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주 :
이 글은 월간 작은책 2월호에 실린글입니다. 필자의 동의를 구해 다시 실습니다.
남자로 살아가기…
홍 조
지난주 어머니와 누나, 매형, 조카들이 우리 집을 다녀갔다. 가족들이 모두 살고 있는 부산을 떠나 결혼과 동시에 일산에 자리를 튼 것이 지난 5월이다. 그 후로 7개월 만에 처음으로 누나네 식구들이 방문을 한 것이다. 귀여운 조카 녀석들까지 함께 온다는 얘기에 우리 짝지(아내라는 단어가 왠지 남성과 여성의 성적구분을 의미하는 것 같아 싫었다. 그래서 영어로 파트너를 우리식으로 부르고 싶어서 찾은 단어가 짝지였다)와 나는 아이들과 어느 곳을 관광할지 여기저기 찾아보기도 하고, 무엇을 해 먹을지 생각도 하면서 나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그리고 주말 늦은 저녁 그/녀들이 방문했다. 내가 이 글에서 쓰려고 하는 이야기는 가족 방문기가 아니다. 오히려 4일의 시간을 함께 보낸 후 돌아가서 들려오던 후일담이라 하는 것이 정확하다.
가족들을 부산으로 내려 보내고, 출근해서 오전 일을 마무리 하고 있었다. 점심식사 시간이 다가오기에 어머니께 전화를 해 보았다. 전화기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는 즐거운 점심식사를 방해하기에 충분했다.
“누나가 속이 많이 상해서 내려왔다아이가. 누나는 엄마가 잘못하고 있다고 머라카더라. 니가 와 그리 하는지 이해할 수도 없고, 용서도 안되고... 그 꼴을 보고 가만히 있는 내보고 더 웃긴단다아이가.”
짐작은 했지만, 그 정도 인줄은 몰랐다. 누나네 식구들과 우리 집에서 첫 저녁식사를 마칠 무렵이었다. 손님들이 방문해서 설거지 거리가 많으면, 먼저 먹는 사람이 일어나서 설거지를 시작한다. 오늘은 내가 먼저 먹었다. 언제나처럼 설거지를 시작했고, 마무리하는 동안 짝지는 과일을 준비했다. 하지만 누나의 눈에는 이 광경이 못마땅했던 게다. 어른들도 있는데, 어디서 남자가 주방에서 설레발을 치냐는 생각이었다.
경상도 말로, 눈꼴사나운 모양새라고 했다. 닭살이라고도 했다. 아무튼 화났단다. 다음 날 저녁 모든 가족이 잠자리에 들 무렵이었다. 미리 준비하고 있던 누나와 짝지는 서둘러 길을 나섰다. 새벽에만 열리는 동대문시장 구경을 위해서였다.
아침에 눈을 떠 보니, 짝지가 일어나서 아침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나의 출근을 위해서였다. 그래서 내가 몇 시간이나 잠을 잤냐고 물으니 2시간 남짓이었다. 내가 출근하고 나면, 오늘 하루 종일 식구들 모시고 다녀야 할 짝지를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대충 먹고 갈 터이니, 눈 좀 붙이라고 했다. 하지만, 짝지는 괜찮다고 말하며, 작은 실랑이를 했다. 좁은 집이였던 탓에, 잠들어 있는 줄 알았던 누나가 이 말을 들었던가 보다. 또, 누나는 화가 났다. 하루 정도 잠 덜 잔걸 가지고 성화라는 게다.
나는 그렇게 좋은 신랑이 아니다. 학생 때 곁눈질로 배웠던 가부장적 사회의 역사나 폐해 나부랭이를 들은 것이 다였다. 그리고 여성주의 운동하던 벗들이 몇몇 있을 뿐이다. 그래서, 한 사람이 바깥일을 할 때, 다른 한 사람이 집에서 놀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수준이었다. 결혼 전부터, 퇴근 후에도 집안일은 반반 나누어야 한다고 말했다.
조금 편한 직장에 있었던 지난 8월까지는 실재로 그랬다. 하지만, 지금은 퇴근시간이 많이 늦어져서 집안일 도와주는 신랑이 못된다. 조금 지쳐 피곤하면, 짝지에게 양해를 구한다. 나 오늘은 아무것도 안하고 소파에 누워있으면 안되냐며 말이다. 주말에 조금 집안 일 거드는 것이 전부다. 그런 요즘 생활이 미안해서, 항상 미안하다, 고맙다는 말을 남들보다 조금 더 할 뿐이다.
