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호]'하청노동자 대행진' 행사의 성과와 의미

[활동 글]
작성자
mklabor
작성일
2017-02-17 14:47
조회
4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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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성  거통고 조선하청지회 준비위원장


3년전, 늦더위도 한풀꺾이고 아침 저녁으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올 즈음 나는 옷가방 하나를 메고 이곳 거제에 홀로 찾아들었다.  나이 오십이 넘어 어디든 취업하기가 쉽지 않았고 그 어디가 됐건 일자리만 있으면 찾아 나서려던 차에 우연히 조선소 구인광고를 접하게 됐고, 나이도 문제될 것 없고 조건 또한 나쁘지 않아 단박에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출근을 앞두고는 기대와 희망에 들떠 잠을 설치기까지 했었다.
옥포만에 자리잡은 세계 최대규모의 대우조선소를 처음 봤을 때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 끝을 가늠할 수 없는 규모와 거대한 선박 그리고 하늘높이 치솟아있는 골리앗 크레인, 참으로 경이로움 그 자체였고 조선소 야경은 황홀하기까지 했다.  내 예측이 틀리지 않다면 이제 저기에 들어가 대부분 자동화된 선박제조 과정에서 사람의 손이 필수적으로 필요한 부분을 차근차근 배워 나가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출근 첫날부터 나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가기 시작했다. 철구조물 사이로 미로처럼 나있는 통행로는 왔던 길을 되돌아나갈 엄두가 나지않고, 고막을 찢을듯한 소음에, 작업장 곳곳에는 쇳가루와 먼지가 수북히 쌓여 있었다. 전기작업의 특성상 대부분 작업 공간은 협소했고 좁은 공간에서 '아나콘다'와 같은 육중한 케이블을 설치하고, 고박하는 일을 하다보면 채 한 시간이 되지않아 온몸은 땀과 먼지로 범벅이 되기 일쑤였다. 땀을 식히고 맑은 공기를 마실 수 있는 휴식시간은 사막의 오아시스같은 역할을 하는데, 두시간 작업 후 10분, 그리고 점심시간 식사 후 10여 분 동안 선박아래 곳곳에 주저앉아 담배 두세 개피를 몰아피우는 모습은 흡사 군대시절 훈련 나갔을 때를 연상케했다.
협력사 입사동기 여섯명 중 네 명은 일주일이 지나지않아 도망치듯 조선소를 떠나갔고, 매주 천여 명의 신입사원중 한 달 이상을 버티는 사람이 30%를 넘지않을 거라고 말들했다. 작업중 동료 한사람은 갈비뼈 골절상을 당했고, 나는 손바닥 부위에 자상을 입었다. 그러자 회사에서는 반장에게 문책성 경고조치를 했고, 나와 동료는 난생처음 '공상처리' 라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다.  일하다 다치면 직장, 반장은 물론 회사에 피해를 주는 것이고 산재처리는 금기어에 속하는 단어였다. 어지간한 부상이 아니면 문제 삼을 수도 없는 것이, 한달이 멀다하고 중대재해 소식이 전해졌고, 나와 비슷한 꿈을 안고 조선소에 들어왔을 하청노동자들이 추락해서,협착해서, 화재로 불에 타서 죽어나갔다.
대우조선 한 울타리에서 5만여 명이 일하는데 그중 3만5천여 명은 나와같은 하청노동자였다. 노동조합이 있기는 한데 희한하게도 조합에 가입 할 수 있는 자격이 있어야 했고, 하청노동자는 그 자격에서 제외되어 있었다. 대부분의 힘들고 위험한 일은 하청노동자가 도맡아 하면서도 임금은 정규직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고, 복지혜택으로 부터는 철저하게 소외되어 있었다. 이러한 납득할 수 없는 현실을 더이상 보고만 있을수 없어서 극소수의 하청노동자와 함께 조직화 사업에 나서게 되었고,  얼마 되지않아 예상했던 대로 회사로부터 탄압이 시작됐다.
