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서문 | 여성 노동자들의 목소리로 듣는 조선소의 ‘노동’과 ‘삶’ “그러니 우리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에요” -배에 색을 입혀 바다에 내보내는 도장 노동자 정인숙 “여서 그만두면 딴 데 가도 못 견딘다 생각으로 버텨가 오늘까지 왔어예” -작업의 끝과 시작,청소 노동자 김순태 “조선소 안에서 나는 어디든 갈 수 있어요” -쇠와 쇠를 이어 붙이는 용접 노동자 전은하 “중요하지 않은 노동이 있나요?” -쇠를 깎는 밀링 노동자 김지현 “조금 더 나은 제 삶과 세상을 만들기 위해 목소리를 내고 싶어요” -작업을 위한 첫길을 내는 비계 발판 노동자 나윤옥 “당해봐라. 우리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작업복과 수건을 매일 새것으로 바꿔내는 세탁 노동자 김영미 “돈을 버는 건지 병을 키우는 건지 모르겠어요” -모두의 끼니를 책임지는 급식 노동자 공정희 “배 한 척이 만들어지려면 수많은 노동이 필요해요” -사무동 건물의 청결을 책임지는 미화 노동자 김행복 “이주노동자 없으면 이제 배 만들기 어려워요” -녹슬지 않게 배에 색을 입히는 도장 노동자 정수빈 “평생 일을 놓아본 적이 없어요” -노동자들의 생명을 지키는 화기ㆍ밀폐감시 노동자 박선경 “다들 가족 먹여 살리려고 아등바등하는 것 같아” -위험을 감지하고 살피는 밀폐감시 노동자 이현주 집담회 | 조선소,이 사나운 곳에 남겨진 이야기
책 속으로“일 마치고 목욕탕 들어오면 ‘아이고 오늘 하루도 더운데 잘 살았다, 잘 넘겼다’, 다 그럽니다. 이런 데 막 보라색에다가 온몸이 컬러다. 징그럽게 받히는 사람도 많아요. 보기만 해도 얼마나 아픈지 짐작이 간다니까. 골병 드는 거지. 돈은 좀 벌지언정 조선소 오면 골병 드는 거 맞아요. 일이 그만큼 힘들어요. 힘듭니다.” 59쪽 “여성들은 남편 따라 조선소로 일하러 오는 경우가 많죠. 거제 안에는 남자도 다른 할 일이 별로 없는데 여성은 편의점, 식당 아니면 일할 데가 없으니까요. 제가 서른여덟에 들어왔는데, 대부분 애들 키우고 그 나이 즈음에 들어와서 20년 했다, 15년 했다, 그렇게 되더라고요. 나는 저렇게 오래 다닐 수 있을까 생각도 들었어요.” 97쪽 “식당이 없으면 밥을 어떻게 먹어요? 우리 세탁수불이 없어서 근무복을 집에 가서 세탁하려면 얼마나 힘들겠어요? 회사 버스가 없으면 어떻게 출퇴근하겠어요? 철판을 자르고 붙이는 사람들과 우리도 같은 조선소 노동자라는 걸 알리고 싶었어요. 당해봐라. 우리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156쪽 “고깃국 끓이는 솥에는 고기 삶은 국물이 들러붙어 있어요. 프라이팬도 전 굽고 나면 타거나 눌러붙잖아요. 설거지 세제로는 안 닦여서 아주 독한 약품을 발라요. 가정집에서 찌든 때 청소할 때 뿌리는 세제보다 몇 배 독한 약품이에요. 약품 뿌리고 사포로 미는데 찬물에는 잘 안 닦이니까 솥이나 팬에 열을 올려서 닦거든요. 그 열기에 화학 약품이 기화되면 코도 맵고 눈도 매워요. 씻다가 얼굴에 튀면 화상을 입고요. 옷 위에 튀어도 씻어야 돼요. 식당에서 일하면 눈이 제일 안 좋아져요. 저는 오른쪽 눈이 안 좋고 왼쪽 눈은 좀 괜찮고 그래요.” 171쪽 “어느 날 저녁에 남편이 숨 쉬기 힘들다고 병원에 데려다 달래요. 병원에 갔더니 큰 병원 가라고 해서 진주 경상대병원으로 이송하다 심정지가 왔어요. 머리 탕탕. 그런 느낌이었어요. 남편이 그때 마흔아홉이었거든요. 투석하면서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했지만 너무 빨랐어요. 한국에 온 지 6년째 되던 해였어요. 많이 슬펐죠. 내 운명이라고 해야 되나. 조선소 일은 2년만 해보기로 남편하고 얘기했었는데 지금까지 하고 있네요. 일을 한 달만 쉬어도 죽어요. 가족들 살아야 돼요.” 219쪽 “베트남 사람들이 한국 들어올 때 요즘에는 1700만 원 정도 든대요. 여기 온 사람들 전부 다 그렇게 내고 와요. 베트남에 외국에 일하러 가는 사람 보내주는 회사도 있고 브로커도 있어요. 그런데 조선소 오는 데 1700만 원은 너무 큰돈이잖아요. 다들 돈을 빌려서 와요. 높은 이자도 다 갚아야 돼요. 그 돈이 어디로 가는지 저도 모르겠어요. 여기 오면 다 최저임금인데 그 돈 갚으려면 시간이 얼마나 많이 걸리겠어요.” 222쪽 “현장에 오일 들어가는 탱크 같은 게 있어요. 거기는 완전 끈끈한 기름이어서 시커먼 먼지가 많이 붙어 있어요. 현장에 먼지가 워낙 많거든요. 그 먼지 쌓인 기름을 우리가 청소하는 일이 많았거든요. 청소하면 기름먼지를 온몸에 뒤집어써요. 정신없이 일하다 언니 얼굴을 보니까 새카매져 있는 거예요. 