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고용 확대, 대안은 없나 ①
대기업이 앞장서 의무고용 안 지켜…고용확대 위한 제도개선 절실
4월20일은 장애인의 날이다. 그러나 장애인을 노동과 소비설계의 주체가 아니라 시혜와 동정의 대상으로 보는 우리 사회의 시각은 여전하다. 장애인 노동권 확보를 통해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사회적 차원의 진정한 노력이 절실한 때다. 매일노동뉴스는 장애인 고용확대를 위해 ①장애인 고용 현주소, 형편없다(18일) ②르뽀-장애인 고용사업장을 찾아(19일) ③장애인 고용확대, 대안은 없나(20일) 등 3회 분량의 기획기사를 준비했다.<편집자주>
'장애인의 날'을 '장애인차별철폐의 날'로
그러나 이름이 무색하다. 장애인들은 형식뿐인 '장애인의 날'을 거부하고 있다. 84개 장애·노동·인권단체로 구성된 4·20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4·20공동투쟁단)은 "기존의 장애인의 날은 장애인을 시혜와 동정의 대상으로 전락시켰다"며 "이날을 '장애인차별철폐의 날'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장애인차별철폐의 중요한 고리 중 하나는 장애인 노동권 확보. 그러나 장애인 노동권 확보는 아직은 멀기만 하다. 장애인 고용의 현주소는 '형편없기' 때문이다.
정부부문 의무고용 2% 달성이라는 '허수'
지난해 처음으로 정부부문에서 장애인 의무고용율 2%를 넘어섰다며 며칠 전 축하연까지 열렸다. 정부, 지자체 등 87개 정부기관에 채용된 장애인 공무원이 지난해말 기준 6,079명(2.04%)으로 의무고용율 2%를 넘겼다는 것이다. 이는 91년 제도시행 후 거의 15년만에 달성된 수치로, 노동부는 지난 2월 "2% 미달기관에 대한 기관별 장애인 공무원 충원지원기능을 강화해 2007년까지 모든 기관의 의무달성을 추진하겠다"고 사기가 오른 상태다.
그러나 정부부문 의무고용율 달성을 액면 그대로 인정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다. 우선 87개 기관 중 중앙행정기관(51개)은 1.96%, 헌법기관(4개)은 1.18%로 2%에 미치지 못했다. 게다가 적용제외직종이 여전히 버티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부문 2% 달성은 '허수'라는 주장까지 나온다.
현재 장애인고용촉진및직업재활법 시행령(제21, 23~24조)에서는 정부·민간부문 모두 적용제외규정을 두고 있다. 정부부문은 법관, 검사, 경찰, 소방, 군인 등 장애인공무원 의무고용 적용제외 직종을 일일이 명시해 놓고 있다. 정부부문 직종의 68%가 적용제외 대상이고, 이 가운데 특정직, 정무직은 100% 제외직종이며, 연구직 83.1%, 고용직 63.3%, 기능직 54.8%, 별정직 30.2%, 일반직 25.9% 등이 제외직종에 해당된다. 민간부문 역시 광산업, 어업 등 업종별로 의무고용을 제외하고 있지만 업종별 제외율은 22%여서, 정부가 민간보다 장애인고용에 더 소극적이라는 비난을 들어도 할 말이 없게 돼 있다.
장애인단체들은 "영국은 적용제외규정 자체를 차별로 규정해 이 제도를 폐지한 바 있다"며 "해외에서 적용제외규정을 둔 국가는 일본이 유일한데 그나마 이를 점차 폐지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대기업, 의무고용 미이행 '불량'하다
상시고용 300인이상 의무고용대상인 민간부문은 이보다 더 심각하다. 의무고용율 2%의 근처에도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2003년말 현재 의무고용대상 민간기업(2,056개)의 고용율은 1.04%에 머무르고 있다. 민간부문으로 분류되는 85개 의무고용대상 공기업의 고용율 역시 1.66%에 불과해 전체 민간부문 고용율은 1.08%에 그쳤다.<표1참조>
고용의무사업장 장애인고용현황
구분 정부부문
(국가 및 지자체) 계 민간부문
(민간기업) 공기업
대상사업주 86 2,141 2,056 85
적용근로자수 289,158 2,101,610 1,977,253 124,357
고용의무인원 5,830 40,971 38,527 2,444
장애인 수 5,421 22,718 20,655 2,063
고용률 1.87 1.08 1.04 1.66
(03.12.31현재, 단위 : 개소, 명)
민간부문은 2001년 1.10%로 처음 1%대를 넘어선 후 오히려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 더구나 전체 의무고용대상 민간부문 2,141개 사업장 가운데 13.5%에 해당하는 289곳이 고용율 0%다. 8개 가운데 1개 업체는 장애인을 아예 고용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1%미만 사업체도 절반을 넘어선 1,181개(55.2%)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재벌기업은 더 문제다. 모범을 보여야 할 대기업이 앞장서 '불량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2003년말 현재 30대 재벌기업(615곳)의 장애인고용율은 0.69%에 머물고 있다. 전체 민간기업 장애인고용율 1.04%의 절반가량에 머무는 수치다. 30대 그룹 중 3곳을 제외한 27개 그룹이 모두 2%에 미달했다.
