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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추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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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그늘, 직업병] Ⅲ - 2. 재활과 복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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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직 걱정에 맘 편한 치료 엄두 못내
A중공업에서 20여년간을 일한 이영호(55·가명)씨.
이씨는 지난해 6월 관절염으로 산재승인을 받고 치료 중이었다. 동료들 보기가 미안해 '하루라도 빨리'를 되뇌며 재활의지를 키워가던 이씨에게 지난 3월 회사 측 관계자가 찾아왔다. 안부인사를 왔는가 싶어 반색했던 이씨는 이내 돌처럼 굳어지고 말았다. '내년이면 정년퇴직인데 이쯤에서 사표를 쓰는 게 어떻겠느냐'는 얘기였다. 회사 측 관계자는 복직을 하더라도 잔업,특근 등 연장근무를 통제할 경우 퇴직금에 불이익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엄포성 설명'도 빼놓지 않았다.
이씨는 그날 이후로 수차례에 걸쳐 '전화·방문 압력'에 시달려야 했다. 확답을 미루며 버티길 한 달쯤,이씨는 백기를 들고 말았다. 당장 처자식 먹고살 일이 걸렸다. '청춘을 바친 대가가 이건가 싶어 억울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H주식회사 근무 10년차인 배우연(34·가명)씨.
배씨는 지난 2월 추간판탈출증으로 산재승인을 받았다. 서너달 전,배씨는 운동요법이 치료에 도움을 준다는 병원책자를 보고 '수영해도 되겠느냐'고 근로복지공단(이하 복지공단)에 문의를 했다. 하지만 되돌아온 건 '디스크 환자가 치료나 잘 받으면 됐지 수영은 무슨 수영이냐'는 면박이었다. 행여나 싶어 담당의사에게 조언을 청했지만 소용없었다. '공단 눈치가 보여서 좀 그렇다'는 의사의 궁색한 답변이었다.
직업병으로 요양 중인 노동자들이 재활과 복귀 때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치료받다 병이 깊어진다는 그들의 냉소는 과장이 아니다. 이래저래 현실에 치이다 보니 산재 노동자들의 불안감은 심각한 수준이다. 본사와 한국노동안전보건부산연구소가 공동기획한 최근 심층조사(6일자 1,3면 보도 참조)에 따르면 산재 노동자 10명 중 7명이 스트레스 위험군이었다. 그렇다면 산재 노동자가 처하고 있는 현실은 어떤 모습일까. 우선 재활부터 보자.
현행 재활 정책으로는 재활훈련원 운영,자립점포 임대·재활스포츠 지원,사회적응 프로그램 운영 등이 있다. 이 중 재활스포츠지원 사업은 매번 정원을 초과할 정도로 산재 노동자가 몰리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재활프로그램이 원직장 복귀를 희망하는 노동자들의 바람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는 점이다.
재활훈련원을 비롯한 재활프로그램 대개가 새로운 직종 혹은 창업을 위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재활훈련원 등 요양시설은 산재 노동자 숫자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재활훈련원의 경우 안산과 광주 등 전국에 2군데뿐이다.
마창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 이은주 사무국장은 '우리 사회의 산재 노동자 재활 시스템은 아직도 걸음마 단계'라면서 원직 복귀를 위한 사회적 기반을 확충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산재보험으로 비용처리되지 않는 치료항목 앞에서 씁쓸히 돌아서는 노동자도 많다. 재활치료가 주로 겉으로 드러난 '외상'치료에 머물고 있어서다. 심리재활치료 등은 극소수의 노동자에게만 적용되고 있다. 일례로 심리상담이 그렇다. 심층조사에서 산재 노동자 10명 중 8명이 필요하다고 밝혔지만,실제로 치료를 받은 노동자는 10명 중 1명에 불과했다.
이와 함께 치료비 자비부담은 노동자와 그 가족을 괴롭히는 사안. 산재보험은 기본적인 의료보험 급여항목 외에 MRI 등 몇 가지 항목만을 추가해서 이를 인정하고 있다. 그밖의 치료는 노동자가 제 나름껏 해결하는 도리밖에 없는 셈이다. 인제대병원 김정원 교수는 '재활은 노동자가 질환을 치유하고 심리적으로 안정된 상태에서 작업장에 복귀토록 하는 게 원칙'이라면서 '심리·직업재활·직장복귀상담,운동요법 등을 외상 치료와 연계하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요양종결을 앞둔 노동자들의 가장 큰 걱정은 복직을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노동부에 따르면 6월 현재 직장복귀율은 40% 수준. 결국 상당수 노동자는 다른 일자리를 찾거나 사회적으로 방치된다는 얘기다. 민주노총 부산본부 정상래 산업안전국장은 '그 배경은 복합적이겠지만 산재 노동자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직장문화가 한 요인일 것'이라면서 '회사 측은 손실 차원으로 산재를 다루고,중간관리자와 일부 동료들은 '나도 너만큼 아픈데…'라는 식의 따가운 눈초리를 보내는 게 현실'이라고 전했다.
회사 측으로부터 복직 통보 대신 권고사직 형태로 사표를 강요당한 노동자도 부지기수다. 정 국장은 '심지어 요양종결 후 복귀하려고 했더니 회사 측에서 조금 기다려 보라며 보직을 주지 않고 마냥 미루는 일도 심심찮게 벌어진다'고 덧붙였다.
운좋게 복직을 해도 문제는 남아있다. 통상 노동자들은 작업장 구조나 환경,노동강도가 변하지 않는 상태에서 그대로 복귀한다. 특히 노동자 입장에선 생계비를 벌기 위해 잔업 등 연장노동을 선호할 수밖에 없어 직업병 재발은 시간문제라는 게 부인 못할 현실이다.
이 때문에 산업의학계는 노동환경을 바꾸기 위한 역학조사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역학조사를 통한 유해인자 추적·제거는 복귀를 앞둔 산재 노동자뿐 아니라 그 동료의 건강을 지켜내기 위한 전제조건이라는 것.
그러나 이 역학조사가 현재 제 역할을 못하면서 노동계의 불신을 사고 있다. 울산산재추방운동연합 현미향 사무국장의 얘기를 들어보자. '그동안 역학조사는 직업병이 발생하고 난 뒤에 뒷북치는 식으로 운영돼 왔다. 또 역학조사 결과가 나와도 형식적으로 대충 훑어보고 지나가 버리니 노동자들이 어떻게 신뢰할 수 있겠는가.'
역학조사 조건이 지나치게 까다로운 것도 한계로 지적받고 있다.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르면 역학조사 의뢰는 산업안전보건위원회의 의결을 거치거나 노사합의를 통해서 가능하다. 즉,노조가 아무리 역학조사를 외쳐도 사업주가 'NO'를 선언하면 끝이란 뜻이다. 이렇다 보니 역학조사는 매년 70여건 정도에 그치고 있다.
부산대병원 강동묵 교수는 '산재 노동자 원직 복귀 시스템과 역학조사 강화는 직업병을 줄이기 위한 양대 축'이라면서 '작업현장 위험도를 노동자가 먼저 알아야 한다는 알권리 차원에서,미국처럼(오른쪽 상자기사 참조) 노동자들 의뢰만으로 역학조사가 가능하도록 법이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태섭기자 tslim@busa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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