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창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산추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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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9호] 악수(惡手)는 물러져야 한다

악수(惡手)는 물러져야 한다
- 주거권의 관점에서 뜯어본 이명박 정부의 부동산 정책 -

미류 (인권운동 사랑방)

올해 들어 정부는 무려 일곱 차례에 걸쳐 부동산 정책을 쏟아냅니다. SOC 예산을 전격 증액해 건널 사람도 없는 다리를 짓겠다는 계획이나 각종 지역발전을 명목으로 쏟아지는 정책들까지 놓고 보면 아주 폭탄 수준이지요. 그 정책의 내용들이 오락가락해도 문제가 됐겠지만 어쩌면 그리 초지일관 똑같은 내용인지 그게 더 걱정됩니다. 사실 역대 정권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건설 경기가 한국을 경제 대국으로 만들어줄 것이라는 환상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초지일관 유지되어온 정책 기조입니다. 물량주의죠. 일단 주택을 엄청나게 공급해놓으면 사람들이 다 자기 집도 갖게 되고 경제도 살아날 것이라는 의도적인 오해. 집이 많이 지어질수록 집값이 내려갈 거라는 가진 자들의 설교는 하늘 위에서는 진실인지 모를 일이나 도대체 이 땅에서는 절대 거짓이었죠. 그동안 폭등한 집값은 집을 안 지었기 때문이랍니까? 참...

이명박도 마찬가지죠. 몰라서 똑같이 하는 거라면 한심하고 알아도 똑같이 하는 거라면 정말 나쁜 놈일 텐데요. 우리는 대체로 이명박 대통령이 땅 파는 걸 좋아한다는 걸 이미 충분히 알고 있지요. 한나라당에서는 추임새를 넣는답시고 “온 국토가 공사장으로 여겨지게 해야 한다”는 몰상식한 발언까지 서슴치 않고 있습니다. 몰라서 그러는 거라고 잠시 측은해할 새도 없이 온 땅에 폭탄을 떨어뜨리고 있네요.
그래도 돌아보면 주위에 집 없는 사람들, 바로 나 그리고 당신도 집을 모두 기다리고 있습니다. 딱히 답이 안 보이니 집을 일단 지으면 나한테도 차례가 돌아올 것 같고, 남의 집값이 오르는 건 배가 아파도 언젠가 나도 집 덕분에 돈 좀 벌어볼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우리도 모두 살만한 집에 살고 싶지요. 대문에 마당도 있는 번듯한 집에 살고 싶고, 아 적어도 반지하는 탈출하고 싶지요. 버는 돈은 족족 월세 내는 데로 나가거나 전세 대출 이자로 빠져나갑니다. 집 장만하려고 조금씩 모아두는 돈은 과연 내가 살아있는 동안 집으로 변신하게 될 지 걱정스럽죠. 그렇게 아끼고 참으면서 사는데 집주인이 나가라고 하면 또 별 수 없이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한숨만 푹푹 나오지만 그래서 더욱 우리는 우리의 권리를 분명하게 알아야 합니다. 얼마 전 12월 10일은 세계인권선언이 만들어진 지 60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60년 전에 이미 모든 사람은 살만한 집에 살 권리가 있다는 걸 우리 모두 확인했다는 겁니다. 그러면 그 권리는 도대체 하늘에서 떨어지는 거냐? 아니죠. 선언과 그에 따른 사회권규약에 가입한 대한민국 정부가 주거권을 실현하기 위한 일차적인 책임을 져야 합니다. 주거권이 실현된다는 건 어떤 걸까 한번 생각해봅시다. 집이 필요한 사람이, 건강을 해치거나 생활이 불편하지 않을 적당한 수준의 집을, 적절한 주거비 부담으로, 안정적으로 점유(소유하거나 장기 임대하거나)할 수 있어야 하겠죠. 이걸 위해서 정부는 직접 주택을 공급하거나 시장을 적절히 통제하는 방식으로 정책을 짜야 합니다. 이게 어느날 갑자기 짠 하고 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는 정부가 하고 있는 짓이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인지는 평가할 수 있습니다.
정부는 어쨌든 집을 많이 지어 ‘서민주거안정’에 기여하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올해 이명박이 풀어놓은 정책들을 뜯어볼까요? 매년 50만 호의 주택을 새로 지어 공급하겠다고 했지요. 이 중 40%는 일부 고소득층만 구입할 수 있는 중대형 평형 아파트입니다. 집이 정말 필요한 사람들, 5천만 원 미만의 임대보증금으로 세 들어 사는 481만 가구, 자기 집이더라도 최저주거기준에 미달하는 집에서 살고 있는 약 120만 가구가 들어가 살만한 집은 전체 주택의 20%, 10만 호도 안돼요. 그러니 맨날 지어놓은 집들이 결국 집 있는 사람들에게로 돌아가는 거죠. 종부세나 양도세 기준의 완화라는 고소한 소스까지 곁들여지니, 가진 사람들만 살맛나는 거죠.