장인어른께는 죄송하지만, 둘째가라면 서러운 가부장적 가정에서 자란 짝지다. 그리고 여성주의가 뭔지도 모른 채, 무뚝뚝함의 상징인 경상도 남성이 우글거리는 부산에서 평생을 살아 온 짝지다.
그래서 집안일을 못 도울 때면,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을 숨기고 있는 것처럼 불편하다. 그렇게 속고 있기 때문인지, 내가 배우고 옳다고 생각한 평등한 결혼생활의 반의반도 실천하지 않는 나의 모습도 마냥 좋아해 주는 짝지다. 나름 평등하고 싶은 나의 결혼관을 어렵지 않게 받아주시고 배려해 주시는 어머니가 계셨기 때문에, 짝지와 시댁의 갈등은 우리에겐 없는 말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갈등은 다른 곳에서 시작된 것이다. 바로 누나와 나.
누나와 나는 8살 터울이다. 흔히 말하는 업어서 키우다 시피한 동생이다. 고등학교 다닐 때, 악명 높은 야간자율학습은 새벽 1시경에 끝났다. 그러면, 누나가 기다리고 있다가 차를 태워 집으로 오곤 했다.
쉽지 않은 누나의 노력 덕분에 난 의과대학에 합격했다. 그런, 동생이 누나의 마음에 차지 않게 변해간 것은 대학시절이었다. 난 소위 운동권이었다. 여름이면 남들 유럽배낭여행갈 때, 농촌으로 노동현장으로 현장활동 하러 갔다.
남들보다 2년이나 더 학교 다녀야 하는 의과대학인데, 학생회 활동 한답시고 휴학도 했다. 그래도 누나는 동생에게 실낱같던 희망이 남아있었다. 이마저도 사라진 것은 군복무 대신 했던 공중보건의사가 끝날 무렵이었다. 한 때 그러고 말겠지 하던 동생이 이제는 병원에서 수련을 받지 않고, 듣지도 보지도 못한 것을 공부하러 떠나겠다고 하기 때문이다.
생태니 인권이니, 건강이니 따위의 것들을 왜 당신의 동생이 공부해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고, 왜 요상한 운동권 단체들에 들락거리는지 참을 수가 없었다. 아버님이 대학 2학년 때 돌아가시고, 어머님 홀로 계신다.
힘들게 공부시켜 놓았더니, 당신의 엄마 호강시켜주지 못할 동생의 행보가 답답했던게다. 나는 항상 입버릇처럼, 늙어도 내가 지치지 않고 신나게 할 수 있는 일을 할 것이라 말했다. 그러면 돌아오는 누나의 대답은 같다. ‘왜 너만? 남들 모두 힘들게 산다. 하기 싫어도 먹고 살려고 일하고, 자기 일이 신나고 즐거워서 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노? 그냥 의사로 살면 편하고 좋잖아? 다 너 좋으라고 하는 말이다’라고 말이다. 그렇게 누나 마음 심란하게만 했던 동생의 결혼 생활마저 누나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들었던 것이다.
누나도 여성인데 말이다. 안타깝게도 가부장적 가정의 문제를 배워 볼 기회도 없이 그 사회에 적응해 버린 여성이기 때문이다. 누나의 노여움을 천천히 생각해 보면 나도 이해된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누나야, 내는 나이가 들어도 철없는 놈으로 살끼다. 지금은 눈꼴사나운 모양새가, 내 늙고 나믄 당연한 모양새가 될 수도 있다아이가. 누나의 세상살이 방식과 나의 방식이 다르다.
누가 옳고, 누가 그르다고 생각할 문제가 아이잖아. 한 시절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던 모양새가, 다른 시절 되믄 옛것이 되어버리는게 세월아이가. 그라고, 누나야. 나는 사회변화를 위해 열심히 활동하시느라 미처 자신의 가족을 잘 살피지 못하시는 분들 바지끝자락도 몬 따라간다. 그래서인지, 저래서인지, 내는 우리 어머니, 그리고 장모님, 장인어른께 잘 못하는 그런 사람은 안될끼다.
세월 흘러 의사로 성공해서 잘 살고 있을 친구들 만큼은 못하겠지만, 내 마음만큼은 그 누구한테도 안 모지라게 어른들 아낄끼다. 그 어른들 중에는 누나랑 매형도 당연히 포함되는거 알제? 이만큼 서 있게 해줘서 고맙다 누나야. 내 사는 꼬라지 지켜보는게 힘들더라도, 조금만 마음을 열고 바라봐도. 내 그렇게 못난 놈 아이다. 사랑한다 누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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