2015년 6월 대우조선 정성립 신임사장이 취임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부터  대우조선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격랑속으로 빠져들었다. 해양플랜트 분야 사업실패에서 시작된 영업손실액은 날이 갈수록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이후 밝혀진 내용들을 종합해 보면 대우조선 경영부실 원인이 단순한 사업실패에만 있지 않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경영진의 무능과 부도덕 그리고 방만경영이 일차적 원인이고,  경제적 실리만 쫓는 채권단과 정부의 관리부재가 낳은 총체적 부실이었다. 근본원인이 이러함에도 원인 제공의 책임소재를 따져묻고 가려내는 데에는 관심없고, 오로지 구조조정만이 유일한 해법인양 온 세상이 떠들어댔다.
아무런 방어막이 없이 무방비 상태에 놓여있는 하청노동자는 구조조정의 손쉬운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전면적으로 월급이 삭감되고, 한두 달 체불되고, 줄지어 발생하는 업체폐업으로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불안한 상태에서 일할 수밖에 없었고, 노동강도는 더욱더 강화되어 항상적 사고위험에 노출되어 있었다. 일 년 넘게 강도높은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있고, 수천명이 조선소에서 쫓겨났지만, 내년까지 만 명 이상을 추가로 잘라 내겠다고 공언 하고 있다.  적어도 외관상으로 현장은 무슨일 있냐는 듯 평온해 보이기까지 했다.  이 철저하게 통제되고 길들여진 관성을, 집단적 무기력증을 깨부수어야만 했다. 우리 하청노동자에게 더이상 빼앗길것도 물러설 곳도 없다는 이 절박한 현실에서
'조선소 하청노동자 대행진'을 준비하게 되었다.
거제지역 노동단체,시민단체,정당이 참여한 '거제 통영 고성 조선소 하청노동자 살리기 대책위'가 주체가 되고 소수의 '거통고 조선하청지회(준)'이 한덩어리가 되어,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대행진 행사 준비를 위해 전력을 다했다. 그리고 전국의 시민 사회단체,정당,종교계가 적극적으로 이에 동참했다.
마침내 10월 29일, 거제시민은 물론이고 전국에서 희망버스를 타고 달려온 노동자 시민이 함께 해, 역사적인 '하청노동자 대행진'행사가 대우조선 인근에서 열렸다. 무대에 오른  하청노동자는, 더이상 폭력적인 구조조정에 당하고만 있지 않겠다고, 이제 당당하게 우리의 권리를 찾아 나서겠다고 힘차게 외쳤다.  그리고 본대회에 참석한 사람 모두가 한목소리로 하청노동자 권리선언문을 낭독했다. 대우조선 남문을 거쳐 서문앞 도로까지 행진을 하고 퇴근길의 하청노동자들이 보는 앞에서 문화한마당 행사를 갖고 이날 대행진 행사는 모두 마무리 되었다.
지난 4년 동안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닫고 국가기구와 체계를 무시한 채, 비선라인에 기대어 국정을 농단해왔던 박근혜 정권에 대한 퇴진요구가 전국에 들불처럼 타 오르고 있다. 정부의 책임은 철저히 외면한 채, 사람 자르는 조선소 구조조정을 방조하고 강요해왔던 현정부의 직접적 피해자가 바로 조선소 노동자이다. 재벌의 이윤을 보장하고 불려주는 정책만을 일관되게 고집해왔을 뿐, 노동자 서민의 삶에는 애시당초 관심이 없고 국민의 생명을 하찮게 여겨왔던 현정권 퇴진운동에 조선소 노동자가 앞장서 싸워야 함은 그래서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지난  대행진 행사를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조선소 하청노동자는 이제 자신의 권리를 찾고 지켜 나가기 위해, 조선소 경영진을 상대로, 채권단과 정부를 상대로 결코 물러설 수 없는 싸움을 벌여나갈 것이다.  또한 하청노동자 대행진 행사는 중요한 교훈과 과제를 남기기도 했다. 조선소 구조조정에서 정규직 비정규직이 따로 있지 않고, 총고용 보장을 위해서는 원-하청 연대만이 해답이라는 사실을! 하청노동자 조직화를 위해서는 원-하청 연대는 물론 지역차원의 입체적이고 총력적인 연대가 필수적 이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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