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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마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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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공원이 제 집인 양 뛰어다니는 꼬마아이가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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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공원이 제 집인 양 뛰어다니는 꼬마아이가 있습니다
때로는 인라인스케이트를 타고,
때로는 꼬마 자동차를 타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그 넓은 공원을 누비고 다닙니다.
누나랑 서로 인라인스케이트를 타려고
실갱이를 하고는
은근슬쩍 양보하는 누나를
이겼다고 좋아하는 미운 7살입니다.
다른 아이들은 유치원이다 학원이다
정신이 없는데, 마냥 공원에만
눌러 사는 아이입니다.
유치원에 보내보려 했었지요.
그랬더니만 이 꼬마 어쩐 줄 아십니까?
가방 없으면 유치원 안가도 된다고 생각했는지
가방을 침대 밑에 숨겨놓고는 엄마한테 유치원 못간다고
시침 뚝 떼는 미운 7살입니다.
그런데 가만 보니 신기한 점이 있습니다.
어라.. 노래를 부르네요.
"나 태어나 이 강산에 무엇이 됐나
거리에서 장사하는 노점상이 되었단다~"
가만있자.. 어디서 들어본 노랜데...
늙은 군인의 노래? 늙은 노동자의 노래?
오호라~ 노점상들 집회할 때 부르는 노래구나.
늙은 노점상의 노래라는...
"그 누가 노점상을 하고 싶어 하느냐
처자식 먹여살리려 거리에서 장사한다~"
이 꼬마 이런 가사도 천연덕스럽게 불러 제낍니다.
옆에서 듣던 아이 엄마가 묻습니다.
"너 처자식이 뭔지 알아?"
아이는 부끄러운지 얼굴을 살짝 붉히며
손가락을 입에 물고 고개를 돌립니다.
엄마는 이 미운 7살이 귀엽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합니다.
이내 아이를 품에 안고 엉덩이를 토닥거립니다.
엄마 눈에는 결국 눈물이 맺히고 옆에서 지켜보던
제 눈에도 눈물이 맺힙니다.
이 아이의 아빠는 노래를 참 잘합니다.
이 아이의 엄마도 노래를 참 잘합니다.
그래서 이 아이도 노래를 잘하나 봅니다.
이 아이의 엄마 아빠가 잘하는 노래는 국민가요 뽕짝이지요.
밤무대 가수를 하셨다는 소문도 들었습니다.
판도 낸 적이 있다지요 아마.
그런데 요즘은 뽕짝 대신 "나 태어나~"를 부르십니다.
집에서도 맨날 이 노래만 들으신대요.
집에서도, 차에서도,
이 아이는 맨날 "나 태어나~"를 듣습니다.
가사 하나 틀리지 않고 부를만큼 듣고 또 들은 노래입니다.
이 아이의 누나도 다르지 않습니다.
예쁘장한 얼굴에 누구든지 볼때마다
"안녕하세요~"가 입에 붙어서 인사 잘하는 아이로 통하지요.
이 아이들의 엄마 아빠는 맨날 "나 태어나~"만 듣습니다.
때로는 웃으면서 때로는 눈시울을 붉히면서...
이 아이들의 엄마 아빠는 노점상이기 때문입니다.
대개는 아이들의 놀이터와 엄마 아빠의 일터가 다르지만,
이 아이들의 놀이터인 월드컵 공원은
엄마 아빠의 일터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요즘은 왠일인지 마차에는 번데기 대신, 오뎅 대신,
피켓과 현수막이 있습니다.
"노점상 두대 없애자고 1억 3천 용역이 왠말이냐"는
구호가 큼지막하게 적혀 있는 현수막.
"질긴놈이 승리한다" 라는 구호도 보이네요.
그 옆에는 텐트도 하나 보입니다. 그 텐트에도 구호는 많습니다. "배고파서 못살겠다" "노점탄압 중단하라"....
이 아이의 놀이터는 여전히 월드컵 공원입니다.
이 아이는 월드컵 공원 앞 파란색 텐트에서 하루종일
엄마를 괴롭히는 여전히 미운 7살입니다.
텐트 앞쪽에는 공원관리공단의 공무원과
이들이 고용한 용역깡패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쉬는 공원 버스에도 역시 현수막이 붙어 있습니다.
