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호]산재은폐 투쟁을 기획하며
[활동 글]
작성자
mklabor
작성일
2021-10-11 14:43
조회
2973

김정열 대우조선지회 부지회장
노동운동에 관심을 갖게된 계기다. 본인도 산재은폐를 경험하고, 주변에서도 산재은폐가 상시적으로 발생하고 있음에도, 왜 이러한 구조가 바뀌지 않고 당연시되고 있는지 궁금했다. 노동조합 또한 ‘노동자 생명에 타협이 없다’고 외쳐 왔음에도 반복되고 있는지 말이다. 안타깝게도 노안부장을 역임할 기회 없어 본격적인 활동을 하지 못했지만, 얼떨결에 노안담당 임원을 맡아 산재은폐 근절 투쟁을 1순위로 배치한 배경이다.
20년 1월, 지회 노안부와 지역 내 노동조합을 대상으로 산재은폐 근절 투쟁의 당위성을 설명하고 연대를 제안하며, 약 3개월간의 준비기간을 통해 산재은폐 책임을 원청에 묻는 경고 공문을 발송, 대자보 부착, 노조신문 배포 등 대대적인 산재은폐 근절 투쟁을 선포하며 투쟁에 돌입했다. 20년 5월, 대우조선 사내에서 하청노동자의 손가락 절단 사고를 은폐했다는 현장의 제보를 받고, 지회는 사실확인 즉시 원청의 책임을 묻는 성명서 발표와 노동부 집회, 원청 대표이사 고발 등 산재은폐의 책임을 원청에게 묻는 본격적인 싸움을 시작했다.
그 결과 먼저 사측의 방해 공작이 펼쳐졌다. 주요 골자는 ‘산재은폐가 하루이틀 발생한 것이 아니다’, ‘개인과 업체의 잘못을 왜 원청사장에게 묻느냐’, ‘조선소 하루아침에 안 바뀐다’ 는 등 회사가 어려운 상황에서 감싸주지는 못할 망정 흠집내기 바쁘다는 여론 조장이다. 충분히 예상한 일이었지만, 민주활동가 조차 원청사장 고발에 난색을 표할때에는, 솔직히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평소에는 ‘비타협’을 외쳐왔던 동지들이기 때문이다.
물론 수십 년째 관행처럼 여겨온 산재은폐를 하루아침에 바꿀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2년의 임기 동안 묵묵히 투쟁한다면, 최소한 대우조선에서 만큼은 산재은폐를 근절시킬 수 있을 거란 확신이 있었다. 실제 원청에 책임을 묻는 전략은 즉각적인 효과를 나타냈다. 대우조선 역사상 최초로 ‘산재은폐 근절’ 캠페인을 펼치는 등 대우조선 원청을 직접 움직이게 만든 것이다.
또 다른 변화는 뒤늦게나마 이루어진 피해보상이다. 업체에서는 산재은폐가 제보되지 않도록 입막음을 위한 보상 활동에 분주했다. 몸과 마음의 상처를 입은 노동자들이 이렇게라도 치유 받을 수 있음에, 원청의 책임을 묻는 투쟁은 여러 측면에서 긍정적인 효과를 낳았다. 특히 중대재해가 아니고서는 부를 수 없었던 사내 119는, 이제 산재은폐로 간주되어 관리자들이 앞다투어 신고하는 문화로 정착되었다.
기억에 남는 산재은폐 제보
산재신청을 이유로 업체 반장이 협박하며 집까지 찾아온 사례, 연좌제로 물량팀원 전체를 계약해지 한 사례, 요양기간 만료 후 복귀했더니 집단 왕따로 퇴사를 유도한 사례 등 하나 하나가 믿기지 않을 만큼 심각했다. 비율상 하청노동자의 사례가 많았는데 산재은폐는 정규직에게도 발생했다. 이는 대우조선 만의 문제가 아닌 노동자가 처한 현실을 투영하는 만큼 한가지 사례를 공유하고자 한다.
