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창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산추련)


		산추련

		[77호] “달려라! 희망버스

달려라! 희망버스

이김춘택 (금속노조 마창지역금속지회 조합원)

1. 85호 크레인, 생명의 나무

2011년 1월 6일, 두산중공업 배달호 열사 8주기 추모제에 참석하기 위해 가는 차 안에서, 그날 새벽 김진숙 동지가 홀로 85호 크레인에 올랐다는 소식을 들었다. 85호 크레인이라니, 그곳은 김주익 열사의 무덤이자 세상에서 가장 큰 십자가가 아니던가. 김진숙 동지에 대한 믿음은 있었지만 그래도 너무 걱정됐다. 만약 그마저 또다시 십자가를 지게 되기라도 한다면......

85호 크레인 35미터 허공에서 김진숙 동지는 트위터를 시작했다. 그리고 저 아래 아주 작게 내려다보이는 사람들로부터 홀로 고립된 외로운 존재가 아니라 사람들과 소통하며 울고 웃는, 전국 방방곡곡에서 투쟁하는 사람들과 몸과 마음으로 연대하는, 힘겨워 하는 사람들을 오히려 격려하고 힘을 주는, 그리하여 절망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작은 희망을 만들어내는 존재가 되었다. 노동조합 교육을 하러오면 1시간 동안 조합원들의 귀를 쫑긋 세우게 하고 내내 낄낄깔깔거리게 하다가 마침내는 가슴에 뭉클한 것 하나 남겨놓고 가듯이, 집회장 연단에 올라서서는 그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듣는 사람들이 저마다 고개를 숙구고 눈물 뚝뚝 흘리게 하듯이, 김진숙 동지는 85호 크레인에서 세상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온통 철판으로 둘러쳐진, 그래서 겨울이면 사방에 냉기가 쩍쩍 달라붙고 여름엔 태양열 한껏 머금어 뜨겁게 달구어지는 85호 크레인, 김진숙 동지는 그것을 하루빨리 마징가제트나 그랜다이져로 개조해야겠다고 농담처럼 이야기했다. 그러나 한 사람 눕기도 좁은 공간, 키가 큰 김주익 열사는 128일 동안 새우잠을 자야했을 85호 크레인의 심장에 하나의 생명이 숨쉬기 시작하자 강철 크레인은 생명의 나무로 변해갔다. 거기선 ‘호야’라는 식물이 자랐고 상추와 치커리가 수확되어 지상의 사람들에게 내려왔다. 또 때때로 농성장을 지키느라 집에 오래 들어오지 못하는 아빠를 만나러 온 아이들에게는 과자와 사탕이 내려오기도 했다. 노조 지회장이 조합원들을 자본에게 팔아먹은 뒤 만세를 부르고, 법의 이름으로 고용된 용역깡패가 농성자들을 일터에서 몰아낸 날, 자본은 전기를 끊어 85호 크레인을 세상과 단절시키려고 하였지만 김진숙 동지는 태양광 충전기를 이용해 느리지만 더욱 절실하게 희망을 타전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하여 김진숙 동지는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나무가 되고 싶”다고 했다. “크레인에 파란 싹이 돋기 시작하”고 “안전계단의 손잡이들이, 붐대의 철근들이 구불구불 나무줄기로 변”해서 “몇 천 년은 자랐을 법한 거대한 나무가 되”는 꿈을 꾼다고 했다. 그 꿈처럼 생명의 나무, ‘크렌나무’는 100일, 200일 시간이 갈수록 줄기를 뻗고 잎을 늘려 조금씩 조금씩 더 넓고 시원한 그늘을 만들었다. 그 잎에 바람이 잠시 에돌아 가고, 그 줄기에 새들이 내려와 앉고, 그 그늘 아래로 희망버스를 탄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처음엔 7백 명, 그 다음엔 1만 명, 그리고 또다시 1만 5천 명이 크렌나무 그늘 아래 모여 함께 하룻밤을 지새웠다.

2. 진정성,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다

김진숙 동지는 왜 모두 잠든 새벽 홀로 쇠사슬을 톱으로 자르고 크레인에 올라야 했을까. 그는 2010년에도 한진중공업 정문 앞에 작은 텐트하나를 치고 24일 동안 단식을 했다. 2003년 이후 방에 온기를 넣지 않고 잠을 잤던 것처럼 그는 한진자본의 파렴치한 정리해고 앞에서 ‘무엇이라도’ 해야 했다. 그의 소중한 조합원들이 일터에서 쫓겨나고 그로인해 가족들의 삶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마침내는 그 끝에서 몸을 던지게 되는 일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노동운동의 지도자들이 현실을 이유로 뒷짐 지고 한숨 쉬고만 있을 때, 그것이 단식이건, 크레인 고공농성이건, 다른 무엇이건 그는 ‘무엇이라도’ 해야 했다. 비록 그것이 승리를 가져오지 못한다 하더라도, 비록 그것이 희망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는 ‘무엇이라도’ 해야 했다.

