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호] 농성일기

[현장을 찾아서]
작성자
mklabor
작성일
2018-12-27 14:56
조회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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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창익‖전국교직원노동조합 위원장


2018.11.19.월.흐림.

전교조 농성 155일차. ‘탄력근무제 근무기간 확대 저지! ILO 핵심협약 비준! 노동법 전면개정! 제대로 된 정규직 전환! 11.21 총파업 총력투쟁 승리!’ 민주노총 시국농성 6 일차. 여명의 아침, 서대문 숙소를 나선다. 안산 비탈길, 얼굴에 스치는 초겨울 바람이 싸하다. 어제는 일요일. 비교적 한가했던 청와대 농성장에 손님처럼 스며들었던 오후 녘 햇살이 사그라 들었을 때 그늘진 길바닥에 앉아 한기에 몸을 떨었던 터라 오늘은 내복을 입고 단단히 채비를 했다. 광화문 거쳐 부랴부랴 도착한 농성장. ‘흩어지면 죽는다. 흔들려도 우린 죽는다…’ 수십 년 투쟁가들이 북악산 골바람을 타고 촛불항쟁의 거리, 효자로에 울려 퍼진다. 길 건너편 고용노동부 소속 잡월드 동지들의 절절한 투쟁사가 가슴 아프게 파고든다. 직고용을 요구하며 단식하고 농성한지도 벌써 한 달이 다되어 간다. 문재인 정부는 정규직화 약속을 헌신짝처럼 내팽개쳤다. 대통령 연설문 속 ‘노동존중사회’는 빛바랜 구호가 되어 허공에 산산이 흩어져버렸다. 지난 6월 18일, 이곳에 천막이 들어설 때까지만 해도 한적했었다. 지금은 빼곡하게 천막들이 들어섰다. 처음에는 현수막 하나 거는 일도, 가로수에 막대기 하나 묶는 일도 다 경찰들이 가로막았다. 지금은 현수막도 양쪽 길가에 걸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전교조가 천신만고 끝에 투쟁으로 확보한 청와대 정문 앞 일인시위의 자유가 타 단체와 개인에게까지 확대되었다. 투쟁 없이 한 치의 권리도 보장받지 못한다는 교훈을 몸소 체득한 기간이었다. 권리 위에 잠자는 자를 위한 장전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른 바 국정 농단을 단죄한 민중들의 거리가 농성 투쟁의 거리가 되었다. 이제 이곳은 천막들이 즐비하고 민초들의 절규는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재벌 총수들과 생맥주 파티를 했던 청와대 앞마당에 쏟아지는 원망의 목소리를 대통령이 듣기는 하는 것인가? 철거민, 농민, 노동자, 삶터와 일터를 억울하게 잃어버린 사람들의 피맺힌 설움을 저이들이 알기는 하는 것인가? 재벌들과 환호했던 청와대 앞 효자로 거리에 민초들의 촛불 집회는 계속되고 있고, 정부에 대한 원망 소리가 드높다. 어찌 ‘가성고처원성고(歌聲高處怨聲高)’가 아닐 수 있겠는가?

오늘 농성 155일차.
어찌하여 농성이 이토록 길어지고 있는가? 누구도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1700만 촛불광장에서 확인된 교육 적폐 청산 과제 제1호, 전교조 법외노조 문제 해결이었다. 더불어민주당의 씽크탱크 [민주연구원]에서 선정한 문재인 정부 10대 국정과제 중 두 번째로 올라있었던 문제였다. 우리는 의심하지 않았다. 너무나도 당연하게 해결될 것이라 믿었고 2017년 하반기, 늦어도 2018년 3월에는 해직교사들이 교단으로 돌아가고 법외노조 처지에서 벗어나 정상적인 노동조합으로서 지위와 역할을 보장받고 단체교섭도 하고 헌법적 권리를 향유하면서 교육개혁의 주요동력으로서 활기찬 활동을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의 기대는 완전히 빗나갔다.

