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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희롱 피해자 두 번 죽인 근로복지공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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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희롱 피해자 두 번 죽인 근로복지공단
"성희롱 당한 것 재현해봐라"... 국가기관에 의한 2차 가해
2011년 09월 26일 (월) 강정주 편집부장 edit@ilabor.org
근로복지공단이 직장 내 성희롱으로 정신질환을 얻었다고 산재요양신청을 한 여성노동자를 조사하면서 피해자에게 수치심을 주고 가해자의 입장을 대변한 것으로 밝혀졌다.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성희롱 및 부당해고 피해 여성노동자 지원대책위원회는 9월26일 기자회견을 열고 근로복지공단의 이같은 행위를 규탄하며 성희롱 피해자 조사 지침 마련과 성희롱으로 인한 정신질환을 산업재해로 인정하라고 촉구했다.
회사 관리자에게 수차례 성희롱을 당하고 부당하게 해고된 현대차 아산공장 여성 사내하청 노동자는 지난 7월 22일 근로복지공단에 성희롱 피해로 인한 불안우울장애와 적응장애에 대한 산재요양신청을 접수했다.
지난 1일 근로복지공단 천안지사에서 피해자에 대한 첫 조사가 진행될 때 발생했다. 피해자에 따르면 이날 조사를 진행한 남성 조사관은 피해자에게 “성희롱 당한 내용을 그대로 재현해보라”고 요구하거나, 피해자가 답변할 때 머뭇거리면 “다 알고 있으니 얼른 말하라”고 하는 등 고압적인 태도로 일관했다고 한다.
조사는 네 시간이 넘게 진행됐고 피해자는 성희롱 피해와 부당해고에 따른 정신적 고통을 진술했다. 하지만 근로복지공단이 작성한 문답서 확인 결과 피해자의 진술 내용은 삭제된 상태였다. 권 대리인은 “가해자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가리기 위해 지금도 피해자가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몰아가고 있는데 근로복지공단의 문답서 내용은 가해자의 입장에서 피해자를 또 다시 괴롭히는 행태”라고 규탄했다.
피해자 대리인인 권수정 현대차사내하청지회 조합원은 “이미 국가인권위원회에서도 성희롱이라고 인정한 사건에 대해서 왜 소장 전화를 녹음했냐, 조장이 왜 그런 문자를 피해자한테 보냈냐는 것을 물어보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이혼은 왜 했냐, 아이들과 살면서 힘든 점은 없었냐, 이전 회사에서 동료들과 갈등은 없었냐, 주량은 얼마나 되냐 등 성희롱 사건과 상관없는 피해자의 개인적 내용을 왜 묻는 것이냐”고 조사 당시 문제점을 지적했다.
권 대리인은 “국가인권위 외에는 성희롱 여부를 판단할 수 없다. 이미 인권위에서 조사하고 성희롱이라고 판단한 결과에 대해서 타 기관은 존중해야 하는 것”이라며 “그런데도 피해자는 1년 동안 자신이 성희롱 당한 내용을 다섯 차례나 조사를 받아야 했다. 도대체 피해자가 언제까지 고통을 겪어야 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성폭력상담소도 의견서를 내고 근로복지공단 조사 과정의 문제점을 밝혔다.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의견서에서 “직장 내 성희롱으로 인한 산업재해 여부를 조사하기 위해서는 현대자동차와 금양물류가 평소에 성희롱 혹은 과도한 성적 농담이 행해지는 일터였는지, 사내에서 성별 권력과 위계가 존재했는지, 성희롱 예방 교육을 실시했는지 등을 분석했어야 한다”며 “하지만 이번 문답서에는 피해자가 ‘대기업 사내하청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라는 고용형태의 취약함 조차 언급하고 있지 않다”며 문답서의 부적절함을 지적했다.
또한 성희롱 경험으로 인한 정신적 충격으로 산업재해를 신청한 당사자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조사 절차에 대해서도 “물리적 재해를 당한 노동자의 상처부위를 위협하는 것과 똑같은 행위”라고 유감을 표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한국성폭력상담소 토리 활동가는 “단체에 상담하는 피해자 중 30%가 직장 내 성희롱을 당하고 있고, 이는 근로복지공단과 노동부가 직장 내 성희롱 문제를 심각하게 다뤄야한다는 뜻”이라며 “그런데도 이번 사건에서 오히려 국가기관이 성희롱 피해자에게 2차 피해를 가한 것에 대해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고 규탄했다.
이미 2008년 법원은 성폭력 피해자가 수사기관의 조사 과정에서 2차 피해를 입었다며 국가가 손해배상 해야 한다는 판결을 한 바 있다. 경찰도 성폭력 사건에 대해서는 ‘성폭력 피해자 인권 침해 방지 대책’에 따라 △피해자의 요청 유무와 상관없이 여성 경찰이 조사 △반복조사가 유발하는 피해자의 인권 침해 방지 등을 하도록 하고 있다. 이번 근로복지공단의 조사 과정은 이러한 내용마저 무시한 것이다.
기자회견 참석자들은 이에 대해 “남성조사관이 여성 피해자를 조사하고 국가인권위에서 성희롱이라고 이미 결정된 사안에 대해 가해자의 입장에서 반복되는 질문을 해 피해자에게 심리적 고통을 안기는 반여성적, 반인권적, 구시대적 조사의 극치”라고 비난했다. 이들은 근로복지공단에 항의서한을 전달하고 △9월1일 조사에 대한 사과의 시정 △성희롱 피해자 보호 조사지침 마련 △직장 내 성희롱 피해로 인한 정신질환 산업재해 인정 등을 요구했다.
피해자는 지난 1일 조사 문답서 폐기와 재조사를 요청했지만 근로복지공단 측은 이미 조사를 진행한 문답서를 폐기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26일 오후 1시부터는 이에 대한 2차 조사가 진행된다. 피해자는 이 자리에서 지난 1차 조사 문답서의 문제점을 밝힐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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