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호]문재인 정권의 조선업 구조조정을 마주하며

[현장을 찾아서]
작성자
mklabor
작성일
2018-06-20 13:18
조회
3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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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기성 - 성동조선해양지회 지회장


봄의 끝을 알리는 비가 내리는 가운데 엄혹한 구조조정을 밀어붙인 박근혜 정권에서 필사적으로 촛불을 들었던 조선노동자들에게 과연 봄이라는 것이 오기는 올까 하고 푸념해본다.
적어도 성동조선 노동자들에게 만큼은 촛불정권에 기대하는 바는 남달랐다. 그도 그럴 것이 평균나이 서른 중후반의, 한참 육아에 전념할 나이인 젊디젊은 노동자들에게 한순간에 일터를 잃는다는 것은 차마 생각하기도 싫은 일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사회안전망이라고는 실업급여 외에는 없다시피 한 한국사회에서는 더더욱 말이다.
그러나 촛불정권이 성동조선 노동자들에게 가한 현실은 냉정함을 넘어 잔인하기까지 하다.
수년간의 구조조정 투쟁 과정에서의 요구는 단 하나도 반영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더 철저히 금융과 시장 논리로 노동자들의 생존권만 박탈하려하고 있다.
성동조선이 단 한 번의 기회부여도 없이 법정관리에 들어가고 STX조선의 경우 강압적인 방식으로 노동자들이 굴종을 강요당한 지금, 문재인 정권의 조선업 구조조정의 방향은 명확해졌다고 봐야 할 것이다.

성동조선이 법정관리에 이르기까지의 과정들을 면면히 들여다보면 대한민국의 적폐 종합세트를 볼 수 있다. 수백 개의 중소기업과 수십 개의 중소조선의 도산을 넘어 한 국가의 기간산업마저도 휘청거리게 만든 2008년 금융위기 당시 금융권이 수출기업 환급보증의 대가로 반강제로 가입시킨 키코(파생금융상품의 일종) 피해로 성동조선은 무려 1조 5천억의 천문학적인 손실을 입었고 이것이 자율협약과 구조조정 시발점이었다. 금융권 갑질의 대가 치고는 너무나 엄청난 손해였다. 5월 현재 당시 키코는 금융권이 치명적인 결함을 알고도 상품을 판‘사기’라는 것이 밝혀졌고 피해기업들이 형사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키코 피해액이 10조를 넘을 것으로 추측되는 가운데 결국 이것은 당시 은행을 관리·감독해야 할 금융당국의 직무유기라고 볼 수밖에 없으며 반드시 그 책임을 물어야 할 적폐인 것이다.

또한 시중은행으로부터 넘어온 성동조선을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맡아온 국책은행인 수출입은행의 관리실패도 성동조선의 법정관리에 한 몫을 했다고 봐야한다. 애초 금융 관점에서 조선소를 경영한다는 것 자체가 필연적으로 실패를 가져올 수밖에 없었음에도 수출입은행은 조선소의 경영 전반에 개입하여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단적인 예로 대표이사 평균 임기가 13개월 남짓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이 조선소 경영과는 거리가 먼 단순 갑질의 반증이라고 본다. 이외에도 무수히 많은 갑질과 낙하산인사 등이 있으나 지면이 모자랄 것 같아 이쯤만 하겠다. 그러나 3.8 정부의 법정관리 발표 때까지도 수출입은행은 본인들의 잘못은 인정하지 않고 오로지 자기변명과 책임회피에만 급급했다. 이것 또한 수십 년 동안 한국 산업을 지배해온 청산해야 할 대표적인 적폐임이 분명하다.

성동조선의 법정관리를 정리하자면, 시중은행은 금융사기를 벌였고 금융당국은 봐주기로 넘어가고 국책은행은 온갖 갑질을 누리다가 업황이 어려워지자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법정관리로 보낸 것이 팩트 라고 봐야 할 것이다. 여기에 더해 매년 국정감사에서 정치권의 국민혈세 타령이라는 피처링도 큰 몫을 했다. 그 국회의원들에게 꼭 한마디 하자면, 세금은 당신들이 누리는 온갖 특혜들에도 쓰이지만 한 국가의 산업유지에도 쓰이며 지금도 길거리로 내몰리는 수만의 조선노동자들도 국민임을 기억하길 바란다.
문재인 정부의 조선업 구조조정을 보면 온갖 모순을 안고 있음을 단박에 알 수 있다. 요약하자면 정규직의 비정규직화가 핵심이며 위험의 외주화이자 죽음의 외주화이다. 앞으로는 정규직과 청년실업을 부르짖으며 뒤로는 정규직을 자르는 구조조정을 방관하며 그 자리에 신규채용을 하겠다며 기만적인 일자리 정책을 진행하고 있다. 그 무엇보다 전 정부와 다를바 없는, 오히려 더 적나라하게 또다시 노동자들의 일방적인 희생만 강요하는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실망스럽고 우려스럽지 않을 수 없다. 조선하청노동자로 살아본 본인의 경험에 비추어보면 이 조선업 구조조정이 현장을 얼마나 더 살벌하게 만들지, 조선노동자들을 얼마나 더 죽음으로 내몰지 뻔히 보이기 때문이다.
4월 말경에 발표된 조선업 중대재해 조사위원회의 최종보고서의 의견이 전혀 새삼스럽지 않은 이유다.
비록 어찌될지 모르는 법정관리 속에 있지만 문재인 정권에 엄중히 경고한다. 세금이 먼저가 아니라 사람이 먼저다. 결과가 먼저가 아니라 과정이 먼저다. 조선노동자들의 생존권을 담보로 한 굴종 강요가 먼저가 아니라 금피아, 은피아, 산피아 적폐청산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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