내 얼굴도 그렇다는걸 그때 알았죠. 둘이 부둥켜안고 울었어요. 언니는 오지 말라 안 하더냐며 울고요. 얼굴까지 새카매져가지고 내가 진짜 이런 일을 해야 되나 싶더라고요.” 232-233쪽 “조선소 일이 없을 때 경기도에 삼성이나 SK 쪽에 일하러 많이 갔어요. 돈을 많이 번다고 하니까 나도 갈까 생각은 해보죠. 근데 막상 여기가 집이니까 떠나는 게 쉽지 않아요. 물량팀으로라도 가볼까 생각도 했었어요. 임금이 두 배 정도 차이 나니까. 지금도 떠날까 하는 마음이 있어요. 근데 블랙리스트 때문에 못 갈 수도 있고, 나이가 있으니까 너무 돈만 좇아 욕심을 내면 몸이 많이 상하니까 여기서 차라리 정년을 보내는 게 맞지 않나 생각도 하고. 여러 가지로 갈등하고 있습니다.” 271쪽 “고용이 안정화되면 사람은 다른 데로 눈을 돌리게 돼요. 근데 고용이 불안하면 입에 재갈이 물리는 거죠. ‘내가 뭐라고 하면 난 여기서 잘릴 거야.’ 그래서 하청노동자는 산재조차도 신청을 못 하고. 장기 유지된 업체들은 일부러 기습 폐업하고, 본보기 폐업도 하고, 노동자를 길들이는 거죠. 그래서 고용 말고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가 없죠. 자본은 그걸 원하는 거죠.” 275쪽
출판사 서평자기 일의 전문가이자 자기 삶의 개척자인 조선소 여성 노동자들의 긍지와 회한, 땀과 분투 “겨울에는 머리가 꽁꽁 얼어서 뿌득뿌득 하더라고요. 대충 닦고 나가기도 바쁘니 화장도 못 하고. 머리를 말려야 되는데, 아이고 이래가 안 되겠다 싶었지. 그래서 짤막하게 잘라버렸어요. 저 말고도 잘라버린 사람 많아요. 그때부터 머리는 안 길렀어요. 그 길로 많이 변했지.” 〈조선소, 이 사나운 곳에서도〉는 거제 한화오션(구 대우조선해양), 진해 케이조선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 11인의 구술을 기록한 책이다. 1977년 울산 현대조선이 여성을 용접공으로 고용한 이래 조선소 선박 건조 현장에서 여성이 일하지 않은 적은 없었다. 용접, 도장 같은 대표적인 조선업 일자리에서부터 여성들이 일해왔다. 2017년 무렵 해외 선주사들이 안전 관리를 요구해 새로이 만든 화기감시, 밀폐감시 같은 직종도 여성들의 일자리다. 또 조선소 곳곳의 급식, 미화, 세탁 또한 조선산업 초창기부터 여성들이 그 몫을 담당했다. 그러나 여성 노동이 다양하게 조명 받는 현재에도 이들의 일, 이들의 삶은 잘 알려진 바가 없다.이 책에서는 조선소 생태계 안의 11가지 직종(용접, 사상, 발판, 도장, 밀링, 밀폐감시, 화기감시, 현장 청소, 건물 미화, 급식, 세탁)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들의 구술을 기록했다. 수십 미터 높이, 수백 미터 길이, 수십만 톤 크기에 쇳가루 날리고 용접 불꽃 튀고 시너 냄새, 페인트 냄새가 가득한 사나운 노동의 현장이 이들이 일하는 조선소다. 그럼에도 수년 째 임금은 최저시급 언저리에 머물고, 해고와 체불, 심지어 폐업이 수시로 벌어지기에 또 사나운 곳이 조선소다. 누군가는 왜 그렇게 위험하면서 대접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곳에서 굳이 일하는지 의문이 들고 왜 떠나지 않는지 어리석다는 생각이 들 법도 하다. 이 책은 그 모순의 현장의 내막을 샅샅이 드러내주는 구체적인 증언이면서 그 모순을 깨뜨리고 더 나은 노동의 조건을 위해 싸우는 이들의 분투기이기도 하다. 이 책은 현장의 여성 노동자 조직과 긴밀한 연대를 구축해온 산추련이 중심이 되고, 젠더 관점의 기록 활동에 오랜 경험을 쌓아온 인권기록센터 사이의 기록활동가들이 결합해 기록의 밀도를 한층 높였다. 아주 특별한 일의 현장에서 일하는 우리 시대 가장 보통의 여성의 삶에 관한 이야기 “아들이 대학 들어가기 직전에 여기에 아르바이트를 하러 왔었어요. 굳이 와서 일해보겠다고 하더라고요. (...) 어느 날은 아들이 지원을 와서 현장에서 만나게 됐어요. 나를 보더니 울더라고요. 집에 와서 ‘엄마, 나 직장 다니면 그때는 엄마 일 그만둬’ 하더라고요.” 이들의 이야기는 조선소라는 아주 특별한 일터에서 벌어지는 여성 노동의 내밀한 묘사이면서도, 생계를 책임지고 가족을 부양하는 우리 시대 여성들의 보편적인 삶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김순태 씨는 전업주부로 살다가 남편이 갑자기 사망하자 마흔여섯에 조선소에 취업한다. 사상(마무리), 전동 그라인더로 철판을 매끄럽게 가는 일을 시작했다. 예순여덟인 현재도 조선소에서 일하고 있다. 정수빈(응웬티뚜엣) 씨는 베트남에서 만난 남편을 따라 한국에 온 지 6년 만에 남편이 사망하자 역시 조선소에서 페인트 붓으로 도장을 마무리하는 터치업 일을 시작해 10년차가 되었다. 