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호]노동시간 단축을 바라보며

[초점]
작성자
mklabor
작성일
2018-10-18 16:55
조회
1940

신상길녹산노동자희망찾기 집행위원장


2018년 7월 1일부터 근로기준법이 개정되어 노동시간단축법안이 단계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OECD 국가의 연평균 노동시간 보다 300시간 이상 더 많이 일 해온 우리 노동자들이 장시간 노동과 과로에서 벗어나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갖고 저녁 이 있는 인간다운 삶을 누리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라고 했다.
7월 한달이 지나고 8월이 다 지나가고 있는 지금 우리 노동자는 문재인 대통령이 얘기했던 ‘인간다운 삶’의 장밋빛 비전을 조금이라도 보고 있는가? 반문하고 싶다. 도대체 어떤 내용인지 다시 한번 점검하면서 문제점을 확인하자.

우선 떠오르는 생각은 근로기준법에 노동시간제와 관련된 직접적인 문구가 개정된 것은 맞는가? 이다. 그래서 근로기준법을 살펴보자. 개정 전 근로기준법에는 “1일 8시간, 주 40시간, 1주간 12시간 초과노동금지”의 내용이 있다. 법대로 따르면 1주 동안 할 수 있는 노동시간은 40시간 + 12시간 하면 52시간이 된다. 그럼 개정 후 근로기준법에는 어떻게 되어 있는가? 그대로다. 아무것도 개정된 것이 없다. 그런데 새로 신설된 내용이 있다. “1주”란 휴일을 포함한 7일을 말한다(근로기준법 제2조 7항)“의 내용이다. 이것이 핵심이다. 전 세계의 삼척동자도 아는 ‘1주’가 7일이라는 사실 이것을 굳이 법으로 규정한 것이다. 허탈하다. 모든 세상은 1주 7일 단위로 돌아가고 있다. 그런데 노동자의 노동시간을 규제하는 법은 다르게 해석해 왔단 말인가? 그렇다 자본과 정권은 노동시간의 규제를 1주는 휴일근로(예:토요일,일요일)을 제외하고 해석하는 해괴한 논리로 노동자를 속여 왔던 것이다. 1주를 5일로 해석하면 ‘5일동안 주 40시간+1주 초과노동 12시간+ 토,일요일 2일동안 16시간’이렇게 총 68시간의 장시간 노동이 가능한 것이였다. 업무상 과로로 인한 산재인정기준인 1주 평균 60시간을 초과하도록 강요해 왔던 것이다.

이러한 해석이 근로기준법 위반이라는 것은 그동안 노동자가 제기한 소송에서 노동자가 승소함으로서 이미 드러났다.  이제 대법원 판결만이 남았다. 그런데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자본과 정권은  ‘1주는 7일’이라고 법으로 규정했다.  고용노동부의 말도 안 되는 해석을 그냥 폐기하고 정상으로 돌리면 되는 문제인데 이렇게 웃기는 법 문구를 신설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이번 근로기준법 개정안은 주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무려 주당 16시간이나 단축하는 법안으로 새롭게 탄생한 것처럼 보이게 했다. 이제 우리나라 노동시간제도는 주 52시간제가 정상인 것처럼 착시현상을 생기게 했다. 꼼수 중에 꼼수다.
지금까지 노동시간 단축 근로기준법 법 개정의 과정과 해석 속에 대한민국의 노동시간이 ‘주40시간제’라는 사실은 외도적으로 외면 당하고 있었다.
그리고 휴일근로(예:일요일) 8시간에 해당하는 수당문제는 휴일근로가산수당, 연장근로가산수당을 각각 중복하여 100%를 더 지급하지 않고 50%만 더 지급하도록 아예 법으로 명시해 두었다. 수당부분은 기존의 위법한 고용노동부 해석을 법으로 그대로 유지하는 꼼수를 썼다. 휴식도 없이 일한 휴일근로에 대한 보상을 외면한 것이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7일 노동시간이 총 52시간을 초과할수 없는 법적용의 대상이 문제가 된다. 장시간 노동으로 과로에 지친 50인미만 소규모 영세사업장 노동자는 2021년 7월, 30인미만 사업장은 2022년 12월 이나 되어야 적용되도록 되어 있다. 세계 어느 나라를 보더라도 단계적 법적용을 통해서 노동자를 차등하는 나라는 드물다. 보다 큰 문제는 이번에도 노동시간과 관련된 근로기준법 내용이 5인 미만 사업장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냥 무제한적 노동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5인 미만 노동자는 전체 노동자의 28%인 558만명이다. 노동자 10명중 3명이 1주일에 60시간이든 70시간이든 상관없이 노동시간단축적용을 아예 받지 못한다. 그리고 노동시간의 적용을 받지 못하는 기존의 특례업종을 전면 폐지하지 않고 유지하고 있다. 다소 축소되긴 했지만 운송업,보건업등 5개 업종 노동자들은 여전히 무제한적 노동을 계속 강요받을 수 밖에 없다.
이번 시행되는 노동시간단축 개정안에는 자본측에서 지속적으로 요구해온 사안이 근로기준법 부칙에 포함되어 있다. 부칙 3조에 “고용노동부 장관은 2022년 말까지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단위 기간 확대 등 제도 개선 방안을 준비한다.”는 조항이 들어가 있다.
탄력근로시간제는 현재 근로기준법에 명시되어 있다. 노동시간을 회사가 임의로 운영할 수 있는 제도이다. 가령 일정한 기간 내에 회사의 필요에 의해서 장시간으로 일을 많이 시킬 수도 있고, 필요에 의해서 일을 적게 시킬수도 있는 것이다. 일정한 기간내 평균을 해서 주40시간을 맞춘다면 장시간노동에 포함된 연장근로가산수당을 지급하지 않아도 되는 제도이다. 현재 자본은 일정한 기간을 6개월 혹은 1년단위로 요구하고 있다. 6개월기간 혹은 1년 단위기간내에  임금을 줄이고 이윤을 확보하기 위하여 말 그대로 근로시간을  임의로 운영할 수 있는 것이다. 노동시간 단축을 회피하기 위한 꼼수 인 것이다. 그리고 장시간 노동과  생체리듬의 불안정으로 노동자의 건강권이 침해될 수 있다.
그리고 이 정책은 자본가가 노동자의 추가 채용없이 기존 인력으로 노동시간 단축에 대응하는 꼼수이기 때문데 일자리 정책과는 모순되는 것이다.

