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호]중대재해기업처벌법보다 우선되어야 하는 권리는 무엇인가?
[초점]
작성자
mklabor
작성일
2020-08-27 13:28
조회
3901

김종하 //운영위원
산업재해로 인한 노동자들의 고통이 누적되면서 산업안전보건법은 조금씩 강화되어 왔다.
2020년 1월 16일부터 김용균법이라 불리는 산업안전보건법이 전면 개정되어 시행되고 있지만 위험의 외주화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거세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해서 위험의 외주화를 줄이고, 반복되는 노동참사를 막아야 한다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노동자의 사망과 관련해서 기업을 기소하여 처벌하자는 것이다. 그렇지만 강력한 자본 중심의 지배구조하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만들고자 한다면 국회는 온갖 조건이 부가된 지저분한 법률을 만들 가능성이 높다.
기존의 안전 관련 법률과의 중복의 문제를 지적할 것이고, 기업 규제로 인해 기업활동을 위축시킨다는 주장을 할 것이다. 그리고 기업의 중대한 과실로 인하여 사망사건이 발생하는 것에 대한 규제로 제한 될 것이다.
영국의 기업살인법도 기업의 고의, 중과실에 대한 책임을 묻는 법률일 뿐이다.
그렇다고해서 기업 스스로의 자율 안전기준을 강화하면 노동재해가 줄어 들 수 있는가?
천만의 말씀이다. 오랫동안 기업이 자율 안전을 추진해왔지만, 기업은 노동자의 죽음보다 안전 기준의 준수가 더 경제적 부담이 된다고 하였고, 현 상태에서 안전 기준을 강화하라고 하면 기업은 현장 노동자들의 책임을 강화하는 방안만을 내 놓을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위험을 만든 쪽이 반드시 책임을 지게 하는 것인데, 기업 살리기에 방점이 찍혀 있는 현재의 구조는 온갖 해석이 가능한 규정들을 늘어 놓고는 위험을 만든 책임을 기업이 회피할 수 있도록 만들어 두었다.
어렵게 만들어진 김용균 법도 위험의 외주화를 사실상 인정하고 있다. 법망에서 비켜서 있는 대기업에게 어떻게 특정 사고의 책임을 물을 것인가?
더구나 위험을 만든 책임을 묻는다고 해도, 누가 위험을 만든 것인지를 알 수 없는 구조와 책임을 은폐할 수 있는 다단계 구조가 온존한 속에서 위험을 만든 책임을 묻기도 어렵다.
사고가 날때마다 국민참여 진상조사위원회를 만들수도 없는 노릇이다. 또한 기업이 스스로 안전에 투자하고, 책임을 지는 문화가 만들어 지기를 기다릴 수도 없는 것이다.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하는 것은 기업 운영에 있어서 안전에 대한 책임을 강화하고, 안전기준을 제대로 적용해야 하고, 하청을 주는 경우에는 모든 원청에 대해 하청에 책임을 떠넘기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하는 것이다.
산업안전보건법을 제대로 지켜야만 기업을 운영할 수 있다는 사회적 기준이 작동되어야 한다. 원청이 하청을 주는 경우에 안전 조건이 지켜지지 않으면 하청을 줄 수 없도록 만들어야만 위험의 외주화도 축소될 수 있다. 이러한 규제는 기업살인법에 비해 기업의 부담을 훨씬 적게 주면서도 보다 안전한 작업장을 만들 수 있다. 몇몇 금지 및 허가 대상을 만들고, 그 외에는 안전 조건을 부과하지 않는 외주화는 항상 위험의 외주화일 수 밖에 없다.
다음으로 보다 본질적인 안전 규제는 작업 현장에 있다. 정부가 감독을 강화하고, 기업의 안전 자율성을 높이고, 처벌을 강화하는 것 등은 정치경제적 상황에 따라 흔들린다.
앞서 말했듯이 자본 중심의 기업지배 구조하에 안전규제는 대체로 말뿐일 가능성이 더 높다. 그와는 반대로 노동건강권은 노동자들의 기본권이다.
노동자들은 가장 위험에 가까이 있고, 위험을 먼저 알 수 있는 위치에 있지만 겨우 위험 상황을 보고해야하는 위치에 있을 뿐이다. 더구나 오늘날과 같은 다단계 하청 구조, 혼재 작업 구조에서는 안전 여부를 파악하는 것조차 어려울 뿐만아니라, 비록 위험을 인지하더라도 그 위험을 제거하지도 못한다.
작업현장의 노동자들이 노동 안전에 대한 직접적인 규제를 할 수 있도록 하지 않는다면, 기업살인법에 의한 노동안전은 요원할 뿐이다.
정부나 기업은 현행의 법제도가 하나같이 느슨하게 빠져 나갈 구멍을 만들어 두고 있음을 잘 알고 있기에 작업 현장에서 노동자들의 직접적인 위험 제거권을 가지는 것을 싫어한다.
정부나 기업은 모두 노동자들이 노동안전에 대한 규제, 관리, 감독권을 갖는 것을 환영하지 않는다. 너무나 많은 위험 요소들이 작업현장에서 수시로 드러나는 것에 대해 부담을 갖고 싶지도 않을 것이다.
노동현장에서 노동자들이 가지는 노동안전규제, 관리 감독권을 확보하기 위해 싸워나가지 않는다면 늘 형식적이고, 상징적인 안전 놀음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마지막으로 기업살인법의 제정이다.
영국에서도 기업살인법의 실효성은 5% 정도에 불과하다.
기업 살인법이 만들어지면 안전기준을 지키지 않은 기업들이 망할 수도 있을 것처럼 말하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노동자들의 생명권이, 노동건강기본권이 존중 받도록 하고, 모든 작업 현장 내에서의 위험 요인들에 대한 노동자들의 직접적인 개입권이 강화된 속에 기업살인법이 운영되어야만 실효성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야만 기업은 스스로 자율안전 기준을 강화하고, 기업의 노력에 의해서도 재해율이 축소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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