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호]쿠팡 노동자의 생명을 지키는 여름집중투쟁기
[활동 글]
작성자
mklabor
작성일
2025-10-27 14:50
조회
109
최효
공공운수노조 전국물류센터지부 쿠팡물류센터지회 사무장
쿠팡물류센터지회의 투쟁은 폭염과의 싸움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매년 여름, 우리는 폭염 속에서 쓰러지지 않을 최소한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지회가 설립된 이듬해인 2022년, 쿠팡이 설치하지 않는 에어컨을 우리가 직접 설치하기 위한 도보 행진을 했고, 폭염시기 에어컨과 휴게시간을 요규하는 현장 서명전을 펼쳤다. 수천명의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노동조합의 요구에 동의했다. 그러자 변화는 시작되었다. 실내 노동자의 폭염시기 휴식권이 처음으로 명문화 되었기 때문이다.(참고 기사: 한국일보 “물류센터도 "더우면 쉬세요"-'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개정, 실내 작업장에도 폭염 시 휴식제공 의무화) 제도가 개선되자 현장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이전까지는 사람이 쓰러지는 여름에도 단 1분 1초의 휴게시간 없이 일하는 게 당연했지만, 하루에 딱 한 번 정도의 휴게시간이라도 주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제도 개선은 언제나 현장이 필요로 하는 속도보다 더뎠고, 쿠팡은 과태료를 피할 수 있을 만큼만 법을 지키며 그 빈틈을 여실히 드러냈다. 산업안전보건법시행규칙이 실내 노동자의 폭염시기 휴식권을 언급하기 시작했지만, 휴게시간 이행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여전히 ‘권고사항’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쿠팡이 폭염시기 휴게시간 부여를 지키면 좋은 것이고, 지키지 않아도 위법은 아니라는 면죄부를 준 것이다.
2023년 여름, 고용 인원 절반이 일용직 노동자, 나머지 절반이 계약직인 쿠팡물류센터 현장에서 파업이 결의되었다. 지회는 인천4물류센터 옆에 천막 농성장을 만들어 3주간 낮이고 밤이고 폭염 속에서 일하는 노동자들과 함께했다.
주간조와 오후조가 맞교대하는 오후 6시면 주간조 노동자들은 더위로 벌개진 얼굴로 센터를 나섰다. 그리고 폭염시기 휴게시간과 에어컨을 요구하는 서명을 받는 천막 농성장으로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당신이 느끼는 현장 체감온도를 적어달라는 칸에는 기발하면서도 절실한 답들로 가득했다.
‘1000℃’ ‘몸이 폭발할 것 같아요’
‘표현이 어려움’
지난해 10월, 산업안전보건규칙 제39조가 개정되면서 상황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개정안에 사업주가 폭염과 한파로 인한 노동자들의 건강장해를 예방해야 할 법적 의무가 부과된 것이다. 이어 이를 구체화한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에 우리가 그토록 외쳤던 ‘2시간마다 20분’이 폭염 시기 의무 휴게시간으로 명시되었고, 과태료 조항도 추가되었다. 이제 더이상 쿠팡은 “폭염 시기 휴게시간은 권고사항일 뿐”이라는 핑계로 빠져나갈 수 없게 되었다.
윤석열 내란 세력과 결탁한 규제개혁위원회의 반대로 시행이 무산될 뻔했지만, 폭염 속 건설·택배 노동자의 사망이 잇따르자 세 번의 심사 끝에 간신히 통과되었다.
천신 만고끝에 산업안전보건 규칙 개정안이 통과된 7월 11일, 나는 만감이 교차했다. 사실 덥건, 춥건 관계없이 휴게시간은 누구에게나 적정하게 부여되어야 한다. 폭염시기 물류센터 현장은 35도 이상으로 치솟는데, 이때 휴게시간 없이 일한다는 것은, 쓰러짐과 직결되고 건강과 생명에 큰 지장이 생기기 때문에 폭염 시기에라도 휴게시간을 부여하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쿠팡은 현장에서 사람이 쓰러지건 말건 휴게시간만큼은 절대 타협하려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현장에서 발생하는 온열질환은 대개 요양 기간이 4일 이상 필요하지 않다는 점을 악용해 ‘폭염시기 산재 발생 0건’이라고 적극 홍보를 했다. 하지만 지회는 폭염에 쓰러진 노동자와 함께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체감온도 35도를 훌쩍 넘는 현장에서 쓰러진 노동자가 산재를 인정받을 수 있도록 모든 과정을 함께했다. 또, 하루종일 찜통 현장에서 일하다 퇴근길에 온열질환으로 쓰러진 노동자가 있었는데, 회사가 어떻게든 접촉을 막으려고 했지만 쓰러진 노동자가 이송된 병원으로 찾아가서 "산재보험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으면 꼭 연락주세요"라는 말을 남기며 명함을 건넸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더 많은 노동자가 폭염 속에서 쓰러지고 불이익을 당할까봐 회사에 근본적인 개선을 요구하지 못했을 것이다. 건설·택배 현장에서는 이주노동자들이 목숨을 잃었다. 우리가 그토록 요구했던 ‘2시간마다 20분 휴게시간 보장’이 명문화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연한 권리를 보장받기까지 왜 이런 지난한 과정을 반복 해야하고, 누군가는 목숨을 잃어야 하는지 깊은 회의감이 들었다.