"월드컵 공원에서는 노점상을 할 수 없습니다."
"불법노점에서는 먹지도 사지도 맙시다."...
보기에도 험상궂은 용역깡패들과,
인자함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표정의,
아니 오히려 비아냥거리는 표정이 가득한 공무원들.
이 꼬마는 이 사람들이 뭐하는 사람들인지 잘 모릅니다.
하지만 분명히 대답하는 건
이 사람들이 나쁜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에 나쁜사람과 착한사람 두 가지 뿐인 이 7살 꼬마의 눈에 이 사람들은 나쁜사람입니다.
언젠가 이 꼬마가 질문을 하더군요.
한일전 축구경기가 열리던 날.
수많은 사람들이 월드컵때처럼 얼굴에 태극기를 그리고
머리에 빨간 두건을 매고 나팔을 불어대던 날이었습니다.
대통령도 온다고 여기저기 교통경찰들이 쫙 깔려서
사람들에게 호루라기를 불어대던 날이었습니다.
이 꼬마 대통령이 온다는 걸 알았나봐요.
"대통령은 착한 사람이야, 나쁜 사람이야?"
한참을 망설이다 대답했습니다.
"착할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는 사람이야."
마땅히 할 대답이 없었습니다.
어쨌건 나쁜사람들 위에 있는 사람이니까.
그 나쁜사람들 대장이니까.
아이에게 좋은 사람이라고 설명할 내용이 저에겐 부족했습니다.
그저 좋은사람이라고 대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혼자 생각할 따름이었습니다.
이 아이의 엄마 아빠는 매일 텐트에서 먹고자며 삶을 지킵니다. 매일 매일 장사를 해도 시원찮을 벌이에 주말마다 괴롭히는
공무원들 덕에 장사는 멀찌기 미뤄 놓은 지 한참입니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실컷 욕을 퍼붓기도 하고,
"나 태어나~"를 큰 소리로 틀어놓기도 하고...
하지만 교대로 나오는 공무원들과 용역깡패들을 이기기엔
역부족입니다. 사람들은 이런 지리한 대치상황에 지쳤갑니다.
악에 받쳐, 분에 못이겨 마차를 밀고 공원 관리공단
사무실로 향합니다. 하지만 또 역부족입니다.
공무원들과 용역깡패들은 마차를 밀어버리고
마차는 넘어집니다. 마차가 넘어지며, 이 사람들 눈에는
너무 많이 흘려 말라버렸을 법도 한 눈물이 또 한번 맺힙니다.
꼬마도 이 광경을 다 보고 있습니다.
멀리 가있으라는 아빠의 호통에 뒤돌아섰다가는
발걸음을 돌려 또 쳐다봅니다. 이 아이의 머릿속에서
나쁜사람들의 이미지는 더더욱 선명해집니다.
그렇게 한바탕 싸움이 지나고 나면 사람들은 또다시
텐트안에 둘러 앉습니다. 김치 한쪼가리에 소주 한잔으로
하루의 설움을 날려야 하니까요.
그렇게 공무원보단 훨씬 착한 소주로
지친 마음을 달래다 보면 꼬마는 잠이 듭니다.
아이 엄마의 목소리는 다 쉬고 갈라져 잘자란 말 한마디가
버겁습니다. 이 아이는 오늘도 엄마의 일터, 자신의 놀이터에
쳐진 파란 텐트 안에서 잠을 잡니다.
...............
오늘도 역시나 파란 텐트는 공원 앞 인도에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텐트 안의 분위기가 심상치가 않습니다.
사람들 얼굴엔 피곤함이 묻어 있어도 착한 소주 한 잔에
서로 노래부르며 가족같았던 분위기가 간 곳이 없습니다.
아이의 엄마는 오늘도 역시나 파란 텐트 안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습니다. 죽을 드시고 있네요.
눈은 퉁퉁 부어있고 화장기 전혀 없는 얼굴에는 아픈 기색이 완연합니다.
아이의 아빠는 착한 소주를 너무 많이 마셔
얼굴이 벌개졌는데도 여전히 소주만 들이킵니다.
누구한테 하는건지도 모를 욕만 자꾸 하고 계십니다.
아이는 오늘 따라 조용합니다.
