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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추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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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호] 한광호 열사.. 모든 조합원들의 가슴에 멍이 들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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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5월18일, 유성기업 사측은 노조의 심야노동철폐투쟁에 직장폐쇄를 단행했다. 유성기업 노동자들의 기나긴 투쟁이 시작됐고, 그로부터 5년 동안 사측의 민주노조 파괴 공작은 비열함과 악랄함의 끝을 향해 달려왔다.
2011년 10월, 현장에 복귀한 조합원이 징계를 당했다. 한 순간도 마음 편할 날 없이 계속된 현장투쟁, 회사는 그 조합원을 업무방해로 고소했다. 그해 11월 또다시 고소, 출근정지 2개월, 다음 달 또 고소… 현장에서 삼보일배투쟁을 벌이던 중에는 관리자 수십 명에게 폭행당했다. 그 조합원도 고소해봤지만 사측은 불기소처리됐다. 2014년, 이번에는 어용노조가 고소했다. 그 해 정신건강 실태조사에서 고위험군으로 판정받았고, 2015년 들어 정신건강이 악화되며 출근마저 어려워졌다. 그러던 지난 3월10일 야간근무 중, 회사는 그에게 징계위 출석요구서를 보내왔다. 3월15일, 동료에게 미안하다는 말만 남긴 채 연락이 끊긴 그는 17일 새벽 차가운 시신으로 발견됐다.
그는 바로 한광호, 삶의 벼랑에 몰려 스스로 목을 맨 것이다.
3월23일 서울광장에 분향소를 차리러 올라온 김성민 지회장은 “우리 노동자들이 더 이상 죽지 않도록 우리가 숨 쉴 구멍들 만들어주십시오. 이 자리에서 분향소를 만들고 추모하고 조문을 받고 싶을 뿐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살 수 있는 작은 숨구멍입니다” 라고 말했다. 그러나 기자회견이 끝난 뒤에도 노동자들에게 숨 쉴 구멍은 열리지 않았다. 분향소는커녕 침낭, 비닐, 깔판 한 장까지도 빼앗겼고, 영정은 짓밟혀 깨지고 말았다. 유성기업 영동공장으로 한광호열사의 빈소를 옮긴 3월24일, ‘한광호열사 정신계승 결의대회’가 끝난 뒤 공장 한켠 컨테이너박스 안 지회사무실에서 김성민 지회장을 만났다.
문 : 한광호열사는 어떤 사람이었나요?
답 : 잘 몰랐어요. 저도 회사에 23년 다니고 광호도 21년 다녔는데 둘 다 사람들하고 잘 어울리는 성격이 아니어선지, 그저 지회장과 조합원의 관계 정도였다고나 할까? 그러다 제가 민주노총 충북본부장할 때 밀양 희망버스에서 만났어요.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게 되고, 그러다보니 참 살갑게 대해주더라고요. 광호는 집회 갈 때 친한 친구랑 후배들도 데리고 다니곤 했어요. 1박2일로 집회 가자고 하면 다들 싫어하는데, 광호는 굉장히 열심히 다녔어요. “가려면 가기 싫은데, 막상 가보면 또 오고 싶다”고 이야기하던 게 생각나네요. 그렇게 연대활동을 조금씩 알아가는 친구였죠. 나이 드신 어머니도 모시고 살고, 굉장히 착했어요. 그런 사람이었죠…
문 : 모두 힘들 텐데, 조합원들은 어떤가요?
