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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호]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어떻게 볼 것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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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평화네트워크 대표)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의 공식 명칭은 남북한이 함께 살고 같이 번영하자는 '상생공영'이다. 그러나 출범 이후 2년 반 동안 정부가 보여준 대북정책은 '상쟁공멸'에 가까웠다. 특히 천안함 침몰 사태에 대응 태도를 보면, 서로 싸우는 ‘상쟁’의 단계를 지나 함께 망하는 ‘공멸’도 불사하겠다는 것으로 비춰진다. 물론 MB 정부는 이러한 지적에 펄쩍 뛰겠지만, 정책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그 결과가 이렇게 나타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지난 5월 20일 천안함 침몰 원인을 북한의 소행으로 결론지은 이명박 정부는 4일 후 강력한 대북조치를 발표했다. 그러나 대통령 스스로가 “우리의 궁극적 목표는 군사적 대결”이 아니라 “한반도와 안정과 평화, 한민족의 공동번영”이라고 밝히면서도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어떤 정책이나 비전도 찾아볼 수 없었다. 특히 사태의 정확한 진상 규명과 추가적인 상황 악화 방지를 위해 필요한 남북 합동조사단 구성 등 대화 제의도 일절 없었다.
오히려 전반적인 내용은 '외부의 적'을 극대화해 정부와 군당국의 책임을 최소화하고, 북한의 추가적인 강경 조치가 충분히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강경한 입장과 대처를 천명해, 북한의 반발을 유도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마저 들게 했다. 이를 통해 국내적으로는 6·2지방선거에 '북풍' 효과를 극대화하고, 남북관계 차원에서는 그동안 마음속에 품고 있었던 북한 급변 사태 유도를 본격 추진하려는 의도를 내보였다. 그러나 선거 일정에 쫓겨 내놓은 조사 결과는 나라 안팎에서 혹독한 비판에 직면했고, 북풍 시도 역시 역풍을 야기하면서 한나라당의 참패로 끝났다.
MB 정부가 천안함 침몰을 “대한민국을 공격한 북한의 군사도발”이라고 규정하면서 발표한 “단호한 조처”는 크게 여섯 가지였다. 첫째는 북한 선박의 남한 해상교통로 이용 불허이고, 둘째 일부 인도적 사업과 개성공단 사업을 제외한 남북 간 교역과 교류의 중단이며, 셋째는 영유아 지원은 유지하고 개성공단 문제도 검토하며, 넷째는 “적극적 억제원칙” 하에 북한의 남한 영해, 영공, 영토 무력침범시 즉각 자위권을 발동할 것이며, 다섯째 북한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부를 추진할 것이고, 여섯째 한미동맹을 비롯한 안보태세와 군 전력의 획기적 강화 등 군사적 조치이다. 그러면서 북한의 사과와 사건 관련자들의 즉각 처벌을 북한에 요구했다.
군사적 조치와 관련해 김태영 국방장관은 ▲ 대북 심리전 재개 ▲ 북한 선박의 남한 해역 진입시 강제 퇴거나 나포 조치 ▲ 한미 연합 대잠수함 훈련 실시 ▲ 남한 해군 주관하에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PSI) 훈련 역내 실시 등 강경 정책을 발표했다. 현인택 통일부 장관 역시 ▲ 남북교역 중단 ▲ 남한 국민의 방북 및 북한에 대한 신규투자 불허 ▲ 대북지원 사업 보류 등을 발표했다. 유명환 외교부 장관은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규탄과 제재 동참을 위해 적극적인 외교에 나서겠다고 발표했다. 한마디로 '강경, 강경, 또 강경'이다.
이러한 5·24 조치들 가운데, 일부는 실행되고 있고, 일부는 흐지부지 되었으며, 일부는 망신을 자초하기도 했다. 남북관계는 개성공단을 제외하곤 사실상 전면 차단된 상태이고, 7월부터는 미국과 함께 동해와 서해에서 번갈아 가며 대북 무력시위를 벌이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유엔 안보리에서 북한을 규탄하겠다는 목표는 의장성명에서 이러한 내용이 빠지면서 망신을 자초했고, 대북 심리전 재개도 미국 측의 반대로 흐지부지되고 있다.
