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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추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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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호] 이윤보다 생명이다 - 의약품을 환자에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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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품의 존재 이유는 질병의 예방, 치료이다. 그러나 상품으로 생산․유통․분배되는 의약품은 본연의 존재 이유와 항상 충돌한다. 의약품이 건강에 필수적이라는 것을 이용하여 제약자본은 의약품의 상품성을 드높이는 것이다. 이로 인한 결과는 어떠한가?
- 돈이 안 되는 약은 생산되지 않는다
우간다, 수단에서는 5명에 1명꼴로 아프리카 수면병에 걸려 사망하고 있다. 제약회사인 ‘Hochest Marion Rousel’은 아프리카 수면병 치료약인 DFMO를 개발했지만 충분한 이윤이 남지 않는다는 이유로 99년에 생산을 중단하였다. 수천 명이 이 질병으로 죽어나갔으나, 이 약은 수면병치료제로 생산되지 않았다. 그러나 우습게도, 다른 제약회사는 이 약을 여성의 얼굴에 털이 나지 않게 하는 크림으로 개발해서 시판하고 있다.
Rhona Macdonald 등의 논문(2001)
- 약이 있어도 비싸서 못 먹는다
작년 1년 병원비만 천만 원이다. 게다가 글리벡(만성백혈병 치료제)을 한 달에 300-750만원씩 내고 먹어야 한다. 백혈병이라 나는 일도 못하는데 애들 학비대고 그러면서 그런 치료를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대학원을 가고 싶어 하던 딸은 진학을 포기하고 직장을 구했다. 나는 몹쓸 부모다. 더 이상 살고 싶다는 말을 못하겠다. 약값이 너무 비싸서 한 웅큼 먹을 때마다 눈물이 난다. 이걸 내가 먹으면, 다른 식구들은..... 약이 안 맞아서 토하게 되면 또 6알씩 먹어야 하는데, 이거 토하면 눈물난다. 약값이 어른거려서 토하지도 못한다.
만성골수성백혈병 환자와의 대화 중에서
- 국가의 무책임이 건강을 악화시키고 있다
2002년 10월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먹는 B형 간염치료제로 유일하게 처방되고 있는 ‘제픽스’의 안전성이 확인되지 않았다며 복용을 자제하라고 간염환자들에게 편지를 보냈다. 이에 대해 의사들은 “제픽스는 현재 바이러스의 증식을 억제하는 유일한 B형 간염 치료제로 공인됐으며 함부로 복용을 중단하면 병세가 악화될 수 있다”며 “환자들에게 의사의 지침을 무시하고 약 복용을 중단하라고 하는 것은 무책임한 행위”라고 발끈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공단측이 제픽스의 보험 적용기간을 늘려달라는 환자들의 요구를 거절하기 위해 이 같은 편법을 쓴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관련해 보험공단 관계자는 “보건복지부가 1999년 제픽스를 보험 대상에 포함시키면서 장기 임상자료가 부족해 1년간만 보험 혜택을 주기로 했다”면서 “보험재정이 어려운 상황이라 현재 많은 약의 보험 혜택을 줄이고 있는 마당에 제픽스만 보험 혜택을 늘려주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동아일보 2002년 10월 14일
따라서 ‘의약품은 민중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민중의 필요에 의해 존재해야 한다’는 원칙에 따라, 제약자본의 이윤에 민중의 건강이 좌지우지되지 않기 위해 우리는 몇 가지 요구를 해야 한다.
1. 민중의 필요에 따른 ‘필수의약품’ 선정
세계적 제약자본인 노바티스는 글리벡 개발을 중도에 포기하려 했다. 만성골수성백혈병은 희귀질환이기 때문에 환자 규모로 따져볼 때 수지타산이 맞지 않은 것 같은 계산 때문이었다. 노바티스가 글리벡 개발을 중도에 포기하려 하자 2,000명이 넘는 백혈병 환자들이 탄원을 하였고, 그 결과 글리벡은 희귀의약품으로 지정받게 되었다. 미국 희귀의약품법에 따라 임상시험의 50%를 세금공제 받으면서 글리벡은 세상에 나온 것이다. 지금도 전 세계의 수많은 희귀질환자들이 약을 개발해 달라고 탄원을 하고 있다. 돈이 안 되는 약들은 제약자본의 이윤동기에 의해서는 개발되지 않는다. 개발되어도 글리벡처럼 제약자본의 이윤창출 욕구 때문에 또 다시 ‘못 먹는 약’이 되어버리고 만다. 따라서 기본적인 의약품의 개발․생산․분배 과정에 대한 사회적 개입이 필요하다. 이런 사회적 개입의 한 예가 ‘필수의약품’이다. ‘필수의약품’은 1977년 세계보건기구가 208개의 의약품을 지정한 이래, 1997년 현재 총13개군 306개에 달하고 있다.