대우조선 정규직 노동자 산재은폐 사례(20년 6월 경)
00작업을 진행하다 어깨를 부딪히는 사고가 발생하여 사내 의무실에 접수하였습니다. 의무실에서 구급차로 대우병원에서 X-RAY,CT 등 촬영을 할 수 있도록 사고신고를 접수하려 하였으나 먼저 재해자가 담당반장에게 허락을 받고자 전화를 하였습니다.
해당 반장은 사고성이 아니라며 의무실 의사에게 항의하였고 의사는 사고성 여부의 문제보다는 우선적으로 어깨통증이 있어서 촬영이 필요하니 사진을 찍어야 해야한다고 해도, 의사에게 난동을 부리며 해당 작업자에게 아니라고 이야기하라며 다그치던 상황이었습니다.
00은 계속되는 어깨통으로 인해 개인적으로 MRI 촬영을 하였고 회전근계 파열 진단이 나오자 다시 반장에게 보고하니, 회사에서 다쳤다고 이야기하지 말라고 계속 지시하면서 반장은 사내 물리치료를 받게해주겠다면서 회유하였습니다.
물리치료 사유서를 적는 과정에서 일하다 다쳤다고 내용을 적으니 반장은 계속해서 ‘잘못 적었다, 이렇게 적으면 안된다’면서 찢어버렸고 4장을 찢고 나서야 반장이 불러준 내용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이후 아픈 몸을 이끌고 현장에 나가서 일을 하였으나 계속해서 ‘능률이 60%밖에 안나온다’고 질타를 하였고 몸이 아프다고 하소연을 해도 계속해서 능률만 이야기 하였습니다. 이에 보다 못한 재해자 동료가 노동조합으로 신고한 것입니다.
정부의 방관 속에, 숨기기만 하면 된다는 잘못된 의식!
이처럼 노조가 있는 정규직 노동자의 산재은폐도 그 문제가 심각했다. 현장에서는 전반적으로 사고가 발생하면 숨기는 것이 최선책이자 관례처럼 자행되어 온 것이다. 심지어 드러난 사고조차 제대로 치료받지 못했는데, 2018년, 2019년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에서 발생한 정규직 노동자의 사고성 산업재해조사표는 각 205건, 256건이었지만, 산재보험으로 치료받은 건수는 102건, 130건으로 평균 50%에 불과했다.
산재인정 여부에 다툼의 여지가 없는 사고성 재해조차, 절반이 제대로 치료받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뻔히 드러나는 수치에도 불구하고 건강보험료 부정수급 적발 건수는 2년 동안 단 1건에 불가했다. 정부가 산재은폐를 종용한다는 말을 반증하는 결과였다.
충분히 가능한 산재은폐 근절,
문제는 정부의 의지!
산재은폐 근절 투쟁을 전개하며 병원에 잠복도 해보고, 의사협회에 노동재해 제보 협조공문 전달, 건강보험공단 면담, 노동부 항의방문, 기소지연으로 담당 검찰과 검찰청장 고소 등 나름 현실의 벽에 주저앉지 않고 가열차게 맞서 왔다.
글쓴이가 전문가처럼 법을 잘 해석하지는 못하지만 투쟁을 통해 느낀 점은, 현행법만으로도 충분히 산재은폐를 막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의지를 전혀 늘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노동조합은 어떠한가?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강산이 세 번이나 바뀌는 세월 속에 노동운동의 흐름 또한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반복되는 노동자의 죽음 앞에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구호는 여전히 유효하고 절박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노동조합의 노동안전보건활동이 노사 간 협상용으로 치부되고, 단순히 조합원의 고충처리만을 위한 활동으로 변모되어 오지 않았는지, 그 속에서 소위 젊은 세대라 말하는 우리의 역할은 어떠했는지 돌아보고 점검할 필요가 있다.
경험이 적다고 주저하고 망설일 것이 아니라 ‘우리 생에서 다시 그렇게 불꽃 같은 세월과 마주칠 수 있을지’라고 고백하던 전노협 백서의 한 글귀처럼, 산재은폐 근절 투쟁이든 무엇이든 간에, 자신의 신념이 불꽃처럼 타오르길 소망한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가진 최고의 힘이자 산재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가장 빠른 길임을 확신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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