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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중의소리]연쇄 살인 부르는 크레인 사고...왜?

연쇄 살인 부르는 크레인 사고...왜?
장비 노후화, 업체 난립, 법률 미비로 인한 사고...종합 대책 필요해

이재진 기자 besties@vop.co.kr 09-08-25

타워크레인이 사람을 죽이는 기계의 대명사가 되고 있다. 지난 7월 들어 3건의 사고로 6명이 숨지고 10명이 크게 다쳤고, 최근 8월 23일에는 타워크레인 설치 작업 중 3명의 작업자가 추락해 사망하는 끔찍한 사고가 또다시 터졌다. 전국건설노동조합이 파악한 결과 지난 5년간 크레인 사고는 80여건으로, 약 60여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다. 건설노조 관계자는 연이어 터지는 타워크레인 사건을 “타워크레인의 살인”이라는 말로 단적으로 표현했다.

타워크레인은 왜 연쇄살인의 주범이 됐을까? 우선 타워크레인 사고의 유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크레인 사고는 보통 크레인 설치․해체시 사고, 장비 노후화에 의한 사고, 추락 사고 등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이중 크레인을 설치하거나 해체할 시 발생하는 사고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23일 발생한 크레인 사고 역시 하루빨리 설치나 해체를 해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일어난 '고질적인' 사고라는 지적이다.

연쇄살인범, 크레인

타워크레인 업체는 지난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본격적으로 생겨나기 시작했다. 외환위기 이전에는 건설회사가 자체적으로 크레인을 보유하고 크레인 기사와 엔지니어를 둬 체계적으로 장비를 관리했다.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 결과 건설회사들은 아웃소싱 형식으로 중장비를 판매․매각한 결과 약 700여개의 크레인 업체들이 생겨났다.

건설회사가 크레인 작업을 타워크레인 업체에 맡기는 하도급 단계는 1단계로 끝나지 않는다. 하청을 맡은 크레인 업체는 또다시 크레인을 설치 해체 하는 사업자를 물색해 일을 맡긴다. 하도급 단계가 많아지다 보면 작업 수주단가는 낮아지고 크레인 설치․해체 업체는 단가를 맞추기 위해 촉박한 일정에 쫓길 수 밖에 없다.

특히 크레인 설치․해체(T자형 크레인 기준)는 베이직 마스터 설치를 시작으로 총10여개 단계를 거치는 데 설계검사 도면을 준수하고, 기초부 등 주요 구조부의 구조, 치수, 형식 등을 변경하는 경우 안전인증을 거쳐야 한다. 시간이 걸릴 수 밖에 없는 작업이다.

전국건설노조 박종국 노동안전국장은 “개인 하도급 사업자는 크레인을 한 대라도 더 설치․해체하려고 안전수칙을 어겨가면서 작업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크레인 임대 사업자가 덤핑으로 수주 사업을 하는 것도 문제다. 크레인 임대업계에서 보통 하루 10시간 노동을 기준으로 크레인 기사를 포함해 한달 임대료가 600만원 정도인데, 남는 게 없다보니 노후된 부품을 교체하지 않는 등 장비점검에 소홀할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건설노조는 “타워크레인의 적정 임대료가 형성돼 있지 않을 뿐더러 이 업체들에게 체계적인 안전관리를 기대하기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다. 최근에는 자사장비 1대도 없이 타워조종사를 인력 파견해 중간착취를 하는 인력파견 소사장 용역 업체들이 생겨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고철 덩어리 크레인이 사고 부른다

장비의 노후화로 인한 사고는 관련 법률을 제때 정비하지 않은 결과가 크다. 이유는 간단하다. 다른 중장비의 경우 건설기계관리법상 정기검사와 제작조립 기준을 적용받았지만 크레인은 건설기계가 아닌 산업안전보건법상 ‘유해ㆍ위험기계’로만 분류돼 있었기 때문이다. 아파트 골조공사의 절반 이상을 담당하고 있지만 크레인은 건설기계 등록 의무화 규정도 없어 타워크레인 업체는 신고만 하면 임대사업이 가능했다. 우후죽순 타워크레인 업체가 생겨날 수 밖에 없었고 안전 규정도 형식에 그칠 수 밖에 없었던 구조였던 것이다.

그 결과 건설 현장에서는 일명 ‘짝퉁 짜깁기’ 크레인이 판을 쳤다. 시중에 유통되는 장비 대부분이 동남아시아에서 불법으로 낡은 부품을 들여와 교체하는 수법으로 새것처럼 보이게 하면서 장비 노후화로 인한 사고로 이어졌다.

한 타워크레인 기사는 “크레인에 올라 작동해보면 마스터(본체)가 부식돼 있고, 모터와 기어 돌아가는 소리를 들으면 어느 정도 노후화됐는지 알 수 있어 불안할 때가 많다”고 털어놨다.

현장에서 전문적인 신호수를 필요로 하지만 건설업계가 신호수를 도입하지 않은 것도 크레인 사고을 부르고 있다.

신호수는 중장비의 특성과 공장구조의 문제점, 노면상태 등 작업의 위험한 요소를 크레인 기사에게 알려줘 미연에 사고를 방지할 수 있는 역할을 한다.

