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호] 동화(마틸다)와 학생인권조례

[만나고 싶었습니다]
작성자
mklabor
작성일
2018-12-27 15:04
조회
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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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화 어린이책시민연대 창원지회


제가 좋아하는 동화 《마틸다》에는 이런 내용이 나와요.

마틸다가 위압당한 채 말했다.
“그건 전쟁 같아.”
“맞는 말이야. 그건 전쟁이라고. 그 전쟁에서의 사상자 수는 어마어마하지. 우리는 어떠한 무기도 없고 오직 맨주먹으로 싸우는 십자군 전사요, 용감한 군인들이지. 그리고 교장 선생님은 어떠한 무기도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악의 화신이요, 불 뿜는 용이고. 정말 힘든 인생이야. 우리는 모두 서로서로를 도와 주느라 애쓰지.” (142쪽)

초등학교를 막 입학한 마틸다가 6학년 언니와 나누는 대화예요. 마틸다가 입학한 학교는 전직 원반선수 출신의 거구 교장 선생님이 계시거든요. 권위적이고 위압적인 트런치불 교장은 무시무시한 힘으로 학생들을 체벌하고 제압하죠. 마틸다의 담임은 입학 첫 날 첫 시간에 이렇게 말합니다.
“ (......) 여러분도 알다시피, 우리 학교 교장 선생님의 성함은 트런치불이십니다. 지금부터 여러분들을 위해 교장 선생님에 대해 몇 가지 알려 주겠어요. 그분은 엄격한 규율을 주장하시는 분입니다. 여러분들이 내 충고를 받아들인다면, 그 분이 있는 곳에서는 행동거지에 최선을 다해야 할 거예요. 그분에게 절대로 대들지 마세요. 절대로 말대답하지 마세요. 그리고 항상 그분이 말한 대로 하세요. 만약 교장 선생님의 뜻을 거역하면, 그분은 녹즙기 안에 든 홍당무처럼 여러분들을 완전히 쥐어 짜 버릴 거예요. 라벤더, 이건 웃을 일이 아니야. 얼굴에 그런 비웃는 듯한 웃음을 비치는 일이 없도록 해요. 학교의 방침을 어기는 사람은 누구든 교장 선생님이 아주아주 무섭게 다룬다는 것을 모두 기억해 두는 것이 좋아요. 내 말 알아들었어요?” (90쪽)

저는 마틸다와 6학년 학생의 대화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어요. ‘어린이들이 학교에서 교장/교사에게 느끼는 위압감과 공포, 저항감이 저 정도구나.’라구요. 혹시 ‘뭐 저 정도로 생각하나?’, ‘예민하다. 과민하다.’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나요? 실제 학교를 다니고 있거나 다닌 경험이 있는 지금 어린이/청소년들과 이야기를 해 보면 저 감정이 동화에서 과장해서 말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어요. 그래서 더 슬퍼요. 그냥 동화 속 이야기라면 좋을텐데요.

그리고 마틸다의 담임인 하니 선생님이 1학년 학생들에게 말하는 내용 말이예요. 어른이 어린이에게 다른 어른들을 대할 때 가져야 할 자세나 태도로 늘 강조하는 거잖아요. ‘절대로 대들지 말고, 말대답하지 말고, 시키는 대로 해라.’ 이렇게 이야기하는데 어린이가 못 미더울 때 협박을 한 번 합니다. ‘내 말을 명심해라. 안 그러면 이런저런 일들을 당하게 될거야.’라고.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어린이에게 무엇을 말해주고 있었나 돌아보게 되었고 협박의 방식으로 반드시 내 말을 지킬 것을 강요하고 있었구나를 알게 해 주는 장면이었어요.

