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호]스스로 만든 지침도 안 지키는 근로복지공단?

[상담실]
작성자
mklabor
작성일
2023-07-21 20:14
조회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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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남욱  바른길 노무사 사무소  공인노무사


 

2022년 3월, 건설 현장 일용직 노동자 한 분이 사무실을 찾아왔다. 귀가 잘 안 들리는데 난청도 산재가 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찾아오셨다고 하셨다.
재해자는 18년간 건설 현장에서 형틀목공, 콘크리트공, 할석공 등으로 꾸준히 일해 온 분이셨다. 나이는 50대 중반으로 난청이 왔다고 느끼는 평균적인 나이보다 젊고, 기록에서는 물론 재해자의 진술에서도 건설 현장 소음 외에는 난청을 유발할 만한 개인적 요인이 확인되지 않았다. 산재로 인정되어야 하는 사건이라 생각했다.

18년간의 직업력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를 정리하고 그 직업력에 따른 소음 환경을 정리해서 곧바로 산재 신청을 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1년이 지나 드디어 결정통지서가 왔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결과는 불승인이었다.
불승인 사유는 건설 현장 일용직 노동자로 일한 18년 중 14년 1개월 동안의 소음 노출 경력이 확인되기는 하지만 청력 특별 진찰 결과상 우측과 좌측의 청력 손실 역치의 차이가 커서 소음에 의한 난청 가능성이 높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었다.

납득이 되지 않았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령」은 85dB(데시벨) 이상의 연속음에 3년 이상 노출되어 한 귀에 40dB 이상의 청력 손실이 발생한 경우 이를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한다고 규정하면서, ‘고막이나 중이에 뚜렷한 손상이 없을 것’, ‘청력 검사 결과 공기로 듣는 기도 청력 역치와 뼈로 듣는 골도 청력 역치 사이에 뚜렷한 차이가 없을 것’, ‘청력 장해가 저음역보다 고음역에서 클 것’, ‘내이염, 약물중독, 열성 질병, 메니에르증후군, 매독, 머리 외상, 재해성 폭발음에 의한 난청이나 돌발성 난청, 유전성 난청, 가족성 난청, 노인성 난청 등 다른 원인으로 발생한 난청이 아닐 것’이라는 추가적인 요건을 제시하고 있고, 근로복지공단은 2021년 12월 발표한 「소음성 난청 업무처리기준 개선」을 통해 “비대칭 또는 편측성 난청”인 경우에도 “소음 직업력이 업무상 질병 인정기준을 충족하는 경우”에는 “다른 원인에 의한 난청이 명백하지 않으면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재해자에게는 위 어떤 요건에 비추어봐도 불승인 결정을 받아야 할 사유를 찾기 어렵다. 근로복지공단의 조사와 근로복지공단의 요청으로 진행한 청력 특별 진찰, 업무 관련성 특별 진찰에서 85dB 이상 연속음에 3년 이상 노출되어 한 쪽 귀에 40dB 이상 청력 손실이 발생했다는 점, 고막이나 중이에 뚜렷한 손상이 없는 점, 청력 장해가 저음역보다 고음역에서 큰 점, 기도 청력 역치와 골도 청력 역치 간 큰 차이가 없을 뿐만 아니라 골도 청력 역치 또한 40dB 이상으로 근로복지공단 지침이 제시하고 있는 기준을 충족하는 점, 내이염 등을 앓은 이력이 없고 돌발성·유전성·노인성 난청 등 다른 원인에 의한 난청이 아닌 점이 모두 확인되었다.
다른 원인에 의한 난청이 명백하지 않고 소음 직업력이 업무상 질병 인정기준을 충족하니, 비대칭 또는 편측성 난청이라고 할지라도 산재로 인정되어야 하는 사안인 것이다.

난청은 저음역보다 고음역에서 먼저 시작되기 때문에 작업 중 소음에 노출되어 난청이 와도 일상생활에서 곧바로 인지하기 어렵고 시간이 한참 지나 저음역에서도 난청이 시작될 고령이 되어야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실제로는 전형적 소음성 난청의 유형뿐만 아니라, 여러 유형이 혼합된 결과로 나타난 비전형적 유형의 난청도 많다.
그렇기 때문에 그간 법원은 업무 외 다른 원인이 혼합되어 난청이 발병해도 소음 직업력이 인정되면 다른 원인이 명백하지 않은 한 산재로 인정되어야 한다고 판결해왔고, 근로복지공단도 이를 받아들여 다른 원인이 확인되지 않으면 비전형 난청도 산재로 인정하겠다는 지침을 스스로 만들어 발표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앞서 소개한 사례처럼 근로복지공단은 난청 사건에서 간혹 스스로 마련해놓은 지침과 다른 결정을 하는 때가 있는 것 같다.
그러면 재해자는 또 심사청구(이의신청)를 해서 공단지사의 결정이 틀렸음을 인정받아야 한다. 난청은 산재로 신청하고 결과를 기다리는 데까지만 보통 1년 이상이 소요된다. 그리고 심사청구까지 가야 하는 사건은 그보다 약 3개월이 더 걸린다.
신청 건수가 많아 처리가 지연되는 점은 이해할 수 있지만 심사청구로 불필요하게 3개월을 더 기다려야 하는 것은 재해자에게 고역이고 불안이다.
스스로 마련해놓은 지침만 잘 준수하고 적용했어도 없었을 일인데 말이다. 부디 이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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