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호]이주노동자는 쓰다가 버리는 일회용품이 아니다! 고용허가제 폐지하고 사업장 이동의 자유를 보장하라!

[활동 글]
작성자
mklabor
작성일
2023-07-21 20:08
조회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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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노동안전보건활동가모임


 

산업연수생 제도에서 고용허가제로 변경된 지 20여 년! 이제 우리 밥상에 올라오는 채소, 생선 등은 이주노동자의 손길을 거치지 않고서는 구경하기 힘들 만큼 우리 사회 곳곳에서 노동자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인구 소멸 시대에 따라 이주민 정책은 이제 선택이 아닌 불가항력인 상황에서, 정부는 오로지 저임금 노동착취 구조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인 고용허가제를 통해, 사업장 변경의 자유조차 허락하지 않으며 노예의 삶을 강제하고 있습니다. 글쓴이가 있는 조선소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받고, 노동의 가치가 존중되고, 무엇보다 생명이 우선되기 위해서는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변경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합니다. 이에 지난 6월 15일 발표한 성명서를 통해 이야기를 대신합니다.

타파 체트리 랄 바하두르의
6주기를 추모하며,
이주노동자는 쓰다가 버리는
일회용품이 아니다!
고용허가제 폐지하고
사업장 이동의 자유를 보장하라!

2017년 6월 14일 13시 30분, 대우조선 C안벽 4303호선 라싱브릿지(대형 컨테이너 적재를 고정하는 철구조물)의 도장작업 중 네팔 이주노동자가 7~8미터 아래로 추락하는 중대재해가 발생했다. 사고를 목격한 사람이 없자 노동부와 회사는 페인트 작업을 위해 최상부로 이동 중 철재사다리에서 떨어진 것으로 추정했다. 그런데 사고 원인은 ‘수직사다리 이동시 3타점 미지지, 인양로프 미사용’의 개인 부주의로 결론지었다. 이주노동자 랄은 다음날 새벽 2시 30분, 사고 발생 반나절 만에 이국땅에서 삶을 마감했다.

사망사고가 발생했음에도 대우조선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과태료조차 발급받지 않았다. 50년 전, 이주노동자는“불사의 존재, 대체 가능함으로 죽음이란 없는 존재”라 말한 존 버거의 말은 현재에도 유효했다. 랄이 세상을 떠난지 6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이주노동자는 사업장 변경의 자유를 박탈당한 채 죽음의 현장에서 노예의 삶을 강요받고 있다.

사업장 변경의 자유 박탈이 이주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랄은 2009년에 한국에 왔다. E-9비자는 최대 4년 10개월(3년+1년 10개월) 체류가 가능하며 성실외국인근로자(재입국 제도) 자격이 주어지면 3개월 후 재입국이 가능하다. 랄 또한 한국정부가 인정한 ‘성실근로자’였다. 어휘에서도 착취와 탄압이 물씬 풍기듯, 랄은 6년이 넘는 시간 동안 조선소 파워공으로 일하며 고강도 장시간 노동에 몸이 망가져 갔다. 한 달 정도 고국에서 치료를 받고 돌아올 정도로 몸 상태가 좋지 않았고, 조선소보다 노동환경이 좋은 곳으로 이직을 원했지만 사업주는 이를 거부했다. 대신 파워공에서 터치업(도장페인트)으로 직종변경을 허락했으나 어깨가 아픈 랄에게 사다리를 타고 오르내려야 하는 고소작업으로 위험에 내몰았다. 이처럼 랄의 죽음은 예견된 인재였다.

산재 여부를 떠나 회사는 치료부터 받도록 조치해야 했다. 그러나 노동환경이 열악하면 작업을 거부하고 개선을 요구하는 권리는커녕, 사업주 허락 없이 사직서조차 마음대로 쓸 수 없는 고용허가제는 이주노동자를 기계로 취급했다. 최소한 사업장 변경의 자유가 보장되었더라면 랄은 죽지 않았다. 그러나 랄이 떠난지 6년 사이, 정권이 교체되고 대우조선이 한화오션으로 바뀌는 변화가 있었지만, 이주노동자는 여전히 노예의 삶에 머물러 있다. 최근 한화오션 사내하청 이주노동자 A의 사업장 변경 상담사례가 한국 사회에서 이주노동자가 처한 현실을 투영한다.