건설노조 관계자는 “신호수가 있으면 사전에 방지할 수 있는 크레인 사고가 약 70% 정도라고 파악하고 있다. 신호수 배치하라는 규정은 있지만, 자격에 대한 기준이 없다보니 현장에서는 전문지식이 없는 아르바이트를 쓰고 있다”고 말했다.

공사현장 관계자도 “전문적인 신호수하고는 눈빛만 봐도 서로 통할 정도인데, 보통 신호수가 없으면 공사 팀장이 무전기를 잡고 지시하는 경우 신호를 인식하지 못할 때가 많다”고 전했다.

정부 당국 종합적 대책 필요해

정부는 뒤늦게 수습에 나섰다. 건설노조가 지난 2008년 크레인을 건설기계로 등록해 줄 것을 요구하자 정부는 건설기계관리법을 개정해 관리 감독권을 노동부에서 국토해양부로 이관하고 크레인 장비 등록을 의무화했다. 기존 사업자가 등록기준 요건을 갖추도록 2년 동안 유예기간을 둬 올해 말까지는 크레인을 등록해야 한다.

건설노조는 등록 의무화 규정이 정착되면 장비 노후화로 인한 사건 사고가 크게 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지만 아직 낙관하기는 이르다. 대형 크레인 업체는 등록의무화에 찬성하지만 대부분의 소규모 크레인 업체가 등록을 꺼리고 있기 때문이다.

국토해양부 건설인력기재과에 따르면 지난달 등록된 크레인 수는 70여대에 불과하다. 전국에 약 4~5000여대(건설노조 추정)의 전체 크레인 수에 비하면 턱없이 모자라는 수다.

의무화 등록 절차 요건에는 일정정도 자산규모(법인 5억, 개인 5천만원)를 보유하고 있어야 하고, 중장비 보유 요건(법인 4대, 개인 2대)을 갖춰야 한다. 또한 자체적으로 A/S를 할 수 있는 능력도 검증받아야 한다. 한마디로 일명 ‘타워업’을 하려면 높은 진입장벽을 넘어서야 하는 것이다.

건설노조 박종국 노동안전 국장은 “현재까지는 사실상 진입장벽이 없다보니, 30% 정도를 제외하고는 중장비 회사로써 갖춰야할 자산규모나 건실한 운영 등의 능력을 갖추지 못하고 1~2대의 중장비로 운영하는 영세업자가 많다”고 전했다. 이번 등록 의무화 규정을 통해 수많은 크레인 업체를 정리하고 관리감독을 강화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소규모 크레인 업체는 하지만 이에 반발해 ‘크레인은 건설기계가 아니다’며 헌법소원까지 제출해 건설기계관리법 개정의 미래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국토해양부 관계자도 “크레인을 등록하지 않고 영업을 하게 되면 2년 이하 구속과 1000만원의 벌금을 물리게 된다”면서 등록 의무화를 강조했지만, 등록률을 높이기 위한 적당한 방안이 없는 실정이다.

사고 위험에 노출돼 있는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세심한 법적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지난 7월 정부는 '건설현장 산재예방 자문단 기구'를 발족해 학계, 건설업계 인사를 초정해 의견을 청취했지만, 노동계 인사는 단 한명도 자문단에 포함되지 않았다. 현장의 위험성을 가장 잘 알고 있는 노동계를 파트너로 받아들이지 못하면서 사고 위험이 더욱 커지고 있는 셈이다.

현장에서 일하는 크레인 기사의 말은 현장의 목소리가 왜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크레인 기사는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르면 풍속 20m/s가 넘으면 작업을 금지하도록 돼 있는데, 10m/s만 넘어가도 작업이 위험하지만, 종종 작업을 할 때도 있다”고 말했다. 크레인 기사가 언급한 산업안전보건법은 독일 등 국제 기준을 반영한 결과인데, 외국의 경우 8층 이상의 고층 건물을 짓는 경우가 많지 않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크레인을 동원한 건축물은 8층 이상의 고층건물이 대부분이어서 관련 법 규정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평가다.

박종국 국장은 “이명박 정부가 건물과 건물사이 폭을 좁혀 짓을 수 있도록 하고, 고층건물을 계속 세우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크레인이 전복되면 건물이나 도로에 쓰러져 건설노동자 뿐 아니라 일반 시민들도 죽을 수 있는 엄청난 재앙이 뒤따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건설회사가 전문적인 엔지니어만 보유하고 있어도 상당부분 크레인 사고를 막을 수 있다는 지적도 많다. 엔지니어는 총40여종에 이르는 크레인의 고유 특성과 작동 방식, 부품 교체 여부 등을 알 수 있어 계약 체결 당시부터 장비가 노후화된 업체를 걸러낼 수 있다. 감리 업무 범위를 건축물뿐 아니라 중장비 업무까지 포함하는 것도 크레인 사고를 막는 길이다.

결국 정부 당국은 ▲건설회사에 대한 근본적인 재발 방지 대책 촉구 ▲크레인 등록 의무화를 통한 업체 난립 방지 ▲현장 목소리를 반영한 법률 개정 등 종합적이고도 세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연쇄살인범’이라는 딱지는 또다시 크레인을 따라다닐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