김지현 씨는 아이 셋을 키우며 매달 백만 원씩 펑크 나는 생활비를 메우고자 남편이 일하는 조선소에서 발을 들인다. 평생 일을 놓아본 적이 없다는 밀폐감시 노동자 박선경 씨의 말처럼 어릴 때는 부모님을 돕고, 결혼해서는 가사와 돌봄을 전담하다 생계 부양까지 책임지는 여성들의 모습은 보편적인 여성들의 삶의 형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조선소는 힘은 들어도 돈을 더 많이 주는 대표적인 일터였다. 그렇기에 저마다의 사정을 안고 사람이 모여들었다. 그렇게 남편을 따라 조선소 도시에 터를 잡은 뒤 역시 조선소 노동자가 된 여성들도 적지 않다. 조선소와 운명공동체가 된 여성 노동자들은 저임금, 비숙련 일자리를 메우는 중요한 자원이 되기도 한다. 어떤 이유로 시작했건 이 책의 여성들은 자기 일의 전문가로서 긍지를 당당하게 드러낸다. 작업에 대한 생생한 묘사는 그 자신이 아니면 담을 수 없는 표현들로 기록되어 있다. 최첨단 기술과 중후장대한 장비로 가득한 조선소지만 결국 사람 손으로 일이 마무리되고, 여성 노동자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자기 몫을 해내고 있는 것이다. “‘우리 오랜만에 신나게 한번 밀어보자.’ 동료들하고 쫙쫙 밀고 쉬다가 또 신나게 밀고 쉬고, 그게 저는 맞더라고요. 바깥에 데크 할 때는 살살하다가 밸러스트탱크 가서는 시원하게 밀고, 선체는 강약 조절이 되니까 지루하지 않아요. 루이비통에 페인트를 가득 담아가면 삼사십 분 만에 없어져요. 루이비통에 구멍 났다 이러면서 일하거든요.(웃음) 힘들지만 재밌어요.” 도장 노동자 정인숙 씨는 월급을 가져다주는 페인트통을 ‘샤넬’, ‘구찌’, ‘루이비통’이라고 부른다며 신나게 롤러를 미는 모습을 생생하게 전한다. 용접공 전은하 씨는 그날의 온도와 습도, 철판의 컨디션에 따라 어떻게 용접을 해야 할지 결정하고 깔끔하게 마무리하는 용접 전문가의 면모를 뽐낸다. 철판 사이로 머리를 밀어넣어 쇳가루를 치우고 그 폐기물이 너무 무거워 머리에 이고 갈지언정 허투루 일하는 법이 없는 이들이다. 또 조선소 사내업체 웰리브에서 일하는 세탁 노동자 김영미, 미화 노동자 김행복, 급식 노동자 공정희 씨 또한 만 명이 넘는 이들의 식사, 세탁, 청소를 책임지는 빠듯한 노동을 어김없이 깔끔하게 쳐내는 뿌듯함과 회한을 고스란히 전달한다. 여성의 눈으로 들여다본 조선소라는 일터 “막상 와서 일해보니까 남자들 하는 일이 그리 대단하지 않은 경우가 있더라고요. 남자라도 저보다 용접을 못하는 사람도 있죠. 저래도 월급 받아가나 싶을 정도로 일하는 사람도 보이고. 여자도다 할 수 있는 일이네 싶기도 하고. 여자들이 다 할 수 있어도 남자들이 자기 직업을 뺏길까 싶어 안 시키는 일도 세상에는 많이 있겠다 싶어요.” 조선소 여성 노동자의 현실에 관한 연구나 기록은 많지 않다. 용접이나 타워크레인, 엔지니어 등에 진출한 ‘최초’의 여성들을 반짝 조명할 뿐 생산부터 지원 파트까지 조선소 안 다양한 위치에 이미 자리 잡은 여성 노동자 이야기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영도 조선소 ‘깡깡이 아지매’처럼 어머니의 고생담처럼 전통적인 여성의 모습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유통되기도 한다. 조선소 안에서도 마찬가지다. 여성이 하는 일은 ‘스위치만 누르면 되는 일’ ‘그저 왔다 갔다 하는 일’로 취급당하기도 한다. 똑같은 일을 하고 심지어 더 경력이 오래되고 일을 더 잘해도 남성보다 더 적은 임금을 받는 경우도 있다. 가장 기본적인 화장실부터 너무 적거나 더럽거나 멀거나 남자들이 드나들어 차라리 페인트통에 용변 처리하는 편을 택하기도 한다. 회식 자리에서 웃어 보이는 것부터 조심해야 하고, 밀폐된 공간에서 남성 작업자와 둘이 남는 것 자체를 피해야 하는 것은 여성들의 몫이다. 이 책은 여성들이 조선소에서 겪는 구체적인 경험과 동시에 조선소라는 노동 현장에서 여성이 유입, 배치, 활용되는 흐름을 조망하면서 '조선소, 여성, 노동'이 결합한 다양한 맥락을 제대로 이해하는 계기를 제공한다. “이렇게 살 순 없지 않습니까” 조선소 이 사나운 곳에서도 더 나은 삶의 의지를 꺾지 않은 사람들 “해고통지서를 받아보니 진짜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더라고요. 조선소 들어와서 20년 동안, 해고돼서 나갈 정도로 엉망으로 살지는 않았는데. 시키면 시킨 대로 열심히 일해줬어요. 내 혼을 담고 뼈를 다 갈아넣을 정도로 힘들게 일했는데, 나갈 때 해고장을 받고 나간다? 자존심이 억수로 많이 상하더라고요. 너무 분하고 억울하더라고요.” 