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호]노동자 건강권운동과 직업환경의학

[초점]
작성자
mklabor
작성일
2017-03-24 15:46
조회
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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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렬(직업환경의학전문의)


지금까지 노동자건강권과 관련한 현장의 사업과 대응은 건강검진, 근골격계 유해요인조사, 작업환경측정, 산재신청과 대응을 어떻게 잘할 것인가의 문제였다. 이러한 사업은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므로, 이러한 사업을 통해 현장의 문제를 드러내고, 일상적인 현장의 안전보건활동을 만들어낸다면, 이러한 제도는 나름 의미 있는 일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업이 그 자체로 목적이 된다면, 노동자건강권의 측면에서 보자면 의미 없는 일이 될 수도 있다.

다음은 노동자건강권 운동을 해오고, 향후 이 운동의 방향을 고민하는 활동가들과 함께 고민해 보고 싶은 주제들이다.

첫째, 극단적으로 개별화되어 가는 노동 현장의 분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을 노동보건, 노동자건강권 이름으로 만들어 보자는 제안이다. 10여 년 전의 근골격계 집단요양 투쟁은 노동자들의 질병과 통증이 자신의 작업환경과 관련이 있다는 인식을 만들어 냈고, 노동강도의 문제를 지적했고, IMF 경제위기 이후 자신도 모르게 증가되어 갔던 노동강도와 고용불안의 문제를 노동자의 몸을 통해 인식하는 과정이었다. 현장에 활력을 불어 넣을 수 있는 일상적인 노동안전보건운동을 만들어 보자. 다시 그 고민을 시작해봐야 할 때다.

둘째, 노동자들의 건강뿐 아니라, 노동자들의 일상생활에 대한 대안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노동의 영역과 삶의 영역이 구분될 수 없음에도 우리는 삶의 영역에 대한 고민이 매우 부족하다. 교육, 주거, 복지 등 다양한 우리의 삶 영역의 문제가 다시 노동의 문제와 연결된다. 가족, 지역사회, 정치 영역에서 노동자들의 역할이 어떠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지역사회 환경, 안전, 교육, 복지, 주거의 문제들을 확인하고 대안마련을 위해 노동보건운동이 함께해야 한다.

셋째, 최근 노동보건운동에서 주목할 만한 흐름에 대해 함께 공유할 필요가 있다. 작업중지권 일상적 복원, 일상적 노동보건 현장활동의 복원을 목표로 하는 근골격계 유해요인조사 시도, 장시간 노동을 제도적으로 막아내기 위한 노동시간 특례제도 폐지 등, 제도적 측면에서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거나, 개선을 위한 노력을 하는 것을 노동자건강권 운동의 주요한 사업 내용으로 가져가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노동건강연대 등 여러 노동안전보건단체들과 협력이 필요하다.

넷째, 직업병 인정과 관련한 제도적 문제점을 확인하고 개선을 위한 노력을 해야 하고, 가능한 중장기 개선 방향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질병판정위원회 운영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신속하고 공정한 심사가 되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 또한 요양의 실제 내용을 개선하여 산재노동자들이 제대로 된 치료와 재활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질병과 장애가 있는 상태에서 직장에 복귀하여 다시 재발되는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충분한 재활이 이루어질 수 있게 제도 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러한 당장의 개선 과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지만, 산재보험의 전면적인 변화를 만들어 내기 위한 기획이 마련되어야 한다. 직업병여부를 판단하는 과정을 과감하게 바꾸어내는 것이다. 주치의가 직업병이라고 인정하면 그냥 직업병이 되는 제도로 만들어야 한다. 산재노동자는 자신의 질병을 치료하고, 충분히 재활하여 원직장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하는 노력만 하면 된다. 그 외 제도적인 문제로 산재노동자의 치료와 재활이 늦어지거나 소홀히 되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제도의 변화를 위해서는 건강보험의 보장성(소득보장) 강화, 요양기관의 질관리 등 산재보험과 연결되어 있는 다양한 제도들의 개선이 병행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노동보건 활동가들의 시야가 조금 더 넓어져야 하고, 이런 시각을 다양한 전문가들과 공유해야 한다.

1995년에 산업의학 전문의제도가 시작되었으니, 벌써 2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다. 제조업 중심의 산업보건을 탈피하고 서비스 직종을 포함한 모든 직업인의 건강문제를 다루겠다는 취지로 직업환경의학으로 이름도 바꾸었다. 또한 지구온난화를 비롯한 환경의 문제를 다루겠다는 목적도 있었다. 모든 학문은 그 자체로 진보적일 수는 없다. 다른 나라의 사례를 보더라도 직업의학분야의 출발은 노동자계급의 입장을 먼저 대변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오늘 노동을 한 노동자가 내일도 건강하게 일하러 나올 수 있을 정도의 건강함은 유지해야 하는 것이고, 사고가 나서 사업주가 민사소송에 휘말리는 것도 최대한 줄일 필요가 있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회복지가 체제 유지의 첨병으로 사용되듯 직업의학도 자본의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성장을 위해 필요했던 학문이다. 그렇다고 직업의학이, 사회복지가 필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하지만, 모든 학문은 그 자체로 진보적일 수는 없다.
직업환경의학이 노동자계급과 함께하는 학문이 되기 위해서는 그 만큼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노동자가 건강하게 일을 하기위한 조건은 단지 건강검진 열심히 받고, 술, 담배 적게 하고, 운동하고, 건강한 식습관을 갖는 것만은 아니다. 이러한 불건강행위를 유발하는 노동조건을 개선하는 것이 병행되어야 한다.
직업환경의학은 이러한 “원인의 원인”, 즉, 불건강행위가 건강에 직접적 원인이라면, 그러한 불건강행위를 유발하는 직무스트레스, 장시간노동, 저임금, 열악한 작업환경을 바꾸어내는 역할을 자신의 주요한 역할로 삼아야 한다. 그러한 자기 규정을 하기위해서는 사회적 책임과 맥락속에서 직업환경의학을 바라보는 관점이 필요한데, 이는 직업환경의학을 하는 사람들만으로는 안 된다. 그런 측면에서 노동자들이, 노동계급이, 현장이 직업환경의학을 노동계급을 위한 학문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산추련 소식지 100호 발행을 축하드립니다. 노동자 건강권 운동에서 산추련이 걸어왔던 운동은 현장중심, 원칙의 고수. 계속되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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