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
산추련 |
|
 |
|
[68호]노동자의 가치를 높이는 기술을 가꾸는 게 어떻습니까? |
|
7월 4일은 두산 중공업 하청 노동자였던 제 친구 우백이의 49재가 있는 날입니다. 그런데 하청 노동자라는 건 우습지 않습니까? 노동자면 노동자이지 하청 노동자라는 건 또 뭐랍니까? 언제부터 노동자에게도 신분의 구별이 생겼더란 말입니까? 하청 노동자라는 것이 한국 사회에서 보이지 않는 족쇄가 되어 버린 건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참 답답하여 넋두리를 할까합니다.
지난 5월 16일 금요일 저는 아주 다급한 문자를 받았습니다. 어지간하면 연락을 잘 하지 않고 잘 지내겠거니 하는 친구에게서 말입니다. 보는 대로 빨리 전화 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고 말았습니다. 1시 20분경에 두산중공업 터빈공장에서 우백이가 지게차에 깔려 사망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저는 너무 어이가 없었습니다. 그날 밤차로 창원으로 갔습니다. 하지만 도착해서 들은 내용은 더욱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노동부는 사고 발생 후 한참 뒤에 사고 현장에 도착하여 목격자 확보 실패와 정확한 사인 규명을 하지 않은 채 월요일 사고 조사를 다시 하겠다며 돌아갔고 두산 중공업 사측은 자체 사고 조사를 했다지만 형식적인 조사만 하고 다음날 공장을 가동했습니다.
다음 날인 토요일 유가족이 사고에 대한 전반적인 보고를 듣기 위해 두산 중공업을 방문하였지만 유가족의 요구를 묵살하고 경비대를 동원하여 유가족을 폭력적으로 밀어 내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몇 시간째 차가운 바닥에 내팽개쳐 두더니 해질녘에야 나타난 크랭크 공장장이 나타나 처음에는 책임을 시인하는 듯 했으나 나중에는 자신의 말을 번복하고 두산 중공업이 이번 사건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없다고 말하고 하청 업체와 협상하라는 말만 되풀이 하였습니다. 백번 양보하고 계약은 계약이니까 하청 업체와 협상을 한다하더라도 최소한 고인에 대한 예의라도 갖추기를 바랐던 것이 유가족의 마음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마저의 바람을 요구하는 것이 부당한 것이라고 한다면 두산 중공업의 이미지는 다 거짓이겠지요. 텔레비전 광고는 아주 그럴 듯하게 나오는데 말입니다.
“지구의 가치를 높이는 기술, 이들의 소중한 희망을 우리의 기술이 함께 가꾸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노동자의 가치는요? 노동자의 소중한 희망은요?
복잡한 사회 구조니, 경제니 하는 건 잘 모르겠습니다. 외환위기 이후부터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하고부터 육체노동의 경우에는 65%가 비정규직이라고 합니다. 같은 일을 하면서도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만으로 더 열악한 환경에서 더 고된 일을 해야 하는 건 이상하지 않습니까? 기업의 이윤을 위해서라지만 최근의 연구 결과는 비정규직 비율이 높으면 오히려 성과가 높지 않다고 하는군요. 이윤 추구라는 게 목적이지만 그렇게 이윤만 추구하는 건 사회 전체적으로 좋은 결과를 낳지 못한다는 건 오히려 기업이 더 잘 알고 있을 테지요.
무슨 근거로 비정규직이어야 하고 무슨 이유로 부당한 대우를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부당한 처사를 받을 만큼 잘못한 건 없다고 봅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이렇게 어려운 시절 그런 비정규직 자리라도 들어가서 먹고 살아야 하는 노동자의 처지를 이용한 비열한 처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두산 중공업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두산 중공업의 소유가 아니니까 두산 중공업은 노동자 한 사람, 한 사람이 맺고 있는 사회적 관계와 관련이 있으므로 두산 중공업은 한국 사회 전체의 기업이 아닙니까? 비정규직의 문제는 비정규직의 문제가 아니라는 겁니다.
그리고 지게차 사망 사고는 이번만이 아니라면서요? 지난 2004년 11월 9일과 2005년 1월 21일에도 두 차례나 사고가 발생했는데 그 원인도 비슷하다면서요? 그건 모두 지게차 운전을 담당하는 회사와 사고를 당한 노동자가 속한 회사가 서로 달라 작업에 대한 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다가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사고 예방 프로그램을 두산 중공업에서 시행해야 하는데 그런 것을 전혀 하지 않았다면서요? 그러면 이번 사건은 예고된 사건이고 두산 중공업이 방관한 사고이라는 말이 맞지 않습니까? 누가 생각해도 그런 사실을 두산 중공업은 왜 애써 외면하고 있습니까? 두려운가요? 정말 두려운 것은 두산 중공업의 무책임한 태도이며 형식적인 안전 대책이 아닐까요? 악담은 아니지만 이런 사고는 또다시 발생할 수 있다는 게 더 무서운 사실이 아닐까요?
