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호]씩씩했던 조선소 여성노동자 윤화의 오열

[영화로세상일기]
작성자
mklabor
작성일
2025-08-04 15:27
조회
142
게시글 썸네일
: <울산의 별>(감독 정기혁, 2024),
2025년 페미니즘 관점으로 보는 영화상영회 상영작

              손제희 여성학연구활동가 


조선소 용접 노동자인 윤화는 어느 날 관리자로부터 ‘시스템에 따라 결정된 일’이라며 퇴직을 권고받는다. 일하면서 몸이 망가져 몇 차례 휴직을 한 데다 자주 다치기도 했다. 그러나 윤화는 한부모 가정의 가장으로 부양할 자녀가 있고 회사를 그만둘 생각이 없다. 본인의 퇴사가 뇌물로 순서가 뒤바뀐 것이라 여기며, 절친한 동료마저 의심하게 되고 결국 회사와도 맞선다.
배우자의 기일 즈음에 찾아온 작은아버지 가족의 등장은 영화의 배경이 성평등 감수성이 낮은 경상도(울산) 지역임을 강조하는 것 같다. 장손 중심의 제사 문화, 작은아버지가 좋아하는 ‘비싼’ 회 상차림, “형수는 남”이라는 삼촌의 말, 교복을 입고 아침 식사 심부름을 도맡는 딸 경희를 당연하게 여기는 가족들, 남자들끼리만 같은 밥상에 앉는 모습 등은 뚜렷한 성별 고정관념을 나타낸다.
성평등 공동체를 지향하는 페미니즘 관점으로 보면, 윤화가 짊어진 삶의 무게는 단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여성의 희생 위에 부조리를 반복하는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 사회를 드러낸다. 배우자가 산재로 사망한 후 그 회사에 입사한 윤화는 ‘삶’보다 ‘생존’이 우선이었기에, 자신의 몸을 돌볼 여유도, 자녀들과 정서적으로 교류할 시간도 없어 보인다. 남성이 대다수인 사업장에서 성별이 드러나지 않도록, 남성에 뒤지지 않는 노동자로 버티며 아이들이 제 삶을 찾아가길 믿고 기다릴 뿐이다.
윤화의 잦은 부상은 단순히 일이 서툴러서일까? 『노가다가 아닌 노동자로 삽니다』에서 철근 노동자인 여성은 “안전벨트가 남성을 기준으로 만들어져 무겁고 커서 불편하다”고 말한다. 노동자의 기준이 남성일 때, 안전복작업 도구안전 장비화장실 등 회사는 남성과 다른 여성의 신체를 고려하지 않는다. 여성 노동에 대한 편견은 채용 및 임금 차별로 이어지고, 인원 감축 시 해고 대상자는 ‘부부노동자 여성 → 기혼여성 → 여성’ 순으로 여성을 우선한다.
영화 제목 ‘울산의 별’은 울산지역 산업이 조선소 중심임을, 많은 사람들이 조선소 불빛에 기대 살아가고 있음을 은유하는 것 같다. 영화 상영 후 소감을 나누는 자리에서 “울산의 별은 딸이 아닐까”라는 말이 있었다. 아들 세진은 조선소에 취업이 돼서 “우리 장손, 이제 어른이 되었다”며 축하를 받지만, “정서가 안 맞는” 현실을 잘 버텨낼 수 있을까 싶다. 반면 딸 경희는 엄마를 이해하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위해 탈울산탈가정을 선택한다. 경희의 용기가 불안하지만 희망이고 빛이 아닐까,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럼에도 우리는 불합리와 모순의 공간을 떠나는 것만이 최선의 해법이 아님을 안다. 경남은 전국에서 청년 여성이 일자리를 찾아 지역을 떠나는 비율이 높은 곳이다. 남성 중심의 사업장과 위계적이고 보수적인 직장 문화, 일자리의 성별화, 청년 여성 일자리 부족 등이 원인으로 분석된다. 경남 내에서도 시·군마다 사회환경이 다르다. 여성들이 어느 분야에서 경제활동을 하고 있는지, 노동 환경과 처우는 어떤지 알 수 있고, 지역에서 살고자 하는 청년 여성들과 선배 여성 노동자가 연결될 수 있어야 한다. 서울, 제주, 경기, 경북 등은 광역지자체에서 ‘성인지통계 시스템’을 구축하여 젠더 이슈에 기반한 성별통계를 분석하고 성평등 정책 마련의 기초 자료로 누구나 활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경상남도는 오랫동안 지역 ‘성평등지수’ 하위권임에도, 시·군별 여성의 삶을 조사분석해 보여주는 ‘경남 성인지통계 시스템’조차 마련되어 있지 않다.
윤화가 생존이 아니라 ‘삶’을 살 수 있는 사회는 어떻게 가능할까? 청년이 떠나고, 노동자가 혼자 노래방에 가서 소리 지르며, 불합리한 구조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서로 상처 주고 각자의 고통을 감추며 버티는 시간을 언제까지 반복할 수 없다.
깊은 바다에 사는 대왕오징어가 낚싯대에 걸려 올라온 것을 보고 오열하는 중년 여성 노동자, 함께 있던 아들과 ‘형수는 남’이라던 삼촌은 그녀의 행동에 그저 어리둥절하다. 언제나 씩씩해 보였던 윤화가 생을 마친 대왕오징어를 보고 통곡하는 장면은, 누구의 시선도 의식하지 않고 비로소 자신과 마주하며 지난 삶을 깊이 애도하는 순간으로 읽힌다. 여자이기에, 엄마이기에, 조선소 여성 노동자이기에, 어떻게든 견뎌야 했던 무수한 일들….
윤화의 오열은 민주노총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유최안 노동자의 외침, ‘이대로 살 수는 없지 않습니까’라는 말과 연결된다. 더는 노동자가 오열하지 않고, ‘굴뚝’에 오르지 않도록 노동 현실과 차별 세상을 바꾸는 운동과 활동에 힘을 보태자고, 상영회 함께 하신 분들과 또 기회가 되어 영화를 보실 분들에게 연대 인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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