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창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산추련)


		쥐마왕

		철거민들의 삶은 달라지지 않았다. 1996년 그때도 그랬다.

철거민들의 삶은 달라지지 않았다. 1996년 그때도 그랬다.

용산 철거민들의 사망 소식에 너무 크나큰 충격을 받았던 것일까.. 아니면 그간의 피로 때문이었을까.. 그 다음날 난 몸앓이를 심하게 했다.
용산 철거민들의 사망 소식을 접하면서 난 1996년 부산의 그 일을 떠올렸다.
96년 아마 초여름 이었을 거다.
지금은 으리으리한 아파트 단지가 되어 버린 그곳에 철거마을이 있었다. 그곳에서도 골리앗이 세워져 있었다. 골리앗은 철거민들의 터전이었고 그들의 삶을 지키는 유일한 공간이었다.
한 선배를 통해 그곳에서 그들을 만났다. 그곳을 올라 가는 것이 조금 힘들었던 것이 기억난다. 내가 고소공포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난 한 달 이상을 생활했다. 자연스럽게 주민들과 어울리고 밤이면 규찰을 서곤했다. 규찰을 서면서 그 분들의 삶도 함께 들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살고 있는 아이들과도 친해졌다. 그곳의 꼬맹이들은 나보고 삼촌이라고 했다. 그 꼬맹이들은 지금 성장하여 어떤 이는 지금 고등학생이 되었고, 또 어떤 이는 성인이 되어 자신의 꿈을 키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난 그곳의 밥이 매우 맛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밥이라고 해봤자 전구지(부추) 무침과 김치를 섞어서 만든 비빔밥이 전부였지만..

한 누나와 친해졌다. 자연스럽게 그 누나의 가족과도 친해졌다.
철거촌에 살고 있던 그 누나는 고향이 부산이 아닌 다른 곳이다. 90년대까지만 해도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를 할 수 있는 고등학교가 있었다. 그 누나는 공부를 하러 부산으로 내려 온 것이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졸업을 하고 봉사 활동을 나갔단다. 고아원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그 남편은 고아원 출신이다. 그렇게 둘은 만났고 결혼에 이르렀다.
둘은 살기 위해 많은 일을 했다. 풀빵장사부터 하지 않은 일이 없었다. 그리고 겨우 터전을 잡아서 몇 년째 가족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그런데 그 터전이 철거된다는 소식을 듣고 사람들과 함께 이주 대책을 요구하면서 싸우고 있던 것이다. 가진 것이 없어 허름한 동네로 온 사람들에게 철거란 사실상 사형선고와도 같은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뭉쳤고 대항했다.

그들은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싸웠다. 집회도 하고. 선전전도 하고.
철거민의 대부분은 노점상을 하거나 일용직 노동자였다. 낮에는 일하러 가야 했고 밤에는 혹시나 있을지도 모를 강제 철거에 규찰을 서야 했다.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용역깡패에 불안한 나날을 보내면서 하루 하루를 살아갔다.
그들은 자연스럽게 전국의 철거민들과 연대를 하게 되었다.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 그리고 경찰과 검찰이 용산의 배후라고 지목하는 ‘전철연’은 사실 철거민들로 이루어진 연대체인 것이다. 노동자로 구성된 민주노총 처럼 말이다.

처음 올라가기 두려웠던 골리앗이 나에게 어느새 익숙해 졌다. 골리앗을 올라가 새벽에 규찰을 서고 있으면 내가 서 있는 곳의 도로 앞쪽은 너무나도 다른 세상이었다. 60-70년대와 90년대가 공존하고 있는 느낌이랄까. 왜 이들은 이렇게 가난하게 살아야 하는지. 세월을 한 몸에 간직하고 계신 어르신들을 보면서 드는 느낌은 결코 이분들은 불성실하게 산 것은 아니란 것이다. 일을 찾아서 생계를 꾸리기 위해 그리고 가족을 위해 밤낮으로 일을 했다. 그런데 가난은 그들을 비껴가지 못했고 결국 자신의 유일한 보금자리에서 쫓겨날 판이었다.
무더운 여름을 그 곳에서 보낸 후 난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한번씩 그곳에 들렀다.

그해 10월경이었을 것이다. 오전에 버스를 탔다.
철거민들이 시위를 한다라는 라디오 뉴스가 흘러나왔다. 아무렇지 않게 흘려 들었다. 늘상 있는 일이니깐. 이번에도 그럴 것이라는 생각에. 그런데 '나의 생각은 오판이었다'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상황이 심각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선배로부터 빨리 와 달라는 연락이 왔다. 나와 다른 이들이 도착했을 때는 경찰 병력이 골리앗을 에워싸고 있었다. 라디오 뉴스를 듣고 왔다는 이들도 있었다. 경찰과 용역깡패들은 새벽에 급습을 했던 것이다. 골리앗에 있었 사람들은 철거를 막기 위해 저항을 했다. 그런데 역부족이었다. 그 많은 경찰 병력과 용역깡패에 맞서기에는 너무 힘에 부쳤다.