이 책은 여성 노동자 각각의 삶의 기록인 동시에 조선소라는 일터에서 벌어지는 일들의 증언이기도 하다. 2016년 무렵부터 조선업에는 대량해고가 밀어닥친다. 십수만 명이 일자리를 잃는다. 해고의 공포가 밀어닥치면서 노동자들은 상여금이 대폭 깎이고 임금이 동결되고, 사회보험이 체납되고 심지어 직장이 한순간에 폐업을 하는 상황을 고스란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다. 이후로 최저임금만큼의 보상을 받아도, 30년차 숙련공이 3년차와 같은 임금을 받아도 순응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갖춰진다. 많은 이들은 차라리 더 나은 조건을 찾아 다른 일터로 떠났다. 그렇다면 이 책의 주인공인 여성 노동자들은 왜 떠나지 않는가. 이들은 떠나는 대신 더 나은 삶을 만들고자 싸움을 벌인다. 2022년, 유최안 씨가 건조 중인 선박 바닥에 가로세로 1미터짜리 철장을 만들어 스스로 가둔 싸움으로 이들의 절박한 싸움이 세상에 알려졌다. 이들이 내건 임금 30퍼센트 인상은 자칫 무리한 요구로 비칠 수 있다. 그러나 30퍼센트를 올려달라는 말은 2016년 수준으로나마 임금을 회복해달라는 요구였다. 수시로 폐업하고, 근속연수가 승계되지 않고, 노조원이 되면 블랙리스트에 올려 취업조차 할 수 없게 만드는 이 구조를 바꾸고자 싸웠다. 팔뚝질도 구호도 어색하고 투쟁은 먼 남의 일로 여기던 여성 노동자들이 수십 미터 도크에 올라가고, 사측 노동자들에 맞서 거리에 드러눕고, 빨간 고무장갑을 손에 낀 채 팔뚝질을 하며 싸우는 모습들은 "이렇게 살 순 없지 않습니까"라는 단순하고 절박한 구호가 왜 세상에 터져 나왔는지 이해하는 실마리가 된다.(그러나 2022년 51일 파업에 참가한 이들에게는 파업으로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며 470억을 배상하라는 소송이 제기되었다.)]]>
김병훈 민주노총 경남지역본부 노안국장
2022년 3월 대흥알앤티 사업장에서 트리클로로메탄으로 인한 급성 중독 사고가 발생하여 총 13명의 노동자가 간 독성으로 치료를 받았다. 대흥알안태는 현재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검찰에서 기소를 하여 재판 중에 있다. 산업안전보건법은 노사가 협력하여 사업장의 안전보건문제를 해결하도록 제도를 만들었다. 이는 산업안전보건위원회와 안전보건관리규정 그리고 명예산업안전감독관 제도를 통해 구현된다. 대흥알앤티에서 화학물질 급성 중독 사고가 발생하였지만 여전히 해당 사업장에서는 노동조합과 화학물질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협력은 하지 않은 채 회사에서 일방적으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는 산업안전보건법의 취지를 정면 위반하는 것이며, 사업장 내 안전관리에 있어서 노동자의 협력이 필수적이라는 것에 비추어 대흥알앤티의 방식은 문제가 있다. 민주노총 경남지역본부는 2022년 3월 사고 발생 이후 당해 8월에 대흥알앤티 사업장 노동자들에 대해 설문 조사를 실시한 바 있다. 이번 조사의 목적은 2022.8월 실시한 동일한 설문을 이용해 대흥알앤티 사업장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비교하기 위한 것이다. 사고 발생 직후 실시 된 설문 결과와 사고 발생 이후 1년이 지난 현재 실시된 설문 결과의 차이는 회사의 대응 수준은 차이가 보이지 않았지만, 개인이 안전보건에 대한 인식의 차이는 보이고 있었다. 화학물질 사고 예방을 위한 작업 절차서는 개선이 되지 않은 것으로 보이고 있으며, 안전 문화는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노동자들 개인의 안전보건에 대한 인식 변화는 경각심을 가지는 것으로 조사되었지만, 화학물질에 대한 인식은 큰 차이가 없었다.대흥 알앤티는 중대 재해가 발행 되기전에는 안전 보건 관리 체계가 엉망 이었다. 산업 안전 보건 위원회는 형식적으로 과태료를 내지 않기 위해 회의를 개최만 하면 된다는 인식을 많이 받았다. 산업 안전 보건 위원회에 위원장은 선출 되지 않고 있다. 또한 코로나 사태, 중대 재해가 발생한 후에도 임시 산업안전보건위원회 회의를 요청해도 임시 산보위는 위원장이 요청 할 수 있다면서 지회의 요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기본 적으로 산보위 근로자 위원들의 활동을 보장 하지 않고 있다. 안건 수집, 사전 회의 등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개인적으로 조퇴나 연차를 사용해서 산업 안전 보건 위원회 회의를 준비를 해야만 했다. 