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호]소득주도성장,전혀 새로울 게 없는 빛 좋은 개살구

[초점]
작성자
mklabor
작성일
2018-03-27 19:00
조회
1109

하승우 산추련 청년활동가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을 대표하는 말은 ‘소득주도성장’입니다. 중소기업•자영업자와 노동자의 소득을 증가시켜 소비를 늘리고, 내수가 살면 일자리가 늘면서 경제 성장이 이뤄진다는 것입니다. 2017년 대선 때 갑자기 나온 말은 아니며 문재인은 이미 2014년에 소득주도성장 토론회를 열고 관련 내용으로 발제를 한 적이 있습니다. 국정기획자문위원회에서 쓴 ‘국정과제 5개년 계획서’에도 핵심 내용으로 제시되었습니다.

그 내용을 좀 더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부채주도성장, 낙수효과 등 앞선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성장 전략이 저성장과 불평등을 불렀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을 만들어야 한다. 그 방법으로 일자리를 늘리고, 노동시간과 비정규직을 줄이고, 최저임금을 올리고, 비정규직 차별을 해소하고, (상시•지속 업무) 공공기관 비정규직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한다-’ 등등. ‘헬 한국’에 분노하고 변화를 원하는 사람들의 열망을 의식한 듯한 내용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표면적인 내용은 아무런 의미도 없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말짱 사기이고 입에 발린 말일 뿐입니다. 문재인은 2020년까지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인상하겠다고 약속했었습니다. 이것 자체도 민주노총과 만원행동 등이 계속 주장해 온 ‘당장 1만원’에 비하면 턱없이 느려서 저임금 해결에 큰 도움이 안 되는데, 정부와 여당에서는 벌써부터 (당선된 해인 2017년도부터 이미) 부작용 운운하면서 ‘속도조절론’을 꺼내고 있습니다.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도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당선 직후 인천공항을 방문하여 ‘비정규직 제로’를 천명했지만, 실제로는 용역회사와 다름없는 자회사 설립 고용 등을 정규직화로 포장한 것이었습니다. – 정규직/비정규직 구분은 회사의 경영, 사업, 노무관리의 독립성 여부가 기준이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상시 고용으로 상대적인 고용 안정만 있으면 정규직이라고 왜곡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개념 왜곡을 인정해 버리면 ‘비정규직 철폐’의 실현은 더 어려워집니다. – 그리고 이마저도 제대로 되지 않고 계약이 해지되거나 정규직 전환에서 제외되는 사례가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근로기준법 개악 시도로 반노동 공세를 펼치고 있기도 합니다. 이처럼 문재인 정부의 호언장담은 벌써부터 공문구로 끝나고 있습니다.

‘유연성’과 ‘유연안정성’

하지만 소득주도성장의 모든 내용이 공문구인 것은 아닙니다. 표면적인 내용은 입에 발린 말이지만, 공문구로 된 포장 속에 문재인 정부가 의도하는 진짜 내용이 있습니다. 바로 ‘유연안정성’ 또는 ‘유연안전성’입니다.

문재인은 1월 19일 한국노총과의 간담회에서 “노동 유연안정성을 위한 산적한 과제가 많이 있다. … 노동계가 분위기를 조성해줘야 한다”면서 유연안정성을 언급했습니다. (참고로 당일 민주노총 지도부와 다시 만났을 때는 언급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를 보도한 경향신문 기사는 ‘지나가는 말’이라고 표현했지만, 문재인 정부에서 유연안정성 개념은 갑자기 나온 게 아닙니다. 우선 국정기획자문위원회의 ‘국정과제 5개년 계획서’을 보면 소득주도성장을 이루는 핵심으로 “성장•고용•복지가 함께 가는 황금 삼각형” 모델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같은 이름을 가진 덴마크의 유연안정성 정책에서 이름을 따온 것입니다. 국가기획자문위원회 위원장인 김진표도 문재인 정부가 임기를 시작한 그 달에 이미 “성장과 고용, 복지가 함께 가는 황금삼각형을 구축하겠다”고 밝힌 바가 있습니다. 그 외에도 많은 정부•여당 측 인사들이 유연안정성이 필요하다고 역설하고 있습니다. 유연안정성은 단지 ‘지나가는 말’로 나온 게 아니라 문재인 정부가 처음부터 일관되게 의도한 것이자 ‘사회적 대화’로 이루고자 하는 핵심 내용입니다. 억측이 아닙니다. 지난해 9월에 경제부총리인 김동연이 “우리 경제의 도약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사회적 대타협 … 고용 안정성과 유연성을 같이 확보하는 ‘한국형 고용 안정•유연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듯이 문재인 정부의 일관된 확고한 의지입니다.