그런데 이 집들은 정말 집이 필요한 가난한 사람들을 내쫓으면서 지어질 집이라는 점에서 문제가 더 심각합니다. 이명박은 특히나 재개발 재건축을 선호하지요. 그런데 최근 뉴타운 개발에서도 드러났듯이 개발을 한다고 주택이 갑자기 늘어나지 않습니다. 어떤 구역은 원래 있던 집보다 적은 수의 주택이 공급되기도 합니다. 그러면 많은 주택을 공급하기 위해 그만큼 더 많은 개발구역을 지정해야 하는 거죠. 이제 서울 면적의 5%가 뉴타운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서울시 인구의 10%가 뉴타운 예정지에 살고 있답니다. 이 동네들은 가난한 사람들, 적당히 사는 사람들이 어울려 살면서도 집값이 저렴한 동네들이랍니다. 꽤 허름한 집들도 있지만 꽤나 번듯한 빌라도 많은 동네들이지요. 이 동네들을 다 갈아엎어 아파트 단지로, 앞서 말했듯이 고소득층이나 구입할 수 있는 고급 아파트 단지로 바꾼다는 겁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정당한 세입자대책을 제공받지도 못하고, 가진 돈으로는 살던 동네 근처에 사는 것조차 어려워집니다. 개발 한답시고 이미 땅값 집값이 다 올라버렸거든요. 게다가 이명박 정부는 개발사업의 기간을 단축시켜 더 빨리 주택을 공급하겠다고 하지요. 이 말은 그만큼 멋대로 개발하겠다는 말에 다름 아닙니다. 지금의 개발 사업은 공공의 지원을 바탕으로 추진되지만 공공성은 전혀 갖추지 못한 사업입니다. 지자체는 판을 깔아주고 건설사와 일부 조합원들이 앉아서 떡 먹는, 나머지 조합원들은 떡고물을 나눠먹는 형국이지요. 조합원도 못 되는, 70~80%에 이르는 세입자들은 자기가 살던 동네가 어떻게 되면 좋을지 한마디 못해보고 쫓겨납니다. 개발이 빨리 된다는 건, 거주하지도 않는 집주인들이 세입자들을 더 빨리 내쫓을 수 있다는 의미인 거죠.
그렇게 내쫓길 세입자들이 걱정됐기 때문일까요. 이명박 정부는 도시 근교나 외곽의 그린벨트를 해제해 8만 호의 임대주택을 짓겠다고 했지요. 그게 보금자리주택입니다. 이런 ‘격리’의 문제점은 이미 충분히 드러나, 웬만한 국가에서는 시도하지도 않을뿐더러, 요즘 유행은 사회적 통합인데 후져도 너무 후졌습니다. 게다가 이건 생태계에도 되돌릴 수 없는 영향을 미치고 장기적으로도 주민들에게 불리합니다. 분당이나 일산과 같은 신도시들이 지역 경제 구조를 고민하지 않고 주택만 공급하다 보니 베드타운(잠만 자는 도시)이 된 것도 무분별한 신도시 개발의 부작용이지요.

그래도 보금자리주택을 많이 지어 공급해서 자가 소유율을 높이겠다고 합니다. 내 집 가진 사람이 많아지는 것은 나쁜 일은 아닙니다. 가난할수록 ‘내 집 마련의 꿈’이 더 절박하기도 하지요. 집세 올려 달라, 방 빼라는 말 안 듣고 싶은 건 당연하니까요. 하지만 그래서 모두들 자기 집을 가지는 것만이 유일한 답이라고 가정해 정책을 펼쳐온 결과가 지금의 주거불평등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 필요가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의 ‘내 집 마련의 꿈’을 저당 잡아 집 있는 사람들의 재산만 불려준 것이 지금까지의 주택 정책이었으니까요. 주거권은 소유를 전제로 하지 않습니다. 내 집이든 아니든 안정적인 임대기간-99년쯤 되는-을 보장하고 함부로 임대료 올리지 못하게 하는 정책이 더 현실적이고 더 시급합니다.
정작 해야 할 일은 하지 않고 초지일관 거래 활성화, 공급 확대만 외치는 것이 이명박 정부입니다. 올해 들어서만도 미분양 아파트 얘기가 많이 됐습니다. 다 지어놓고도 사람이 들어가 살지 않는 미분양 아파트가 늘어나면, 공급 확대 기조를 점검이라도 하는 것이 상식 아닙니까? 정부는, 여전히 공급은 부족하고 미분양 아파트는 규제가 많아서 안 팔리는 것이니 세금도 깎아주고 규제도 풀어주겠다고 앵무새처럼 되뇌기만 합니다.

