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호]“산재 불승인 됐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요?”
[상담실]
작성자
mklabor
작성일
2020-05-22 18:01
조회
3406
김중희 //거제시비정규직지원센터 사무국장
조선소 도장부에서 10여 년간 일해 온 여성노동자가 사무실로 방문하였다.
올해가 60이라고 했다.
조선소에서 일하기 전에는 식당을 운영했었다고 하였다. 경기가 안 좋아서 조선소에서 터치업 작업을 해왔다. 작년에 갑자기 양쪽 슬관절 통증이 있어서 병원에 가서 슬관절 내측 반월상 연골 파열 증상을 받고 산재 신청을 했는데 최초 불승인을 받고 주변 지인의 소개로 사무실로 찾아오신 거였다.
조선소 도장작업에서도 직종이 크게 3가지로 분류된다. 파워, 스프레이, 터치업. 일단 파워는 글라인더를 이용해 선체 표면의 녹을 제거하는 일이고, 스프레이는 스프레이건이라는 도구를 이용해 페인트를 분사해 도색하는 일, 그리고 터치업은 스프레이건으로 못하는 사각지대를 붓이나 롤러를 이용해 페인트칠 하는 작업과 마무리 청소를 하는 직종인데 터치업은 주로 여성노동자들이 많이 한다. 또 용접 후에 볏겨진 곳을 롤러붓이나 일반붓으로 페인트를 칠하는 배의 마무리 작업까지로 폭이 넓다.
주로 협소한 공간에서 일을 하다 보니 무릎을 꿇고 기어다니면서 일하기 일쑤였다고 한다. 통증이 있어도 병원 갈 생각도 못하고, 파스를 붙이거나 한의원에서 침을 맞거나 물리치료를 받은 것이 다라고 했다.
다행히도 주변 지인께서 도움을 많이 주셔서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 요양신청 관련 자료 일체를 정보공개 청구도 하고, 국민건강보험공단에 건강보험자격취득실확인서도 발급받아서 자료를 가지고 오셨다.
근로복지공단 통영지사의 불승인 자료를 보면, 불승인 처분 이유는 “객관적으로 확인되는 업무부담 직업력이 짧고, 터치업 근무 기간에 사업주로서의 지위와 근로자로서의 지위가 함께 확인되는 점, 신청인의 건강보험수진내역상 2007년에서 2년 경과된 2009년부터 무릎 관련 질환으로 진료를 받아 업무배치 이전부터 개인질병이 있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운 점 등을 고려할 때 업무와의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다수 의견에 따라 불승인”한다는 것이었다.
여기에 핵심적인 판단 오류가 있었다. 조선소에서 터치업일을 10여 년간 해왔다는 이 여성노동자는 2007년부터 조선소 하청업체나 물량팀에서 일을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2009년 무릎 관련 치료 경험이 있어 개인질병이 있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불승인 내린 것이었다. 2007년 입사 전에는 양측 슬관절이 아프거나 다친 사실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조선소 터치업 직업력도 축소하고, 연세가 60이나 된 여성노동자에게 퇴행성, 개인질병으로 몰아가서 불승인 내린 것이었다. (한편으론 일단 불승인 내리면, 하청노동자에 연세도 있는 분이 기간도 오래 걸리는데, 포기할 거라 생각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산업재해보상보험 심사청구를 진행하면서, 실제 조선소에서 일했던 근무기간을 확인하는 작업이 선행되었다. 물량팀의 특성상 4대 보험을 가입하지 않고 일하는 노동자가 많기 때문에, 월급 입금 통장 내역을 발급받아서 건강보험자격취득사실확인서에서 빠진 기간의 입금내역을 확인하고 근무기간을 정리했다. 그리고 상담자와의 대화와 문답을 통해서 해당 업무의 특성 등을 정리하고, 사진과 동영상 등을 촬영하여 재해자사실확인서를 작성했다. 그리고 양산부산대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김영기 교수의 도움으로 “작업관련성 평가”를 받았다.
그 내용을 보면, “1) 직업력이 짧다는 주장을 하면서 5년 4개월이라고 하는데 아마도 2013년 6월까지 광명식당이란 식당 영업신고서 이후로 계산한 것으로 판단이 된다. 당시 기간은 실업급여 수급기간으로 근무를 하지 않았던 기간이기에 직업력에서 해당 기간은 빼면 되는 것이지 그것 자체가 업무관련성을 판단하는데 어떤 영향도 미칠 사안이 아니다. 2) 양측 슬관절 MRI에서 신청 상병이 확인이 되며, 3) 종사기간에 대한 정확한 확인을 해야 하고, 약 11년 이상의 장기간 수행한 작업이 무릎 부담작업으로 연령적, 개인적 요인보다는 직업적 요인이 상병 발생에 훨씬 결정적 요인으로 판단이 되므로 상기 상병은 직무와 관련하여 발생하였을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였다.
그리하여 산업재해보상보험 심사청구서를 작성하고, 심사청구 이유서를 작성하여 접수시켰다. 접수한 지 2달이 채 지나기 전에 전화가 왔다. “국장님 감사합니다. 승인됐다고 오늘 통보받았습니다. 수술하고 치료가 어느 정도 정리되면 한번 찾아뵐게요. 정말 감사합니다.”
조선소에서 힘들게 일한 노동자들이 단지 용접사, 배관사, 취부사, 파워그라인더 등 도장부에서 일하는 남성 노동자뿐만이 아니라 터치업 등을 하는 여성노동자들에게도 제대로 치료받고, 보상받을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 그 길에 작은 도움이라도 될 수 있다면 최선을 다해 도움을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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