그래서 그 유연안정성이란 게 대체 무엇인가. 유연안정성은 이름 그대로 노동의 ‘유연성’과 ‘안정성’을 합친 말입니다. 먼저, 노동의 유연성은 급변하는 외부 환경에 따라 인적 자원을 얼마나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배분•재배분할 수 있는지를 나타냅니다.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의 고상한 표현법을 쓰지 않고 말하자면, 얼마나 해고를 쉽게 할 수 있는지 그리고 얼마나 비정규직을 마음대로 쓸 수 있는지를 말합니다. 유연성을 확보한다는 것은 결국 자본이 자신들의 이윤을 위해 노동자 계급을 공격하는 것을 에둘러 말한 것입니다.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은 자신들끼리 무슨 장난을 치는지 유연화도 세부적으로 임금 유연화니 수량적 유연화니 기능적 유연화니 하고 나누기도 하는데, 별 의미는 없고 모두 다 노동자 계급에 대한 자본의 공세가 내용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길게 적지 않아도 노동의 유연화에 대해선 이미 많은 사람들이 그 실체를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유연안정성은 어떻습니까? 유연안정성은 해고를 쉽게 할 수 있게 하고 비정규직 비율을 늘리는 등 노동의 ‘유연성’을 확보하되, 사회안전망을 두껍게 만들어 노동자의 ‘안정성’을 보장하자는 것입니다. 사회안전망이란 구체적으론 실업급여와 직업훈련 등으로 노동자의 재취업을 돕는 것이 중심 내용입니다. 유연안정성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덴마크나 네덜란드 등 유럽 국가를 성공 사례로 제시합니다. 생으로 유연성만 주장하는 것보다는 양심에 덜 찔리는 건지 애초에 양심이 있기는 한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친노동적입네 하는 부르주아 학자들이 즐겨 찾는 정책이기도 합니다. 아무튼 어떻습니까. 해고 쉽게 하는 대신 실업급여를 강화하고 재취업도 도와준다는데~ 비정규직 처우 개선도 해 준다 카던데~ 좀 괜찮은 정책인 것 같습니까?

노동자 계급 입장에서는 전혀 괜찮은 정책이 아닙니다. 전사회적인 노동의 유연화를 위한 기만술일 뿐입니다. 재취업이니 뭐니 하지만 길면 수십 년을 같은 일을 하는 노동자를 해고해 놓고 새로운 기술을 배우라 한들 숙련된 기술을 쌓을 수 있겠습니까? 소수가 숙련을 쌓는다고 한들 나이들어서 안정된 일자리가 주어질 것이라는 보장도 없습니다. 대학을 나온 청년들도 심각한 실업난에 시달리는 게 현실입니다. 그리고 어찌어찌 숙련을 쌓아서 어렵게 재취업을 하면 뭐가 달라진답니까? 결국 또 다시 ‘유연안정성’의 논리로 해고될 뿐입니다. 결국 노동자들에게 남은 길은 숙련된 기술이 없어도 할 수 있는 ‘(재)취업이 잘 되는 일자리’ 뿐입니다. 막노동판을 전전하거나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가 되든지 파트타임 노동자가 되든지 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유럽의 ‘성공 사례’ 국가들에서 일어난 일이기도 합니다. 또한 유럽에서도 복지국가 모델의 해체 속에서 노동자들이 더 이상 받아들이지 않는 정책입니다.

그리고 유연안정성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새롭고 멋들어진 유럽 선진국식 정책’인 것처럼 말을 하는데, 유연안정성은 한국에서도 별 새로운 게 아닙니다. IMF 경제위기 이후 한국의 노동자들이 당해 온 현실 자체가 바로 유연안정성입니다. 구조조정 하고 해고 쉽게 만들고 비정규직을 양산해 놓고, 고용센터니 무슨무슨 센터니 해서 취업을 도와주지 않습니까. 그리고 무슨무슨 센터를 통해서 잠깐 교육 받고 들어가는 일자리가 좋아 보았자 얼마나 좋더랍니까?
결국 지금 정부가 말하는 소득주도성장 – 곧 그 실체인 유연안정성은 전혀 새로운 게 아니며, 다만 전사회적으로 노동유연성을 더 강화하여 노동자 계급의 처지를 더 비참하게 만들려는 수작일 뿐입니다.
사회적 합의주의

그리고 문재인 정부에서 ‘사회적 대타협’이 필요하다면서 또 어떤 얘기가 나오더랍니까? 정규직 양보론, 사회연대기금, 하후상박 임금 인상 연대 등등. 유연안정성 확보 = 노동유연성 강화를 위한 반노동 이데올로기이고 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 정권이 주야장천 써먹어 온 노동귀족론•고임금론•임금기금설의 재탕입니다. 결국 앞에서 본 것처럼 정부와 자본이 ‘사회적 대화’로 이루고자 하는 것은 – 지금까지도 계속 그러했듯이 – 노동유연성의 강화입니다.

따라서 민주노총이 ‘사회적 대화’니 ‘사회적 대타협’이니 하는 사회적 합의주의에 빠져서 노사정위원회 혹은 그와 비슷한 ‘새로운 대화기구’에 참가한다면, 이번에도 또 다시 정부와 자본의 반노동 공세에 정당성을 부여해 주는 역할을 할 뿐입니다. 노동자 계급의 처우 개선은 ‘상생과 협조, 대화, 양보’에 의해서 얻어지는 게 아닙니다. 87년 노동자 대투쟁과 전노협 시절을 비롯해서 한국 노동자들의 대대적인 처우 개선은 오로지 투쟁을 통해서만 이루어져 왔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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