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
산추련 |
|
 |
|
[82호]노동자들의 죽음의 행렬에 부쳐 |
|
박훈변호사
지난해 12월21일 한진중공업 지회의 조직차장 최강서 열사가 노동조합에서 목매 자결한 이래,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지회 이운남 열사, 대학노조 외대 지부장 이호일 열사가 투신하거나 목매 자결을 하였다. 그리고 청년 운동가 최경남 열사가 목매 자결을 하고, 외대 수석 부지부장이 이호일 열사의 빈소를 지키던 도중 심근경색으로 돌연사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활동가들이 몇 일 사이에 무려 4명이나 발생하였던 것이다. 이는 노무현 정권 출범당시인 2003년 1월 9일 배달호 열사가 분신 자결한 이래, 그해 내내 한진중공업의 김주익, 곽재규 열사, 세원테크의 이해남 열사, 근로복지공단 비정규직 이용석 열사가 목매거나 분신 자결을 사건 이후 노동자들의 죽음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는 사정과 비견될 만하다.
필자가 여기서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사건의 발생이 동일한 원인에 의해 계속적으로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모두 노동조합의 탄압에서 연유한 것이다. 그 만큼 노동조합이 자본에 밀려 힘을 쓰지 못하고 있는 사정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87년 7.8.9 노동자 대투쟁이후 노도와 같이 일어났던 노동조합의 설립과 사수 과정에서 수많은 노동자들이 타살 또는 자결을 하였지만 당시에는 정권 및 자본가와의 공방 과정에서 벌어진 것이었다. 허나 그 이후의 과정은 오로지 수세적 입장이었다. 그 최정점이자 신호탄은 배달호 열사의 분신자결 사건이었다. 얼마전 10주년 그의 기일이었다.
왜 이러한 일들이 10년 동안 끊임없이 반복되면서 노동운동은 계속적으로 퇴보만 하고 있는가? 이유를 찾자면 한도 끝도 없을 것이다. 허나 가장 커다란 이유를 꼽자면 진보정치 운동이 노동운동에 끼친 해악에 있다고 할 것이다. 노동운동은 현장 사업의 실패를 정치운동으로 만회하려고 하였다. 정확히 말해 우리나라에 노동운동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노동조합운동은 노동운동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조합이 모든 것을 다 해나가야 구조에서 노동조합의 우경화와 그 반대의 좌경화는 필연적이었다. 노동자 계급의식으로 뭉친 노동운동은 노동조합에서 해소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노동자가 필연적으로 계급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것은 성립하기 어려운 명제다. 그 가능성이 있을 뿐인 것을 침소봉대하여 노동조합 활동 그 자체에 계급성을 부여하거나 노동조합의 대중적 성격에 주목하여 임금과 단협을 중심으로 한 경제적 투쟁만을 사고하였던 좌충우돌의 결과는 필연적으로 노동조합 운동의 몰락을 재촉할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더 나아가 노동조합에서 활동하였던 명망가들이 그대로 진보정치 운동에 진입함으로써 경제적 토대에서 싸워야 하는 현장 운동을 그야말로 형해화 시키고 정치운동에 복속시키는 행위를 아무런 거리낌 없이 자행하였다. 현장 투쟁은 더 이상 자신의 동력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2004년 민주노동당의 성공적인 원내 진입은 이러한 현상을 더욱 부추기면서 조합원들이 선거 때 몸 대주고 돈대주는 하는 것이 곧 노동조합의 내적 발전을 가져오는 것처럼 선전되었다.
그러나 그러한 모든 행위가 환상이었다는 것은 곧 현실에서 폭로되었다. 폭로된 현실은 비참하였지만 노동조합은 더 이상 자신의 내적 동력이 없다는 것만을 확인하였을 뿐이고 새로운 대안을 찾을 수 있는 힘 조차 없게 되었다. 그럴수록 진보정치운동은 선거운동에만 혈안이 되어 국회의원 몇 명을 더 내고, 노동조합에 우호적인 인사가 대통령이 되면 노동 현실의 현안은 일거에 해결될 것처럼 현혹하였다. 그 정점이 바로 2012년 4월11일 총선과정이었다. 민주노총은 자체적인 투쟁은 방기하고 이른바 12대 법안에 대한 개정으로 현안 문제를 곧바로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을 널리 퍼트리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하였다. 대선과정은 더 심했다고 할 수 있다. 마치 문재인이 대통령에 당선되면 노동 현안 역시 일거에 해결될 것처럼 그리고 박근혜가 당선되면 5년의 기나긴 죽음의 고역이 있을 것처럼 공개적으로 또는 암암리에 선전되고 그 공포감을 투쟁현장에 널리 유포시켰다. 이러한 정치행위 곧 공포정치 행위가 힘겹게 싸우고 있는 현장에서 박근혜의 당선으로 현실화됨으로써 좌절과 절망에 휩싸인 노동자들의 죽음의 행렬을 몰고 왔던 것이다. 개별사업장의 현안 문제는 결코 노동전체의 현안 문제가 되지 않은 상황이 몇 년째 지속되고 있는 마당에 개별사업장의 활동가들은 절망의 나락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더 이상 민주노총과 금속노조는 노동운동에서 힘을 발휘할 수 없을뿐더러 오히려 질곡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렇다고 대안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이 죽음의 행렬을 막을 방도는 딱히 없다. 처절한 절망 속에서 새로운 싹을 틔우지 않는 한 퇴보는 계속될 것이다. 노동자 대통령후보 전술은 더 이상 유의미하지 않다. 보다 계획적이고 지속적이며 끈기있는 대중투쟁을 기획하지 않는 한 질곡의 현실을 깨트릴 수 없다. 투쟁은 사람이 하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계획을 내 놓아도 사람을 모을 수 없다면 실현될 수가 없다. 정파적 구조에 익숙하고 다른 사람들과 투쟁을 해본 경험이 없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투쟁하는 것은 두려워하기조차 한다.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현 상황에 대한 위기의식에 동의하는 사람들이라면 서로 힘을 합쳐야 한다. 그대가 혁명을 원한다면 그렇게 해야 한다.
저 외로운 마천루는 우리의 현재 자화상이고 우리가 나갈 방향이기도 하다. 현대차 비정규직 (최병승, 천의봉) 유성기업 지회 (홍종인 지회장), 쌍용차 (한상균, 복기성, 문기주) 철탑 농성 말이다. 나 그리고 그대, 우리 여기서 무엇을 할 것인가.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