자, 이렇게 비상식적일 때는 다 이유가 있기 마련입니다. 한국은 OECD 국가 중 건설업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최고 수준인 나라입니다. GDP 대비 건설투자 비중도 OECD 평균의 1.6배나 높은 19.22%(1995년부터 2006년까지 평균)입니다. IMF 외환위기 직후 김대중 정부가 건설경기 활성화를 위해 각종 규제를 완화했던 것도 모두 이 때문이죠. 건설업이 흔들리는 건 상상을 못하니 늘 건설업에 기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건설업의 고용 효과는 그리 크지 않습니다. 게다가 건설의 활성화를 통해 창출되는 일자리는 그야말로 열악하고 불안정한 일자리라는 건 우리가 더 잘 알지 않습니까. 건설업이 먹여 살리는 구조다 보니 너도나도 건설업이나 부동산에 투자하고 그러니 건설업의 온갖 부조리와 부패, 착취 구조가 안에서만 썩어들어갔던 겁니다. 여기에는 금융도 가세해, 시중은행도 건설업이나 부동산에 돈을 빌려주거나 투자했죠. 망할 때 같이 망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된 것입니다.
어쨌든 김대중 정부는 부동산 가격 폭등 ‘덕분에’ 망하지는 않았으나 그 ‘때문에’ 부동산 거품은 부풀대로 부풀어 올랐고 경제에 온갖 지뢰들이 깔렸던 것입니다. 전 세계적인 경제 위기도 부동산 거품의 붕괴로 촉발되었죠. 그런데도 똑같은 짓을, 더 심하게 하겠다는 것이 바로 이명박 정부의 정책 기조인 것입니다.

이명박 정부는 건설업체를 살리기 위해 9조 원에 달하는 공적자금을 투입하려고 합니다. 어마어마한 SOC 예산 빼고도 미분양 아파트 매입과 건설사가 보유한 토지를 매입하는 데에 엄청난 규모의 돈을 푸는 겁니다. 하지만 돈이 풀리면 문제가 풀릴 것이라는 착각은 정말 위험하지요. 지금 한국 경제의 불안 요소 중 하나는, 개발 사업에 필요한 자금을 끌어 모으기 위해 만들어졌던 프로젝트파이낸싱(PF, Project Financing)입니다. 2005년 이후 은행에서는 건설업과 부동산 및 임대업에 대한 대출이 급격하게 증가하지요. 2008년 6월말 현재, 부동산 PF 대출은 47조 9억 원이고 각종 유동화 자산까지 더하면 85조 원 가량이 프로젝트파이낸싱과 얽혀 있습니다. 직접 빌려준 돈에, 그 빚을 다시 금융상품으로 만들어 빌려준 것까지 쌓이다 보니 위험이 증폭되어 경제의 불안 요소가 된 것입니다. 즉, 투자와 투기의 경계를 허물며 많은 돈이 풀린 결과는 ‘위기’일 뿐입니다. 부동산 거품에 기대어 더욱 거품을 부풀려온 것이 호들갑스럽게 떠드는 유동성 위기의 본질입니다.

