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이윤보다 생명이다” - 네번째, 민중의료를 위하여
이런 의료체계에 우리 몸을 맡길 수 없다!
교육편집팀
노동자 민중의 직접 행동이 필요하다 !
그동안 5회에 걸쳐 우리나라 보건의료체계의 문제점과 대안을 정리해보았다.
정리하자면 왜 한국의 보건의료체계는 불신과 불만의 근원이 될 수밖에 없었는가? 그 이유는 한마디로 얘기하면 한국의 의료체계가 질병의 치료와 건강의 증진보다 돈벌이를 기본 원리로 삼고 있다는 점에 있다.
병원이 높은 진료 수익을 올리는 의사를 채용하여 성과급을 주는 것, 환자당 간호인력을 감축하며 노동강도를 강화시키는 것, 환자가 이 병원 저 병원으로 옮겨 다니도록 조장하는 것, 병원과 의사가 진료의 질 향상을 위해 노력하지 않는 것, 이 모든 현상의 근본적인 원인은 의료체계가 의료의 본업보다는 돈벌이를 위주로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병원은 경쟁 속에서 모든 방식을 동원하여 환자로부터 진료 수익을 확대하고, 병원의 노동자에게는 최대한 적은 보상을 제공함으로써 수익을 극대화하고자 한다.
의료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인력, 시설과 장비는 물론이고 여러 가지 병원관리의 시스템을 바꾸기 위해서도 돈이 든다. 그러나 돈을 버는 것이 최우선의 목표인 병의원은 그런 용도로 돈을 굳이 쓰려고 하지 않는다. 물론 시장의 경쟁에서 승리한 병원은 화려한 인테리어를 통해 더더욱 많은 환자를 유치하고자 한다. 대부분의 병원은 충분한 인력을 확보하기 앞서 병동의 간호사의 투약 오류를 방지하기 위하여 “투약 전 세 번 확인”을 강조하는 것으로 구조적 위험을 회피하고자 한다. 이는 생산 현장의 노동자에게 잔업, 특근을 강요하며 재해를 당하지 말라고 “안전제일”을 떠벌리는 것과 하나도 다를 게 없다. 단, 병원에서는 환자의 생명이, 사업장에서는 노동자의 생명이 위협당할 뿐이다.
이같이 형편없는 의료의 질은 개개 병의원 차원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의료체계 전반의 문제이다. 백혈병 환자에게 엄청난 약값을 물리고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의 의료체계에서 진정한 평등(형평)과 ‘사회적 연대’라는 가치는 찾아 볼 수가 없다.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하며 병을 키우고 그 과정에서 경험하는 민중의 불신과 불만이 하늘을 찌를 듯한데도 이를 의료체계의 차원에서 해결할 대안은 없다. 어떤 고통과 불편을 겪고 있는지, 그들이 제대로 된 의료를 제공받고 있는지 정부가 감시하는 역할은 미미하다. 국가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의료의 질 문제는 오로지 현재의 상업적 의료체계에서 비용을 절감할 여지를 발견하는 것뿐이다.
더 나아가, 건강은 건강할 때 지키는 것이라면, 사회는 구성원의 건강을 보장할 ‘건강한 사회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수년 전부터 우리 생활의 거의 절반을 보내는 직장은 노동자의 육체적 피로와 정신적 긴장을 더더욱 가중시키고 있다. 팔다리를 아파 움직일 수조차 없는 근골격계 질환 노동자가 나날이 늘어가고 있는 가운데, 많은 이들은 스스로 이 사회에서 경쟁의 낙오자라고 느끼고 있다. 고달픈 민중이 ‘인생역전’의 헛된 꿈을 좇고 있는 것은 어쩌면 이런 사회 환경에서는 당연한 결과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할 대안은 크게 세가지로 제시가 되고 있다. 경제적 능력, 성별, 인종, 사회적 처지의 차이에 상관없이 아무런 부담 없이 쉽게 자신의 몸을 다스릴 수 있는 ‘무상의료’, 한 개인의 건강뿐만 아니라, 사회적 차원의 질병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시스템을 공적인 책임과 사회적 연대 속에서 해결하는 ‘공공의료’, 무엇보다 이 사회 민초의 직접적인 요구와 행동에 철저히 복무하고 그들 스스로의 힘에 의거해 만들어 가는 ‘자치의료’가 그것이다.
우리는 한국 의료체계의 성격이 공공성을 지니기 위해서는 의료체계의 전면적 개혁을 요구하는 노동자, 민중의 직접 행동과 투쟁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한다. 어려운 수치와 학술적 개념으로 포장된 공공의료 강화 정책에 기대어, 그 정책을 지지하는 간접적인 방식으로는 노동자, 민중을 위한 의료체계는 결코 달성되지 않는다. 그 동안 우리 사회에서 의료체계에 대한 불신과 불만은 한번도 노동자, 민중이 직접 행동으로 표출된 적이 없었다. 단지 정책 전문가들의 공방으로 대체되었거나, 환자 개개인 또는 시민의 항의가 있었을 뿐이다.
정책 전문가들의 공방이 고상한 논의로만 그쳤다면, 환자 또는 시민의 불신과 불만은 해당 의사나 병원으로 향할 뿐이었다. 그러나 어느 접근법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였다. 우리는 상업적 의료체계를 대상으로 한 노동자, 민중의 직접 행동만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다.
돈벌이 의료체계가 아닌 건강을 보장하는 참된 의료체계를 수립하기 위해서는 노동자, 민중이 직접 삽을 들고 고목의 뿌리를 뽑아 새로운 씨앗을 뿌려야 한다. 그 누구에게 맡길 수도 없고, 그 누구도 대신해 주지 않는다.
돈이 없어 제대로 약을 먹지 못하고 치료를 받지 못한 분노와 좌절, 병원과 의원에서 누적된 불신과 불만, 노동강도가 강화된 작업장에서 나날이 망가져 가는 몸 - 이런 현실에 대해 “이런 의료체계, 이런 사회에 더 이상 우리 몸을 맡길 수 없다”는 노동자, 민중의 직접 행동과 투쟁이 절실하다. 역설적으로, 그런 노동자, 민중의 직접 행동, 투쟁만이 제도 차원에서 공공의료 강화 정책조차도 더욱 현실화될 수 있는 가능성을 높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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