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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추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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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할 땐 노동자 … 사고 나면 "사장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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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굴삭기 노동자인 박아무개씨는 작업 중 현장소장으로부터 철제 패널을 옮기라는 지시를 받았다. 작업 성격상 굴삭기를 이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판단한 그는 작업거부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거듭된 현장소장의 지시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사건은 패널을 굴삭기 인양고리에 거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패널을 걸고 있던 와이어가 굴삭기 인양고리에서 이탈하면서 600킬로그램이 넘는 철제 패널이 그 아래에서 작업하던 일용노동자를 덮쳤다. 결국 일용노동자는 숨졌다.
사고 후 박씨는 '사람이 죽었다'는 자책감에 시달렸다. 생각지도 않은 시련이 그를 더욱 괴롭히기 시작했다. 건설사가 유족 보상은 산재로 처리한 반면 이후 예상되는 유족 형사합의금과 근로복지공단 및 민간보험회사의 '구상권 청구'에는 나 몰라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건설사의 작업지시로 인해 발생한 사건인데 왜 노동자인 박씨가 뒷감당을 해야 할까. 7일 업계에 따르면 일차 원인은 부실한 법·제도에 있다. 부당한 업무지시에 의해 발생한 산재는 건설사가 책임을 지게 돼 있는데, 현행법에는 '정당한 지시'와 '부당한 지시'의 경계가 모호하다.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제204조)에 따르면 사업주는 차량계 건설기계를 그 기계의 주된 용도에만 사용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근로자가 위험해질 우려가 없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고 예외단서를 달아 놓고 있다. 현장에서 이를 지킬 리 만무하다. 게다가 특수고용노동자들은 건설사의 관리·감독을 받는 종속적인 위치다.
보험가입 문제도 논란이 되고 있다. 건설기계로 분류되는 굴삭기의 경우 도로교통법상 차륜형만 자동차보험 의무가입 대상이다. 궤도바퀴형 굴삭기는 의무 가입대상은 아니지만 가입 자체는 할 수 있다. 건설노조 관계자는 "보험회사가 궤도식 굴삭기의 보험가입을 꺼려해 대다수의 건설기계들이 무보험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씨도 무보험으로 일했다. 건설기계의 보험가입이 의무화만 돼 있었어도 박씨의 시름이 절반은 줄어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자동차보험에 가입돼 있다고 마냥 안심할 수도 없는 실정이다. 현장 안 사고의 경우 보험회사가 "도로상에서 발생한 사고가 아니다"는 이유로 사고 당사자 간 처리를 주장하는 경우가 빈번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홍희덕 통합진보당 의원에게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의하면 2005년부터 2010년까지 건설현장 레미콘·덤프·굴삭기 사고 관련 사망재해는 124건으로 이 중 단 3건만이 도로주행 중 발생했다. 건설기계에 대한 보험적용 범위를 넓혀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건설현장의 재해 발생을 사전에 예방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를 위해 노동계는 오래 전부터 '전문신호수' 도입을 요구해 왔다. 건설기계 장비를 사용하는 작업이 많아지는 상태에서 건설기계장비의 기계적인 특성 및 시공방법을 사전에 숙지하고 있는 전문신호수를 현장에 배치해야 사고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에서 건설현장에 신호수를 배치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신호수의 자격이나 교육시간·인원에 대한 규정은 없다.
지난해 9월 전남 나주에서 실제 발생한 사망사고는 현재까지도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지역의 건설노동자들은 "사건 발생에 따른 형사합의금을 발주처와 원청사가 해결하라"며 "박씨에게 구상권이 청구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원청업체에 요구하고 있다. 제도적 장치 마련과 같은 정부 차원의 대책이 수립되지 않는 한 제2, 제3의 박씨는 계속 나올 수밖에 없다.
승인 2012.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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