집배원 노동자, 방송 노동자, IT업 노동자, 게임업 노동자, 마필관리노동자등 살인적인 장시간노동으로 인한 과로사와 자살등이 사회적으로 조명된바 있다. 그 실태가 민낯으로 드러났다.그렇다고 이러한 현실에 대응하여  제대로된 노동시간단축이 시행되고 있는가? 자본과 정권이 제시하는 노동시간단축안이 과연 장밋빛 희망으로 다가오고 있는가? 자본이 들어갈수 있는 꼼수와 편법의 구멍투성이 법일 뿐이다.
공단에서 일하는 60대 제조업 생산직 노동자의 질문이다. “우리 같은 작은사업장은 노동시간단축이 언제 적용되냐?”라는 것이다. 그리고 잠시 생각한뒤 “ 그래도 장기근속해서 임금이 조금 센 편인데 노동시간 단축되면 퇴직금 차이가 너무 많이 나는데 큰일이다”라고 얘기 한다. 그렇다. 지금 당장은 소규모영세사업장에 법안이 적용 되지 않기 때문에 큰 변화는 없다. 하지만 조금만 훗날을 생각해 보니  큰일로 다가 올 수 있었던 것이다. 저임금노동자의 생계비는 장시간노동으로 부족분을 보충하는데 임금이 감소되니 걱정도 이만저만이 아닐게다. 제조업공단의 작은 사업장에서 일하는 저임금 노동자에게 노동시간 단축은 곧 그 만큼의 임금손실로 다가온다. 아니 대부분의 저임금노동자의 걱정꺼리 일 것이다. 과연 저임금노동자에게 노동시간 단축이 문대통령 얘기처럼“노동자의 인권을 위한 획기적인 개정안” “저녁이 있는 삶”으로 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할 것인가? 다른 것 차치하더라도 최소한 임금등 노동조건의 손실이 없는 노동시간 단축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양질의 일자리가 생겨나야 할 것이다. 그러나 개정되어서 시행되고 있다는 노동시간단축 근로기준법안에는 어떠한 대안도 없다.
임금손실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개별 노동자가 감수해야 하는 정책이고, 또한 탄력근로시간제 운용등 유연근로시간제 활용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와도 부합하지 않는 정책이다. 그럼 무엇을 위한 정책인가?
이번 7월1일 노동시간 단축이 시행되기 훨씬 이전부터 자본은 수구언론의 사설을 통해서 다음과 같이 노동자를 공격하며 호들갑을 떨었다. “문제는 급격하게 늘어나는 기업 부담이다. 기업이 못 버티면 삶의 질은커녕 일자리 자체가 없어진다. 업계에선 근로시간 단축으로 인해 기업에 12조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고 한다. 그 가운데 70%가 중소·영세기업 부담이다. 이미 정년연장, 통상임금 범위 확대, 최저임금 인상 등이 이뤄진 상황이다. 마치 연쇄 폭격당하듯이 기업 부담이 늘어나고 있다.” 독점재벌 위주의 경제구조 속에서 자본 스스로 만든 구조적 문제를 아무런 근거없이 노동시간 단축의 문제로 사기치고 있었다.
그리고 마치 기업의 이러한 인건비 부담을 감안이라도 한 듯이 대안없는 노동시간단축으로 지금 시행되고 있다.
제대로 된 노동시간 단축은 어떠해야 할까? 좁은 의미로 보면  안정된 일자리가 보장되고, 일자리가 생겨나고, 안전하고 병들지 않으며 , 실질임금이 보장되는 정책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문제는 근로기준법 개정투쟁 만으로는 부족할 것이다. 사회적 임금을 확보하기 위한 투쟁과 재벌에 대한 투쟁등  투쟁영역의 지속적인 확대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단위사업장에서는 노동시간단축을 핑계로 한 임금삭감, 노동강도강화, 유연한노동시간제실시, 근무형태변경, 임금체계 개악등 예상되는 문제에 대응을 해야 할 것이다. 물론 노동조합이 없는 사업장은 노동조합 가입부터 시작 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백보양보하여 주 52시간제가 아닌 제대로 된 주 40시간제가 시행될 수 있도록 투쟁해야 할 것이다.  14시간-16시간의 살인적인 노동착취를 이 사회에 고발했던 전태일 열사에게 노동시간 단축의 의미는 무엇이였는지 다시 한번 새겨볼 필요가 있다. 그의 수기에서 생각해 본다. ‘인간을 물질화하는 세대, 인간의 개성과 참 인간적 본능의 충족을 무시당하고 희망의 가지를 잘린 채, 존재하기 위한 대가로 물질적 가치로 전락한 인간상을 증호한다.’
노동시간 단축을 ‘인건비’ 즉 회사의 ‘비용’문제로 환원하는 자본의 논리를 우리 노동자의 머리에서 싹 지워 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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