이런 그의 마음을 우리는 ‘진성성’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그 진성성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가 ‘무엇이라도’ 하지 않고는 도저히 하루하루를 보낼 수 없었듯이, 그가 다시 환하게 웃으며 땅으로 내려오게 만들기 위해 ‘무엇이라도’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사람들이 크렌나무 밑으로 모여들었다. 어떤 이는 매일 와서 크렌나무를 향해 100번의 절을 올린다. 멀리 사는 어떤 이는 금요일 밤이면 영도로 달려와 이틀 밤을 찬 이슬 맞으며 길바닥에서 자고 일요일 저녁 집으로 돌아가는 일을 몇 주 동안 계속하기도 했다. 비록 와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크렌나무를 물끄러미 바라보거나 가끔 그와 멀리서 눈이 마주치면 손을 마주 흔든는 것뿐이지만, 늦게 와서 미안하다며, 잠시 앉았다가 돌아가서 미안하다며 멀리서 멀리서 사람들이 찾아왔다.

매일 100번의 절을 올리는 것은, 크레인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은 ‘무엇이라도’ 해고 싶은 그들이 가진 진성성의 표현이었다. 물론 절을 하거나 크레인을 바라보는 것으로 정리해고가 철회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그러한 진정성 있는 마음들이 하나둘 모였기에 한진중공업 조합원과 가족들이 지금까지 투쟁을 계속할 수 있고, 그가 오늘도 크레인 위에서 세상을 향해 손을 흔들고 희망을 타전할 수 있었다.

쇠퇴해가는 노동운동에 필요한 것이 이 같은 진성성이다. 특히 노동운동의 지도자들에게 필요한 것이 이 같은 진성성이다. 진성성이 없는 운동은 조합원들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고, 시민들의 마음은 더더욱 움직이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 운동의 지도자들은 진정성보다는 ‘나르시즘’에 취해있다.

정부의 노동법 개악에 맞서 공언했던 총파업을 취소하고, 대신 “완벽한 80만 총파업을 준비하자”며 양치기 소년이 됐던 노동운동의 한 지도자가 사퇴하며 남긴 글의 마지막 문장은 “그리고 기약 없이 외롭지 않겠습니까?”였다. 어려움에 빠진 운동을, 힘겹게 투쟁하는 조합원들을 생각하기보다는 마지막까지 감상적인 문장으로 자신의 감정을 달래는 것이 한때 노동자 시인이었던 그에게는 어쩌면 더 어울리는 것이었을지 모른다.

훗날 가장 무기력했던 위원장으로 기록될 노동운동의 또 다른 지도자는 한해를 마감하는 송년칼럼의 마지막에 “열 건이 넘는 경찰서 출석요구를 받고 있는 내가 다행히(?) 2011년 사업을 직접 챙길 수 있다면 금속노조가 자동판매기가 아니라 조합과 지부와 지회의 간부들이 중심이 되고 2백 40개 사업장 현장 조합원들이 주체가 되는 승리하는 투쟁을 실현하기 위해 모든 것을 걸 것이다.”라고 했다. 이 문장에서 진정성보다는 나르시즘을 느꼈다면 그것은 나만의 편견일까? 어쨌든 그 지도자는 다행히(!) 2011년 사업을 직접 챙길 수 있었지만, 자신의 말대로 모든 것을 걸었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3. 스스로 움직여 희망을 만드는 사람들

희망버스는 어찌보면 2008년 광우병 소고기 반대 촛불과 많이 닮았다. 오히려 내용적으로는 2008년 촛불보다 조금 더 진화한 측면도 있다. 2008년 촛불이 정부의 졸속, 굴욕 협상이라는 민주주의의 문제와 광우병 위험이라는 자신의 직접적인 문제로부터 시작되었다면, 희망버스는 그것이 자신의 문제가 아니라고 여겼던 노동문제까지 그 범위를 확대시켰다. 희망버스에 참가한 사람들은 정리해고가 당장 나의 문제는 아니지만 우리 모두의 문제라고 이야기 한다. 그런 의미에서 희망버스가 김진숙, 85호 크레인, 한진중공업 앞에만 멈추지 않고 “우리는 올빼미가 아니다”라고 외치며 싸우는 유성기업이나, 악질자본과 어용노조와 보수야당이 장악한 지방정부 모두의 ‘노사정 탄압’에 맞서 한진중공업보다 더 먼저, 더 오래 싸우고 있는 전북버스 등으로도 달려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2008년, 촛불의 생생함을 현장에서 직접 느껴보고자 서울에 몇 번 가 보았다. 거기엔 살면서 한 번도 보지 못한 참 희한한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대낮부터 서울 한복판에 모여든 십만 명이 넘는 사람들은 밤이 깊도록 아무도 집에 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은 경찰 차벽 앞에서 물대포를 맞으며 밧줄로 버스를 당기건, 자신이 만들어 온 피켓과 촛불을 들고 길가에 가만히 서있던, 한참 뒤편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건, 아니면 구석구석에서 물에 젖은 몸을 말리며 잠시 쉬고 있건 간에 어디선가 스스로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모여 거대한 촛불의 물결로 일렁이고 있었다.