폭염을 맨몸으로 견뎠던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현장 실태가 알려졌고, 무고한 생명과 안전을 잃은 결과 휴게시간이 어렵사리 도입되었다. 그러나 쿠팡은 휴게시간 입법 취지와 정반대의 행보를 보였다. 체감온도가 33도 이상이 되면 2시간마다 20분 휴게시간을 반드시 지급해야 한다는 규정이 생기자, 쿠팡은 온도계를 찬 바람이 나오는 에어컨 송풍기 밑에 두었다. 선풍기 바람 하나 닿지 않아 노동자들이 하루종일 땀에 절어 일하는 선반 내부가 아니라 에어컨 바람이 통하는 현장 내 휴게실 바로 옆에 온도계를 두었다. 쿠팡은 현장 온도를 낮추려는 고민을 하는게 아니라, 온도 ‘기록’을 0.01도라도 더 낮춰서 1분 1초라도 더 노동자를 부려 먹으려는 꼼수를 부린 것이다. 쿠팡의 꼼수를 고발하고 재발 방지 대책과 근본적인 개선을 요구할 수 있었던 것은 현장 조합원들의 조직된 힘 덕분이었다. 온습도계 위치를 확인하고, 체감온도를 직접 적어 넣어 가며 적정 휴게시간을 확인하는 구체적인 활동을 통해 조합원들 스스로 쿠팡을 감시했고, 이러한 꾸준한 실천이 결국 쿠팡의 꼼수를 드러냈다. 그리고 시민사회의 지지와 연대 투쟁으로 이 싸움의 불씨는 더 크게 타올랐다.
매월 1일은 쿠팡의 정기배송일이다. 세제, 쌀, 물 같은 중량물이 몰리면서 노동강도가 극심해진다. 폭염 시기의 정기배송일, 특히 연중 체감온도가 최고치에 달하는 8월 정기배송일은 그 어떤 날보다 노동자들이 버티기 힘든 날이다. 또한 8월 15일은 모든 계약직 노동자가 공휴일 휴무를 사용할 수 있는 날이다. 지회는 이 두 조건을 고려해서 8월 1일과 8월 15일, 두 차례의 하루 파업을 조직했다. 파업을 선포하자, 쿠팡은 현장을 개선하겠다는 약속을 하기는커녕 8월 1일 파업 전날 일용직과 특근자에게 최대 10만원 인센티브를 지급하겠다는 문자를 뿌렸다. 최저임금으로 겨우 버티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생존을 볼모로 잡고 파업을 와해하려는 노골적인 방해 공작이었다. 그러나 현장은 흔들리지 않았다. 조건부 인센티브와 달리, 한 번 얻어내면 쉽게 사라지지 않는 영구적인 권리를 세워내기 위해 현장은 두 번의 하루 파업을 강행했고, 폭염 속 노동자의 절박한 요구를 사회적 의제로 힘차게 띄워냈다.
8월 15일 하루 파업 전날인 8월 14일은 휴일 없는 택배 노동자의 과로사 방지와 휴식권 보장을 위해 고용노동부, 택배사, 물류협회가 사회적 합의를 통해 만들어낸 ‘택배 없는 날’이었다. 매년 그랬듯, 쿠팡은 올해도 택배 없는 날에 동참하지 않았다. 이에 지회는 8월 14일을 ‘쿠팡 하루 불매의 날’로 선포하고, 쿠팡 노동자들의 파업에 지지하는 마음을 담아 쿠팡 하루 불매로 연대해줄 것을 시민사회에 요청했다. 1,000여 명의 시민이 쿠팡 하루 불매 인증샷을 찍고, 8월 14일 당일에는 전국 곳곳에서 오늘만큼은 쿠팡을 불매하자는 피켓팅이 이어졌다. 쿠팡 노동자의 목소리는 더이상 현장 안에서만 머무르지 않고 사회 전체로 확산되었다.
올해 여름 투쟁을 통해 우리는 다시 확인했다. 권리는 저절로 주어지지 않고, 어렵사리 얻어낸 권리도 현장의 실천이 없다면 쉽게 후퇴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하지만 우리의 요구를 가로막는 쿠팡의 꼼수와 방해를 낱낱이 밝혀낸 것은 현장의 주체적 힘과 사회적 연대였다. 이제부터가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쿠팡은 앞으로도 자본이 져야하는 책임을 노동자 개인에게 전가할 것이고, 언제든 생명과 이윤을 맞바꾸려고 할 것이다. 우리는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에 직결된 것은 무엇이든 하나하나 노동조합과 상의해서 결정하도록 쿠팡을 압박하고, 조직력을 단단하게 다지는 일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단 하루를 일해도 존중받고 안전할 권리를 양보하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매일매일 싸움을 이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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