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호]약속을 지키지 않는 정권, 멈추지 않는 노동자의 죽음 이 참혹함을 끝내기 위해 모였습니다

[만나고 싶었습니다]
작성자
mklabor
작성일
2019-12-06 11:51
조회
20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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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주 금속노조 노동안전국장


‘위험의 외주화 금지법·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문재인 정권의 노동자 생명안전 제도 개악 박살! 대책위원회’ 출범

2019년 9월 20일이었습니다. 울산 현대중공업에서 일하던 하청노동자가 테스트를 마친 가스 탱크 용기의 헤드 부분 캡을 제거하는 작업을 하다가 잘라내던 18톤 규모의 철판에 머리와 상체가 짓이겨져 처참하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해당 작업은 기존에는 정규직 노동자들이 했지만 현대중공업은 이윤이 많이 남지 않는다며 하청업체에 전체 공사 작업을 외주화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정규직 노동자들은 희망퇴직, 구조조정으로 하루가 멀다하고 조선소를 떠나는 상황에 올해 들어 일손이 딸려 하청업체를 추가로 계약했습니다. 정규직을 내쫓은 자리를 수많은 하청노동자들이 채웠고, 그들은 안전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작업에 투입됐습니다.

정규직이 할 때는 철판이 떨어지지 않게 크레인으로 철판을 고정하고, 혹시 모를 사고를 대비해 철판 아래 받침대도 세웠습니다. 하지만 하청노동자들을 투입한 현장에서는 그와 같은 안전조치를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임금을 줄이고, 안전에 투입할 비용을 줄여 원청 현대중공업의 이윤은 늘었지만 대신 노동자는 목숨을 잃었습니다.

현대중공업 사고 후 채 일주일도 지나지 않은 9월 26일 거제에서 사망사고가 또 발생했습니다. 대우조선에 납품하는 블록을 제작하는 업체로, 사고를 당한 노동자는 하청에 하청을 받은 3차 하청업체에 소속된 크레인 신호수였습니다. 사망한 노동자는 불과 1년 여 전만 해도 통영에 위치한 성동조선해양의 정규직이었습니다. 무급휴직, 희망퇴직을 반복하는 회사를 떠나 일자리를 찾아 전전하던 중 크레인 신호수 업무를 맡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사고를 당했습니다.

조선소에서만 일어나는 특별한 사고가 아닙니다. 두 사고 이후에도 석유화학공장, 화력발전소, 건설현장의 노동자들, 한국에 입국한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아 사망한 이주노동자까지 노동자들의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매년 2400명의 노동자가 일하다 죽는 나라, OECD 가입국 중 산재사망률 1위 자리를 여전히 지키고 있는 나라, 대한민국 노동자들의 현실은 여전히 참혹합니다.
2017년 4월 13일 대통령 후보로 광화문광장에 선 문재인 대통령은 “안전 때문에 눈물 짓는 국민이 단 한 명도 없게 만들겠다”고 국민들에게 약속했습니다. ▲국민 안전 기본법 제정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위험의 외주화 금지 및 원청 책임 강화 ▲화학물질 알권리 보장 등을 이 자리에서 약속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당선 이후에도 이같은 행보를 이어갔습니다. 2017년 ‘산업안전보건의 날 기념식 대통령 메시지’로 ▲사망사고 발생 사업장은 안전이 확보될 때 까지 모든 작업 중지 ▲안전이 확보됐는지 현장 노동자의 의견을 듣고 확인하는 것을 중대재해 대응 원칙으로 발표했습니다. 삼성중공업과 STX조선에서 어처구니 없는 사고로 수십 명이 다치고 목숨을 잃은 뒤에 나온 정부의 중대재해 근절 대책의 핵심 원칙이었습니다. 산재사망자 수를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것은 문재인 정권 출범 이후 지속되고 있는 핵심 공약 사업이기도 합니다.
대통령의 수많은 약속이 지켜졌다면 앞서 열거한 아픈 죽음들은 없었을 것입니다. 아니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었을 것입니다. 국민들, 노동자들이 문재인 정권의 약속이 꼭 지켜지길 바라고 요구했던 이유였습니다.

“생명과 안전에 대한 책임을 외주화하는 일이 절대 없도록 하겠다.” 위험의 외주화를 금지하고 차별없는 안전한 작업장을 만들겠다던 정부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있습니다.

