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호]“나, 조선소 노동자”북콘서트를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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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klabor
작성일
2019-12-06 11:32
조회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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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민/ 부산일반노조 조합원


한번씩 SNS를 펼쳐보기가 싫어질 때가 있다. 그것은 SNS에 ‘산재사망’ 소식이 연이어 올라올 때이다. 특히 조선소 노동자, 그중 하청노동자가 대부분인 산재사망 소식을 접하면 엄청난 덩어리의 쇠와 쇠의 마찰음이 환청처럼 들리고 그 순간 무의식적으로 내 주변의 상태를 살핀다. 혹시 뭔가 잘못되어 머리라도 박살나지 않을까.

글을 써달란 제의를 받았다. “나, 조선소 노동자”를 읽고 난 후기! 아니 그게 아님 북콘서트 참가후기? 어찌되었건 “나, 조선소 노동자”에 대한 글을 써달란 것이었다. 모처럼 듣는 동지의 목소리에 흔케히 써 보겠단 이야길 전화 너머로 흘려보냈고 그러고 나서 후회를 한다. ‘그들의 고통을 내가 얼마나?’ 이런 생각에 머리가 아파왔다. 책 한권 읽고 뭘 느끼고 아파하며 과연 내가 뭘 쓸 수 있단 말이지. 속단한 듯 했다.

그러면서 수년전 삼성중공업 현장에서 한 달간 일한 기억과 당시 만들던 배의 주변 상황이 떠올랐다.

위엄을 자랑하는 듯한 배와 주변 시설물들. 여기저기 콘테이너박스 사무실과 창고 그리고 휴게실. 즐비하게 서있는 자전거들. 머리 저 위에 오가는 크레인과 사람 옆을 지나는 대형 트럭들. 그런 공간 어디에선가 점심시간 잠시 쉬던 그 시간은 쉬기 위한 시간이 아니라 작업 시작을 알리는 소리가 언제 튀어나올까 귀를 쫑끗 세운 대기시간이었고 마침내 그 소리가 울리면 아귀의 아가리 같은 배 속으로 사람들이 일제히 들어선다. 시꺼먼 입구에선 그라인딩을 해나가는 사람들이 쇠가루, 녹가루가 뒤섞인 장막 뒤로 희미하게 보인다. 그렇게 다시 들어선 배에서 저녁 11시를 넘어서까지 일하다가 다시 아침이면 체조시간 그룹을 이루어‘안전, 좋아, 좋아’를 외치던 삼성중공업에서의 한달. 북콘서트가 진행되는 그 시간 당시의 상황이 너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나, 조선소 노동자’를 읽을 때도 그러했지만.

북콘서트에 참석하고 당시 구술작업에 함께 했던 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보니 책을 읽을 때 느끼지 못했던 눈가의 뜨거움이 몇 번이고 반복되었다.
크레인만 봐도 공포감에 휩싸여야 하고 동료와 가족이 죽어가는 현장을 생각하기만 해도 정말 죽고 싶은 아려오는 가슴들. 그런데 6명이 죽고 25명이 다친 누가 뭐라고 해도 그것은 학살에 다름 아닌데 삼성중공업 이 더러운 자본은 300만원으로 사람의 목숨을 대신했다.

2017년 5월 1일!
그날의 트라우마를 안고 가는 사람들!

그 트라우마는 그들에게만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렇게 그쳐서도 안 될 것이다. 북콘서트가 진행되는 내내 그런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아니 떠나지 않게 만들었다.

대한민국 헌법 제23조에는 ‘모든 국민의 재산권 보장’ 운운하며 개인의 재산 즉 사적소유를 인정한다. 그런데 이 소유의 자유는 단순 소유를 넘어 사람에 의한 사람의 착취와 지배를 가능하게 하는 ‘생산수단’의 독점적, 배타적 사적 소유를 보장하고 있다.

이렇다 보니 가진 것이라곤 자신의 몸뚱아리 뿐인 노동자가 자기의 노동력을 자본가에게 팔아야 삶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런 자본주의 사회는 그 이상을 요구한다. 언제나 처럼 노동자들이 노동력을 파는 것을 넘어 목숨까지 자본가들에게 저당잡혀 생사를 넘나드는 지경으로 몰리고 있다.

2017년 5월 1일 거제 삼성중공업에서 일을 하고 있던 노동자들이 그러했다. 비정규직, 이주노동자의 어려운 상황은 ‘노동자의 날’에 죽음과 고통의 날을 맞이하게 했다. 그리고 2017년 재해노동자가 9만명에 이르고 재해로 사망한 노동자가 1,957명. 한해를 지난 2018년에는 어처구니 없이 더욱 늘어나 10만명이 넘는 노동자가 재해를 당하고 2,142명이나 되는 노동자가 재해로 죽어야 했다.

나는 산업안전보건법의 목적이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을 증진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하지만 2017년 5월 1일 삼성중공업 사고는 노동자를 위한 법이란 자본가의 입안에서 단맛쓴맛 다 빨리는 것에 지나지 않음을 잊지 않게 하는 대한민국의 작금의 현실임을 각인하게 한다.

죽지 않고 다치지도 않아야 함에도
너무나 많이 죽고 있다.

노동자는 죽기 위해 현장에서 일하는 것이 아니다. 살기 위해 현장으로 가고 일을 한다. 그리고 그 노동자의 노동은 개인적인 것을 넘어 사회적인 것이 된다. 그런 노동자가 재해를 입고 치료와 사회 복귀를 위한 노력을 하는 것은 철저하게 자본이 책임지고 그 댓가를 다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한국 사회 자본가들은 그렇지 않다. 어찌되었건 이윤만 된다면 온갖 술수를 다 쓸 뿐이다.

기업살인법을 만들자는 외침이 너무 절실하다. 매일 아침 또 현장으로 나가야 하는 노동자들이 조금이나마 믿을 구석이 있고 내 몸둥아리 만큼은 지켜낼 수 있으려면 그나마 노동법이란 것이 노동자를 위한 법으로 강화되어야 함은 그 집행 주체가 노동자이거나 노동조합이어야 함을 의미한다.
‘나, 조선소 노동자’ 북콘서트는 그 자체가 살인 자본에 대한 사회 고발이고 투쟁이었다. 그런 곳으로 함께 한 나는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사람이 다른 사람의 고통을 같이한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내가 ‘나, 조선소 노동자’를 읽고 느꼈던 그것으로 그들과 고통을 함께 한다고 하는 것은 나의 오만일 것이다. 단 내가 함께 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관심을 갖으며 그들의 이야기를 보다 널리 알려내는 것 그것부터가 아닐까 한다. 더 이상 오늘과 같은 내일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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