답 : 한광호열사 떠난 지 딱 1주일 됐어요. 이제 조합원들이 스스로 하기 시작했습니다. 지회 지침에 따라서 적극적으로 움직여요. 하지만 워낙에 완강했던 자본이 지금도 버티고 있으니 전망을 그려내는 일은 어렵죠. 이미 싸워온 경험이 있잖아요. 이렇게 하면, 저렇게 하면, 재정신청 내면, 유시영을 재판대에 올리면, 조합원이 어용보다 많아지면… 그러면 이길 것 같았죠. 그런데 아직 이기지 못했잖아요. 이기고 있는 과정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아직 승리를 확실할 수는 없는 상황인 거죠. 당장 열사투쟁을 열심히 한다고 해서 이 상황을 끊어낼 수 있다는 확신이…. 다만 지회장으로서 “길게 싸울 수는 없다, 이번엔 반드시 끝장낼 전환점을 만들자, 동지들이 멈추지 않는다면 지도부는 계속 가겠다”고 이야기 합니다. 이제 고생 많다, 미안하다, 이런 소리는 안하겠다고 했어요.
문 :Q 많은 조합원들의 정신건강이 위험한 상황이라고 들었어요.
답 : 우리는 이기고 있는 과정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진짜 이기고 있었을까요? 조합원들 가슴에 멍이 들고 마음에 병이 들고 있는 것을 몰랐어요. 어찌 보면 알면서도 투쟁 때문에 애써 모르는 척하고 끌어 온 것일 수도 있죠. 그 과정에서 쓰러진 거예요. 못 챙겼어요. 지금이라도 심리치료 등 진행하려고 합니다. 조합원들 모두 안 좋아요. 너무 분하고, 답답하니까….
문 :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5년 동안 투쟁을 끌어온 의미는 결코 작지 않습니다.
답 : 노조파괴를 다들 개별 사업장의 문제로 접근했었죠. 그런데 그렇지 않아요. 자본의 총공세잖아요. 발레오, 상신브레이크, SJM, 보쉬, 콘티, 만도, 갑을 등 연대투쟁 열심히 한 대표적인 지역별 거점 사업장들의 민주노조를 깨려고 한 거잖아요. 그런 면에서 유성이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노조파괴 공작 시작해서 1년 지난 뒤 많이 무너졌는데, 우리는 2~3년 버티니까 조합원들도 별거 아니라고 판단했어요. 다른 노조들이랑 활동가들도 방어하고 반격하는 유성기업 투쟁 사례를 가지고 조직해내기 시작했고요. 노조파괴에 맞선 유성투쟁이 한국 노동운동에서 노조를 지켜내는 큰 버팀목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버팀목으로만은 안 되겠죠. 저들을 쓰러뜨려야만 확인되는 거예요. 특히 노조파괴로 쓰러진 노동조합들에게 최소한의 희망을 보여줘야죠.
문 : 투쟁이 길어지는 와중에 열사투쟁이 벌어졌습니다. 지회장으로서 고민이 많을 것 같습니다.
답 : 지회장 된 지 이제 다섯 달 됐는데, 한 2년은 된 것처럼 느껴져요. 지회장을 세 번째 하는 거라 그런가? 이번에 지회장 올라왔을 때 제가 제일 중요하게 생각한 게 우리끼리는 서로 위로하며 ‘웃으며 즐겁게’ 투쟁하자는 거였어요. 바로 옆에 어용이나 관리자들이 있으니 즐거울 틈이 없거든요. 지회 간부들한테도 누구를 질타하기 보다는 격려하고 위로하며 믿음을 쌓아가자고 했어요. 문제는 그렇게 해서 태세는 유지할 수 있더라도 이기지는 못한다는 거예요. ‘기초질서’라는 빌미로 탄압이 엄청나요. 말이 좋아 기초질서지 현장 통제하겠다는 거죠. 기초질서 반드시 지켜야 하지만 전쟁중에는 빨간 불이라고 멈출 수 없으니 전쟁 끝나고 지키겠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조합원들 임금을 깎아요. 밥 먹으러 5분 빨리 갔다고 임금 깎고 잔업특근에서도 빼버려요. 이중처벌이죠. 늘 돈 주는 놈한테 힘이 있는 거죠. 자본이 돈을 쥐고 흔드는데, 이겨낼 수도 없고 힘들죠. 이런 지경인데도 조합원들이 버텨주니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 무엇보다 고민은 우리 투쟁이 조합원들에게 승리의 전망을 이야기해줄 수 있느냐 예요. 조합원들이 투쟁 경험이 많다보니 전망이 어두울 수도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거든요. 지금은 그게 가장 고민입니다.