제가 왜 동화 《마틸다》 이야기를 이렇게 길게 하냐면, 학생인권조례에 대해서 말하고 싶어서예요. 학생인권을 이야기할 때 학생-교사 사이의 권력 관계를 보지 않을 수 없는데요, 학생은 학교에서 교사가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는 약자입니다.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며칠 전 ‘학생인권조례’를 주제로 한 전교조경남지부 참교육 한마당에서 학생 발표자는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수업시간에 한 눈을 팔았다고 반 친구들 앞에서 큰절을 시키고, 친구와 다투었다고 연구실로 불러 엎드려뻗쳐를 시키며 빗자루를 던지고, 책상을 다리 위에 올리고 바닥에 땅을 짚는 기합을 시킨 후 팔을 부들거리는 학생에게 의자를 던지며 이것이 ‘명태 말리기’라며 웃고, 등교할 때마다 눈썹을 그렸는지/귀걸이를 했는지/머리카락은 검은색인지/입술에는 무엇을 발랐는지/넥타이는 맸는지/외투 안에 마이를 입었는지/치마에 주름을 박았는지/신발은 무엇을 신었는지 머리부터 발끝까지 감시하고 기합을 주는 교문 검열 탓에 학교에 가는 것이 죄를 짓는 것만 같고, 매 시간 인신공격을 일삼은 교사에게 문제제기를 했더니 반성문을 쓰게 하고, 교무실을 지나가다가 욕을 하니 걸레를 물라고 하고, 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왔는데 책상에 교과서가 없냐며 앞으로 불러내 출석부로 뺨을 때리고, 계단에서 발로 차이고, 수업시간에 가방을 털고, 내 물건을 함부로 가져가고, 우리를 늘 이새끼/저새끼로 부르는 교사에게 ‘아이 씨’ 했더니 각목으로 손바닥을 맞고, 초등학교 때는 단체기합을 받다가 기절한 적도 있습니다.”
이 충격적인 증언을 듣고 더 마음이 아팠던 건 이 경험이 여러 학생의 사례를 모아놓은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발표자인 한 학생이 초등학교부터 고3인 지금까지 학교에서 겪은 일들이라는 겁니다.
물론 모든 교사가 이렇지는 않고 또 관계라는 것이 상대적이기에 일방적으로 한 쪽의 입장만을 듣고 판단해서는 안 되겠지요? 그런데 저만 해도 학창시절에 당한 인권 침해의 사례를 나열해보라고 하면 한두가지가 아니거든요. 그리고 아무리 교육적인 무언가를 가르치려고 한다 해도 그 방법이 폭력적이고 인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비교육적인 것입니다. 선한 결과를 위해서는 그 과정도 선해야 하겠지요.
그런데 교사들은 또 말합니다. 부모는 집에서 자기 자식 하나도 어떻게 못하는데 학교에서 교사 한 명이 이 많은 학생을 ‘지도’하는 것이 너무 어렵고 힘들다구요. 맞아요! 가르치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교사를 ‘교육전문가’라고 부릅니다. 학생인권조례를 말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교사가 인권을 존중하는 바탕 위에서 교육전문가로서의 역량을 잘 발휘해달라고 하고 있어요.

더 이상 ‘선생님한테 맞아서 인간이 되었다.’며 ‘아동학대법’으로 금지하고 있는 체벌을 정당화하고 미화해서는 안 됩니다. 일기장을 검사하고 학생의 개인 기록물인 수첩을 보고, 학생의 동의 없이 소지품 검사를 하고 개인물품을 압수하는 일들을 학창 시절의 추억거리로 이야기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모두 인권을 침해하는 것입니다.

누군가 저에게 위와 같은 행동을 한다면 저는 분개할 것입니다. 그런데 왜 학교에서 학생에게는 당연한 것으로 생각할까요? 학생을 존엄한 인간으로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린이/청소년은 사회적 약자입니다. 사회적 약자는 자기 운명의 결정권이 자기에게 없는 사람을 말한다고 합니다. 어린이/청소년은 학교에서 ‘학생’이라는 이름으로 억압당합니다. 학생다움을 강요받는데 ‘학생다움’은 주로 공부를 잘 하기 위해서 용모와 복장, 태도와 생활 규칙을 정하고 그것을 따르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게 합니다.
마틸다의 담임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당부하는 것과 다르지 않아요. 학생인권조례가 필요한 것은 학생이기 이전에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것입니다.

교사 또한 교사이기 이전에 인간입니다.
‘교사다움’이라는 이름이 학생을 통제하고 지도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게 합니다.
교사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 학생들과 마주 설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동화 《마틸다》는 그것을 보여 주고 있어요.
나이는 어리지만 대범하고 용감한 마틸다와 어린 시절의 학대 경험으로 정신적 노예 상태로 살고 있던 하니 선생님이 서로를 알아가고 이해하는 과정이 감동적으로 그려집니다.
교사와 학생이 서로에게서 배우고 위로하며 학교 안 동료로 함께 살아갈 수 있다면 좋겠어요.
학생인권조례가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첫 걸음이라고 믿습니다.
너무 많이 기다렸어요.
경남에서 10여년이 넘는 시간동안 수차례 실패의 경험이 있었던 학생인권조례!
이제는 쫌! 꼭! 만들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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