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호]드라마 <소년의 시간>을 누굴 ‘가르치기’ 위해 사용하면 안되는 이유

[인권이야기]
작성자
mklabor
작성일
2025-08-04 15:25
조회
127
게시글 썸네일

              진냥 전교조 경남지부 정책실장 


 

탄핵정국에 한 드라마가 화제가 되었습니다. 넷플릭스 <소년의 시간>인데요. 이 드라마는 13살 소년이 또래 여학생 살해 혐의로 체포되는 충격적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드라마에 나오는 13세 소년은 스스로를 ‘인셀(Incel)’이라고 부릅니다. ‘인셀’은 비자발적 순결주의자(Involuntary celibate)의 줄임말로, 이 세상이 잘못되어 연애도 못하고 섹스도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인셀의 대표적인 주장은 ‘80:20 이론’인데, 상위 20프로의 돈많고 매력적인 남성들이 섹스자원의 80%를 모두 누리고 있고 여성들은 이 상위 계급 남성들과 섹스하고 싶어 안달하며 함부로 살다가 나중에는 ‘일반적인’ 남성에게 정착해 돈을 착취하며 사는 비도덕적 집단이라는 논리입니다. 한국에서도 흔한 퐁퐁남 프레임과 유사하죠. 이런 맥락에서 인셀 커뮤니티들은 남성을 선택하는 건 여성이고 이 사회의 권력이 여성들에게 장악되어 있기 때문에 여성혐오는 잘못된 세상을 바꾸기 위한 정치적이고 정당한 행위로 여깁니다.

일상에서도 여성을 차별적으로 대하거나 심지어 적대시하고 각종 평등정책을 반대하지요. ‘대안우파’라고 불리며 새롭게 등장한 또다른 보수세력이 여성혐오와 반-성평등 성향을 보이는 것 역시 인셀문화와 맞닿아 있습니다.
다시 말해 개인적으로 편견에 휩싸인 무식한 사람이 혼자 성차별을 일삼는 것이 아
니라 조직적으로, 집단적으로 행동하며 공격적인 태도로 분노를 드러내는 ‘세력’으로서 우리 사회에 나타난 것이죠. 드라마 <소년의 시간>은 이렇게 체계적인 여성 살해 동기를 가진 13세 소년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아빠: 나는 어릴 때 맞고 자랐지만 제이미에게 대물림하기 싫어서 절대 손 대지 않았어.
엄마: 우리는 잘못 없어. 딸과 아들에 대한 양육방식은 동일했거든.
아빠: 그런데 왜 아들 제이미만 저렇게 되었을까?

