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백혈병 1심 승소까지 4년, 죽은 노동자들 50여명
- 삼성 백혈병 행정소송 1심 판결에 부쳐
장안석 건강한노동세상
2011년 6월 23일, ‘삼성백혈병’ 재판부는 17개월의 법정싸움의 판결문을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삼성전자에서 일하다가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난 고 황유미, 고 이숙영은 산재로 인정. 고 황민웅, 현재 투병중인 송창호, 김옥이는 기각. 4년 만에 받은 일부 승소 판결. 판결문을 읽어내려가는 내내, 아쉬움과 기쁨 그리고 눈물과 분함이 공존했다. 물론, 기쁨이 더 컸다. 일부 승소는 생각조차 못했기 때문이다. 이글은 판결의 ‘법적’ 의미 보단, 반성의 의미가 담긴 글이다.
2007년 3월 6일.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에서 일하던, 22세의 젊은 여성노동자 황유미가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2005년 6월경 백혈병 진단을 받고, 아주대병원에 입원했다. 입원했을 당시, 같은 공장에서 일하던 엔지니어가 백혈병으로 투병하고 있었고 그는 7월 23일 세상을 떠났다. 그가 삼성반도체 기흥공장 엔지니어 고 황민웅이다.
딸의 백혈병,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같은 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가 백혈병으로 투병하고 있다니, 더욱 납득할 수 없었다. 고 황민웅이 죽고 1년이 지났다. 딸과 2인 1조로 일하던, 동료 이숙영씨가 2006년 7월 백혈병에 걸렸다. 그리고 두 달만에 세상을 떠났다. 갓 태어난 둘째를 제대로 안아보지도 못한 채였다.
산재일까? 아닐까?
우리는 묻는다. 아니, 적어도 나는 물었다. ‘어떤 작업을 했나요?’ ‘취급하는 물질은?’ ‘노출되는 물질은?’ ‘얼마나 일하셨나요?’ ‘혹시 가족 중에 같은 병이?’ ‘설비 밀폐는? 격리는? 보호구는?’ ‘건강검진 결과는?’ ‘냄새는?’ 이 많은 질문을 하는 동안, 그 질병이 산재일지 아닐지, 알량한 지식으로 재단된다. 그 공장에 한 번이라도 들어가서 경험하거나 본적도 없는데 말이다. 그리고 노출되는 물질이 없다면, 노출기간이 짧다면, 최초의 진입장벽 ‘상담자’와 ‘전문가’에게 ‘어렵겠네요’라는 말로 걸러진다.
만약, 2인 1조로 일한 2명이 모두 같은 병에 걸리지 않았다면? 같은 병으로 투병하는 노동자를 그때 당시 알지 못했다면? 1년이라는 터울이 아니라, 긴 시간 혹은 퇴사하고 난 후에 발견했다면? 아니, 진단명이 같지 않았다면? 젊지 않고 충분히 다른 환경에 오래 노출된 늙은 노동자였다면? 화학물질 직접 취급자가 아니라, 옆 공정의 노동자였다면?
만약, 고 황유미가 고 황민웅을 만나지 못했다면, 고 이숙영이 퇴사하고 병에 걸렸다면 삼성 백혈병 노동자이자 ‘최초의 반도체산업 직업병 노동자 고 황유미’는 없었을 것이다. 아니, 이렇게 산재로 인식되지 못하는 직업병 노동자들은 수도 없이 많을 것이다. 그리고 그 책임은 고스란히, 개인의 책임으로 전가될 것이고 자본은 또 다른 직업병 노동자들을 만들어내고 말이다.
물론, 어떤 산업 혹은 일터에서 발생하는 최초의 직업병 노동자들을 찾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더구나 한국처럼 노동소득 외에 다른 소득원 혹은 생존수단이 없는 나라에서는 더욱 그렇다. 산재로 인정받기까지의 진입장벽과 절차도 문제고 인정받기까지의 생존수단이 없는 것도 말이다. 혹은 인정받더라도, 그 낮은 급여로는 예전의 삶을 이어나갈 수도 없는 현실도 문제다.
1920년대 미국에서 이황화탄소 중독증을 일으키고 일본으로 이동한 ‘원진레이온 설비’는 일본에서도 같은 신경독성을 일으켰다. 그리고 1960년대 한국으로 이동하고 1,000여명의 이황화탄소중독 노동자들을 만들어냈다. 1990년대 중국으로 이전한 ‘원진 레이온 설비’, 지금쯤 미국과 일본, 한국이 겪은 일을 고스란히 겪고 있을지 모른다.
만약 중국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면, 중국정부는 당연히 무시할 것이다. 또한 중국의 활동가들과 국민들에게도, 어쩌면 이황화탄소 중독 증세를 보이는 노동자들의 병이 직업병인지 아닌지 의심스러운 상황일 수 도 있다. 2011년 현재도 ‘석면’을 발암물질로 인정하지 않고 ‘신이 내린 선물’로 사용을 장려하는 아시아 국가도 있으니 말이다.
