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
산추련 |
|
 |
|
[86호]폐암에 걸린 노동자 |
|
마창거제 산재추방운동연합
60대 중반의 부부가 사무실로 찾아왔다. 상담을 좀 하고 싶다는 것이다. 잠시 후 이야기를 시작했다. 부인은 아무말 없이 앉아 있기만 했고, 남편분은 얼마 전에 폐암 수술을 받았다고 하였다. 몸이 좋지 않아서 병원에 가서 검사를 했는데 폐암이라는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다고 하였다. 누구보다 건강에 자신이 있었고 다른 이들에게도 항상 건강하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자신은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 매일 운동을 했다고 하였다. 그리고 담배도 피지 않고 술도 회식자리가면 소주 1잔 정도만 먹었다고 했다. 이야기를 들어보면 철저히 자신의 몸 관리를 하신 것 같다. 딱 봐도 건장한 체격이었다. 폐암 수술 때문인지 잠깐 말을 끊고 다시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런데 폐암이라니.. 말을 하는 중간 중간에 믿기지 않는 듯. 계속 같은 말을 반복하였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다.
“내가 이렇게 될 줄은 몰랐어요. 정말.. 우리 나라 대형 조선소 2곳에서 근무를 하였어요. 지금까지 30년 이상을.. 70년대 중반에 조선소는 매우 열악했어요.. 그리고 저는 용접일을 2년 정도 하다가 공정업무를 했어요. 그런데 배를 만들기 위해서 보온재를 사용했는데 그게 석면이었어요.. 그것을 절단하고 마무리하고 이런 과정이 있었는데 선박 내에 먼지가 뿌옇게 흩날렸어요.. 그때는 그랬어요.. 요즘이야 방진마스크도 좋고 국소배기도 시키고 하지만 당시에는 아무것도 주지 않았어요.. 먼지가 너무 심하게 날리니깐 공장 밖에서 리어카에서 파는 비닐마스크를 개인적으로 사서 착용을 했어요.. 그때는 젊었을 때니깐 그렇게 일을 해도 다음날이면 거뜬히 일어 났거든요.. 그렇게 8년을 일을 하다가 다른 조선소로 취업을 했어요.. 그곳에서도 마찬지였어요.. 여전히 작업장은 언제나 각종 먼지가 많이 날렸거든요.. 그런데 87년에 저하고 같이 일을 했던 하청에 있던 사람이 폐암으로 돌아가셨거든요.. 그 때 그분이 산재로 인정을 받았어요..”
아주 구체적으로 자신의 일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자신이 그 일을 했던 사실에 대해서 입증할 서류가 없다고 하였다. 아마 그랬을 것이다. 70-80년대에 일을 했던 노동자 대부분이 그럴 것이다. 당시에 작업환경에 대한 자료는 전무 했을 것이다. 그리고 세월이 너무 흘렀기 때문에 개인이 그 많은 서류를 준비하기에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했으면 하는지 상담을 하러 온 것이다.
이 노동자는 약 7년 전에 정년퇴직을 하였다. 평생을 조선소에서 각종 유해화학물질에 노출된 채 살아오다가 이제 겨우 그곳에서 벗어 났는데 결국 폐암이 그분의 노후의 삶을 발목 잡고 있었다. 그분은 폐암 수술 후 방사선 치료를 할지 아니면 다른 치료를 할지 의사와 상의를 해 봐야 한다고 했다. 또 다른 고통이 시작된 것이다. 자식을 다 키우고 노부부가 편안함 삶을 살아야 하는 시기에 자신과 부인에게 또 다른 고통이 찾아온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부인은 아무말 없이 듣기만 하였다.
대부분 알고 있는 것 처럼 석면은 석면페증이나 악성중피종 그리고 폐암을 일으키는 대표적 유해물질이다. 그리고 석면 노출 후 질병이 발병될 때까지는 약 20-30년이라는 오랜 시일이 걸린다는 사실이다. 지금이야 석면을 몇 군데를 제외하고는 사용 자체가 금지되어 있지만 과거에는 건축 자재나 용접 또는 보온재나 내장재로 사용해 왔다. 그렇다고 해서 현재는 석면에 대해 안전한 것은 아니다. 석면은 과거 사용한 건축 자재 해체 작업 시에 언제든지 노동자에게 노출될 수 있는 위험한 물질이다.
폐암이나 다른 직업병에 걸린 노동자를 상담하면 머릿속에는 항상 이 노동자가 취급했던 물질은 뭐였을까? 어떻게 입증을 하지? 입증이 되지 않으면 어떤 식으로 접근을 해야 할까? 이런 생각들로 가득 차 있게 된다. 왜냐하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그러나 누구나 그냥 넘어가는 사실이 하나 있는데 유해화학물질에 의한 직업병은 대부분 그 유해화학물질에 노출 된지 20-30년 뒤에나 시작된다는 것이며, 대부분 자신이 취급하고 있는 유해화학 물질에 대해서 무관심하게 지내는 경우가 많이 있어 정작 직업병이 발생했을 때는 입증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비록 산업안전보건법에 인체에 위험하다고 인정되는 몇 가지 물질에 대해서는 건강관리수첩제도가 있어서 그 물질에 노출되는 노동자에 대해서는 건강검진을 실시하기는 하지만 이를 이용하는 노동자의 수가 그렇게 많지 않고 또한 해당 물질이 너무나 제한적이어서 큰 실효성을 거두지 못하고 있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건강관리수첩제도 도입 이전에 발암물질이나 유해한 물질을 취급한 노동자의 경우 해당사항이 없기 때문이다.(그렇다고 하더라도 만약 건강관리 수첩에 해당하는 유해화학물질을 취급하는 노동자들은 반드시 발급 받을 필요성은 있다.)
유해화학물질을 보관저장취급 시 안전보건상의 조치를 취해야 할 의무는 분명 사업주에게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업주들은 유해화학물질이 위험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노동자에게 적절한 조치를 취해주지 않은 경우가 많이 있다. 비록 작업환경측정과 특수 건강검진을 하고는 있지만 이에 대한 불신은 노동자들 사이에서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또한 작업관리 역시 노동자에게 보호구를 지급하는 것으로 그 책임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사업주도 있다. 그런데 보호구 지급 역시 잘못된 것이 많이 있다. 즉, 화학물질을 취급하는 노동자에게는 방독 마스크를 지급해야 하지만 방진마스크를 지급한 사업주도 있다. 결국 이러한 잘못된 작업 조건과 무관심이 노동자의 건강과 노후를 갉아 먹는 원인이 되고 있다.
폐암에 걸린 노동자나 유해화학물질로 인해 직업병에 걸린 노동자들의 대부분은 그때는 정말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는 말을 많이 한다. 그래서 대부분 과거를 회상하면서 후회를 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 한다. 사업주가 의무를 다하기를 기다리는 것 보다 사업주가 의무를 다 하도록 강제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유해화학물질에 대한 정보나 교육도 요구하고 국소 배기 장치도 요구하고 다른 물질로 교체 가능한지도 요구해야 한다. 또한 해당 작업에 알맞은 적합한 보호구도 요구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은 혼자서는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주위 동료와 함께 해야 한다. 회사에 불이익을 당할까 걱정하기 보다는 자신의 건강과 노후를 한번 걱정해 보는 것이 낮다.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