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냥 사람들과 발만 동동 구르는 것 외에 그 어떤 것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철거는 진행되었다. 소중히 지켜온 골리앗은 일거에 무너졌고 저항하는 이들은 경찰서로 연행되었다. 터전은 용역 깡패들에게 무참히 무너졌다. 이들의 꿈도 함께 무너졌다. 나 역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자괴감에 한동안 시달렸다. 한동안 그분들을 뵙지 못했다. 바쁜것과 자괴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때 난 이 공간에 있어도 되는가에 대한 끊임없는 물음에 시달려야 했다.

나를 삼촌이라고 부르며 따르던 조카들을 만났다. 4살 밖에 되지 않은 꼬맹이. 10살이 된 초등생은 자신의 엄마가 구치소에 잡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4살짜리 꼬맹이는 엄마가 어디로 간지 몰랐다. 그래서 사람들은 다른데 볼일 있어서 잠시 간 것이라 둘러 되었다. 나 역시 그랬다. 꼬맹이한테 무슨 말을 할지 사실 막막했다.

한달이 지나서 그분들 면회를 갔다. 미안한 마음에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은 있었지만 그래도 미안하다는 말은 해야겠기에.

면회 장소에서 우연히 친구 아버님을 만났다. 친구 아버님은 교도관이었다. 참으로 묘한 만남이었다. 어쨌거나 친구 아버님 덕분에 면회 시간을 조금 더 가질 수 있었다.
먼저 선배를 만났다. 그 선배는 집행유예 기간 중이었다. 그래서 주위 사람들로부터 골리앗에 있으면 안되니 내려오라는 권유를 많이 받았다.
그런 사람들에게 그 선배는 "내가 지금까지 이들과 함께 생활해 왔고 이들도 나를 믿고 있는데 나의 안위를 위해 내가 나간다면 이들은 누구를 믿을 거냐"라면서 그곳에 남아 있겠다고 말하며 끝까지 남아 있었던 사람이다. 그 형은 내가 미안해 할까봐 나보고 오히려 고생 많았지라며 웃어주었다. 난 제대로 말을 하지 못했다.
얼마 뒤 친하게 지냈던 누나를 면회했다. 그 누나도 씩씩하게 나를 걱정해주었다.
"이곳에 있는 비누가 참 좋더라. 피부를 참 깨끗하게 해 주네. 너도 이 비누 한번 사용해 봐라, 얼굴에 난 여드름에 좋을 것 같은데"
그리고 당시 상황을 이야기 했다. 골리앗을 경찰들이 둘러싸고 용역깡패들이 쳐들어오는 그 정신 없는 와중에 길 건너편에서 어디론가 가고 있는 4살짜리 자신의 아이가 보였다고 했다. 아이를 불러보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고 한다. 그것이 아이를 본 마지막이라고 했다.

실형을 선고 받은 몇 명을 제외하고는 집행유예로 풀려나왔다. 물론 그 선배는 실형을 선고 받고 다른 곳으로 호송되었다.

그분들은 다시 철거된 마을에 천막을 치고 농성을 이어나갔다.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뺏기지 않겠다는 굳은 마음을 가지고. 마을이 철거되었기 때문에 추운 농성장에서 한 겨울을 났다.

3년 뒤 난 근로복지공단 본부 앞에서 농성을 하고 있었다. 집회를 하고 있는데 전화가 한 통 왔다. 당시 철거투쟁을 하였던 사람들에게 구상권이 청구되었다고 한다. 사실을 확인 해 보니 철거 과정에서 용역깡패들이 다쳤고 그들은 산재 치료를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근로복지공단에서는 철거민들에게 다시 구상권을 청구한 것이다. 참 어이없는 일이었다. 이중 삼중의 고통이 철거민들에게 부닥쳤다. 재판을 했지만 결국 판사는 철거민들의 사정을 외면했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공’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홀리데이’ 역시 진행형이다.
이명박 정권의 살인 진압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명박 정권은 불법 폭력 시위란 단어를 남발하면서 유족과 죽은자들을 또 한번 죽이고 있다. 그리고 전문시위꾼과 전철연이란 단어도 남발하면서 또 한번 죽이고 있다.
막대한 개발이익에 도취된 자본은 또 가난한 자들을 향해 무자비한 폭력을 자행할 것이다. 자본의 폭력이 자행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보이는 우리의 사회적 제도들. 그에 반해 그 폭력에 대항하기 위한 최소한의 자기 방어조차도 용납하지 못하는 우리 사회.

국가는 야만적인 폭력으로부터 국민을 사회적으로 보호하고 특히 사회적 약자가 경제적 폭력에 의해 유린당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의 가치이며 국가의 기능이다. 국가의 권력을 위임받은 구체적인 행정 권력은 그 기능을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 행정 권력은 이미 정당성을 상실한 권력일 것이다. 따라서 이명박 정권은 정당성을 상실한 권력임이 분명하다. 민주주의는 국민이 그 권력을 줄 수도 있고 회수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자국민을 5명 아니 경찰까지 치면 6명을 죽인 이명박 정권은 과연 국가의 위임된 권력을 수행하게 놔둬야 하는가? 나는 이 시점에서 진지하게 되묻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