그리고 회사에 진행한 위험성 평가 자료, 작업 환경 측정 결과 보고서, 근골격계 유해요인 조사 결과 보고서 등 가장 기본 적인 자료를 요청해도 사측은 자료를 제공 하지 않았다. 이 뿐만 아니라 작업 환경 측정, 근골 조사, 위험성 평가 등 기본적인 조사에도 산보위 근로자 위원들의 참여는 여전히 보장 받지 못하고 있다. 회사는 현장 개선에 대해서 아예 안 하고 있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다만 대흥 알앤티는 화학 물질에 의한 중대 재해 발생 사업장이다. 또한 현장에서는 많은 유해 화학 물질을 사용하고 있다. 보건 진단 결과에도 나와 있다시피 국소 배기 장치 성능이 많이 미흡하고 설치가 안 되어 있는 곳도 있다. 먼저 개선이 되어야 하는 부분이지만 1년이 지났어도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이 있다. 성형 부서에서 발생 되고 있는 고무흄에 관해서는 국소 배기 장치 제어 유속은 관리조차 되고 있지 않다. 고무흄은 현행법상 어떠한 방법으로 관리 하라고 나와 있는 부분이 없다. 지회에서 회사에 고무흄에 대한 성분 분석을 하자고 2년 넘게 요구하고 있지만 아직 까지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중대 재해가 발생 한지 어느 덧 1년 7개월이 지났다. 현장 개선도 어느 정도 진행이 되었다. 재해자들과 합의도 끝이 났다. 회사는 조금씩 관계를 발전 시켜나가자고 이야기 한다. 그러나 현장 노동 안전 보건에 있어서 가장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현장에 노사 합동 안전 점검조차 하지 못 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추후로 이런 중대 재해나 산업 재해가 발생 되지 말아야 하겠지만 만약 이러한 재해가 또 다시 발생 되면 지회는 더욱 강한 투쟁으로서 맞서 싸울 것이다.]]>이창우 대흥알앤티지회 노안부장
김건형 한의사
“발뒤꿈치가 아파요”, “서 있거나 걸을 수 없을 정도로 아파요” 족저근막염은 발뒤꿈치 뼈에 붙어서 발바닥의 오목한 형태 (족궁) 을 유지하고 충격을 흡수해주는 발바닥 밑 근막 부위의 염증을 뜻합니다. 걷기나 서 있기 등 몸무게를 발뒤꿈치로 지탱해야 하는 자세에서 뒤꿈치 주변의 통증을 느끼며, 심할 경우 가만히 있을 때에도 욱신거리는 통증을 느낄 수 있습니다. 보통 오래 서 있거나 오래 걷는 등 발바닥과 발뒤꿈치 부위의 과도한 부담으로 생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첫 발을 바닥에 디딜 때 발뒤꿈치 부위에 통증을 느끼는 것이 전형적인 증상이지만, 반드시 그렇게 나타나진 않을 수도 있습니다. 발가락 쪽이 아프거나 저린 것, 발등 부위가 아픈 것은 족저근막염의 증상이 아니므로, 구분이 필요합니다. 발목 안쪽 면에서 발뒤꿈치 뼈 (전내측 종골 결절) 부위를 눌렀을 때 뚜렷한 통증이 있다면 족저근막염의 신체 검진 소견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이 역시 반드시 뚜렷하게 나타나진 않습니다) 어떻게 아픈지, 언제부터 아팠는지, 다른 증상은 없는지 확인해야 하므로 전문 의료인의 진찰을 받아야 합니다. 휴식과 안정, 일정한 치료와 관찰 기간 (대체로 2-3개월) 이후에도 통증이 지속되거나 심하다면, 다른 질환 (후종골점액낭염, 발뒤꿈치 뼈 골절, 발뼈의 피로 골절, 아킬레스건 파열)과 구분하기 위해 영상 검사를 필요로 할 수 있습니다. 치료는 발바닥의 무리한 자극을 피하기 위한 생활 습관 조정을 우선으로 합니다. 과도하게 걷거나 서 있는 시간을 줄이고, 그게 어렵다면 중간중간 잠깐씩 쉬어서 발바닥의 무리가 장시간 이어지지 않도록 합니다. 종아리 근육이 뭉쳐있지 않도록 잘 풀어주고 아킬레스건 (발뒤꿈치 부위 힘줄) 을 스트레칭 시켜주는 것이, 족저근막 통증 완화에 도움이 됩니다. 발바닥 부위에 적절한 쿠션이 있는 신발이나 깔창을 착용해서, 몸무게 부담을 줄여줍니다. 통증이 심할 경우 양방에서는 소염진통제와 아픈 부위의 국소마취/스테로이드 주사치료, 한방에서는 침 치료나 약침 치료를 수행합니다. 황톳길이나 맨바닥을 신발 없이 걸으면 건강에 좋다는 속설이 있는데, 오히려 발바닥 부위가 맨바닥에 쿠션 없이 자극받을 경우 없던 족저근막염이 생기거나, 증상이 심해질 수 있으므로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김민옥 금속법률원 노무사
