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창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산추련)


		산추련

		[54호] 열사투쟁 1년이 지난 지금

심진호 (한진중공업지회 교선부장)

2004년 임단협 잠정합의 안이 가결 되었음을 선포 합니다.  땅 땅 땅 . . .
이렇게 04년 임단투는 막을 내렸다.  조금은 아쉬움 점도 있지만 작년 같이 큰 마찰 없이 마무리 되어 다행이란 생각한 편에 좀 더 힘있고 과감한 투쟁으로 정면 돌파하여 더 많은 부분을 쟁취할 수도 있었는데 하는 마음도 있었다.  조합원들은 대체적으로 만족하는 편이고, 거기다 조용히 마무리 되어, 더 할 나위없이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하기 휴가를 마칠 수 있었다.
작년 열사투쟁 이후 아니 2002년 구조조정 싸움이 시작된 이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조합원으로..지금은 간부지만..우리 한진중공업 지회의 달라진 면들을 글로 옮길까 한다.
2002년 따뜻한 봄날 남들은 월드컵이다 부산 아시안 게임이다 해서 한결 마음이 부풀어 있을때 이곳 한진중공업에서는 늙은 노동자들에게 싸늘한 칼 바람이 불고 있었다. 그때 과연 노동조합에선 어떻게 대응했고 조합원들은 어떻게 하고 있었나. 지금 생각하면 한심하기 짝이 없다. 관리자들에게 잘 보이면 구조조정의 칼날을 피할 수 있을거란 생각에 모두들 충성, 또 다시 충성 이었다. 싸우자고, 노동조합으로 뭉치자고 얘기하면 모두들 ‘이젠 나이가 들어서, 예전에 많이 싸웠는데 이젠 너희들이 해야 안되나’ 이런식이었다.  답답하고 환장할 노릇이다.  ‘우리가 싸우면 뭘 하나 당사자들이 그렇게 관리자들한테 충성맹세 하기 바쁜데, 구조조정의 칼날은 젊은 조합원이 아닌 늙은 조합원들을 노리고 있는데 우리가 뭘 위해 누굴 위해 싸워야 한단 말인가’. 일부는 미친 척 여기서 포기하고 구조조정해서 고참들 다 짤라 버리자는 말도 현장 젊은층에서 나돌 정도였다.
혼자 떠들어 본들 세상이 변하지는 않는다.  마찬가지로 10%도 안되는 조합원들이 떠들고 투쟁해 봤자 회사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조합에서 하는 일 마다 패배했다.  우린 날이 갈수록 패배자가 되어가는 느낌으로 싸워나갔다. 그리고 문제의 해결을 위해 더 큰 힘이 필요했고 기업별 노조의 한계를 느끼고 2002년 6월 산별인 금속노조로 조직형태를 변경하여 싸웠다. 그러나 조합원은 모이지 않았고 구조조정은 계속 진행 되었다.
임기가 다 되어 치뤄진 지회장 선거는 또 다시 김주익 지회장이 당선되었다.
앞서지는 못하지만 뒤에서라도 조합원들은 김지회장을 믿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대의원대회에서 02년 투쟁이 마무리 될 때 까지 참여한 조합원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무임승차는 없다, 조합이 이후 어떻게 되든 같이 투쟁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은 반드시 구별하겠다는 원칙을 밝히고 조합원을 이끌어 내기위해 투쟁 했지만 조합원들은 끝내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6월 어느날 칠흙같은 어둠속에서 김지회장은 85호 크레인에 올랐다, 사태가 이지경이 되어도 조합원들은 모이지 않았다. 사내, 사외 집회 등 노조의 일거수 일투족을 파악한 회사는 늘 먼저 선수를 치며 노조의 뒤통수를 때렸다.
그리고 6월 27일 나는 보았다.  비바람이 심하던 그날 오후 금속노조 동지들이 김주익 지회장을 응원하기 위해 전국에서 달려와 한진중공업으로 행진하는 모습을.  그리고 어느 누구도 들어오지 못할 것 같았던 85호 크레인 앞 투쟁의 광장으로 2000여 대오가 진군하는 모습을.
이날 만큼은 금속노조가 아니 우리가 이겼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곳엔 금속의 동지들은 많았지만 한진 조합원들은 없었다.  참 서글펐다.  이 광경을 봤다면 힘이 났을 텐데, 힘이 나서 더 열심히 투쟁해서 이겼을 텐데… 지회장은 울음석인 목소리로 연설을 이어갔고 그 광경을 지켜본 나 또한 아니 그 장소에 모인 모두 다 가슴속에 찡하는 뭔가를 느꼈을 것이다.  이정도 힘이라면 꼭 승리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힘이 났다.  그러나 그 다음날 모두들 아무 일 없다는 듯이 흘러갔고 그럴수록 회사의 탄압은 더해갔다.
그리고 7월 회사측과 일정부분 합의에 이르렀으나 회사가 이를 뒤엎는 바람에 22일 휴가전 타결을 목표로 총 파업에 들어갔다.  누구도 이 파업이 잘 될 것이라 생각 못했건만 그래도 해냈다.  휴가때도 휴가이후에도 파업은 계속진행 되었다.  자율적으로 진행된 파업으로 40%가량의 조합원들이 함께 했으니 절반 이상의 성공이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답답한 쪽은 회사측 이었고 그럴수록 파업참여 조합원에게 회유와 협박으로 우리를 갈라놓으려 했다.  추석이 지나도 태풍 매미가 와도 우린 지켰다 승리를 위해…  그러나 10월 들면서 급속도로 분위기는 악화되어 갔고 장기간의 파업으로 생계문제가 생기다 보니 이탈자는 늘어갔다. 결국 4도크의 배까지 진수하게 되자 남은 조합원들은 또 다시 패배한다는 절망에 사로잡히게 되었고, 17일 지회장님은 조합을 살리기 위해 그렇게 바라던 승리를 보지 못한채 세상을 등지셨다. ‘이번 투쟁이 끝나기 전 85호 크레인에서 내려갈 수 없다고, 85호 크레인에서 투쟁의 광장을 끝까지 지킬 것’이라는 말만 남긴채…
그리고 조합원들은 모였다 아니 모일 수밖에 없었다.  ‘어디 있다 이제 오셨습니까?’ 지부 사무국장의 말에 서러워 눈물밖에 나오질 않았다.  ‘진작 이렇게 모였더라면 노동조합 깃발아래 이렇게 모였더라면, 흩어지면 죽는다는 걸 알면서’.  그래도 회사는 책임회피에 정신이 없었고 변하지 않았다.  부산역으로 서면으로 노동청으로 우리의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싸웠다.  우리의 정당함을 밝히려고.