제이미의 부모는 아들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 없어 합니다. 이해할 수 없기에 괴물같이 보기도 하죠. 드라마 <소년의 시간>은 제이미가 온라인 공간에서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혐오적인 생각을 가지게 되는 과정은 공포스럽기까지 합니다. 공교롭게도 한국에서는 탄핵 정국에 이 드라마가 공개되었고, 복잡한 정치적 상황과 연결되어 이 드라마가 해석되었습니다. 윤석열의 계엄선포는 여러면에서 충격적이었습니다. 윤석열이 체포되면서 젊은 남성 청년들에게 뉴스를 보지 말고 유튜브를 많이 보라는 말을 남기는 장면은 제이미가 인셀 커뮤니티에 의존하게 되는 모습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왜 아들-젊은 남성들은 탄핵 집회에 나오지 않는지, 반(대)탄(핵)집회에 나오거나 서부지검 폭동처럼 보수적이고 혐오적인 폭력을 행사하는 남성들을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에 대한 사회적 고민이 폭발했습니다. 드라마 <소년의 시간>은 이런 고민들을 하는 사람들에게 엄청난 주목을 끌었죠. 많은 시민사회단체에서 <소년의 시간>을 함께 보며 남성 청년 및 청소년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지 토론했습니다. 한 대학교수는 자신의 아들을 ‘구원’한 스토리를 SNS에 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모습들은 참으로 민주적이지 못합니다. 오히려 차별적이고 권위적이기도 합니다. 왜냐구요? 여성혐오, 극우세력의 공격적 가시화, 이런게 청소년이나 젊은 세대만의 특징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인셀 문화를 젊은 세대가 어디서 독립적으로 발명해온 것이 아니니까요. 한국사회는 김대중 정부시절 IMF외환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인터넷과 디지털을 국책사업으로 발전시켜오면서 기술중심·남성편향의 온라인 사회를 만들었고 그 역사만큼 온라인 문화의 여성혐오는 90년대부터 이어져 왔습니다. 한국의 정치, 사회운동, 문화 모두 세계 어디 보다도 더 온라인과 강력하게 결합되어 있고 이는 특정한 세대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하지만 계속 젊은 세대, 특히 청소년이 문제다, 이들을 교육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여러 시민사회단체에서 불거지고 있죠. 사회 전체의 문제지만 만만한 청소년만 불러서 계속 바뀌어야 한다고 닦달하는 비겁한 움직임입니다.
10대의 여성혐오와 50대의 여성혐오는 평등하게 문제적입니다. 아니 오히려 많은 단체와 기관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는 경우가 많은 50대가 여성혐오적인 것이 정치적 시민권도 제대로 가지지 못한 10대보다 더 해악이 크죠. 드라마 <소년의 시간>을 누굴 가르치려고 보는 게 아니라 스스로 성찰하려고 봐야 할 이유입니다.
전체 437
번호 썸네일 제목 작성일 추천 조회
공지사항
[여는 생각] [133호]비정상의 시대를 지나며 — 현장에서, 다시 시작합니다
mklabor | 2025.08.04 | 추천 0 | 조회 1631
2025.08.04 0 1631
436
[노동재해직업병소식] [133호]더 이상 꼼수로 중대재해처벌법을 빠져나가지 못하게 해야
mklabor | 2025.08.04 | 추천 0 | 조회 121
2025.08.04 0 121
435
[현장 보고] [133호] 지금 현장은
mklabor | 2025.08.04 | 추천 0 | 조회 319
2025.08.04 0 319
434
[건강하게 삽시다] [133호]가려움증
mklabor | 2025.08.04 | 추천 0 | 조회 244
2025.08.04 0 244
433
[노동몸삶] [133호] 노가다가 아닌 노동자로 삽니다 서평
mklabor | 2025.08.04 | 추천 0 | 조회 137
2025.08.04 0 137
432
[133호]30대 건설 이주노동자 심정지, 과로사 산재 인정
mklabor | 2025.08.04 | 추천 0 | 조회 122
2025.08.04 0 122
431
[영화로세상일기] [133호]씩씩했던 조선소 여성노동자 윤화의 오열
mklabor | 2025.08.04 | 추천 1 | 조회 141
2025.08.04 1 141
430
[만나고 싶었습니다] [133호]현장 노안 활동가들에게 묻다
mklabor | 2025.08.04 | 추천 0 | 조회 238
2025.08.04 0 238
429
[인권이야기] [133호]드라마 <소년의 시간>을 누굴 ‘가르치기’ 위해 사용하면 안되는 이유
mklabor | 2025.08.04 | 추천 0 | 조회 127
2025.08.04 0 127
428
[상담실] [133호]병원을 안 가서 산재가 중단된다고요?
mklabor | 2025.08.04 | 추천 0 | 조회 242
2025.08.04 0 242
427
[일터에서 온 편지] [133호]현대위아의 이중적인 태도! 앞에서는 ‘본사이전검토’ 언론보도, 뒤에서는 지자체에 ‘금품제공’ 근본적인 문제는 현대위아 불법파견이다!
mklabor | 2025.08.04 | 추천 0 | 조회 245
2025.08.04 0 245
426
[초점] [133호]광장의 요구는 사회대개혁의 요구로 확장되었다.
mklabor | 2025.08.04 | 추천 0 | 조회 249
2025.08.04 0 249
425
[현장을 찾아서] [133호]현대자동차 이수기업 정리해고 투쟁경과
mklabor | 2025.08.04 | 추천 0 | 조회 247
2025.08.04 0 247
424
[활동 글] [133호]코끼리와 개미의 싸움
mklabor | 2025.08.04 | 추천 0 | 조회 240
2025.08.04 0 240
423
[활동 글] [133호]건설노동자들이 말하는 노동, 삶, 투쟁 북 콘서트 후기
mklabor | 2025.08.04 | 추천 0 | 조회 254
2025.08.04 0 254
422
[활동 글] [133호]3년만에 인정받은 업무상재해
mklabor | 2025.08.04 | 추천 0 | 조회 255
2025.08.04 0 255
421
[노동재해직업병소식] [132호]2025년, 산불과 산재로 시작한 한 해 이지만
mklabor | 2025.06.02 | 추천 0 | 조회 841
2025.06.02 0 841
420
[현장 보고] [132호]절대 안전 수칙 도입, 협의 없는 일방적 시행 심각하다
mklabor | 2025.06.02 | 추천 0 | 조회 389
2025.06.02 0 389
419
[건강하게 삽시다] [132호] 기립성저혈압
mklabor | 2025.06.02 | 추천 0 | 조회 541
2025.06.02 0 541
418
[노동몸삶] [132호]빠른배송뒤에 가려진 물류노동자
mklabor | 2025.06.02 | 추천 0 | 조회 174
2025.06.02 0 174
417
[산재 판례] [132호]만 18세 현장실습생 업무상 스트레스에 따른 투신자살 업무상재해 인정
mklabor | 2025.06.02 | 추천 0 | 조회 397
2025.06.02 0 3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