삼성반도체 아니, 전자산업의 직업병 노동자들의 이야기는 중국에서 벌어질 ‘원진레이온’의 이야기와 같다. 이미 전자산업이 성행했던 나라에선 겪은 일. 하지만, 국가와 자본의 이익에 노동자들의 삶과 몸이 철저히 무시 받고 직업병임이 은폐되고 있는 일. 그것 다름 아니다.
하지만, 근로복지공단은 모두 불승인.
1심 판결에서 받은 일부 ‘산재 인정’ , 그리고 죽은 노동자 50여명
현재 반도체산업에서 산재신청을 한 직업병노동자는 21명이다. 그 중에 사실상 모두 불승인을 받았다고 보면(앞으로 불승인 받을 사람을 포함해서), 단 2명이 4년간의 싸움 끝에 산재로 인정받았다. 산재인정을 한 판례의 대부분의 경우처럼, ‘입증 수준이 명백하고 의학적인 것이 아니라 재해자의 입사 전 건강상태와 개인 감수성 등을 고려하여 업무관련성을 추정하여 판단’한다는 내용과 ‘노출수준에 있어서도, 작업환경측정 등의 데이터로 과거의 작업환경을 일반화할 수 없고 정황적인 근거를 통해 볼 때, 관리되지 않은 수준의 노출이 있었을 것’이라는 것과 ‘현재 인정되는 백혈병을 유발할 물질에 노출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현대 과학의 한계를 고려하여 일터에서 노출된 다양한 화학물질과 가스, 방사선 및 전자파 등의 영향으로 백혈병이 발병한 것으로 본다’는 판결을 받았다. (물론, 위의 문구는 판결문을 종합한 것이지, 판결문구 자체는 아니다.)
그리고 위의 주장대로 한다면, 다른 백혈병 피해자 고 황민웅, 송창호, 김옥이 모두 산재로 인정하는 것이 맞았다. 결국, 판결문의 구구절절한 산재법의 법적 취지와 사회적인 역할은 제한적으로 적용된 것이다. 여기서의 한계는, 실제 그 일을 수행한 재해자의 증언보다 회사(삼성)의 주장을 더 많이 받아들인 재판부의 한계도 있다. 하지만, 언제까지 현재 요구되는 입증수준에 맞게 객관적인 증거와 증언들을 확보하고 재판부의 판결에 기대는 활동을 할지에 대해서 계속되는 물음을 멈추긴 어렵다.
언제까지 법적 싸움을 진행 할 수 있을까
이미 전자산업에서 목숨을 잃은 노동자, 반올림이 제보 받은 수는 50여명에 달한다. 그 노동자들의 때 이르고 억울한 죽음 자체가 직업병임을 입증하는 증거다. 하지만, 현재 재판부의 판결에 기대야만 하는 현실은 너무도 무겁다.
현실을 어쩌지 못하는 한계와 함께, 실제 그 일을 수행함에 있어서도 벌써 항소를 포함해서 행정소송을 준비하는 노동자가 9명에 달한다. 앞으로 불승인 받을 노동자들을 포함하면 굉장히 많은 노력이 필요한 일인 것이다. 법적 다툼이 일부 필요한 점이 있지만, 아니 어쩔 수 없이 수행되는 점도 있지만 50여명의 죽음과 현재도 투병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몸과 삶을 놓고 볼 때 언제까지 법정 싸움을 이어나갈지에 대한 무거운 마음은 사라지지 않는다.
법정 싸움이라는 것이, 개별적인 사건으로 인식되는 한계 역시 존재한다. 물론, 상징적으론 직업병 노동자들의 산재인정과 둘러싼 보편적인 싸움으로 인식되기도 하지만, 5명 중 2명은 이기고 3명은 인정받지 못하는 것처럼 ‘보편 적용’은 다른 방식의 싸움이 필요하다.
국민을 상대로 한 국가의 항소.
근로복지공단은 고 황유미, 고 이숙영의 행정소송 판결에 대해 항소를 했다. 공단은 산재보험이 사회보험이기 보다는 ‘사용자 책임보험’이라 주장한다. 그래서 노동자들의 복지나 헌법에 보장된 생존권, 건강권을 보호한다는 측면보다 사용자와 노동자 사이의 개별적인 보험의 성격이 강하다는 것이다. 당연히, 산재인정의 폭은 좁아질 수밖에 없고 행정소송 1심 판결은 공단에겐 매우 ‘불합리’한 것이라 주장한다. 즉, ‘노출 물질이 구체적이지도 않고 노출수준에 대한 판단도 없었으며 개인질환까지 인정하라는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공단은 ‘사용자를 대신하여 항소를 한 것’으로 생각하지만, 이는 명백히 ‘국가가 국민을 상대로 한 항소’이다. 더구나 과실을 따지지 않는 산재보험에서, 국민의 생존권 및 건강권을 보장해야할 국가가 그 어떤 ‘공익적 명분’도 없이 국민을 상대로 항소를 한 것이다.
국가가 국민을 상대로 한 항소의 이유가 무엇인지, 그 어떤 공익적인 이유가 있는 것인지, 산재보험의 사회적인 역할과 성격은 무엇인지, 노동자에게 산재보험은 어떤 의미인지, 국가는 노동자에게 어떤 역할을 수행해야하는지 이번 참에 따지고 넘어가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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