그리고 또 한 노동자의 투신
암울 그 자체였다.  조합원의 분노는 폭발했다.  아니 폭발 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서야 회사는 움직였다.  두 명의 목숨을 바치고 난 뒤에야 회사는 백기를 들었다.
우리의 요구가 그렇게 들어주기 어렵고 힘든 것도 아니라는 걸 알면서 왜 두명의 노동자가 목숨까지 바쳐가며 투쟁해야만 들어주는가.
결과적으로 조합의 승리다.  하지만 우리가 이겼다고 기뻐하는 자는 아무도 없다.  그 기쁨과 환희의 선두에 서 있어야 될 사람이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반쪽 승리에 누가 기뻐 할 것이며 누가 자랑스러워 한다는 말인가.  그때 조금만 더 조합에 힘을 실어 줬다면 열사투쟁은 없었을 텐데…
그리고 1년이 지난 지금 살아남은 우리는 뭘 하고 있나.
그래도 많은 조합원들은 자율적으로 움직인다.  강제적이 아닌 자율적으로.
열사투쟁이후 첫 집회는 지회장 취임식이었다.  중식시간에 진행되는 관계로 시간적 여유도 없거니와 모든 것은 자율에 맡겨졌다.  성공이었다.  900명의 영도 조합원 중 700명 이상의 조합원이 대의원 통제 없이 단결의 광장에 모인 것이다.  모든 간부들이 놀랐다.  더 놀라운 것은 집회 종료 후 쓰레기가 하나도 없다는 것이었다.  자율적 집회가 이렇게 사람을 바꿀 줄이야. 이후 가끔 진행되는 집회는 이렇게 행해졌고 그때마다 적게는 50%에서 많게는 70%이상의 조합원들이 집결하여 우리의 힘을 사측에 보여줬다.
그리고 04년 금속노조 중앙교섭 중에 진행된 몇 차례 부분 파업은 ‘절대 무임승차는 없다’, 우리는 한배를 같이 탔다는 생각으로 대의원대회에서 조합원을 통제하는 부과금제도를 만들어 시행했고 조합원들을 투쟁동력으로 이끌어내는데 성공했다.  다시는 회사측에 비비는자가 득을 보고 조합에 동참하는 자가 손해를 보는 일은 없어야 한다. 조합원들도 자의든 타의든 집행부에 모든 걸 맡기고 잘 따라 줬다.
그리고 가장 예년과 달라진 것은 보이지 않던 조합원이 다시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말 인즉 설계조합원이 드디어 나왔다는 말이다.  영도조선소의 900여 조합원 가운데 설계 및 관리부서 조합원이 150명 정도다.  이 조합원들이 올해 큰 원동력이 됐다.  부과금 문제로 동참하게 되었지만 활동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이 문제에 대해 이해하고 조언도 해주며 현재 조합의 엄청난 힘이 되고 있다.
그러나 일면 부과금제도로 인해 조합원이 집행부에 끌려가는 면도 없지 않다. 겉으로 보기엔 한진중공업 지회가 최고의 투쟁력을 자랑한다고 볼지 모르지만, 이런 강제적인 부과금 제도 말고 다른 자율적인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 가장 시급한 문제일 것이다.  그리고 젊은 노동자들은 교육과 학습을 통해 간부들에게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토론 문화를 활성화하여 모든 조합원들이 조합에 관심을 가지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것만이 현재로서 유일한 대안일 것이며 앞으로 한진중공업 뿐 아니라 민주노총 전 사업장에서 개선해야 할 과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