문 : 힘든 투쟁이 계속되고 있지만, 그래도 힘을 얻을 때도 있죠?
답 : 정신질환으로 산재신청을 했는데 불승인된 형이 있어요. 그 전부터 알콜중독 증상이 있었다는 게 이유죠. 그런데 주변 동료들이 그 형을 바로 세우려고 정말 열심히 노력했어요. 출근하는 것도 챙기고, 술도 못 먹게 하고, 집에도 찾아가고. 이제 그 형이 스스로 치료를 받기 시작했어요. 엊그제 집회에 그 형이 왔더라고요. 광호랑 잘 아는 사이니까 충격이 컸을 것 같아서 괜찮으시냐고 물었더니 “광호 몫까지 잘 싸울게. 난 걱정하지 마” 라더군요. 눈물이 났습니다… 조합원들한테 “고생 많죠?”라고 물으면 조합원들이 “네가 더 고생하지”라고 합니다. 정말 힘이 나요. 연대 동지들이 5년간 우리 투쟁에서 깃발을 날려줬어요. 유성기업이 예전에 연대투쟁 많이 했거든요. 버스 대절해서 연대투쟁을 전국으로 다니다보니 조합비가 5만원밖에 안 남았던 적도 있다니까요. 그런데 우리가 그렇게 했던 연대의 10배도 넘게 연대를 받고 있는 것 같아요. 회사는 우리가 잘못했다고 했는데, 동지들이 연대 온다는 것은 우리가 옳다는 걸 확인시켜 주는 거잖아요. 그게 정말 힘이 되더라고요.
문 : 사측은 어떻게 하겠다는 입장이든가요?
답 : 우리의 교섭 요청에 보내온 공문으로 봐서는 태도에 변화가 전혀 없어요. 회사가 잘못했으면 법대로 하래요. 노조랑은 할 얘기 없답니다. 회사는 열사투쟁이 노조파괴투쟁과 엮이는 게 싫겠죠. 또 우리가 현대차 압박하는 것도 싫겠죠. 지속적인 경제위기로 물량은 어차피 없는데, 그 탓을 노조에게 돌리려고 공작하는 겁니다.
문 : 앞으로 투쟁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답 : 두 가지 방향입니다. 기본적인 투쟁을 노조 단위의 열사대책위를 통해 진행하고,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유성공대위를 통해 확장하려 합니다. 핵심은 현대차예요. 현대 자본이 파렴치범이라는 것을 제대로 폭로해야 합니다. 창조컨설팅이 관여해 노조 파괴하고 있는 데는 모조리 현대차가 지배개입한 거예요. 대자본이 노조 파괴에 혈안이 돼 있는데, 우리라도 그에 맞서는 투쟁의 거점이 돼야죠. 열사투쟁은 무엇보다 회사의 진실된 사과와 책임자 처벌, 유족에 적절한 보상이 선행되고, 지금 같은 무분별한 노조탄압이 중단돼야 마무리 지을 수 있습니다. 물론 노조파괴에 맞선 투쟁은 계속 하더라도 말이죠.
문 : 끝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답 : 정치파업, 정치적 투쟁, 이런 것들이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현장에서 많이 해왔잖아요. 요즘 들어 그게 피부에 와 닿는 날은, 우리 살을 도려내고 뼈가 잘려나갈 거라는 걸 느낍니다. 복수노조, 전임자 임금지급, 비정규직 법안 등 둘러싸고 늘 국회 앞에서 투쟁했지만, 실은 잠깐 올라와서 형식적으로 한거잖아요. 정치투쟁이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고 그렇게 대충 해왔던 게 언젠가는 내 살과 뼈를 끊어내는 결과를 가져올 거라는 겁니다. 그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지금 뼈저리게 느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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