희망버스도 마찬가지다. 전국 각지에서 시간을 내고 돈을 내서 스스로 달려온 사람들. 그들은 길바닥에서 하룻밤을 꼬박 새우거나 쭈그려 앉아 토막잠 자는 것을 전혀 불편해하지 않았다. 더 나아가 그들은 길바닥에서의 1박2일을 즐기고 있었다. 어떤 이들은 가족단위로 텐트, 버너, 코펠을 챙겨와 마치 캠핑을 즐기고 있는 듯했다. 그래서 다음날 아침이 되면 사람들은 비록 부스스한 모습이지만 구석구석에서 걸어나와 다시 도로를 가득 메웠다. 이 모든 것이 스스로 선택한 일이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희망버스가 보여준 자발성은 관성에 찌든 노동운동의 눈에는 희한한 광경이자 커다란 충격이었다.

지난 주말 서울에서 있었던 4차 희망버스에 함께하지 못한 아쉬움과 미안함에, 일요일 밤 잠시 한진중공업에 다녀왔다. 회장님의 커닝페이퍼로 화제가 되었던 청문회 이후 며칠 전부터 전기가 들어온 85호 크레인에는 불빛이 반짝였다. (그런데 이 치사한 놈들은 김진숙 동지가 있는 곳에만 전기를 넣어주고, 그 밑에 4명의 사수대가 있는 곳에는 여전히 전기를 공급하지 않고 있다.) 김진숙 동지는 그 불빛 속에서 양손을 흔들었다. 멀리서 슬로우비디오처럼 천천히 허공에 선을 그으며 너울너울 손을 흔드는 모습이 거의 예술의 경지에 다다른 듯 아름다웠다.

85호 크레인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한진중공업 조합원과 잠시 얘기를 나눴다. 그는 정리해고자가 아닌 이른바 ‘산 자’였다. 하지만 파업투쟁에 동참했고 그 때문에 지금 현장에 들어가지 못하고 다대포 교육장으로 출퇴근하고 있다고 했다. 내가 창원에서 왔고 금속노조 경남지부 조합원이라고 소개하자 그는 “경남지부 별로 안 좋아한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한 주 전 서울에서 있었던 민주노총 주최의 시국대회 때, 1박2일 행사였음에도 불구하고 경남지부는 올라와서 저녁만 먹고 몇 시간 있다가 그날로 내려갔다며 “그럴꺼면 돈 버리고 시간 버리고 뭐하러 왔냐?”며 화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부끄러웠다. 우리끼리만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치부가 사실은 다른 모든 사람들이 다 알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의 부끄러움이었다. 그리고 미안했다. 버스 대절해 올라와서 밥 먹고 몇 시간 있다 도로 내려가버리는 ‘동지’들을 보며 한진중공업 조합원과 가족들이 얼마나 힘이 빠졌을까 생각하니 많이 미안했다.

4. 무엇이라도 하자

4차 희망버스는 서울로 향했다. 청계광장에서 촛불을 들고, 독립문에서 밤을 지새우고, 인왕산에 올라 청와대를 바라보며 현수막을 내걸고, 남영동 한진 본사에서 물대포를 맞으며 1박 2일을 정리했다고 한다. 아직 5차 희망버스 일정은 발표되지 않았지만, 정리해고가 철회되지 않는 한 희망버스는 멈추지 않고 계속 달릴 것이다.

한 때, 경찰 특공대가 투입돼 85호 크레인을 강제 진압할 지 모르는 등 긴장감이 팽배하던 때가 있었다. 그 때에 비하면 지금은 자본이든 정권이든 섣불리 85호 크레인을 강제로 진압하기는 어려워졌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청문회에 나온 조남호는 끝끝내 정리해고를 철회할 수 없다고 버텼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한겨울 추위 속에 시작된 85호 크레인 위의 싸움이 겨울, 봄, 여름을 거쳐 가을로 향하고 있다. 우리는 혹시 환한 웃음을 잃지 않는, 여전히 목소리 우렁우렁한 김진숙 동지를 보며 그가 300일, 400일, 500일이라도 너끈히 버텨줄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시간은 결코 우리 편이 아니다. 그러므로 정리해고가 철회되고 김진숙 동지가 하루빨리 철계단을 걸어 내려올 수 있도록, 85호 크레인이 고난의 십자가가 아니라 푸르는 생명의 나무가 될 수 있도록 ‘무엇이라도’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