부담금 다액납부(5위) 기업
순위 사업체명 고용률 부담금액
계 29,819,862
1 삼성전자(주) 0.19 4,589,730
2 (주)국민은행 0.5 2,198,547
3 엘지전자(주) 0.59 1,909,690
4 롯데쇼핑(주) 0.07 1,498,473
5 삼성물산(주) 0.1 1,259,871
(2003. 12. 31. 현재, 단위: 천원)
돈이 더 많은 대기업이 왜 의무고용을 더 안 지키는 것일까. '장애인을 고용하는 것보다 부담금을 내는 것이 더 싸기 때문'이란 게 가장 간단하지만 공통된 진단이다. 현재 정부는 민간부문의 경우 2% 의무고용을 지키지 못했을 때 해당기업에 부담금을 부과하고 있으며, 반면 2%를 넘으면 장려금을 지급하고 있다.
부담금 고액납부 상위권은 내로라는 하는 대기업들이다. 2003년말 현재 1위 삼성전자(주), 2위 (주)국민은행, 3위 엘지전자(주), 4위 롯데쇼핑(주), 5위 삼성물산(주) 등 30위권 기업이 부담금을 모두 298억1,986만원을 내놨다.<표2 참조> 이는 같은 해 사업주부담금 1,038억7,629만원의 28.7%를 차지하는 액수다.
'여성장애인'과 '중증장애인'의 고용소외는 더 심해
그렇다면 고용의 질은 어떨까. 고용만 되면 다 해결되는 것일까.
장애인고용촉진공단(이사장 박은수)이 지난 2000년 실시한 '장애인근로자 실태조사' 결과, 300인이상 의무고용사업장에서 근무하는 장애인노동자를 장애유형별로 구분하면, 지체장애인(상지, 하지에 장애가 있거나 왜소증으로 키가 너무 작거나 척추에 변형이 있는 사람)이 82.0%로 가장 많았다. 장애등급으로는 상대적으로 경증에 해당되는 장애인들이 의무고용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성별·장애등급별로는 남성 경증장애인이 81.3%로 대부분을 차지했고 여성 중증장애인은 2.5%에 그쳤다. 여성과 중증장애인은 고용에서도 소외를 받고 있는 실정.
고용이 됐어도 단순노무자가 가장 많아 고용의 질 역시 크게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장애인노동자를 업무형태에 따라 구분하면, 단순노무자가 23.9%로 가장 많았고 장치·기계조작 및 조립종사자 22.1%, 사무종사자 21.7%로 나타났다. 이는 비장애인 상시노동자의 사무종사자 36.2%, 단순노무자 16.2%, 장치·기계조작 및 조립종사자 12.0%와는 크게 다른 것.
이와 관련,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 염규문 고용개발원 차장은 지난 1일 '장애인 고용정책 토론회'에서 "장애인근로자는 대기업 핵심분야에는 진입하지 못하고 있으며 주로 기능적이고 단순한 지원분야에서 근무하고 있다"며 "경증 남성장애인의 경우 생산성에서 비장애인과 별다른 차이를 보이지 않으므로 경증 남성장애인 고용을 통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완수된 것으로 보긴 어렵다"고 진단했다.
특히 산재장애노동자를 제외하면 실제 장애인고용창출에 의한 고용율 증가분은 낮아진다는 지적이다. 염 차장은 300인이상 기업 근무 장애인노동자의 44.2%는 비장애인으로 입사해 근무하다 산재장애를 입은 상태라고 밝혔다. 결국 의무고용은 아직까지는 장애인을 위한 새로운 일자리 창출제도로 자리잡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부담금과 장려금, '조삼모사'의 악순환
지금처럼 장애인고용의 양과 질이 모두 형편없는 것은 부담금(페널티)에 의존하는 정부의 장애인고용정책 때문이란 지적이 가장 높다. 이중에서도 부담금과 장려금이 한데 묶인 '조삼모사'식 장애인고용촉진기금 조성과 운영이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히고 있다.
"장려금 삭감은 장애인노동자의 임금삭감, 해고, 고용기피 등으로 이어져 생존권마저 박탈하고 있다." 지난해 드디어 일이 터졌다. 정부가 그동안 지급해 왔던 장애인고용촉진장려금을 지난해 1월 하루아침에 대폭 삭감하겠다고 나서면서 장애인들의 분노를 산 것이다.
정부의 주장은 이랬다. 부담금에 의존해 왔던 장애인고용촉진기금이 장려금 증가 등으로 지출이 수입을 넘어섰다는 것이다. 때문에 기금에서 나가는 장려금을 줄일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에 따르면 기금재원은 대부분 사업주가 납부하는 고용부담금으로 충당되고 있으며, 그밖에 정부출연금, 기부금, 운용수익금, 기타 차입금 등으로 구성돼 있고, 장애인공단 사업경비, 고용 및 장려금 지원으로 쓰이고 있다.