문재인 대통령의 후보 시절, 2017년 1월 19일, 시내 모처에서 도종환 문체부 장관, 당시 민주당 의원과 함께 배석한 자리에서 전교조 위원장을 만나 ‘박근혜 정권의 전교조 법외노조화에 대하여 규탄해왔다. 집권하면 우선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하지만 취임 이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우리는 3000배, 3보 일배, 오체투지, 삭발, 단식 등등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하여 우리의 절박한 요구를 정부와 시민들에게 알리는 투쟁을 전개할 수 밖에 없었다. 그 와중에 지금은 물러난 장하성 정책실장이 ‘전교조 문제는 정권을 칼날 위에 올려놓는 일이다’라는 말로 전교조 문제 해법의 어려움을 토로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우리는 정부가 전교조 문제를 정치적, 이데올로기적으로 과잉 해석해서 편향을 낳고 있다고 생각했다. 1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이명박 박근혜 정부 하에서 극우 보수세력이 내뱉는 종북 몰이의 단골 양념으로 전교조에 대한 공격과 탄압의 역사를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왜곡된 인식의 자장 안에서 촛불 정부가 판단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며 청와대 핵심관계자의 판단에 우려를 하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교육개혁의 성공을 중심에 놓고 판단한다면 현장 교육개혁의 주요동력인 현장교사들의 단체, 전교조의 법적 지위를 회복시키는 일에 주저함이 없었어야 할 터였다. 박근혜 정권의 부당한 탄압에 의한 결과라는 사실에 주목하지 않는 새 정부는 매시기 때를 놓치고 있다. 6월 19일, 전교조 대표단을 만난 자리에서 김영주 장관이 법률적으로 가능하다면 전교조 법외노조 직권취소를 고민해보겠다는 발언을 한 뒤 바로 그 다음날 청와대 대변인은 정세 브리핑을 통하여 ‘직권취소 불가 방침’을 천명하였다. 과잉대응이었다. 담당 장관의 존재감을 완전하게 짓뭉개버리는 과도한 행정개입이었다. 이러한 청와대의 과잉 정치는 우리에게 많은 실망과 충격을 안겨주었다. 전교조 중집은 즉각적인 전원 삭발로 정부에 불만을 표시하고 저항하였다.

7월 16일 위원장은 단식에 돌입하였다. 이런 투쟁의 과정에서 8월 1일에는 적폐청산의 과업을 부여받은 고용노동부가 설치한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가 오랫동안 고민한 끝에 전교조 문제 해법을 내놓았다. 그것은 다름 아닌 ‘즉시 직권으로 취소할 것’ ‘노조법 시행령 제9조 2항을 조기에 삭제하여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는 주문이었다. 너무나도 정당한 판단이었다. 그러나 이 권고는 청와대로부터 행정적 봉변을 당한 김영주 노동부 장관이 나서서 작성한 직권취소는 불가하다는 입장문을 통하여 다시 한 번 부정당하였다. 참 황당하였다.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의 권고문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적폐청산의 역사적 과업을 수행하기 위한 위원회의 권고를 장관 자신이 스스로 부정한 것이다. 이는 적폐청산을 거부하는 반역사적인 행위이며 시대정신에 반하는 이율배반적 모순이 아닐 수 없었다. 이 확신에 찬 조치는 명백한 행정적 기만이며 편향적이고 치졸하기 그지없는 행정행위로 오래토록 기록될 것이다.
전교조에게 지혜롭게 행동할 것을 주문한 이낙연 국무총리가 제시한 ‘전교조 문제는 재판에 계류 중인 사안이니 대법 판결 이후로 미루어야 한다’는 신중한 기준점을 유은혜 장관 후보자시절에도 두루 확인한 바 있다.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우리는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 ILO 결사의 자유위원회의 강력한 권고, OECD, EU와의 약속 등 국제상식에 부합하는 보편적 노동기본권을 전교조에 부여 해야 한다는 최소한의 약속을 지키지 않는 문재인 정부에 대한 신뢰를 많은 현장교사들이 접고 있다. 최근에는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의 강력한 권고문에까지도 한사코 눈길을 외면해버리는 정권의 속내가 의심스러워지기 시작하였다.