엄마를 괴롭히지도 않고 말을 많이 하지도 않습니다. 엄마에게 놀아달라 조르고 싶어도 아빠가 무서워 그러질 못합니다.
이 아이 엄마의 뱃속에는
첫째 딸 하나, 둘째 아들 민구의 동생이 있었습니다.
소개시켜 드릴때마다 임신중이라고 얘기하면,
얼굴을 붉히시며 그런 얘긴 뭐하러 하냐고 민망해 하시던
이 아이의 엄마는 이 공원 앞에서 장사하는 사람들 모두의
생계를 책임진 상암지부 지부장입니다.
악에 받쳐 분에 못이겨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공무원들과 싸운 덕에 노래 잘하던 목소리는 간데 없어도,
싸울때는 그렇게 무섭고 엄하기만 하였어도
한번 더 기운차리자고 회원들 북돋워 주던
월드컵 공원 노점상 대장입니다.
용역깡패도 아닌 공원관리공단 공무원에게 발로 밟히고 채여도 눈 하나 깜짝않고 앞장서 싸운 용감한 대장입니다.
그렇게 발로 밟히는 동안 뱃속의 아이 생각 안한거 아니겠지요. 아니 솔직히, 고생스러운 세상 나오지 말고 뱃속에서 맞아서
떨어져 버리라고 끔찍한 생각도 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모진 맘 먹고라도 하나랑 민구를 키워야 했으니까요.
인생이 절망스러울 때, 그래도 마차 하나에 의지해 먹고 살려
노력하는 사람들의 대장이었으니까요.
팔이 하나 없는 사람, 다리를 저는 사람, 정신이 지체인 사람...
장애인이라 불리는 소외받는 사람들의 대장이니까요.
지금 여기서도 쫓겨나면 손목 잘려나간 아이 아빠
다시 받아줄 곳도 없고, 장애인 임대아파트 살이마저
녹녹치 않아질테니까요.
그렇지만 막상 병원에서 의사선생님이 하는 말은
청천벽력입니다.
"뱃속에서 아이가 2주전에 죽었네요.
아니 어떻게 이 지경이 되도록 내버려두셨습니까.
죽은 아이가 뱃속에 늘어붙어 큰일날 뻔하셨습니다."
아이의 동생은 죽었습니다.
이미 2주 전에. 공무원들의 발길에 채이고 밟혔을때,
이 아이의 동생은 이미 세상을 놓아버렸습니다.
법적으로는 아직 인간도 아닌, 그래서 살인죄를 걸지도 못할
4개월의 민구 동생은 그렇게 민구의 놀이터, 엄마의 일터
월드컵 공원에서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아이 엄마는 억지로 인스턴트 죽을 입속에 집어 넣고,
아이의 아빠는 착한 소주만 연거퍼 마십니다.
아이를 안아봅니다.
"민구야~ 민구 동생생길뻔했는데..."
아이는 자기도 뭔가를 아는지 어깨에 고개를 파묻습니다.
어김없이 제 눈시울도 붉어집니다.
아이 엄마 앞에서 울지 않으려고 돌아서 보지만 아이를 품에서 내려놓고 돌아오는 길에도 눈물은 계속 흐릅니다.
월드컵 공원의 나무 한그루만도 못한 사람의 생명 앞에,
어찌할 수 없는 죄스러움에,
어찌할 수 없는 노여움에 그저 눈물만 흐릅니다.
오늘만 울자.. 그래 오늘만...
나보다 백배 천배 슬프실 아이 엄마를 생각해서.
죽여버리고 싶다는 말만 되풀이하는 아이 아빠를 생각해서.
............
오늘도 월드컵 공원 앞에는 파란 텐트가 보입니다.
그 안에는 아이와 아이의 엄마 아빠가 여전히 자리를 지킵니다.
월드컵 공원 앞 인도.
그 곳에는 커다란 화분이 21개 새로 놓여져 있습니다.
시민들 보행에 불편을 줘서 노점상이 안된다 얘기하더니,
마차 두 대가 놓여져 있던 그 자리에
마차보다 더 큰 화분 21개가 인도를 점령했습니다.
꼭 마차가 놓여져 있던 그 자리에만...
더이상 꽃이 예뻐보이지 않습니다.
아이의 눈에는 이제 꽃도 나쁩니다..
- 네이버 블로그에서 퍼온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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