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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추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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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호] 절망속에 희망이 있듯 우리의 투쟁은 결코 외롭지 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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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싸움이어서 몇 번 연기되다가 가게 된 방문이었다.
시퍼런 영도 앞바다 가까이 자갈치 시장에서 나는 비릿한 내가 세차게 부는 바람에 날아다녔다.
그 곳 한켠에 용도를 알 수 없는 크레인들이 하늘 높이 치솟아 있고 덩치 큰 선박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는 곳에 한진중공업이 있었다.
공장을 들어서니 파란색 텐트촌이 주욱 늘어져 있었다. 조합원들의 농성텐트였다.
지도부 천막을 찾아가는데 높이 솟은 크레인 위에 현수막 글귀가 콧날을 찡하게 했다. “더한 좌절도 이겨내지 않았는가, 흔들리지 않으면 끄덕없다”
짠하게 번지는 아픔이랄까 형용하지 못하는 어떤 것이 온몸을 비집고 들어온다.
천막 안엔 수염을 안깍아 임꺽정 같이 보이는 분이 우리를 맞았다.
부산 지회 사무장님이었다. 마산특수선 산안부장도 계셨는데 조금 서운했던 모양인지 그리 반가운 표정은 아니다.
먼저 지회장 얘기를 하신다. 현수막이 걸려 있는 크레인 위에 김주익 지회장이 있었다. 6월 11일 밤 크레인으로 통하는 모든 문을 잠그고 홀로 그곳을 지키고 있다고 했다.
지회장은 아침 집회가 있을 때마다 크레인 위에서 조합원과 함께 한다고 했다.
현재 상황은 지도부 6명에게 체포영장이 발부된 상태고 공권력을 투입할 수밖에 없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었다.
공장 안엔 사람들이 이리 저리 많이 보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외주,하청업체 직원들이라 했다.
식사를 어떻게 하냐 물으니, 조합비가 가압류된 상태라 처음엔 현장에 각 반별로 모아둔 상조회, 직비 등으로 견뎠고 금속노조에서 쌀모으기를 해서 쌀과 모금을 보내와 겨우 견디고 있는데 지금은 거의 바닥이 보인다 했다.
그날은 조선소에서만 지을 수 있다는 농성텐트 얘길 듣고, 없는 살림에 점심까지 얻어먹고 돌아왔다.
.......................
그러고 며칠 뒤 김주익 지회장이 목숨을 끊었다.
10월 17일이다. 너무 놀라면 소리도 나오지 않는다는데, 정말 그랬다.
며칠 뒤 또 한 분의 조합원이 투신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곽재규 조합원, 이분은 잠시 집안 문제로 파업에 참여치 못하고 있다가 김지회장 사망 소식을 듣고 김지회장 영전 앞에서 많이 우셨다 했다.
형님 아우하던 사이, 두 분의 죽음이 안타깝기만 했다.어쨌든 무거운 맘으로 다시 그곳을 찾았다.
전면파업 104일째,
학생들과 전국에서 연대하기 위해 온 사람들이 한진 신관 앞에서 집회를 하고 있었다. 악질 사업주 한진을 규탄하기 위해 달걀을 나눠줬는데 모두들 그것으로 성이 안 찼는지 여기저기 유리창이 깨져나갔다.
그 달걀은? 나중에 삶아 먹는거였다. 천막에서.
이곳의 바람은 장난이 아니다. 만국기처럼 요구사항을 걸었던 작은 천들이 글자를 알아 볼 수 없을 만큼 너덜너덜하게 걸레가 되어 있었다.
공장 중앙엔 호탕하게 웃는 고인의 모습이 담긴 현수막이 걸려 있고 여기저기 작고 큰 소자보, 구호들이 붙어 있었다.
김 지회장이 사망하기 전 14일 회사는 선박을 강제로 진수했다. 회사는 투쟁에 참여치 않는 조합원에게 임금을 지급하면서 파업기간이 길어지면서 생계가 막막한 많은 조합원들은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회사는 조합원에게까지 손배가압류를 하겠다는 협박을 했던 터였다.
결국 회사가 죽인 거나 마찬가지였다.
한진중공업 노동조합이 요구한 건 너무나 소박했다.
노조탄압 중단과 임금인상, 성실교섭 촉구, 열심히 일하고 그 댓가로 가족과 행복하게 살게 해달라는 요구 작고 평범한 이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 한진자본과 그들을 그대로 놔두는 나라 그 속에서 파업현장은 벼랑끝까지 몰린 사람들의 마지막 해방구와 같다.
하늘엔 별이 총총 뜨고 공장 주위 집들에서 비추는 따뜻한 불빛들, 그러나 이들에게는 아무런 위안이 되질 않는다.
집회를 마치고 천막을 찾으니 사람들이 유난히 챙기는 사람이 있었다. 이분도 아내와 형님에게 연락해서 아이와 가족을 당부하고 노끈을 준비하고 있다가 옆 동료가 알게 되었던 모양이다. 두 눈이 벌겋게 퉁퉁 부어 있다.
부산 민의련, 물리치료사와 간호사들이 와서 몸이 아픈 사람들을 치료해주고 있어서 이분도 팔에 링겔을 꽂고 있었다.
저녁을 먹으러 갔다. 회사는 죽음을 맞고서야 조합원들에게 식사를 제공했다. 어떤 조건에도 밥을 먹고 오줌 누고 잠을 자는 하루하루의 삶이 고역같다는 생각이 스쳤다.
다시 어김없이 아침이 왔다.
엊저녁, 설명할 수 없는 외로움에 일찍 잠이 들었으나 일어나기까지는 한참 뒤척거렸다.
텐트 밖을 나오니 집회를 하는 광장에 몇 분의 조합원이 빗자루를 들고 휴지를 줍고 있었다. 지리한 냄새가 나는 곳엔 호스를 가져와 물을 뿌려대고 있었다.
저녁에 삼삼오오 앉아 있던 흔적을 이분들이 치우고 어제의 아픔도 지우는 듯했다. 이날은 딱히 일정이 없었다.
엊저녁에 피워 놓은 듯한 모닥불이 아직 남아 있는 곳에 앉아 있는데, 멀리 하늘엔 철새가 줄지어 날아간다.
새들은 갈 곳을 안다. 그러나 우리는 갈 곳을 모른다. 그래서 지치고 때론 절망하는 건가.
곽재규 조합원은 지도부 내에서도 열사라 부르기를 주저했다.
어제는 지도부에서 시신을 냉동차에 넣기로 했던 가본데 결국은 그대로 바닥에 둬야만 했다. 그 옆에서 ‘시체가 섞는다’는 동료의 절규, ‘얼마나 춥겠노’ 울부짖는 가족들의 절규는 그저 허공에 흩어졌다.
다음날 낮 12시가 넘어서야 곽재규 열사의 시신이 냉동차에 옮겨졌다.
어느 곳에나 파업 현장에 가면 늘 느끼는 뿌듯함이 있다. 그건 어디에도 느낄 수 없는 동지애, 연대감등이다. 그곳에는 절망 속에 희망이 꽃핀다는 얘기가 있듯이 우리의 투쟁이 결코 외롭지 않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 곳에서 외로웠다. 너무나 절절히 맘껏 분노할 수 없고, 맘껏 저항할 수 없다는 거 외에도 미래가 모두 누군가에 의해 맡겨져 있다는 거 현장에서 끓어오르는 분노와 저항이 없다는 거.
나는 내 자리로 돌아와 한참이 지나도 아직도 시원한 대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누가 좀 갈 곳 좀 일러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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