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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추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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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호]뱀장어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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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은 높아지고 말은 살찌는 계절인 가을이 다가온다. 자연의 섭리를 무시하고 밤낮없이 달려가는 자본주의적 생활양식을 강요당하는 지금 우리에게는 별 상관없는 말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말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세월호 특별법을 위해 40일 넘은 단식 투쟁을 하고 있는 유민아빠 (김영오 씨) 가 있는데, 먹는 이야기를 쓰게 되어서 더욱 송구스럽다.
그러나 각자의 자리에서 힘내기 위해서는, 역시 먹는 이야기를 쓸 수 밖에 없다. 오늘은 뱀장어에 대한 동의보감의 한 자락을 소개한다. 의서에까지 전해져오는 미담(美談)이다. 상상력을 동원하여 조금 각색해 보았다.
동의보감 원문은 아래와 같다.
동의보감 충문 (蟲門)
鰻鱺魚(만리어;뱀장어) : 殺傳尸勞瘵蟲 又殺諸蟲 久病 疲瘵人和五味煮熟 常食之 或暴乾灸之 令香 常食亦良. 昔者 女子病瘵 家人取置棺中流之於江 漁人取視猶活 多煮此魚食之 病愈遂爲漁人之妻 (本草).
노채충 및 여러 기생충을 다 죽인다. 오랫동안 노채를 앓아서 여윈 데는 뱀장어를 익도록 끓여서 양념을 하여 늘 먹거나 햇볕에 말려 고소하게 구워서 늘 먹어도 역시 좋다. 옛날에 어떤 여자가 노채병에 걸렸는데, 집안 사람들이 그를 관 속에 넣어서 강물에 띄워 보냈다. 어부가 그것을 건져 내서 보니 아직 살아 있었다. 그래서 뱀장어를 많이 끓여서 먹였는데 병이 다 나아서 어부의 처가 되었다고 한다. (본초)
...............
<각색한 해설>
노채병은 요즘으로 치자면 결핵과 비슷한 병인데, 시름시름 앓다가 죽은 후에는 함께 생활하는 가족 및 하인들과 문상객들에게까지 병을 옮기기 때문에 시체를 태워버리는 것이 전염을 막을 뿐이라고 제시되어 있다.
'어떤 여자'가 노채병에 걸렸다. 가족들은 이 여인을 치료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타인에게 병이 확산되는 것을 두려워하여, 산 채로 관에 넣어 강물에 흘러가게 둔다. 그 이별이, 병에 걸린 여인과의 어쩔 수 없는 생이별을 안타까워하는 눈물의 이별이었는지, 노채병이라는 몹쓸 병이 문중(門中)에 생겼다는 것이 수치스러워 공동체에서 추방하기로 한 저주의 이별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여인을 실은 관은 강을 타고 떠내려간다. 그 때 한 무명(無名)의 어부, 자기 육체의 노동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이 어부가 여느 때처럼 강을 타고 그물을 던지다가, 떠내려오는 관을 발견한다. 관 속의 여인을 발견한 어부, '살아있음'을 확인하고 이런 뜻밖의 만남이 혹 내게 해(害)를 끼치지는 않을까 잠시 의심해보지만, 여인의 얼굴엔 병색이 완연하다. 병으로 추방당한 여인임을 알아차리지만, 그 역시 홀로 강 옆의 움막에서 살고 있는 외로운 처지. 그녀를 받아들여 집으로 데려온다.
근근이 강가에서 물고기를 잡아 잡곡과 쌀겨로 바꾸어 연명하는 그에게, 의원의 진찰을 받게 할 돈이 있을리는 만무하다. 어부는 생각해본다. 내가 강에서 잡는 물고기 중 이 여인에게 도움이 될 만한 것이 뭐가 있을까.
기름진 뱀장어. 미끈미끈하며 그물을 빠져나오려 발버둥치는 강인한 생명력과 생존의 의지.
어부는 뱀장어를 먹이기로 결정한다. 파리하고 수척한 여인의 얼굴은 뱀장어의 윤기로 다스려지겠지. 뱀장어를 망태 한가득 잡아와, 그가 사는 움막 주변의 보잘것없는 채마밭에서 부추 몇 다발을 뽑아낸다. 별다른 양념 없이 솥 가득 끓여 먹게 한 뱀장어. 여인에겐 점차 화색이 돌고, 그녀의 몸을 갉아먹던 노채충도 물러나 원기를 회복하게 된다. 어부의 정성이 당대 난치였던 노채병을 물리쳤고, 버려진 여인은 자신의 운명을 바꾼 어부의 짝이 되어 오랜 기간 해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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