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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추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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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호]성폭력에 대한 분노와 전자발찌가 묻어버린 것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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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 아해
최근 전 사회적인 분노를 일으켰던 성폭력 문제와 관련해서 인권적인 관점이 담긴 글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특별히 그 방면에 조예가 깊은 것도 아닌데 그저 인권단체에 있다는 이유로 원고 청탁을 덥석 받아안고 나니, 앞이 가물가물합니다. 진실과 원칙들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정리해가면 그리 혼란스러울 것도 없는데, 이상하게도 최근 분위기에서는 성폭력과 관련하여 섣불리 ‘인권’ 얘기를 꺼냈다간 여기저기서 분노에 찬 뭇매를 맞기 십상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우야노’ 싶다가, 성폭력을 둘러싼 사회분위기 속에서 묻혀버린 사실들에 대한 얘기를 해보자고 생각했습니다.
폭력에 노출된 여성들
한국사회에서 여성은 수많은 차별과 폭력의 피해자입니다. 강간과 같이 무서운 범죄의 피해자는 대부분 여성인데, 강간죄는 친고죄에 해당하기 때문에 강간을 했더라도 피해자와 합의만 하면 고소를 취하하고 자유의 몸이 될 수 있는 ‘가벼운’ 범죄입니다. 이 때문에, 합의를 핑계삼아 일어나는 2차, 3차 성폭력과 심지어 협박까지도 피해자가 추가로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성폭력 피해자를 그냥 피해자가 아닌 ‘피해생존자’라고 부르는 이유에는 이러한 배경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더욱이, 여성이 직장에 다니는 경우에는 각종 성추행과 성희롱, 성차별에 시달리고, 결혼을 한 여성은 가정폭력 속에서 생사를 넘나들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혹시라도 재개발지역에 사는 여성은 철거용역들의 악귀같은 폭력을 벌써 경험했을지도 모릅니다. 이런 각종 폭력 속에서 아동과 청소년은 더욱 무방비로 노출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여성들이 안전하지 못한 상황이라면, 보다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노력들이 이루어지는 것이 당연할 텐데, 한국사회의 분위기는 조금 이상하게 흘러갑니다.
분노가 남긴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러고 보면, 최근 무서운 범죄가 일어날 때마다 한국사회는 걷잡을 수 없는 분노로 들끓었습니다. “저런 것들은 다 쓸어다 총살시켜버려야 해.”, “저 자식 XX를 잘라버려!”와 같이 무시무시한 말들은, 사형제 부활, 화학적 거세 등의 논란으로 이어졌고, 이 논란들은 전자발찌의 확대 및 소급 적용, 피의자 신상공개 등의 현실적인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결국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가해자 남성에 대한 즉흥적이고 선정적인 사후 처벌만 존재할 뿐, 여성의 안전을 위한 근본적인 조치는 문자 그대로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피해자 인권’은 어디 있냐던 분노에 찬 외침이라도 계속 남아있으면 좋을 텐데, 소위 ‘가해자 인권’과 ‘피해자 인권’을 비교하던 목소리들 역시 더 이상 들리지 않습니다.
“가해자를 극형에 처하면 피해자가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심할 거라는 가정. 사형을 다시 집행하거나, 전자발찌를 형 만료된 이에게 소급해서 채우거나, 피의자의 얼굴을 공개하면 속이 다 시원할 거라는 가정은, 일견 당연하게 여겨지지만 누구의 입장에서 그런지는 빼놓고 이야기된다”는 지적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성폭력에 대한 사회적 분노가 이렇게 잘못된 결론에 이르는 것이 우연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분노와 전자발찌의 잘못된 결론들
성폭력 범죄에 대한 ‘묻지마 처벌’이 위험한 것은, 그로 인해 강간 및 강간미수의 85%가 아는 사람에 의해서 일어나고, 신고율은 7% 정도에 불과하다는 성폭력의 진실이 감추어지기 때문입니다. 사회의 관심이 극악한 범죄들의 처벌에만 쏠려있다면, 거기에서 벗어난 ‘소소한’(?) 성폭력을 저지르는 ‘보통의’ 남성들은 오히려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될지도 모릅니다. 근본적인 대책은 전혀 없이, 전자발찌 확대 적용, 사형제 부활, 보호감호 부활, 화학적 거세 등등의 인권침해의 망령들만 잔뜩 생겨난 것도 ‘묻지마 처벌’이 위험한 이유 중의 하나입니다. 인권을 무력화시키는 정부의 조치들에 대해서, 지난 3월 22일 ‘사후 처벌 남발 대신 아동, 여성 인권보장체계 마련하라’는 여성,인권,사회단체의 기자회견에서 “한 사회가 지금까지 높여온 인권수준을 ‘전자발찌’, ‘사형’, ‘보호감호소’ 등으로 한 순간에 무화시키는 정부의 언급들에 피해자들도 편치 않다. 성폭력 피해자들은 그동안 인권의 범위를 확대해달라고 싸웠던 것이지 성폭력 사건 해결을 위해 인권 수준을 후퇴시켜 달라고 이야기해왔던 것이 아니다”라고 얘기했던 의미를 되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최근 김OO 사건에서 드러난 빈곤지역 또는 재개발지역의 문제에 대해, 정부는 또 한번 잘못된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피해청소년의 빈곤한 상황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자,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재개발 지역에서의 빈집철거를 빨리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정부와 건설회사는 재개발지역에서 떠나지 못하고 남아있는 사람들을 위협할 수 있는 수단, 갈 곳이 없어 빈집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쫓아낼 수 있는 구실을 성폭력에 대한 해법으로 제시하는 것입니다. 오! 놀라워라!
성폭력 발생을 예방하고 피해자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자
역시 중요한 것은 가해자에 대한 자극적인 처벌에만 잠깐 열을 올렸다가 깨끗하게 잊고 돌아서는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성폭력이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과 피해자의 목소리를 듣고 피해자에 대한 지지와 지원을 위한 인권보장체계를 만드는 것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해야합니다. 이를 위한 몇 가지 주장에는, ▷성폭력에 대한 인권감수성 교육 실시, ▷피해자 지원을 위한 구체적인 대책 마련, ▷가부장적인 사회구조를 성평등한 구조로 전환 ▷강간죄의 비친고죄 전환, ▷자극적이고 인권침해적인 처벌의 신설보다 성폭력에 대한 가벌성을 높이는 것 등이 있습니다. 별로 특별해보이지는 않지만, 많은 혼란 속에 묻혀서 잘 드러나지 않는 이런 기본적인 일들을 차근차근 해나가는 것이 바로 성폭력에 대한 인권적인 대책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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