정부는 2017년 삼성중공업과 STX조선 중대재해에 대한 조선업 중대재해 국민 참여 조사위원회, 2018년 12월 발생한 태안화력발전소 고 김용균 노동자와 관련한 특별조사위원회를 운영했고, 조사위원회의 결과에 따라 제도 개선을 통해 중대재해를 근절해 나가겠다고 했습니다. 두 조사위원회는 중대재해의 원인을 ‘위험의 외주화’로 꼽았습니다. 다단계 하도급 금지와 민영화 철회, 현장 구조 개선, 산업안전보건법을 비롯한 제도 개선 등 하청노동자들의 죽음을 막기 위한 다양한 정책 제언과 권고를 발표했습니다.

안타깝게도 권고와 제언은 보고서로만 존재할 뿐 이행되고 있지 않습니다. 결국 지난 11월 11일 고 김용균 노동자의 동료들은 정부가 약속한대로 조사위원회의 권고를 이행하라고 요구하며 서울 광화문 농성 투쟁을 시작했습니다. 정부가 한 약속을 지키게 하기 위해 노동자들은 겨울 추위를 앞두고 또 다시 거리에 서야 했습니다.

노동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사업주를 제대로 처벌하라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입법 발의된 지 6년이 지나도록 국회에서 논의 조차 되지 않고 있습니다. 2017년 산업안전보건법을 위반한 사건 1만 3,187건 중 구속기소된 사건은 단 1건 뿐입니다.
처벌을 받는다해도 집행유예나 벌금형이 대부분입니다. 처벌이 미약하다보니 산업안전보건법을 위반하는 사업주들의 재범율이 97%에 달합니다. 현대중공업에서는 2016년 한 해에만 14명의 하청노동자가 사망했지만 원청 사업주는 기껏해야 벌금형, 대부분은 무혐의 처분을 받았습니다. 현대중공업 현장에서 지금도 똑같은 이유로 하청노동자들이 죽임을 당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문재인 정권의 노동안전 정책은 오히려 후퇴하고 있습니다. 산업안전보건법은 ▲협소한 도급금지 범위 ▲중대재해 시 작업중지 범위 축소 ▲사업주 처벌 하한형 미도입 ▲제한적인 노동자 참여권 ▲화학물질 알권리 제한 등 노동자들이 핵심적으로 요구했던 내용이 빠지거나 개악된 채로 누더기 통과됐습니다. ‘김용균법’이라고 얘기하지만 정작 이 법으로는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사망한 김군도, 태안화력의 김용균도, 조선소 하청노동자도 보호할 수 없습니다.

노동자들에게 저녁이 있는 삶을 주겠다며 주 52시간제 도입을 약속했지만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 기간을 확대하고 주 52시간제 도입을 유예해주며 장시간, 저임금 노동을 도리어 확대하고 있습니다. 최근 일본 수출 규제를 빌미삼아 밀어붙이고 있는 경총 등 사업주들의 요구대로 화학물질 관리 법안 완화를 추진하겠다는 입장도 밝히고 있습니다.

문재인이 대통령에 취임한 지 2년 6개월,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겠다던 국민과의 약속을 파기하고 오히려 각종 규제완화로 노동자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이대로는 노동자의 죽음을 막을 수 없습니다.

연일 끊이지 않는 노동자의 죽음을 끝내야 한다는 절박함 속에 지난 10월 7일 ‘위험의 외주화 금지법·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문재인 정권의 노동자 생명안전 제도 개악 박살! 대책위원회’(약칭 ‘위험의 외주화 금지 대책위’)가 출범했습니다. 산재로 가족을 잃은 피해 유가족들,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조합, 시민사회단체, 정당, 법률인 등이 모여 위험의 외주화를 끝장내고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모는 기업을 제대로 처벌하기 위한 법 제정 투쟁에 나섰습니다. 국민과 노동자를 기만하고 있는 문재인 정권이 더 이상 노동자의 생명을 자본의 이윤과 맞바꾸는 잘못된 정책을 추진하지 못하도록, 자신이 한 약속을 반드시 이행하도록 투쟁을 시작했습니다.

노동자의 생명을 하찮게 여기는 정권과 자본에 맞서 ‘더 이상 죽이지 말라’는 우리들의 목소리를 모아나가고자 합니다. 서울에서, 전국 곳곳에서, 자신이 있는 현장에서 실천하며 죽지 않고, 다치지 않고, 병들지 않고 일 할 수 있는 권리를 찾는 한걸음을 함께 내딛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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