저는 지금도 우백이의 죽음이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두산 중공업은 많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원자력, 발전, 담수, 주단, 건설 등 굵직굵직한 일을 하는 회사입니다. 얼마나 좋은지 텔레비전 광고도 나오더군요. 광고 내용은 발전 설비를 세우게 되면서 마을 사람들이 빛을 찾는 그런 내용이더군요. 두산 중공업이 그 마을 사람들에게 빛을 준 셈이지요. 하지만 허울뿐인 광고 밖으로 나와 보면 두산 중공업 하청 노동자들에게 빛을 주지는 않았습니다. 우백이의 죽음처럼 이런 일이 한두번이 아니었고 그 때마다 처리하는 방식은 빛은커녕 유가족들에게 슬픔과 좌절만 안겨 주었으니까요.
공장은 역설적으로 노동자의 삶을 갉아 먹는 곳이기도 하지만 삶의 꿈이 영그는 곳이기도 합니다. 자신의 삶을 팔아서 자신의 꿈을 실현시키는 그런 곳인 거지요. 우백이도 그 속에서 자신의 삶을 팔았습니다. 그리고 꿈을 키워 왔습니다. 잘난 것도 없는 놈이었고 특별난 재주도 없는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누구나 갖는 꿈을 키웠지만 친구인 저도 어떤 꿈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걸 매우 쑥스러워했으니까요. 가끔 이야기했지요. 자신의 꿈에 대해서. 쑥스러워할 만했습니다. 남다를 게 없었거든요. 남다를 게 없는 게 없고 남처럼 노력하는 그 모습이 오히려 더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요? 최소한 사람을 얼토당토않은 기준으로 나누거나 이미지 광고로 자신을 속이지는 않으니까요. 소박한 꿈이 더 밝습니다. 두산 중공업이 자기 모순적인 불을 밝히고 있을 때 우백이는 가슴 한켠에 미래를 밝히는 빛을 가슴 속에 환하게 밝히고 있었습니다.
우백이의 빛과 두산 중공업의 그것과 색깔부터가 달랐습니다. 두산 중공업의 빛은 아무리 밝아도 어둡고 힘든 빛이었으나 우백이의 빛은 옆에 있는 사람들과 같이 빛을 내는, 따뜻하고 즐거운 빛이었습니다.
지난 두산 중공업에서 고 배달호 열사 투쟁 당시도 자기도 모르는 새 발걸음이 두산 중공업으로 향하고 있었고 묵묵히 선전반 일을 지역 동지들과 같이 하면서 가슴 속의 빛을 더욱 밝혔고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 활동적인 고민을 하면서 또 빛의 밝기를 더욱 키웠습니다. 말보다는 실천을 먼저 했고 실천을 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빛도 밝게 만들어 줄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더 좋아했던 친구였습니다.
그런데 그 빛이 이제는 빛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빛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우백이의 가슴에서 빛나는 빛이 아니라 우리 가슴 속에서 빛나고 있습니다. 그 빛이 자리를 바꾼 것일 뿐입니다.
공장에서 삶을 마감하는 사고가 아직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백이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도 두산 중공업에서 사고가 났었고 이에 대한 방지 대책을 마련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말뿐이었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말보다 실천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말만 그치는 것이 세상살이의 이치가 되어 버린 것 같습니다. 말이 많으니 말이 그 방향을 잃어버리고 말이 방향이 없으니 말에 책임이 없어지는 것이아닙니까? 그렇지만 그런 건 오래가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 가슴 속에 우백이와 같이 밝히던 빛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한번 살아볼 만한 세상이라고 합니다. 세상에 태어나 이런저런 일을 다 겪으면서 인생의 의미를 알게 되는 거라서 그런 말을 하겠지요. 겪지 말았어야 하는 일도 있습니다. 친구의 죽음도 그 중 하나겠지요. 전화를 걸고 싶지만 선뜻 전화를 걸지 못합니다. 핸드폰이 해지되어 버렸으면 어떻게 될까라는 두려움 때문인 것 같습니다. 영원히 우백이의 존재가 사라질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이제 우리의 빛을 더욱 환하게 밝힌다면 우백이는 끝까지 우리와 같이 하는 게 되겠지요. 그리고 두 번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일입니다. 노동자가 죽는 공장은 보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서 요구합니다.
하나. 두산 중공업에 분명한 책임을 물어 사업주에 대한 구속 수사하라.
하나. 두산 중공업 내에서 운행 중인 지게차에 대한 즉각적인 작업을 중지하고 재발 방지 대책 계획을 수립 후 운행을 재개 하라.
하나. 두산 중공업에 대한 특별안전보건감독을 실시하라.
하나. 노동부 창원지청은 지게차 사망사고에 대한 분명한 책임을 지고 지청장은 사퇴하라.
하나. 창원지방노동사무소 내에 있는 전 사업장에 대한 지게차 특별안전점검을 실시하라.
(이것은 지난 5월 19일에 있었던 경남지역 하청 노동자 노동기본권 및 건강권 보장을 위한 대책위원회의 기자 회견 당시의 요구입니다. 이 중 아무것도 이루어진 것이 없네요. 씁쓸합니다. 노동부는 뭐 하세요? 노세요?)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