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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추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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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호]젖소의 새끼도 우유를 먹고 자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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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수
구제역 때문에 전국이 말 그대로 '생난리'를 치르고 있다. 처음에는 전국으로 확산되는 걸 막기 위해 방역하고 예방접종한다고 난리더니, 조금 있으니까 고기값이 올라서 난리였다. 얼마 전부터는 날 풀리고 비오기 시작하니까 매몰지가 유실되지는 않을까, 침출수가 지하수를 오염시키지는 않을까 바짝 긴장하고 있다던데, 엇그제 뉴스를 보니 요번에는 예방접종할 때 썼던 주사바늘이 뽑히지 않고 그대로 박혀 있는 경우가 많아 주사바늘로 인한 이물질 사고가 발생할까봐 전전긍긍이란다. 참, 산 넘어 똥밭이다. 이제 겨우 진정될 기미가 보인다고 하는데, 벌써 전국의 소는 스무 마리 중 한 마리, 돼지는 세 마리 중 한 마리가 저 세상으로 가셨다. 국내 축산업 붕괴 위기라는 진단이 내려지고 있다. (분량 많은 경우 이 단락은 삭제해도 될 듯 합니다)
몇 개월째 9시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중인 빅뉴스인지라 인터넷 검색을 해보면 관련기사만 해도 수 천 개에 이른다. ‘난 구제역에 대해서 뭘 생각해 봐야 하나?’하고 생각하던 중 문득 책꽂이에 예전에 사놓고 손때 묻지 않게 고이 잘 모셔둔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온다. 피터 싱어와 짐 메이슨이 쓴 <죽음의 밥상>. 그래, 조류독감이나 구제역이라는 게 결국 인간이 먹으려고 동물을 집단적으로 사육하다보니 생기는 거 아니겠어? 꼭 그렇게 사육해야 하나? 아니, 꼭 고기를 먹어야 하나?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그 책의 부제목처럼 “농장에서 식탁까지, 그 길고 잔인한 여정에 대한 논쟁적 탐험”에 함께 해 보기로 했다.
탐험은 다음 문장으로 시작된다. “우리는 대개 먹는 것을 놓고 윤리를 따지지는 않는다.” 생각해 보니 그렇다. 대개의 경우 ‘안전한 먹거리’에 대해서는 관심이 많다. 몇 년 전 크게 터졌던 미국산 소고기 문제도 거기서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생산 유통과정이 안전하기만 하면 뭘 먹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생각인 것 같다. ‘뭘 먹을지’는 그 사람의 기호니까.
아는 게 병이라고 했던가? 어제까지 아무 생각 없이 먹었던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우유와 달걀의 생산 과정을 소개하면서 ‘이렇게 생산된 것들을 먹는 게 과연 옳은 일인가?’라고 묻는 저자들의 질문에 대답하기가 참 곤란하다. 한 마리당 A4 한 장 정도의 공간이 주어진 닭장에 갇혀 일생을 지내다 도살장에서 분당 90마리의 속도로 죽어나가는 닭이나 역시 콘크리트와 강철로 지은 좁아터진 축사 속에 갇혀 일생에 한 번도 바깥나들이를 못하며 풀밭을 발로 밟아보지 못하는 돼지 얘기는 익숙한 듯해서 그나마 덜 불편하다. 그런데 우유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고 있자니 욕지기가 치밀어 오른다. 젖소의 새끼도 우유를 먹고 자랄까? 과연 정말 그럴까?
“보통 송아지가 어미젖을 빠는 기간은 생후 6개월 동안이며, 그동안 어미와 새끼의 유대관계는 매우 끈끈히 유지된다. 그러나 젖소 농장이란 우유를 파는 게 일이지, 송아지를 키우는 게 일이 아니다. 로넬 농장에서 로벤하임은 암소가 새끼를 낳고 그 새끼를 막 핥기 시작하는 장면을 보았다. 그러나 40분이 지나자 농장 직원이 와서 송아지를 데려가 버렸다. 어미는 방금까지 새끼가 있던 짚더미를 킁킁거리고, 슬픈 울음소리를 내고, 이리저리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몇 시간 뒤, 그 어미 소는 자신이 갇혀 있는 농장 문 아래쪽에 코를 부딪치면서 끊임없이 울부짖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그 새끼는 농장의 다른 곳에서, 콘크리트 바닥에 내팽개쳐진 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며칠 지나지 않아서 새끼는 죽었으며, 그 시체는 농장의 퇴비더비 위에 던져졌다.”
이 책은 내가 지금까지 읽은 책 중에서 가장 읽기 어려운 책 중 하나였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마주하게 되는 불편한 진실들은 책장을 넘기는 손을 무겁게 만들고, 은연중에 책을 놓고 싶게 만들기 때문이다. 결국 글을 마감해야 할 날은 다 돼 가는데, 아직 양심적인 잡식주의자 가족의 먹거리에 관한 얘기들을 읽고 있는 중이다.
구제역이라고 하는 대재앙이 비단 집단적인 농장 사육방식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집단적인 농장 사육방식이 사태를 대재앙의 수준으로 몰고 간 것만은 분명하다. 사람들 역시 집단거주시설(학교, 군대, 노인요양원 등)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전염성 질환에 가장 취약한 것처럼. 가축들을 집단적으로 농장에서 사육하는 가장 큰 이유는 채산성 때문이다. 고기를 싸게 공급하기 위해서는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이렇게 생산된 싼 고기는 결코 싸지 않다. 이 책에서도 다루고 있지만, 경제학 용어로 ‘외부효과’라고 불리는 환경에 전가되는 비용, 그리고 노동자들에게 전가되는 비용-우리나라에서 현재 농장에 근무하는 노동자들은 대부분 이주 노동자들이다-까지 감안하면 결코 싸지 않다. 결정적으로 구제역 때문에 지출된 수조원의 세금이 결국 다 그 고기값이다. 경제적 관점에서도 결코 싸지 않는, 동물의 권리 따위는 전혀 배려하지 않는 이런 사육방식으로 길러진 고기를 먹는 것은 과연 옳은 일인가?
한편 육식 자체는 한 두 가지 잦대로만 판단할 수 없는 복잡다단한 문제이다. 육식이 인간의 생존에 필수불가결한 것은 결코 아니다. 사람은 완전 채식만으로도 충분히 고른 영양을 섭취할 수 있다. 아직까지 많은 사람들이 육식을 ‘기호의 문제’로 이해한다. 하지만 ‘기호의 문제’로 이해되던 것이 ‘윤리적인 문제’로 발전하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다. 흡연이 대표적인 경우이다. 과거 담배는 대표적인 기호식품 중 하나였으나, 지금 흡연은 상당히 많은 규제를 받고 있고 사람들은 그런 규제를 당연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먹는 즐거움을 포기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그 즐거움을 위해 우리가 지불해야 할 것들 또한 얼마나 큰 것인지 그건 정확히 알아야 하지 않을까? 그걸 알고 나서도 지금과 같은 방식의 육식을 고집할 수 있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엊그제 저녁 집에서 TV를 보는데 한 시사프로그램에서 가축 매몰지 침출수 문제를 다루고 있었다. 처리해야 할 물량이 많아 ‘생매장’을 하다 보니 돼지들이 그 속에서 발버둥 치면서 비닐이 찢어지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실제로 생매장당한 대부분의 돼지들은 구제역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예방적으로 살처분 된, 건강한 돼지들이었다. 생매장당한 수백만 마리 돼지들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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