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호]길냥이를 구한 목숨 (서울행정법원 2008. 9. 10. 선고 2008구합6875)

[산재 판례]
작성자
mklabor
작성일
2018-03-27 19:05
조회
1984
서울행정법원은 개원 20주년을 맞아 행정소송 판결 20선을 선정하여 발표하고 있다. 그 중 산재판례 하나를 소개한다. 60세의 A씨는 경기도 고양시에 소재한 주유소에서 주유원으로 일하던 중 유조차 밑에 숨어 있던 고양이를 꺼내려고 차 밑으로 들어갔다가, 이를 미처 알지 못한 유조차 기사가 차를 움직여 뒷바퀴로 A씨의 상체를 타고 넘어가 ‘다발성 늑골골절, 혈흉’으로 사망하였다.

A씨의 유족은 업무수행 중 재해라며 유족급여를 청구하였으나, 근로복지공단은 ‘망인은 사고 한달 전부터 버려진 고양이를 보살펴 주었고, 유조차 밑으로 들어간 그 고양이를 꺼내는 행위는 업무행위가 아니라 사적인 행위로 판단된다’는 이유로 유족급여 부지급처분을 하였고, 이에 유족은 행정소송을 제기하였다.
A씨는 사고가 있기 한 달 전부터 버려진 고양이를 주유소 창고 내에 밥그릇을 놓고 먹이를 주며 기르다가, 주유소 소장이 창고에서 치울 것을 지시하여 주유소 옆 화단에서 돌보아 길렀다. 유조차 운전기사는 저유탱크에 기름을 넣고 유조차를 주유소 화단 옆 공터에 주차시켰다가 유조차에 시동을 걸어 출발하려는데, A씨가 다가와 유조차 밑에 고양이가 들어가 있으니, 고양이를 꺼낸 다음 출발하라고 하였다. 유조차 기사는 사무실로 들어가 10분 가량 커피 한 잔을 마신 후 다시 유조차로 왔는데, A씨가 계속 고양이를 불러도 고양이는 머리만 내밀고 움직이려고 하지 않았다. 운전기사는 A씨가 고양이를 꺼내기 위해 유조차 밑으로 들어간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유조차가 움직이면 고양이가 놀래서 나오겠지’라는 생각으로 유조차를 출발시켜 유조차의 뒷바퀴 부분으로 A씨를 타고 넘어가 사망에 이르게 하였다.
서울행정법원은 △망인의 업무는 차량주유업무뿐만 아니라, 주유소 청소나 차량진행의 장애물 제거업무도 맡고 있었던 점 △비록 해당 고양이가 망인이 주유소 옆 화단에서 먹이를 주며 기르고 있었던 버려진 고양이였으나, 사업주는 주유소 창고 내에서 기르지 말라고 지시하였을 뿐, 화단에서 기르는 것은 방임하였던 점 △고양이가 유조차 밑으로 들어가게 되어 유조차의 출발에 방해가 되었고, 망인으로서는 유조차가 신속히 출발할 수 있도록 고양이를 치워야 했던 점 △망인의 이러한 행동은 사적인 취미활동이 아니라, 차량진행의 장애물 제거업무행위로 볼 수 있고, 그 고양이가 망인이 돌보아 기르던 동물이라고 하더라도 마찬가지인 점 등을 종합하여 “업무수행 중에 발생한 사고”로 판단하고, 근로복지공단의 유족급여 부지급처분을 취소하였다.

길냥이를 돌보는 따뜻한 마음을 지닌 망인이, 고양이를 꺼내기 위해 유조차 밑으로 들어간 행위는 고양이를 구하기 위함도 있지만, 유조차가 신속히 출발할 수 있도록 장애물을 제거한 행위이기도 하기 때문에, 업무행위에 해당한다는 지극히 당연하고 타당한 판결이다. 여기서 지적하고 싶은 것은 근로복지공단은 도대체 왜, 이렇게 당연하고 타당한 처분을 하지 못하고, 산재로 가족을 잃은 사람에게 소송까지 제기하게 하는 것이냐는 점이다. 재해 발생의 여러 측면 중 업무상 재해에 해당하는 측면은 축소해서 보고, 업무상 재해에 해당하지 않는 측면은 확대하여 보는 근로복지공단 태도의 변화를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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