연도별 부담금 수입과 장려금 지급 추이
고용부담금 장려금지급
2000년 62,592,939 14,949,732
2001년 71,719,597 40,063,467
2002년 88,771,918 82,233,540
2003년 103,876,293 111,566,705
2004년 118,668,711 123,801,610
(단위 : 천원)
그런데 2003년부터 부담금보다 장려금이 더 많아지기 시작했다는 것.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에 따르면 2003년 부담금은 1,038억7,629만원이었으나 장려금은 1,115억6,670만원, 2004년 부담금은 1,186억6,871만원이었으나 장려금은 1,238억161만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기금고갈이 우려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던 것.<표3참조>
고용촉진기금, 정부 일반회계로 안정화시켜야
그러나 이는 장애인고용촉진기금 구성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도외시한 해석이란 주장이다. 기금을 부담금에 의존하는 현행 제도는 장애인 고용촉진을 위한 국가의 책임을 다하지 않는 것이란 신랄한 비판으로 이어지고 있다.
실제 그동안 기금구성에서 정부출연금(일반회계 전입금)은 극히 미미하기 짝이 없었다. 정부는 91년 기금조성이 된 후 95년부터 2002년까지 8년 동안 달랑 10억원만 냈다가 2003년에 20억원으로 늘렸다. 그러다 지난해 장려금 축소가 발표되고 장애인들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부랴부랴 당초 편성된 30억원에다 400억원의 추경예산을 편성해서 '땜방'을 했다. 그리고 올해는 100억원 일반회계 전입과 800억원의 재정융자특별회계(재특) 등 모두 900억원을 편성했다. 이 역시 올해까지의 '임시방편'일 뿐이다. 물론 이조차도 지난해 내내 힘겹게 싸워온 장애인들의 투쟁 덕분이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의 한 관계자는 "그동안 정부와 지자체는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아 왔다"며 "국가가 일반회계를 통해 근본적인 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재특의 경우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점은 노동부도 일정 정도 인정하고 있다. 노동부 장애인고용과의 한 관계자는 "재특의 경우 재경부가 채권을 발행해 노동부가 빌려온 것으로 빚이 계속 쌓일 수밖에 없는 구조라서 바람직하지 않다"며 "재특보다는 일반회계로 기금을 영구히 안정화시킬 수 있는 것이 가장 좋다"고 밝혔다. 노동부는 현재 내년 예산 마련을 위해 현재 예산당국과 논의 중이다.
장애인고용정책, "대기업 책임 다하도록"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해 5월17일 '장애인고용촉진및직업재활법령 시행규칙 개정안'에서 장애인고용 의무 적용제외규정을 삭제해야 한다는 의견을 노동부에 전달한 바 있다. 인권위는 "적용제외규정 자체가 장애인은 비장애인과 다르다는 것을 전제로 특정직무수행에 부적합하다고 규정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적용제외를 둔 장애인고용정책은 이같이 '차별'이란 진단을 받았다. 장애인고용정책은 무엇이 달라져야 하는가.
"무엇보다 대기업의 고용의지가 중요합니다. 큰 기업이 의무고용조차 지키지 않으면서 중소기업에 이를 떠넘겨선 안 됩니다."
대기업이 장애인고용을 하도록 장애인고용정책의 방향이 명확해야 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지난해부터 상시고용 50인이상으로 의무고용대상 사업장이 확대됐다. 이는 의무고용대상 사업장이 중소기업으로 확대되는 만큼 더욱더 대기업의 책임이 무거워짐을 의미한다. 실제 장애인고용촉진공단과 노동조합은 올해부터 고용율 1%미만의 기업에는 가산징수금을 부과하는 등 대기업을 우선 대상으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고 있기도 하다.
이와 함께 장애인 의무고용제가 제대로 지켜지도록 하기 위한 국회의 움직임도 활발해지고 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우원식 의원(열린우리당)은 지난해말 적용제외규정 폐지와 부담금을 최저임금 이상이 되도록 하는 것 등을 골자로 한 장애인고용촉진및직업재활법 개정안을 내놓기도 했다. 또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장향숙 의원(열린우리당)도 상반기 중 대기업이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페널티'를 부과하고 중증장애인의 고용 확대를 위하는 내용의 법안 마련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한편으로는 현재 2%의 의무고용율을 더 높여야 한다는 주장도 장애인단체에서는 나오고 있다. 인상폭에 대해서는 아직 일치된 의견이 없지만 현재 장애인 출현율이 3% 이상임을 감안할 때 의무고용율도 3~5% 수준이 돼야 한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장애인고용정책, 지금 어디에 와 있는가. 기금의 안정성 확보와 장애인 고용확대를 위한 제도개선이 어느 때보다도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연윤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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