이주노동자는 쓰다 버리는 일회용품이 아니다!

지난 6월 12일 네팔 이주노동자 A가 우리 단체에 상담을 요청했다. 2022년 11월 28일에 E-9비자로 재입국해서 조선소 파워공으로 일을 하던 중, 한 달 전부터 어깨와 팔에 심한 통증을 느껴 회사에 사업장 변경 의사를 밝혔다. 병원 검진결과 ‘우측 어깨 회전근개 파열(확진)’, ‘우측 삼각섬유골 복합체 파열(의증)’, ‘손목 기존 수술(척골 내고정술)부위의 내고정물 제거술 요함’의 진단을 받았다. 더 이상 파워 작업을 할 수 없어 조선소를 떠나고 싶다는 말은 꾀병이 아니었다. 이상한 점은 ‘손목 기존 수술 부위의 내고정물 제거’ 소견이었는데 그는 2013년 9월, 처음 한국에 와서 부직포 만드는 공장에서 일을 하다가 팔이 컨베이어에 빨려 들어가는 사고를 당했다고 했다.

사실확인을 위해 건강보험공단에서 자격득실 확인서와 요양급여 내역서를 요청한 결과 2013.09.03- 2018.06.25까지의 근무 이력과 2013.10.01에 사고 발생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일을 시작한 지 1개월이 채 되기 전에 골절사고를 당했음에도 사측은 핀 제거 수술은커녕 당사자조차 몸 상태를 모를 정도로 일만 시켰다. 그러다 조선소에서도 가장 강도가 높다는 파워 작업으로 재입국해 일하면서, 몸이 아파 찾아간 병원에서 핀 제거 수술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된 것이다. 이는 한국 사회에서 이주노동자가 처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명확한 산업재해임에도 불구하고, 고정물 제거 수술 시 산재보험으로 치료와 보상을 받을 수 없다. 3년 동안 권리를 청구하지 않으면 시효의 소멸로 말미암아 권리를 보장받지 못한다. 악법이다. 산재은폐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노동자가 권리를 포기한 것이 아니라 권리를 박탈당한 것이기 때문에, 최소한 산재보상보험 만큼은 소멸시효가 폐지되어야 한다. 이는 이주노동자에게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산재은폐 공화국에서 모든 노동자가 불합리한 피해를 겪고 있는 중차대한 사안이다.

이주노동자 지원단체 설립보다 시급한 것은 사업장 변경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

이처럼 경악을 금치 못할 일들이 발생하는 이유는 사업주가 비자 연장부터 취소의 권한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정당히 근태를 사용해도 사업주가 무단결근(5일)으로 신고하면 자칫 귀국해야 하는 부당한 일들이 발생한다. 실제로 몸이 아파서 사업장 변경을 요구한 근태사용에도 불구하고 사측은 무단결근을 통지했다. 이는 A가 상담을 요청한 배경으로, 우리 단체가 진단서와 휴직계를 대리하여 제출하자 사측은 곧바로 사업장 변경을 제안했다.
일찌감치 ILO(국제노동기구)와 UN자유·사회권위원회·인종차별철폐위원회를 비롯하여 국가인권위원회 등 국내·외 여러 기구에서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변경의 자유 보장을 촉구해 왔다. 랄의 죽음과 이주노동자 A의 사례만으로도 왜 사업장 변경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명분은 이미 충분하다. 오히려 이러한 악법에 분노하며 노동·시민사회 단체가 함께 법개정을 위해 목소리를 모아야 한다.

사업장을 이동할 수 없어 죽어야 했던 랄, 10년동안 팔에 핀이 밖힌지도 모르고 고통받아야 했던 A, 이세상 어디에도 죽어도 괜찮은 존재, 탄압과 착취, 멸시받아도 되는 존재는 없다.

정부는 부디,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을 통해 약자를 보호하겠다는 거짓말로 노동자를 기만할 것이 아니라, 사업장 변경의 자유 보장이 곧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임을 직시하기 바란다. 이주노동자는 결코 쓰다가 버려지는 일회용품이 아니다!
정부는 고용허가제 폐지하고 사업장 변경의 자유를 보장하라!
산재소멸시효 폐지하고, 이주노동자 직업병 인정절차 간소화 하라!
이주노동자를 포함한 모든 노동자의 노동3권을 보장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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