샴쌍둥이와 같은 남북관계
정부는 5·24 조치를 비롯한 대북강경책으로 북한에게 상당한 타격을 입힐 수 있다고 자신하는 듯하다. 그러나 남북교역이 중단되면 북한도 피해를 입지만 남한도 피해를 입게 된다. 군사적 준비태세 강화로 긴장이 고조되고 무력 충돌까지 발생하면 그 피해 역시 크던 작던 남북한 모두가 나누어 질 수밖에 없다. 정부는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남북한은 '샴쌍둥이'와 같은 운명을 피할 수 없다. 한쪽이 아프면 다른 쪽도 아프고 한쪽이 망하면 다른 쪽도 무사하기 힘들다는 뜻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정부의 대북 보복과 응징 조치는 북한뿐만 아니라 남한도 아프게 한다. 특히 그 고통의 크기는 아래로 흘러갈수록 더욱 커지는 법이다. 6.2 지방선거에서 여당이 참패한 것은 이러한 민심의 반영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는 대결적인 대북정책을 지속하고 있다. 7월 하순 ‘불굴의 의지’라는 이름으로 동해에서 미국과 함께 실시한 연합훈련을 9월에는 서해에서 실시하고, 이후로도 매달 한다는 방침이다. ‘선 천안함, 후 6자회담’이라는 자해적 구도에 빠져 북-중-러 3국의 6자회담의 조속한 재개 요구도 거부하고 있다. 동물용 사료로 쓰는 것이 검토될 정도로 쌀이 남아도는 데에도 북한에는 단 한톨도 보내지 않고 있다. 미국에게는 강력한 대북 금융제재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대북강경책의 배경에는 흡수통일을 염두에 둔 ‘북한급변사태론’이 똬리를 틀고 있다. 2008년 8월에 불거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이상설, 2009년 북한의 로켓 발사와 핵실험을 거치면서 강화된 대북 제재, 북한 후계체제 구축의 불확실성, 화폐개혁의 후유증, 그리고 최근 천안함 사태 이후 북한의 고립화 및 대북 제재 가속화 등을 바라보면서 북한의 불안정을 ‘통일의 호기’로 바라보는 것이다. 이에 따라 MB 정부는 굶주리는 북한 주민을 도와줘야할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북한 내부의 불안을 가중시켜줄 요인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역력하다. 6자회담을 비롯한 대화와 협상도 북한의 전술에 말려든다는 구실로 거부하면서, 그 이면에는 협상을 통한 문제 해결이 아니라 북한 급변사태 유도를 통한 흡수통일 의도가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북한 내 급변사태 발생은 ‘통일의 호기’가 아니라 ‘제2의 민족상잔의 비극’이 될 것이라는 점은 명약관화하다. 오판과 오인으로 발생한 끔찍한 전쟁, 6·25를 성대히 기념하면서도 한국전쟁이 남긴 가장 큰 교훈을 망각하고 있는 셈이다.
MB가 생각을 달리 한다면
그러나 MB 정부가 생각을 달리 한다면 그 어느 때보다 한국 주도의 한반도 비핵·평화를 달성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다. 강력한 한미공조와 북한의 100배가 넘는 경제력이 보여주듯 이명박 정부가 마음을 먹는다는 그 길을 열 수 있는 ‘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힘’은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에 제동을 거는 것으로 과시되고 있다. 참으로 안타깝고 통탄스러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MB 정부가 최근 변화하고 있는 한반도 안팎의 흐름을 제대로 포착하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유엔 안보리 의장성명 및 한미 연합훈련 장소 변경에서 알 수 있듯이,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의 힘의 핵심에는 미중관계가 있다. 한국이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 유지 및 증진이라는 본연의 외교적 임무를 망각하고 강경론에 함몰될수록 주변 강국의 영향력은 커지는 메커니즘의 발현이 아닐 수 없다. 북-중-러 3국이 6자회담 재개에 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상황에서 천안함 사태 이전까지 6자회담 재개를 요구해왔던 미국이 마냥 이러한 목소리를 외면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이다. 북한이 6자회담 복귀 의사를 나타내면서도 이전까지 조건으로 내세웠던 ‘대북 제재 해제’를 명시적으로 요구하지 않은 것도 의미심장하다. 대북강경론을 주도해온 보수언론 일각에서 중국의 “친북(親北) 외교”와 북한 “자원 독식”에 우려를 나타내면서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한국의 이익을 지켜내야 한다는 주문이 나오는 것도 주목된다.
이제 MB 정부는 선택해야 한다. 천안함 침몰이 북한의 공격에 의한 것이라는 점을 입증할 자신이 있으면, 어떤 형태로든 재조사를 실시하는 것이 순리에 맞다. 재조사를 통해 북한의 책임을 입증하는 것이야말로 북한에게 그 책임을 묻을 수 있는 가장 유력한 근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에 자신이 없거나 실익이 없다고 판단한다면, 이제는 출구로 나와야 한다. 이미 많은 나라들이 출구를 찾고 있다는 점에서 출구의 문을 열 수 있는 열쇠는 MB 정부가 쥐고 있다. MB 정부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 계속 발목 잡기로 일관한다면, MB가 대북정책의 최고 목표로 내세운 ‘비핵’의 자리에는 북한의 핵무장이 차지하고, 상생공영의 대북정책도 상쟁을 넘어 공멸의 위험성까지 잉태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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