[서울행정법원 2023. 8. 23. 선고 2022구단56039 판결]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은 업무의 양, 시간, 강도, 책임 및 업무 환경의 변화 등에 따른 만성적인 과중한 업무가 뇌혈관 또는 심장혈관의 정상적인 기능에 뚜렷한 영향을 줄 수 있는 육체적 정신적인 부담을 유발한 경우 뇌혈관 질병 또는 심장 질병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고 봅니다(법 제34조 제3항, 시행령 별표3 참조). 그에 따라 고용노동부가 고시에서 재해 발병 전 12주 동안 업무시간이 1주 평균 60시간을 초과하는 경우 만성적인 과중한 업무로, 업무와 질병과의 관련성이 강하다고 평가합니다. 또한 1주 52시간을 초과하지 않더라도 ① 근무일정 예측이 어려운 업무, ② 교대제 업무, ③ 휴일이 부족한 업무, ③ 유해한 작업환경(한랭, 온도변화, 소음)에 노출되는 업무, ⑤ 육체적 강도가 높은 업무, ⑥ 시차가 큰 출장이 잦은 업무, ⑦ 정신적 긴장이 큰 업무에 복합적으로 노출되면 업무와 질병과의 관련성이 강하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로복지공단은 1주 평균 60시간 미만 노동자의 업무를 종합적으로 살피지 않고, 업무시간을 절대적 기준으로 삼고 산재 불승인 판정을 내리는 경향이 큽니다. 법원에서는 업무시간은 업무상 과로의 절대적 기준이 아니라는 판결을 지속적으로 내리고 있습니다. 최근에도 법원은 햄버거 체인점에서 1주 평균 약 35시간을 일하는 A에게 발병한 뇌출혈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했습니다. 해당 법원은 지난 4월 대법원이 1주 평균 40시간 근무하는 콜센터 노동자 뇌출혈 산재를 인정한 판결을 근거로 삼았습니다. 대법원은 “만성적인 과중한 업무에 해당하는지는 여부는 업무의 양·시간·강도·책임, ·휴일·휴가 등 휴무 시간, 교대제 및 야간근로 등 근무형태, 정신적 긴장의 정도, 수면시간, 작업환경, 그밖에 그 근로자의 연령, 성별 등을 종하 하여 판단하여야 한다. ‘업무시간’은 업무상 과로 여부를 판단할 때의 하나의 고려요소일뿐 절대적인 판단기준이 될 수 없다(대법원 2023.4.13. 선고 2022두47391 판결 참조)”고 했습니다. 법원은 A의 근무시간이 1주 평균 60시간 미만이지만, A가 56세 여성으로 밤 11시까지 근무하면서 수면시간 부족 등으로 정신적, 육체적 피로를 느꼈을 것으로 보이는 점, 새로 부임한 매니저와 업무시간 갈등, 20, 30대 동료와 마찰 등이 있었던 점, 갈등 등이 약 8개월 간 지속되면서 결국 6년간 근무한 직장에 사직 의사를 밝힐 정도로 정신적 스트레스가 컸던 점, 점장의 복직 요청으로 사직 후 5일 만에 복귀했지만 그 사이에도 매니저는 퇴직서를 작성하라는 등 여전히 갈등이 있었고, 복직 후 새벽 1시까지 근무 지시를 하면서 갈등이 회복되지 못한 점을 볼 때 업무와 상병 발병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또한 A의 햄버거 조리 업무는 겨울에도 반팔을 입어야 할 정도로 항상 더웠고 A가 쓰러질 당시 실내와 실외 온도차가 10~20℃로, 갑작스러운 기온 변화가 A의 혈압과 뇌혈관 기능에 영향을 줬을 것으로 보았습니다. 대법원도 콜센터 노동자가 1주 평균 52시간 미만 일했지만, 근무지 변경으로 1개 업체에서 600개 업체를 담당했던 점, 악성 민원에 대처해야 하는 감정노동자라는 점, 주거지와 이동거리, 연령, 성별, 통근 소요시간 등을 볼 때 수면시간이 6시간 미만으로 보이는 점, 식사시간 외에 별도의 휴게시간이 없었던 점, 고객 응대 근로자로 직무스트레스 등에 대비한 휴게실, 보호조치 등이 없었던 점 등을 종합적으로 보고 산업재해를 판단했습니다. 법원과 산재보험법이 말하듯이 개인의 노동은 시간만으로 단순하게 평가될 수 없습니다. 얼마전 전 직장 동료들과 함께 밥을 먹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한 직장에서 일했는데 지금은, 일하는 시간은 여전히 주 40시간이지만 모두 다른 장소에서, 다른 일을 합니다. 우리가 한 직장에서 비슷한 일을 할 때조차 각자가 느꼈던 일에 대한 부담, 근무환경의 악화 정도의 수준은 달랐습니다. 업무시간이 업무상 재해 판단에서 편리하고 공정한 기준이 될 수는 있습니다. 업무시간만큼이나 노동자 개인이 일과 맺는 여러 환경과 관계들이 업무상 정신적, 육체적 부담이 된다는 것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류승택 민주노총 민주일반연맹 공공연대노동조합 본부장