문재인 정부가 전교조의 법적 부활과 정치적 성장을 부담스러워하고 있지는 않은가?하는 합리적 의심이다. 전교조는 역사적으로 민주주의와 정의의 편이다. 그래서 온갖 탄압 속에서도 민주적 성장을 멈추지 않고 있는 참교사 집단이다. 참교육 참세상을 향한 전교조의 당당한 행진은 권력의 민주적 성장을 촉진한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역대 정권들이 부담스러워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정권에게 쓴소리 마다않는 전교조의 역사적 사명은 새로운 교육과 세상을 향한 천혜이자 천형이다. 정권의 미움을 사지만 그것이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한 필요 조건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는 기득권과 현실에 안주할 수 없다. 인간보다 이윤을 앞세운 신자유주의적 경쟁주의 교육정책에 맞서 이를 저지하기 위하여 모든 것을 걸고 투쟁할 수밖에 없다. 416 꽃다운 아이들의 세월호 참사에 비통해하며 청와대 게시판에 이름 석자를 올려 박근혜 대통령의 책임을 묻고 퇴진을 주장할 수 있는 결기도 기실 전교조의 참교육 정신에 기인한다. 전교조는 이렇듯 민주주의를 위하여는 목숨을 걸고 투쟁하는 조직이다.

문재인 정부는 이런 전교조를 북돋아주고 격려하고 위로해야 한다. 탄압받고 해직의 고통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아이들과 함께 앞으로 나아가려고 노력하는 전교조를 칭찬해줄 일이다. 1700만 촛불 시민의 이름으로 포용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길을 만들어 줘야한다. 전교조를 더 이상 사회적 약자가 아니라며 외면하고 핍박하는 언사는 청와대비서실에서 나올 말이 아니다.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하여 전교조의 행진은 어제도 오늘도 계속될 것이다.
불행하게도 문재인 정부의 교육개혁은 퇴보적이다. 교육개혁에 대한 현 정부의 입장이 현상유지적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현장의 동력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표류하고 있고 후퇴를 거듭하고 있다. 그 어떤 개혁의 방향도 뚜렷하게 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해와 욕망이 상충되는 지점에 대하여 정부가 침묵하고 있다. 공론화를 통하여 산술적 균형 지점으로 정치적으로 인도할 것, 이것이 정부의 철칙이다. 개혁 정신이 실종되었다. 그래서 걱정이다. 문재인 정부는 전교조를 개혁의 동반자로 삼으라. 거기에 길이 있다.

 

[효자로에서 슬퍼하다]

청와대 앞 효자로
저 무성한 나무는 누구를 위하여
저리도 푸르른가
안개에 싸인 북악은 말이 없고
담장 밖 민초들의 절규는 끝없이 이어지네
오늘도 장승처럼 서서 폭염을 이기는데
담장 넘어 온 한 쌍의 비둘기
무심히 거닐고만 있네
내 다만 원하는게 있다면 상식을
회복하는 것인데
아직도 법 밖으로 내치기만 하니
한스럽기 그지없네
哀孝子路(애효자로)

靑瓦臺前孝子路(청와대전효자로)
此盛木爲誰靑秀(차성목위수청수)
煙霧北岳默不答(연무북악묵부답)
牆外民草連絶叫(장외민초연절규)
今立長栍剋暴炎(금립장생극폭염)
越牆雙鳩無心步(월장쌍구무심보)
我宿願回復常識(아숙원회복상식)
追法外悔恨至高(추법외회한지고)

(2018.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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