이런 이것들이 이제는 우리까지 건드리기로 작정을 했다.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 우선 사람들을 모았다.

회사근처 식당에 먼저 자리를 잡으니 우리 조를 비롯한 사람들이 한 둘 들어오기 시작했다.
대충이야기를 듣고 사람들은 흥분해서 저마다 한마디씩 한다.
“형님 이대로는 안됩니다 우리까지 저놈들 손에 놀아나면 그나마 눈치 보면서 하던 짓들을 이제는 아무 서스럼 없이 할건데 그럼 왕따조 형님들 다 죽습니다”
“왕따조만 그렇나. 우리도 다 죽는다. 저놈들 사람 다루는 것 봐라 이건 2000년대식 노무관리가 아니라 완전 쌍팔년도 공돌이 다루듯 한다 아이가, 밀어붙이면 다 되는 줄 아는데 이번만은 우리도 양보하지 말자.”
“그럼 노조 만듭시다”
흥분한 사람들은 누가 위원장감이고 누구는 무슨 특기가 있으니 무슨 부장이 좋겠다며 오버하기 시작한다. 이대로 두면 민주노총 선거도 치를 태세다.
“잠시만요 흥분해서 해결될 일이 아닙니다. 노조 만드는 것도 그리 쉬운게 아니고요 노조야 내일 당장 내가 한 명 손잡고 가면 만들 수 있습니다. 중요한건 만들고 난 뒤에 지킬 수 있느냐 아니겠습니까?”
“일단 만들고 그 다음에 지랄하면 소장실 엎어삐고 짤리면 그만아이가”
“그라면 노조 뭐하러 만듭니까 노조는 만드는게 중요한게 아니고 지키는게 중요하다고 조금전에 들었으면서...”
“그래 그래 일단은 이번 일을 어떻게 하면 좋을 건지부터 이야기하자”
이렇게 때로는 흥분도 하고 때로는 진지한 모습을 보이면서 우리의 대응책은 계속 이야기 되었다.

그리고 소장 조의 핵심들과는 눈도 마주치지 않고 말 한마디 안하면서 1주일이 지났다. 뭔가 낌새를 차린 듯 별다른 일은 생기지 않고 긴장감만 맴돌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동생들이 모여서 수근대는 것이 보기 싫었는지 그 놈들 몇이 동생들을 세워놓고 욕을 해대고 있었다. 무슨 일인지 싶어 사람들이 하나 둘 모이면서 싸움은 크게 번졌다.
그 때 팀장이 와서 무슨 일인지 물어본다.
“무슨일이고? 뭔 불만이 있길래 이렇게 떼로 몰려왔노”
“형님 좀 공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 한 조와 다른 두 조가 대우가 틀립니까?”
“그게 불만이가? 그럼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난다고 싫으면 나가라”
“아니 그게 작업자들에게 할 소립니까 해도해도 너무하네요”
“아이 시팔 저거들 키워준게 누군데 이제는 좀 컸다고 지가 소장 끝발이라도 되는 줄 아나 그래봐야 같은 잡부들끼리 너무하네“
얼마 전 술자리에서 모인 사람들이 모두 한마디씩 한다.
안되겠다 싶은지 자리를 황급히 피하고는 잠시 후 돌아와서 한마디 한다.
“내가 주동자 몇 명은 내년 계약 때 재계약 못하게 목숨 걸고 막을 테니까 어디 해볼라면 해봐라”
“뭐요 갈때까지 가자는거요? 좋소 함 해봅시다”
막상 큰 소리를 치긴 했지만 사람들 표정은 굳어있었다.
다음날 회사에 출근하니 사람들의 이야기 내용이 전과는 다르다 이전 같으면 회사나 소장의 측근들을 씹어대던 것이 주된 내용이었지만 ‘이제는 누구누구가 짤린다더라’ 는 등의 이야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공격적이던 사람들이 이제는 자기 방어적으로 돌변했다. 이대로 끝인가?
아니나 다를까 오후에 팀장이 우리 조원들을 조용히 부르더니 이대로 서로 끝내고 이전처럼 지내잖다. 사람들의 반응은 이만하면 됐으니 서로 좋게 끝내자는 분위기다.
이대로 끝내자고? 그렇다면 달라진 건 뭐지?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일만하면 되는건가? 저놈들이 이런 식으로 나오는 것은 지들도 부담스럽다는 이야기인데 그냥 확 밀어붙여? 이 상황에서 어떤 식으로 해야 옳은 결정일까? 별의 별 생각이 다 들었다.
결과는 참패였다. 어느 정도 행동만 보이면 저들이 꼬리를 내릴 줄 알았던 우리가 너무 순진했다. 같은 조건 속에서 자본의 달콤한 유혹에 빠진 사람들이 불평분자들 보다는 결속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실로 경험했다.
어쨌든 뼈아픈 패배다.

몇 주째 정말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공장은 잘만 돌아갔다.
하지만 다들 패배했다는 굴레를 쉽게 떨쳐버리기는 힘들었다. 술자리에서도 그리 흥겹지만은 않았고 우리가 싸웠던 그 날들에 대해서 애써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어느 날 가장 친한 동료와 마주앉았다.
“형님 우리 완전히 참패한거 맞죠?”
“그래”
“졌다고 이대로 앉아있어서도 안되는 것도 알고 있죠?”
한참을 생각하더니 술잔을 건네면서 한마디 한다.
“그래 임마 니 입에서 언제 그런 이야기가 나오나 기다렸다”
“하하 형님 우리 그동안 너무 서로 눈치 살핀 것 같네요”
“맞다 그럼 이제 우짤래?
“우짜기는요 형님은 그 조에서 한명씩 우리 사람 만들고 나도 우리 조에서 우리 사람 만들면서 다시 준비해야지요”
“그래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이번에는 확실히 준비해서 끝장 보자 우리 애들 보기에 창피해서 혼났다”

사람은 누구나 꿈을 꾸고 산다. 그 꿈이 크던 작던 그리고 실현 가능하던 불가능하던 꿈을 가지고 있을 때 비로소 행복하다. 우리는 이제 같은 꿈을 꾸고 같이 시작한다. 그것이 당장 내일 이루어질지 몇 년이 걸릴지 혹은 영영 불가능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꿈을 꾸고 있고 그 꿈을 위해 조금씩이라도 투자할 마음가짐이 있다면 결과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정작 중요한 것은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