민주노총 민주일반연맹 공공연대노동조합 경남본부의 조합원 현황 및 조직 구성은 어떻게 되나요? 조합원은 대략 1000명 정도이며, 경상대병원지부, 생활체육지도자지부, 노인생활지원사지부, 아이돌봄지부 등 12개 지부에 그 밑에 지회와 분회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전국공공기관에서 근무하는 비정규직, 무기계약직 노동자들을 대표하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조로 조합원들의 사업장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으며 조합 활동은 어떻게 이루어지나요? 경상대병원이나 생활체육지도자지부등은 정규직 전환을 통해 공무직으로 전환된 지부이며, 70% 조합원이 어르신이나 아이, 장애인을 돌봄 하는 돌봄 노동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일부 직종을 제외하고는 단시간 노동에 최저임금 등 저임금에 대부분 민간에 위탁되어 고용과 처우가 열악한 노동자들입니다. 공공기관에서 근무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환경 중 문제가 되는 것은 어떠한 것들이 있는지, 업무 중에 발생하는 재해나 직업병은 무엇이 있나요? 정부가 만든 일자리이거나 공무직으로 전환되었음에도 차별은 여전하고, 돌봄노동자의 경우 저임금과 고용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매년 노력하고 있습니다.대부분의 조합원들이 공공기관이나 공공영역에서 일하고 있기에, 골절 등의 재해가 발생하는 경우는 적습니다. 대신 돌봄 이용자나 센터로부터 겪는 감정노동자의 피해로 정신적 고통을 겪기도 하고, 직장 내 괴롭힘이 자주 발생하기도 합니다. 정부가 만든 일자리의 특징이 이용자를 중심에 두고 예산과 사업을 계획하고, 실제 일하는 노동자의 처우와 환경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어르신을 돌봄 하는 노인생활지원사가 독거노인의 죽음을 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로 인한 트라우마나 정신적 고통에 대해 정부나 센터는 지원하거나 계획하지 않고 있습니다. 조합원들의 임금개선, 처우개선 등 당연한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활동을 하고 계시는데 그 활동 속에 기억에 남는 투쟁이 있으시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혹은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요? 열악한 노동자들의 자신의 삶을 바꾸려면 절박함이 있어야 합니다. 2021년 5월 비정규직 투쟁의 상징처럼 알려진 경상대병원 비정규직들의 한 달간 파업과 보름간의 단식투쟁으로 정규직 전환을 정규직 도움 없이 스스로 쟁취했을 때 동지들의 환한 얼굴은 지금도 설레게 합니다. 승리한 투쟁도 있지만 가장 마음이 아픈 것은 60이 훌쩍 넘은 노인생활지원사 두 분이 22년 1월에 해고되어, 여전히 해고 투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백만 원 남짓 받으면서도 혼자 계신 독거 어르신들에겐 가족보다 친하게 지냈던 분들을, 사용자 마음에 안 든다고 20분 정도 일찍 앱을 시행했다고 해고시킨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울화통이 치밀어 오릅니다. 2023년 공공연대 노동조합의 주요 쟁점 활동 계획은 무엇인가요? 앞으로 방향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고용이 불안하고 처우가 열악한 노동자들에게 노동조합은 든든한 우산이 되고, 흔들리지 않는 기둥이 된다는 것을 더 많이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또한 조합을 가입한 분들에겐 노조가 알아서 해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처우와 삶은 우리의 힘과 투쟁으로 쟁취한다는 방향을 잡아 노조와 모든 지부가 함께 노력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지역의 노동자나 산추련에 하고 싶은 말씀은? 차별과 설움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나보다 힘들고 어려운 노동자에게 관심이 아닌 연대와 실천이 필요합니다.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하고 연대의 손길도 미치지 못하는 열악하고 힘없는 노동자들의 투쟁 소식이 올라오면, 이분들에게도 뜨거운 연대를 부탁드립니다. 잘 드러나지 않지만 언제나 노동자들의 건강권을 위해 노력하시는 산추련 동지들에게도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김남욱 바른길 노무사 사무소 공인노무사
