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하게 일하는 세상을 그리며…
이수경
비 오는 새벽. 모두 곤히 자고 있는 버스 안.
창원의 일정은 매듭에 중도 참여한 나에게는 첫 일정이었고, 막연한 기대감과 긴장감이 잠을 설치게 했다. 나름대로 ‘더불어 건강한 사회’를 좌우명으로 삼은 동아리에서 활동하면서 ‘건강권’에 대한 고민도 많이 하고 진료활동도 하고 있었지만, 언제나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러기에 나는 조금 무리한 일정을 감수하면서도 ‘매듭’에 참가했고, 학교 강의실 안에서도 할 수 있는 그런 뻔한 탁상공론을 하게 된다면 정말 무의미할 것이기에, 하루하루 내가 무엇을 어떻게 느끼고 기억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거듭하였다.
우리 ‘매듭’단을 반갑게 맞아주신 노동조합 분들의 간단한 소개에 이어 우리는 여러 조로 나뉘어 각 사업장을 방문하기로 했다.
내가 가게 된 곳은 ‘MK버팔로’. 주로 니퍼나 자동차 볼트를 조이는 소켓렌치와 같은 수공구를 만드는 사업장으로, 다른 사업장에 비해 규모도 작고, 조합원 수도 적은 곳이었다. 우리를 인솔해 주신 분은 부지회장님이셨는데, 사업장을 둘러보기에 앞서 환경이 열악하다는 것과, 각 과정별로 어떤 산업재해와 직업병이 유발될 수 있는지 연관지어 설명해주셨다.
제작 공정의 순서대로 둘러보았는데, 귀마개를 하지 않으면 참을 수 없는 굉장한 소음이었다.
기계가 한 번 작동할 때마다 땅이 진동할 정도였고, 보기만 해도 조마조마한 위험한 작업이었다. 쇠를 달구고 연마하는 과정에서 많은 열과 분진이 나오는데, 더운 여름에는 대형 선풍기를 곳곳에 틀어놓아도 열기를 참기가 어렵고, 분진이 건강에 해로운 것을 알면서도 갑갑해서 마스크를 쓰지 못한다고 하셨다. 도금하는 과정에서는 많은 화학약품에 노출되기 쉬워보였는데, 이는 발암물질로부터 무방비상태라는 것과도 같았다.
작업의 특성상 난청의 위험이 있지만 귀마개를 하지 않고, 눈에 부담이 가지만 선글라스를 쓰지 못하고, 분진이 날리지만 마스크를 쓰지 못하고...
작업의 특성상.. 작업의 특성상..
물론 그 분들의 생계수단이고 잘못을 논하자면 잔인한 자본의 논리에 있겠지만, 아직 이런 부조리함들을 대할 때면 욱하는 마음을 누르지 못하는 어린 나로서는 인간이 편하자고 만든 수공구의 작업을 위해 인간의 건강을 포기하는 것을 정당화시키는 말로밖에는 들리지 않았다. 깊은 한숨만 계속 내뱉을 뿐이었다.
사업장에서 만나는 모든 분들께 반갑게 인사를 했는데, 어디 편찮으신 데는 없냐는 또 그 뻔한 질문에,
“어깨도 아프고, 팔도 아프고, 허리도 아프고, 아픈 데야 많지. 그래도 다 내가 알아서 해야지... 괜찮아.. ”
라며 소탈하게 웃으시는 우리 어머니 같은 분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예전에 비해 많은 과정을 자동화 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수공구를 만드는 공정의 특성상 아직도 수작업이 많아서 근골격계 질환은 물론 기관지 질환, 난청 등이 많이 발생한다고 한다. 더욱이 이런 질환들은 눈에 보이는 질병이 아니어서 산업재해로 인정받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분명 산업재해로 인정받고 보상받아야 할 질병임에도, 이름과는 정 반대의 일을 하는 것 같은 ‘근로복지공단’의 의사에 대한 압력과 공단이 자문한 의사들의 심사에 의해 치료의 기회를 박탈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더욱이 이런 현상들이 장차 내가 종사하게 될 보건의료계 개인의 양심만으로는 도저히 해결될 수 없다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알고도 실천하지 않는 부끄러움, 용기의 부족으로 인한 주저함. 이제는 그럴 수 없게 되었다. 옳은 것을 옳다고 제 목소리 내어 말할 수 없는 이 세상에서 나 자신만의 이익이 아닌 우리 모두가 더불어 사는 세상을 위해 살아가시는 그
후덕한 분들과의 하루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 확신을 주었다.
나는 그 하루의 기억을 잊지 못할 경험 또는 추억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나를 변화시킨 어떤 분의 말씀처럼 따뜻하고 흐뭇하기보다는 쓰라리고 우울한 기억으로 남아, 마지막에 지회장님이 하신 당부대로 일상을 살아가며 자연스레 잊혀지지 않고 그 때의 그 마음이 그대로이길 바란다. 그래서 또 다시 너무도 뻔한 전망과 결론이지만, 각 개인의 조그만 의식변화와 한결같음으로 우리도 언젠가는 프랑스의 봄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로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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