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호] 우리에게 노안활동은 꽃놀이패인가?

[초점]
작성자
mklabor
작성일
2017-03-24 15:50
조회
2661
게시글 썸네일
안규백 (한국지엠지부 조합원)

‘꽃놀이패’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알고 보니 바둑용어더군요. 대략 뜻풀이를 해보자면 한쪽은 패하면 큰 손실을 입고, 상대편은 패해도 별 상관이 없는. 즉, 한쪽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패 정도로 풀이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에게 노안활동은 어느 쪽인가요?

장면1
거의 완성된 자동차의 바퀴에 너트를 자동으로 체결해주는 장비가 바닥으로 추락했습니다. 해당 작업자의 다리 방향으로 추락했으면 큰 사고를 당할 뻔 한 아찔한 순간이었습니다. 작업자는 바로 장비 수리를 담당하는 보전 작업자들에게 연락했고, 보전 작업자들은 컨베이어 라인의 가동을 멈추지 않고 회사의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기본적인 안전 작업수칙조차 지키지 않고 작업을 시작합니다.
자동차 제조 시스템의 특성상 이곳에서 공정이 멈추면 해당 자동차의 전체 생산이 멈춥니다. 이때 우리는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고 이 문제를 바라봅니까?
'작업자가 다치지 않았으니 별일 아니야? 멈추면 손실이 얼만데? 'vs '동종 유사 재해의 예방과 2차 사고방지를 위해서라도 라인 가동을 멈추고 장비 추락의 원인을 정확히 조사하고 분석해서 근본적인 원인을 제거하고 개선해야 해.'

여러분의 생각은 어느 쪽인가요?

장면2
평소엔 괜찮다가 일을 하러 작업장에 들어오면 머리가 심하게 아프고, 심할 때에는 구토 증상을 보이기도 합니다. 이곳은 자동차 엔진을 구성하는 부품을 가공해서 만드는 공장이예요. 이름 모를 수많은 절삭유와 가공유들이 쓰이고 있어요. 그런데 해당물질이 인체에 어떤 독성을 지니고 있는지 제대로 된 교육이 진행된 적이 없으니 알 길도 없습니다. 안전보호구로 방진 마스크를 지급하고는 있으나, 불편해서 잘 착용하지도 않으며, 엄격하게 관리되고 설치되어 있어야 할 국소배기장치나 환기시설은 잘 설치되어 있지도 않고, 그나마 설치되어 있는 것은 제대로 작동을 하지 않습니다.
회사는 지어진지 오래된 공장의 특수한 상황을 이야기 하며, 지금 문제되고 있는 부분을 모두 개선하려면 공장을 새로 짓거나 할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 하듯 얘기합니다. 이런 어쩔 수 없다는 체념 속에 작업자들은 원인 모를 암 등의 질병으로 짧은 생을 마감합니다. 하지만 회사가 어쩔 수 없다고 얘기하는 부분에는 정말 어쩔 수 없는 건 별로 없습니다. 회사가 하소연 하듯 완벽한 개선을 위해선 공장을 새로 지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고도 현재 최악의 상황을 얼마든지 개선할 수 있었습니다.

현장에서 노안활동을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한 다짐이 노안활동을 꽃놀이패로 만들지 말자였습니다. 하지만 제 스스로도 지난 10여년의 현장 노안활동을 돌아봤을 때 과연 이 다짐을 얼마나 지켜가고 있는 가 반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노안 감수성 그리고 새로운 흐름

결국 꽃놀이패 논란도 생명의 가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저는 개인적으로 노안활동에 대한 감수성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이윤보다 생명을’이라는 구호에 선뜻 동의하지 못하거나 머뭇거린다면 어찌 현장에서 노안활동을 고민하고 실천할 수 있겠습니까? 물론 이런 감수성들을 더욱더 키워내고 업그레이드 하는 건 우리 모두의 숙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새로운 흐름입니다.
이건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서 어렴풋이나마 느끼게 된 점들을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흔히들 말로는 누구나 비정규직과의 연대를 쉽게 이야기 하곤 합니다. 단순히 그분들의 투쟁에 함께 하는 것만이 전부일까를 고민해봤습니다. 비정규직도 역시나 노동조합을 통해 조직된 분들도 계시지만 상대적으로 그렇지 않은 분들은 더 열악한 상황에 처해 있곤 했습니다. 적어도 노동안전보건에는 정규직, 비정규직이 따로 있을 수 없다는 생각으로 함께 뭔가를 고민하고 실천해보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상대적으로 더 열악한 비정규직들의 작업환경 개선을 위해 함께 요구해 나가는 것.
당장의 거대한 변화를 이끌어내기보다는 아주 작지만 새로운 흐름을 하나 정도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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