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호]복장으로 보는 권력의 얼굴들

[인권이야기]
작성자
mklabor
작성일
2025-10-27 14:56
조회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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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냥 전교조 경남지부 정책실장



 

8월에 있던 통일선봉대. 복장에 대한 안내가 나가자 문제제기가 이어졌습니다.
저는 통일선봉대에 참여는 안 했지만, 이 안내문을 보자마자 깜짝 놀랐습니다. 안전이나 활동에 어렵지 않은 옷으로 안내하는 거면 모르겠지만 “노출이 심하지 않은 옷”, “허용불가”, “통선대답게”... 이런 문구들은 과도하고 지금까지 한국 민주사회가 싸워왔던 운동의 가치들과도 완전히 반대 방향의 문구들이었거든요. 노브라로 통선대가면 문제 제기 당하고 짧은 바지 입고 가면 뭐 민주노총에서 징계하는 걸까요?

복장에 대한 통제는 여성운동과 인권운동에서 투쟁해왔고 청소년인권운동과 노동운동에서는 빠질 수 없는 역사입니다. 독일에서는 ‘빨간 바지만 입어야 한다.’는 규정을 어긴 노동자가 해고된 적도 있습니다.
현대제철의 ‘10대 핵심 안전수칙’도 같은 비판을 받았습니다. 안전장비가 부족해서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것인데 안전하기 위해서라며 노동자들을 통제하는 안전수칙들이 만들어지고 강요되고, 오히려 사고위험을 노동자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이지요.

지난 9월 국가인권위원회가 제주의 한 학교에 “교복 재킷 착용 의무화는 학생의 자기결정권 침해”라는 결정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추워도 외투를 못 입고, 더워도 재킷을 벗지 못하게 하는 것은 인권침해라는 판단이었습니다. 같은 시기 서울의 한 중학교에서는 교사 60여 명이 학생들을 대상으로 복장검사를 실시해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성차별적 복장 규정입니다. 올해 2월 한국마사회시설관리에서 여성 직원에게만 적용되는 <용모와 복장 매뉴얼>이 공개돼 논란이 됐습니다. ‘립스틱 색깔은 자연스럽게’, ‘머리와 손모양’, 액세서리 착용 기준까지 세세하게 규정하고 있고 이는 대부분 여성 직원을 통제하는 규정으로 쓰입니다. 여성의 몸을 ‘보기 좋은’ 모습으로 만들려는 가부장적 시선이 그대로 드러난 사례입니다.

문제는 누구에게 보기 좋은가, 누가 그 규칙을 정하는가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권력을 가진 쪽이 일방적으로 정하고, 약자는 따를 뿐입니다. 시선과 판단 기준은 절대 객관적이지 않습니다. 남성의 상의 탈의는 노출로 여겨지지 않지만, 여성의 반바지는 노출로 여겨지거나 다양성이나 서로의 몸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은 통일된 모습이 ‘단정’하고 ‘깔금’한 것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특정한 누군가-결정 권한을 가진 사람의 시선이 일방적으로 규칙을 만들고 사람들을 통제하는 겁니다.

시민사회단체, 운동사회에서도 다를 바 없습니다. 복장통제의 공통점은 질서와 효율이라는 명분 뒤에 숨은 권력관계니까요. 학교에서는 ‘교육 환경’, 공장에서는 ‘안전과 생산성’, 시민사회에서는 ‘운동의 효과성’이라는 이름으로 개인의 선택권이 제한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 질문해야 합니다. 이 질서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요? 이 효과는 누구에게 이익이 되는 건가요? 실제로 존재하기는 하는 효과인가요?

노동자들은 자본이 노동자의 몸을 통제하려고 할 때 싸워왔습니다. 똑같은 유니폼을 입히고, 똑같은 머리모양을 강요하며, 개성을 지워나갈 때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외치며 거부해왔습니다. 그래서 복장 자유는 기본권이자 민주주의의 시작점이죠. 복장은 그 사람의 존재 방식이자 자기표현이며, 때로는 저항의 언어입니다. 70년대 청바지가 금기였던 것처럼, 미니스커트는 노출이 아니라 사회 규범을 깨트리는 실천이기도 했던 것처럼 복장 규제에는 항상 사회적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진짜 안전을 위한 규정이라면 모두가 그 필요성을 납득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교육을 위한 규칙이라면 참여자들이 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운동의 효과를 위한 것이라면 활동가들이 그 방식을 토론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입는 옷 한 벌에도 민주주의가, 인권이, 그리고 해방의 가능성이 담겨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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