산재 신청했더니 불승인 받았다고 연락을 주시는 분들에게 보통 제일 먼저 하는 말은 ‘결정문 받으셨어요?’이다. 사유가 적혀있는 결정문을 보고 불승인 사유를 알아야 심사청구든 재심사청구든 이의신청을 준비할 방향을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결정문만으로 구체적인 불승인 사유를 이해하기 어려운 때가 종종 있다. 사건 하나를 예로 들어, 뇌경색을 업무상 질병으로 승인받아 요양 중이던 한 재해자는 최근 좌측 중대뇌동맥의 협착이 심해져 이를 추가 상병으로 신청했는데 ‘발병 부위가 달라 기저질환인 것으로 보인다’라는 사유로 불승인 처분을 받았고, 이에 심사청구를 통해 이의를 제기했음에도 별다른 부연 설명 없이 똑같은 사유로 기각되었다. 하지만 재해자가 심사청구를 제기한 이유는 처음 받았던 그 불승인 사유가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최초 뇌경색 진단 당시부터 재해자에게는 ‘양측’ 중대뇌동맥의 협착이 60%에 이른다는 소견이 있었고 최초 요양 신청 당시에도 요양급여 신청소견서에는 신청 상병으로 우측 뇌경색이 특정되어 있었던 것이 아니라 발병 부위 기재 없이 그냥 ‘뇌경색’이라고만 쓰여 있었다. 또 최초 요양급여 신청 건이 승인되던 때에도 ‘승인 상병이 우측 뇌경색에 한한다’라는 등의 설명은 따로 없었다. 그래서 재해자도 승인 상병 뇌경색 안에 좌·우측 구분 없이 최초 진단된 내용이 모두 포함된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만약 좌측 중대뇌동맥의 협착을 재해자의 기저질환으로 본다면 같은 시점에 동시에 진단된 우측 중대뇌동맥의 협착과 그로 인해 발병한 뇌경색은 어떻게 기저질환 아닌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될 수 있었는지도 이해되지 않았다. 그리하여 재해자가 제기한 심사청구의 취지는 ‘좌측 중대뇌동맥의 협착은 뇌경색을 진단받을 때부터 함께 확인되었던 것인데 요양급여 신청 당시 소견서에 부위가 기재되지 않아 단순히 누락되었을 뿐이고, 발병 전 심각한 과로가 있었다는 사실은 이미 인정된 사실인데 우측은 되고 좌측은 안될 이유가 무엇이냐’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앞서 말한 것처럼 결과는 기각이었고, 기각 사유는 처음 불승인 사유와 똑같이 ‘발병 부위가 달라 기저질환인 것으로 보인다’라는 것이었다. 결국 재해자는 몇 달을 기다리고도 제대로 된 설명을 듣지 못한 채 이해되지 않는 사유의 결정문만 한 장 더 받은 셈이다. 설명이 이해되지 않는 이유는 설명을 하는 쪽과 듣는 쪽의 지식이나 정보의 차이 때문일 수 있다. 하지만 재해자는 의사가 아니다. 좌측과 우측이 뭔지는 알지만 중대뇌동맥이라는 것이 몇 가지로 얼마나 세세하게 구분될 수 있는지는 모른다. 혈관이 막혔는지 잘 뚫려있는지를 MRI로 검사했다는 것은 알지만 MRI를 판독할 수는 없다. 그러니 처음 진단 시 소견서에 명시돼 있던 양측 중대뇌동맥의 협착과 추가 상병으로 신청된 좌측 중대뇌동맥의 협착이 어떻게 다르다는 것인지를 친절히 설명해주지 않으면 이를 이해할 방도가 없다. 그럼에도 최근 불승인(또는 기각) 결정문을 살펴보면 그 사유가 짧고 단순하게 ‘기저질환인 것으로 보인다.’, ‘승인 상병과 무관한 것으로 보인다.’ 정도의 설명에만 그치고 있어 재해자의 입장에서는 다소 불친절한 이 결정문을 오롯이 이해하고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때가 많다. 물론 근로복지공단에 접수돼있는 사건 수를 고려하면 애초에 무한한 친절을 바라는 것이 과도한 요구라는 것은 안다. 하지만 결정문에 사유 설명을 한, 두 줄만이라도 더해서 불승인 받은 재해자를 납득시킬 수 있다면 오히려 불필요하게 심사, 재심사가 접수되는 건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만약 앞서 소개한 사건에서도 반복해서 ‘발병 부위가 달라 기저질환인 것으로 보인다’라고만 하는 것이 아니라, 최초 진단되었던 양측 중대뇌동맥의 협착과 추가 상병으로 신청된 좌측 중대뇌동맥의 협착이 어떻게 다른지와 무엇에 근거해서 기저질환으로 판단한 것인지를 설명해줬다면 재해자가 그 사유를 납득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몇 달을 기다리고도 또 이해할 수 없는 한 줄, 그것도 처음 받은 불승인 사유랑 똑같은 내용으로 기각을 받은 재해자는 재심사청구를 제기하고 다시 한번 지난한 기다림과 싸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