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호]애초에 위험한 작업을 신고하고 거부할 권리가 보장된다면 일하다 죽는 일들이 반복되지 않을 것이다

[일터에서 온 편지]
작성자
mklabor
작성일
2023-05-15 17:33
조회
57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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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재갑 거통고조선하청지회 노동안전보건부장


산재는 정규직들만 신청하고 혜택을 보는 제도라는 생각이 든다. 하청노동자들도 산재 제도를 알고 있고 스스로 권리를 찾아야 하지만 정작 산재를 신청하고 난 뒤에 보이지 않는 피해가 너무도 크기 때문에 감히 용기를 내지 못한다.

본인은 20년 정도 조선소에 근무하면서 절반 이상은 현장관리자로 일하면서 많은 사고를 목격하고 사고조사·처리 업무도 하고 사고에 대한 재발방지 대책을 세우기도 했다. 사고가 나면 사전에 원청 관리자로부터 서류 내용을 검사받고 공식서류로 올라가는 구조였는데 결론적으로 비용이 지출되지 않는 방식과 재해자의 과실로 보고서가 작성되어야 통과될 수 있었다. 이러하니 서류상으로는 회사는 책임이 없고 재발방지 대책도 완벽해 보인다. 그러나 사고는 계속 발생한다. 노동부도 진짜 원인을 알면서 애써 모르는 척하지 싶다.

안전교육도 부실하기는 마찬가지이다. 항상 종이서류로만 대책을 세우는 형식적인 교육에 우리는 내용도 모르면서 싸인부터 하고 본다. 원청의 안전보건관리규정에는 원청이 하청노동자의 안전교육 자료 및 장소 등을 제공하게 되어있는데도 내용이 부실한 것인지 교육을 하는 사람의 자질이 부족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결론은 늘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아서 사고가 발생하는 것처럼 마무리 된다. 쉽게 말해 안전교육 시간은 관리자의 잔소리 시간에 불과하다.

이처럼 현장노동자로 일하게 되면서 하나하나 권리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안전교육 서명 거부도 했었고 다치면 산재 신청하고 임금인상과 처우 개선을 외쳐 왔다. 바보가 되고 이상한 사람이 되고 뭔가 문제가 있는 사람처럼 될 것이라 예상은 했지만 막상 겪고 보니 쉽지 않은 시간이었고 지금도 견디고 있다는 표현이 맞겠다. 그러다 보니 회사는 강제로 반 이동 및 보직변경을 하기도 했는데, 이처럼 회사는 권리를 요구하면 불이익이 생긴다는 것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그렇지만 혼자 싸워도 회사가 아주 힘들어한다는 것을 느꼈다. 다만 힘들어는 하는데 무서워하지는 않는 듯하다. 혼자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회사도 잘 알고 있어서일까? 그래서 더욱 멈출 수 없다. 얼마 전 처음으로 본인이 일하는 작업장의 작업환경측정을 진행했는데, 회사에 소음, 분진, 용접흄 노출로 계속해서 측정을 요구했지만 무시되었고 이에 노동부 위험상황 신고센터에 전화하자 산업안전보건공단과 원청HSE에서 나와서 작업환경 측정을 진행한 것이다. 물론 측정 결과 및 현장 개선 등은 계속해서 싸워나가야 하지만, 측정이 진행되도록 정부와 원청을 움직이게 한 것은 다름 아닌 적극적인 현장투쟁에 있었다.

이러한 현실을 볼 때 원청HSE 현장관리 시스템은 대폭 개선되어야 한다. 사내 하청업체에서 산업안전보건위원회가 제대로 구성·운영되고 있는지, 작업환경측정은 제대로 하고 있고 개선조치가 이루어지고 있는지는 전혀 관심이 없고 지적질(갑질)을 주로 하기 때문이다. 이마저도 하청노동자에게는 더욱 차별적인데 작년 6월 7일, 위험상황을 원청에 제보했다는 이유로 다음날 회사 관리자에게 둘려 쌓여 폭언에 쓰러진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이처럼 현장에서는 위험상황 신고, 위험작업 거부는 진짜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 대외 홍보용에 불과했다.

지금의 시스템으로는 절대로 중대재해를 줄일수 없다. 본인이 법을 잘 알아서가 아니라 직접 권리를 요구하며 몸으로 겪은 경험에서 나오는 말이다. 법으로 보장된 기본적인 권리조차 폭언으로 차단되는 시스템인데 무엇이 지켜지겠는가?

끝으로 산재와 공상을 구분할 것이 아니라 무조건 산재로 치료받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앞서 설명했듯이 보복행위 때문에 산재를 못하는 것이기에 절대 선택권의 여지를 두어서는 안된다.
애초에 위험한 작업을 신고하고 거부할 권리가 보장된다면 일하다 죽는 일들이 반복되지 않을 것이다. 다치고 병들어도 제대로 치료받을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된다면 중대재해는 현저히 줄어들 것이다. 그러기 위해 부족하지만 계속해서 싸워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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