이런 정책은 결과적으로 건설업을 살리는 일도 못했지요. 오히려 고질적인 부패와 무능력만을 성장시킨 셈입니다. 건설자본이 위태로운 일차적 원인은 대규모 미분양 사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돈이 돌고 도니까 너도나도 중대형 평형의 고급 아파트를 지어대고 높은 분양가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그러니 남아돌 수밖에 없지요. 주택의 공급이 주거권을 실현하기 위한 계획적인 과정이 아니라 건설자본 저마다의 경쟁과 욕심과 아집으로 무분별하게 이루어진 것입니다. 결국 건설자본이 위태로워진 원인은 건설자본 자체입니다.
이걸 손대지 않고 돈만 퍼붓는다고 건설업이 살아나거나 경기가 활성화되지 않습니다. 공급과 개발의 전지전능함에 대한 찬양을 접을 만도 하건만 이명박 정부는 오히려 공적자금으로 급전을 돌려 건설자본에 밑돈을 대주고 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위기가 확산되는 시기에 오히려 부동산 거품이 다시 부풀어 올라야 한다는 불굴의 의지만을 불태우며 각종 규제완화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건 모험이라고 보기엔 너무 위험하고 도박이라고 보기엔 너무 결과가 자명한, 악수(惡手)일 뿐입니다.
그리고 건설업만 저 홀로 살아남는다고 해서 우리에게 살만한 집이 보장되지도 않습니다. 올해 들어 급증한 가계부채도 상당 부분 주택담보대출 등 부동산 관련 부채입니다. 집을 마련하려고 누리고 싶은 것, 가지고 싶은 것 참았던 사람들은 집값은 내려가고 대출 금리는 올라가는 탓에 애간장만 태우고 있습니다. 참을 것도 없었던 이들은 더 쪼들리고 있지요. 무분별한 땅파기 정책은 오히려 가난한 사람들에게 돌아가야 할 몫을 땅에 묻는 정책일 뿐입니다. 살려야 할 것은 건설업이 아니라 바로 사람입니다.

사람답게 살기 위해 집이 필요한 것이지, 집을 위해 사람이 살아서야 씁니까. 역대 정권은 집을 사고팔 권리를 보장하는 데에만 충실했지요. 모든 사람이 살만한 집에 살 권리는 그것과 다릅니다. 누구를 위해 집이 지어져야 하는지 묻기 시작해야 합니다.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듯한 집에서 살고 있지만 돈이 안 된다는 이유로 오히려 건설사로부터 내팽개쳐진 동네의 사람들, 쪽방이나 고시원에서 한 평 방에 몸 뉘며 살아가는 사람들, 반지하에서 곰팡이와 세균과 함께 이슬을 맞아야 하는 사람들, 장애?성정체성?인종 등의 이유로 집을 구하기 힘든 사람들, 독립을 꿈꾸는 젊은이들, 한달 꼬박 야근까지 채워서 뺑이쳐도 임금의 절반 이상이 주거비로 빠져나가는 노동자들. 집이 필요한 사람은 너무나 많습니다.

이 모든 집을 새로 건설할 필요도 없습니다. 기존의 주택을 지자체가 매입하고 살만하게 고쳐도 됩니다. 어떻게든 모든 지자체가 장기 임대용 사회주택을 최소 20% 이상은 확보해야 합니다. 동시에 민간 주택 시장에서 부대끼는 세입자들의 권리 보장을 위해 임대료를 제한하고 임대 기간을 연장할 수 있는 권리를 제도화해야 합니다. 행여 개발을 하게 될 때는 순환식 개발을 해서 가난한 사람들이 더욱 빈곤의 늪으로 빠져드는 걸 막아야 하겠고요.
이렇게 하려면 자원이 확보되어야 하지요. 역시나 땅이 있어야 할 테고 돈도 있어야 합니다. 개인의 토지 소유에 상한선을 두거나 세금을 물리는 것은 재산권의 침해가 아니라 인권의 보장입니다. 한정된 땅을 두고 누군가 더 가져가고 있다면 누군가는 빼앗기고 있다는 말입니다. 무슨 세금 얘기만 나오면 징징대고 무슨 규제 얘기만 나오면 투덜대는 이들은 마치 자신들이 빼앗기는 사람들인 것처럼 연기하지만 실제로는 정반대입니다. 건설에 실제로 필요한 인력과 기술과 자금도 확보되어야 하겠죠. 공공의 책임 아래 필요한 곳에 필요한 집들이 지어질 수 있도록 건설업의 사회화를 포함한 구조 조정이 필요합니다. 물론 다단계 하도급 착취 구조를 끝낼 안정적인 고용구조도 만들어져야 합니다. 자본의 탐욕에 사람답게 살기 위해 필요한 집을 함부로 맡겨서는 안됩니다.

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분명해졌습니다. 경제위기의 한가운데서 부동산?건설 경기를 살리겠다며 이명박 정부가 고집스럽게 두고 있는 악수(惡手)는 물러져야 하는 것도 분명해졌습니다. 그게 안 된다면, 이명박 정부를 무르는 수밖에 없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