‘필수의약품’이란 모든 질병의 치료와 예방 및 건강의 증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의약품이며, 질병의 위중도와 약품의 대체가능성을 기준으로 목록이 작성되어야 한다. 또한 현재 존재하지 않더라도 앞으로 개발되어야 할 약물이 약품리스트에 포함되어야 할 것이며, 새롭게 변화될 질병패턴과 그에 따른 신약에 대한 계획까지 모두 필수의약품에 대한 정부의 계획 속에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필수의약품에 대한 세계보건기구의 권고 내용 중에서
2. 의약품의 본인부담금 철폐
의약품에 대한 무제한적인 접근이 보장되어야한다. 이를 위해 필수의약품에 대해서는 100% 무상공급을 실시해야 한다. 이같은 필수의약품 무상공급이 가능하려면 의약품 가격이 개발비용과 생산원가를 기준으로 한 최소한의 수준으로 책정되어야 한다. 글리벡과 동일한 효능을 가진 약이 인도제약사에서 글리벡 가격의 1/10 이하로 판매되고 있듯이 말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의약품의 공공성을 확대해나가기 위한 투쟁들이다. 우리나라에서 의약품 공공성 확보투쟁은 ‘글리벡 투쟁’을 계기로 비로소 출발점에 서게 되었다. 초국적 제약자본의 이윤 증식 운동이 계속되는 한 제2의, 제3의 글리벡 문제를 계속 생겨날 것이다. 그리고 민중의 살 권리와 건강할 권리를 지켜내기 위한 우리의 투쟁도 계속될 것이다.
노무현 정권, 민중의 건강권을 빼앗으려는가
참여정부의 국무회의는 경제자유구역내 외국병원의 내국인 진료를 허용하는 경제자유구역법 개정 법률안을 의결했다. …
첫째, 이번 경제자유구역법 개정안 의결은 ‘의료 사유화’의 본격적인 시작
을 알리는 신호탄이라는 점이다. 그들이 대통령 선거 때 무엇이라고 했건, 지난 2년 동안 일관되게 추진한 것은 영리법인 의료기관 허용, 민간의료보험 도입 따위의 의료 사유화 정책이다. 공공의료 30% 확충이나 보험급여 70%선 확대는 그저 구두선에 그치거나, 노동자 민중과 시민사회의 압력에 못이겨 시늉만 냈을 뿐이다. 애초 경제자유구역법이 내국인 진료를 허용하지 않아 영리법인 의료기관 진출을 원천봉쇄했던 데에서 이번 개정안으로 바뀐 것처럼, 시민사회의 여론에 밀려 철회한 기업도시법의 영리병원 허용 조항도 덧붙이려는 시도가 다시 이루어질 것이 분명하다.
둘째, 이 정권 스스로 자신의 사회정책 지향인 ‘참여복지’를 헌신짝 내팽겨
치듯 훼손하고 있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드러내었다. 그들은 스스로 복지의 보편성, 국가의 책임, 국민의 참여라고 “참여복지”의 성격을 규정했다. 그러나 이번 개정안 의결로 의료 사유화 정책의 신호탄을 쏘아올린 이상, 복지의 보편성이나 국가의 책임은 이제 안중에 둘 필요도 없게 되었다. 노동자 민중과 시민사회의 저항과 문제 제기가 없는 이상, 그러지 않아도 부실한 우리나라 보건의료는 소수의 부자와 다수의 민중, 대체형 사보험과 왜소한 건강보험, 또한 이들과 짝을 이루는 극소수의 의료인과 다수의 의료인이라는, 이중적 의료체계로 변모할 가능성이 크다.
셋째, 앞으로 상당 기간 동안 주요 보건의료 정책들이 주무 부처인 보건복지부가 아니라 재정경제부 등 경제 부처에 의해 좌지우지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 첫 번째 사례가 기업도시법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그림자를 얼씬거렸고 이번 경제자유구역법 개정안 의결로 첫 걸음을 내딛은 영리법인 의료기관 개설 허용 문제였다. 이제 내년 8월로 예정된 실손형 민간의료보험 상품이 출시되면, 사보험을 제도화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날텐데, 이는 기존의 전통적인 논리인 “다양한 의료수요 충족”을 넘어서 방카슈랑스 확대에 따른 보험산업의 활로를 찾고 경쟁력을 강화하려는 경제 정책의 일환으로 제기될 가능성이 높다.
2004년 11월 16일
평등사회를 위한 민중의료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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